50년전통의 순대국을 먹어보니, 안양중앙시장 서울식당
50년전통의 순대국을 먹어보니, 안양중앙시장 서울식당
먹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먹는 태도만 보아도 현재 그 사람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식탐이다. 음식을 욕망으로 먹는다고 하지만 식사에도 품격이 있다.
오늘 점심 때 한식부페에서 본 것이 있다. 여자는 매우 말랐다. 자세히 보니 나이가 꽤 든 여인이다. 할머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식판 가득히 음식을 담았다는 것이다. 특히 돼지불고기김치볶음은 산을 이룬다.
여인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비켜 나서 앉은 것이다. 한식부페식당에서 테이블을 함께 쓰는 것은 실례가 아니다. 다만 정면으로 하여 먹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여인은 저 산만큼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유튜브 먹방채널 가운데 ‘쯔양’이 있다. 최근 돈 문제 등으로 이슈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본 쯔양은 불가사의했다. 산더미처럼 쌓은 먹거리를 입에 다 넣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여인은 며칠 못 먹은 사람 같았다. 매일 음식을 삼시 세끼 먹는 사람이라면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먹지 못할 것이다. 바로 앞에서 쯔양을 보는 것 같은 광경을 보자 나의 음식먹는 태도를 돌아 보게 되었다.
타인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타인의 행위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음식과 관련하여 나도 저렇게 쌓아 놓고 먹지 않았는지, 먹는데 정신이 팔려 서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본 것이다.
요즘 과식하지 않는다. 밥은 한공기에서 조금 못 미치게 80-90프로만 채운다. 더 먹고 싶어도 참는다. 여기서 두세 숟갈 더 먹으면 다음 식사 때 만복이 되어서 먹을 수 없다.
음식은 절제 되어야 한다. 초기경전에서도 음식의 적당량을 알라고 했다. 음식절제는 감관을 수호하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근본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제 중앙시장에 갔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자 오후 3시가 되었다. 이후 시간은 할 일이 없다. 유튜브를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은 무한정 남았다. 이럴 때 가만 있을 수 없다. 배낭을 메고 안양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가면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살 것이 없어도 시장에 간다. 시장에 있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삶이 권태로울 때, 삶이 심심할 때, 삶이 지겨울 때 재래시장에 가면 활력을 받는다.
안양중앙시장은 꽤 크다. 60만명이 넘게 사는 안양시에서 중앙시장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격자형으로 되어 있는 시장은 출입구도 여럿이다. 갖가지 상품이 수천, 수만가지 될 것이다.
시장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사람 사는 모습도 즐겁다. 요즘 채소가격이 점차 싸지고 있는 것 같다. 황토다발무우 한단이 8,000원이다. 다섯 개 들이 다발무우이다. 아마 다가오는 김장철을 겨냥한 것 같다.
배추가격이 대폭 내렸다. 가격표를 보니 한통에 5,000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칠팔천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더 내려야 한다. 3천원대는 되어야 서민들이 마음 놓고 사먹을 수 있다.
안양중앙시장에는 여러 골목이 있다. 그 가운데 한골목에서는 ‘개고기’를 판다. 이번 국회에서 개고기식용금지법안이 공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재래시장은 무풍지대인 것 같다. 개고기, 그 중에서도 ‘똥개’를 판다고 커다랗게 써 놓았다.
안양중앙시장을 특징 지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있다. 그것은 ‘곱창’이다. 이른바 ‘곱창골목’이 있어서 곱창만 전문적으로 팔고 있다. 아마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곳 곱창골먹에서 먹어 본 적 있다.
안양중앙시장에 일 없이 나왔다. 오후 3시에 사무실을 출발했다. 안양로를 따라다섯 정거장 거리를 걸어갔다. 일 없이 걸으니 걸을 만 한다. 급할 것도 없다.
흔히 ‘나인투파이브(9 to 5)’라고 한다. 아홉 시에 출근해서 다섯 시에 집에 가는 것을 말한다. 일인자영업자는 아침 7시 전후로 백권당에 도착한다. 오후 3시에 나가면 ‘세븐투쓰리(7 to 3)’가 된다. 그래도 여덟 시간은 앉아 있는 것이 된다.
오후 3시는 자영업자는 퇴근 시간이 된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누가 무어라고 할 사람이 없다. 더구나 ‘세븐투쓰리(7 to 3)’이기 때문에 8시간은 채운 것이다. 부담 없이 안양중앙시장으로 향한다.
요즘 중앙시장 가는 횟수가 많아 졌다. 아마 유튜브를 보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유튜브에 넋을 빼앗기고 있지 않으니 내 시간이 많아 졌다.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어서 중앙시장에 가는 것이다.
