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부글부글 끓는 물, 분노와 혐오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1. 17. 16:46

 

 

부글부글 끓는 물, 분노와 혐오

 

 

 

짜증섞인 전화를 받았는데

 

짜증섞인 전화를 받았다.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는 차를 빼달라는 것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통로주차를 하였는데 다짜고짜 신경질을 내면서 빨리 차를 빼달라고 한다.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시에서 특히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통로주차는 일상적인 것이고 서로 묵인 하는 것이다. 기어를 중립에 놓았기 때문에 좀 힘을 써서 밀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차 앞에 주차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불쾌하기 그지 없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낸다면 대부분 발끈 한다. 더구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화가 치밀기도 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혐오의 감정도 생긴다.

 

대선이 가까워짐에 따라

 

대선이 가까워짐에 따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정치관련 토론사이트도 기웃거려 보고 TV토론도 유심히 지켜 본다. 특히 종편채널의 경우 매우 심도 있게 보도 하고 있는데 매우 자극적이다.

 

출연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과 맞지 않은 후보에 대하여 흠집내기를 한다든가 억지주장을 일삼는다. 심지어 명백히 중상모략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자들의 면상을 보면 혐오감이 앞선다.

 

불교에서는 성냄은 탐욕과 어리석음과 더불어 삼독이라 하여 뿌리 뽑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성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혐오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장애에 대한 물의 비유

 

성냄을 분노라고도 표현한다. 그런 분노는 마음을 닦는데 있어서 정신적 장애에 해당된다. 그런 정신적 장애는 분노를 포함하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매사의 의심 이렇게 모두 다섯가지이다. 이를 오장애라고도 한다.

 

오장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있다. 숫따니빠따 뱀의 경(Sn1.1)’주석에서 물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오장애에 대한 물의 비유

오장애

물의 비유

    

감각적 쾌락의 욕망

(kāmāchanda)

 

 

다섯 가지 색깔로 물든 물

 

일반적으로 색깔, 소리, 냄새, , 감촉의 다섯 가지 감각의 장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쾌락을 말하지만, 때로는 넓은 의미로 감각적인 쾌락뿐만 아니라 부, 권력, 지위, 명예 등에서 발생하는 욕망도 의미함

분노(악의)

(vyāpāda)

부글부글 끓는 물

 

극단적인 형태의 성냄을 수반하는 것으로 자타에 대한 증오, 화냄, 원한, 혐오 등을 속성으로 함

해태와 혼침

(thīna-middha)

이끼가 낀 물

 

해태는 정신적으로 아둔한 것을 의미하고 혼침은 마음이 무겁고 가라앉아 졸리는 것을 뜻함

흥분과 회한

(uddhacca-kukucca)

 

바람이 불어 파도치는 물

 

흥분은 마음의 흥분, 불안정을 의미하고, 회한은 걱정으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대한 근심을 뜻함.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

매사의 의심

(vicikichā)

흐린 흙탕물

 

의심은 어리석음에 수반하는 상습적인 미결정과 미해결, 신뢰의 결여 등을 뜻함

 

 

 

위 다섯가지 물의 비유를 보면 어느 것 하나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것들이다. 모두 오염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분노를 부글부를 끓는 물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거머쥐려는 속성을 가진 탐욕과 달리 밀쳐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Boiling water

 

 

 

분노에 해당 되는 것을 보면  증오, 화냄, 원한, 혐오 등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분노의 부류에 들어 간 것이 혐오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비록 겉으로 드러나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혐오의 마음을 내는 것은 업을 짓고 있음에 틀림 없다.

 

두 번째 군대는 혐오라 불리고

 

혐오라는 말은 빠알리어로 무엇이라 표현 되어 있을까. 숫따니빠따 빠다나경(정진의 경, Sn3.2)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Kāmā te pahamā senā

dutiyā arati vuccati,
Tatiy
ā khuppipāsā te

catutthi tahā pavuccati.