중앙시장에서 눈 여겨 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순대국밥집’이다. 이를 ‘돼지국밥집’이라고도 한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는데 사골육수 내는 커다란 솥이 눈에 띄었다. 식당이름은 ‘서울식당’이다.
솥에는 흰 육수가 가득했다. 펄펄 끓고 있는 육수가 한눈에 보기에도 진국처럼 보였다. 언젠가 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오늘이 그날이 되었다.
식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오후 3시에 출발하여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서울식당에 도착한 것은 거의 4시가 다 되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먹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포장한 것을 사가는 것이다.
서울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이 가능한지 물어 보았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포장 전용용기도 있었다. 1인분에 11,000원이다. 2인분을 사면 18,000원이라고 한다. 1인분어치만 샀다.
식당 안을 보았다. 안쪽에 내실도 있다. 오후 4시 임에도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상 푸짐하게 차려 놓고 먹는다. 그래 보았자 11,000원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케이푸드(K-Food)가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 놀랍게도 최근에는 돼지국밥도 케이푸드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단체로 국밥집에서 케이푸드를 먹는다고 한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더 나아가 불고기도 해당될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소울푸드는 아마 돼지국밥 또는 순대국밥, 뼈다귀감자탕과 같은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식당 한켠에 순대국을 시켜 놓고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 포스가 남 다르다. ‘오늘 제대로 먹어 보자’라는 듯이 음식을 대하고 있다. 오늘 먹은 음식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식당 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사진을 찍어도 좋은지 물어 보았다. 찍어도 좋다고 했다. 여주인은 액자를 가리키며 “저 액자에 관심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맛집을 탐방하는 사람들이 다녀 갔기 때문일 것이다.
식당에 한문으로 쓴 액자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달마도가 있는 그림액자는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액자의 한문이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낙관도 있다. 한자 읽기가 쉽지 않지만 ‘서기만당(瑞氣滿堂)’으로 추측되었다.
서기만당(瑞氣滿堂)은 무슨 뜻일까? 인터넷 검색해 보았다. 이는 ‘상서로운 기운이 방에 가득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당(滿堂)’이라는 말은 사람들로 꽉 찬 방이나 강당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식당의 서기만당액자는 ‘천객만래(千客萬來)’와 같은 것이다.
서울식당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여주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50년 되었다고 한다. 안양중앙시장에서 50년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식당 간판이 서울식당인 것으로 보아 아마 서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안양중앙시장에는 수많은 명소가 있다. 수천, 수만 가지 상품이 있는 시장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식당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하얀 육수 사골을 내는 솥에서 진심을 보았다.
서울식당 주메뉴는 순대국이다. 그러나 순대국에는 순대가 없다. 1인분 달라고 했더니 순대는 없었다. 그 대신 돼지편육, 소머리편육, 막창 등 갖가지 고기가 섞여 있다. 커다란 한접시로 하나 가득이다. 혼자 먹는다면 다 먹지 못할 것이다. 포장이라 더 많이 주는 것일까? 여주인은 “일인분이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먹을거에요.”라고 말했다.
포장 순대국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집까지 걸어 갔다. 중앙시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이 되었다. 한시간 반 동안 시장투어를 한 것이다.
서울식당 순대국 맛은 어떠할까? 포장용기에서 냄비로 옮겼다. 진한 육수이기 때문에 물을 더 부었다. 끓여 놓고 보니 네 명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다.
갖가지 고기는 커다란 접시로 하나 가득 되었다. 이를 그냥 먹어서는 맛이 없다. 육수에 넣고 삶듯이 고아야 한다. 그리고 식당에서 제공한 양념다대기를 넣어야 한다. 맛을 보았더니 역시 기대한 대로였다. 진한 육수를 먹으니 윤택해지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지 많이 먹지 않는다. 적당량만 먹는다. 생각했던 것에서 80-90프로만 먹고자 한다. 서울식당 순대국도 적당량만 먹었다. 고기도 적당량만 먹었다. 식탐이 나서 더 먹으면 탈이 난다.
요즘 틈만 나면 중앙시장에 간다. 배낭하나 메고 천천히 걸어간다. 걸어서 다섯 정거장 삼십분 정도 가면 사람 사는 냄새 물씬한 시장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분위기는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다. 당연히 백화점에서도 볼 수 없다.
순대국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케이푸드가 되었다. 이제 전세계사람들이 찾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순대국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먹어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순대국은 서민들의 음식이다.
시장에 가면 볼 거리도 많고 살 것도 많다. 하나 하나 도전해 보고자 한다. 지금 시각 3시 30분이다. 퇴근할 시간이다. 또다시 발동이 걸리는 것 같다. 또다시 안양중앙시장에 갈까나.
2024-11-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