 

그대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

두 번째 군대는 혐오라 불리고,

그대의 세 번째 군대는 기갈,

네 번째 군대는 갈애라 불린다.

 

(빠다나경-Padhana sutta-정진의 경, 숫따니빠따 Sn3.2, 전재성님역)

 

 

악마 나무치의 군대 이름인데 두 번째 군대가 혐오라 하였다. 혐오에 해당 되는 빠알리어는 아라띠(arati) 이다.

 

악마 딸의 이름 아라띠(arati)

 

아라띠가 나오는 게송이 또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Disvāna taha arati ragañcā
N
āhosi chando api methunasmi,
Kimevida
muttakarisapuaa
P
ādāpi na samaphusitu na icchi

 

땅하와 아라띠와 라가를 보고

성적 교섭에 대한 욕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두 발조차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마간디야경Māgandiyā sutta- 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  숫따니빠따 Sn4.9, 전재성님역

 

 

경의 설명에 따르면 마간디야는 황금색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황금색 피부를 가진 배우자와 혼인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탁발하는 시간에 맞추어 딸들을 꽃단장을 시킨 후 유혹하려 한 것이다.  게송에서 세 딸의 이름이 땅하(taha, 갈애), 아라띠(arati, 혐오), 라가(raga, 탐욕)인데 이는 악마 딸들의 이름과 같다.  이로 보아서 아라띠가 혐오의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고, 혐오는 갈애와 탐욕과 함께 악마의 마음과 같은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혐오가 일어나는 원인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맛지마니까야 마하딴하상카야경(M38)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이 있다.

 

 

그리고 그는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사랑스런 형상에는 애착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에는 혐오한다.

 

(마하딴하상카야경-Mahātanhāsankhayasutta,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 맛지마니까야 M38, 전재성박사역)

 

 

혐오가 일어나는 원인이 시각, 청각 등 감각접촉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혐오는 일어나는 것은 알아차림이 없어서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경우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몸에 대한 새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한량없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남김없이 제거되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호감과 혐오에 따라 그가 경험하는 어떠한 느낌이든지,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거나 그 느낌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탐닉한다. 그 느낌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탐닉하는 자에게 환락이 생긴다. 그 느낌에 대한 환락이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난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근심, 불안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이 함께 생겨난다.

 

(마하딴하상카야경-Mahātanhāsankhayasutta,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 맛지마니까야 M38, 전재성박사역)

 

 

혐오는 호감과 함께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라 한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기 전에 알아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 경우 필연적으로 그 느낌에 탐닉하게 된다. 좋으면 거머 쥐려 하고, 싫으면 밀쳐 내려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갈애로 발전하고 집착하게 되어 새로운 태어남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슬픔, 고통, 근심, 불안 등 괴로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여섯감역에 대한 멋진 게송

 

, , 코 등 여섯가지 감각기관과 형상, 소리, 냄새 등 여섯가지 감각대상이 접촉하여 좋고 싫음의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이와 같은 여섯가지 감각접촉을 잘 길들이고 잘 수호하고 잘 보호하고 제어 하면 즐거움을 실어 나를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한 게송이 있다. 상윳따니까야 차팟사야따나경 (S35:94)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멋진 게송이다.

 

 

1.

Chaeva phassāyatanāni bhikkhavo

Asavuto yattha dukkha nigacchati,

Tesañca ye savaraa avedisu

Saddhādutiyā viharantānavassutā.

 

수행승들이여, 여섯 가지 접촉영역을

잘 제어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는다.

그것들을 제어함을 배운 자들은

믿음을 벗으로 삼아 번뇌 없이 지내리.

 

 

2.

Disvāna rūpāni manoramāni

Athopi disvā amanoramāni

Manorame rāgapatha vinodaye

Na cappiya meti mana padosaye

 

사랑스런 형상을 보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을 보고 나서,

사랑스런 것에 대한 탐욕의 길을 제거하고,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다고 정신을 오염시키지 말라.

 

Saddañca sutavā dubhaya piyāppiya

Piyampi sadde na samucchito siyā

Athoppiye dosagata vinodaye

Na cappiya meti mana padosaye

 

 

3.

또한 사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 소리를 듣고

사랑스런 소리에 미혹되지 말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에 분노의 길을 제거하라.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다고 정신을 오염시키지 말라.

 

 

Gandhañca ghātvā surabhi manorama

Athopi ghātvā asuci akantiya

Akantiyasmi paigha vinodaye

Chandānunīto naca kantiye siyā

 

향기롭고 매력적인 냄새를 맡거나

더럽고 불쾌한 것을 냄새 맡으면,

불쾌한 것에는 분노를 자제하고

매력적인 욕망에 이끌리지 말라.

 

 

4.

Rasañca bhotvā sāditañca sādu

Athopi bhotvāna asādumekadā

Sādu rasa nājjhosāya bhuñje

Virodhamāsādusu nopadasaye

 

미식가가 감미로운 맛을 즐기거나

한때 감미롭지 않은 것을 즐기면,

감미로운 것을 탐욕스럽게 맛보지 말고

감미롭지 않은 것에 혐오를 보이지 말라.

 

 

5.

Phassena phuṭṭho na sukhena majje

Dukkhena phuṭṭhopi na sampavedhe

Phassadvaya sukhadukkhe upekkhe

Anānuruddho aviruddhakenaci

 

즐거운 감촉에 접촉해도 취하지 않고

괴로운 감촉에 접촉해도 흔들리지 않으면

두 가지 즐겁고 괴로운 감촉에서 평정하니

어떠한 유혹과 혐오를 떠났네.

 

 

6.

Papañcasaññā itarītarā narā

Papañcayantā upayanti saññino

Manomaya gehasitañca sabba

Panujja nekkhammasita irīyati

 

희론에 묶인 이러저러한 사람들은

희론을 향해가지만 그것을 지각하면

정신이 만든 세속에 의존하는 것을 끊어 버리고

여읨에 의존하는 것을 지향한다네.

 

 

7.

Eva mano chassu yadā subhāvito

Phuṭṭhassa citta na vikampate kvaci

Te rāgadose abhibhuyya bhikkhavo

Bhavātha jātimaraassa pāragāti.

 

 

이처럼 정신이 여섯 가지 감역에 잘 수련되면

접촉하더라도 어디서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

수행승들이여, 그들 탐욕과 성냄을 극복하여

생사의 피안에 도달한 자가 되어야 하리.

 

(차팟사야따나경-Chaphassāyatanasutta-여섯 접촉감역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94(5-1), 전재성님역)

 

  차팟사야따나경(여섯 접촉감역에 대한 경-35.94).docx

 

 

 

형상, 소리, 냄새, , 감촉, 희론 이렇게 다섯가지 감각접촉을 잘 제어 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잘 제어 하면 생사의 피안에 도달 할 수 있다고 한다.

 

혐오의 감정이 일어 났을 때

 

성내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야기한다. 또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화를 유발시킨다. 그런 성내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이처럼 분노를 발산한다는 것은 본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 그래서 성내지 말자고 한다.

 

성내는 것이 겉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면 혐오는 속으로 미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성내는 것과 다를까. 초기경에 따르면 성내는 것이나 혐오의 감정이나 똑같이 분노의 마음이라 한다. 이런 마음은 탐욕과 함께 삼독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버려질 수 있을까.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은은 버려질 수 없다. 단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감각접촉으로 인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접촉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기 싫어도 보이는 것이고, 귀에 들리는 것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과 귀를 막고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 표현 된 것과 같이 알아차림(sati)을 유지 해야 한다. 그래서 혐오의 감정이 일어 났을 때 혐오의 감정이 일어났구나라고 단지 알아차리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싫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혐오의 마음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2-11-17

진흙속의연꽃

차팟사야따나경(여섯 접촉감역에 대한 경-35.94).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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