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사야도법문 16

마하시사야도의 논서 독후기와 일창스님의 “사두! 사두! 사두!”,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까티나보시법회

마하시사야도의 논서 독후기와 일창스님의 “사두! 사두! 사두!”,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까티나보시법회 현재시각 오후 1시 57분, 마음이 상쾌하고 청량하다. 일년에 이런 날은 드물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났을 때 가뿐함 같은 것이다. 오늘 한국마하시선원에 다녀 왔다. 한국마하시선원은 백권당에서 가까이 있다. 같은 안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양은 분지로 되어 있어서 끝에서 끝까지 이동거리가 짧다. 서울처럼 움직였다 하면 한시간 걸리는 거리가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 안양 북단 관악역 근처까지 버스로 열한 정거장 이십 여분 걸렸다. 까티나법회는 열 시에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착오가 있었다. 열 시 십분전에 도착하니 법회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법회는 아홉 시 이십..

한국마하시선원 까티나축제 가는 날에

한국마하시선원 까티나축제 가는 날에 오늘은 한국마하시선원 가는 날이다. 까티나가사공양법요식이 있는 날이다. 까티나축제는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테라와다 최대 축일이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몸을 단정히 했다. 옷도 골라 입었다. 본래 흰옷을 입어야 하나 계절 특성으로 인하여 마땅하지 않다. 평소 입던 옷과는 달리 잘 간직해 놓은 점퍼를 입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구두를 신었다. 까티나법회는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시간이 없다. 좌선은 10분 하는 것으로 그쳤다. 늦어도 9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글 쓸 수 있는 시간은 40여분밖에 되지 않는다. 까티나행사는 우안거가 끝난 다음 한달 이내에 개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올해 우안거는 양력으로 10월 17일에 끝났다. 11월 7일까지 하루 날자를 잡아서 행사를 ..

끊임 없이 흐르는 명색(名色)의 강

끊임 없이 흐르는 명색(名色)의 강 익숙한 것은 능숙한 것이다. 일상에서 늘 하던 일은 익숙하기도 하고 능숙하기도 하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가평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이박삼일 있었다. 오늘 아침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른 아침 백권당으로 걸어와서 가장 먼저 식사를 했다. 늘 그렇듯이 고구마와 찐계란이 주식이다. 이런 것도 일상이다. 그리고 능숙하다. 식사를 했으니 커피를 마셔야 한다. 늘 그렇듯이 절구질해서 절구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이것도 일상이다. 절구질에 능숙하다. 향과 함께 쓴맛, 신맛,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최상의 절구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셨으니 이제 수행을 해야 한다.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것은 매일 아침 늘 하는 일이다. 매일 하다 보니 능숙해졌다. 마치 ..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그냥 앉아 있었다. 행선도 생략했다. 배의 부품과 꺼짐도 보지 않았다. 다만 허공을 주관찰대상으로 했다.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여기에 지혜는 없다. 단지 마음의 안정과 평화만을 바란 것이다. 재가우안거 83일째이다. 명상이 매일 잘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누워 있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좌선이 끝난 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오늘 새벽에 좀 무리했다. 책을 한시간 본 것이다. 그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보았다. 논서‘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에 실려 있는 ‘조건파악의 지혜’에 대한 것이다. 무려 17페이지를 보았다. 평소에는 두세 페이지가 고작이다. 감동을 넘어 감격한 것은 논서를 보면..

허물을 지적해 주는 이에게 감사하자

허물을 지적해 주는 이에게 감사하자  동네가 조용하다.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평화롭다. 페이스북에서 두 명을 차단시켰다. 오늘날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본래 친구나 아는 사람 위주의 커뮤니티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인간군상을 보게 된다. 스님은 늘 참견한다. 조금이라도 대승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토를 다는 것이다. 쓰는데 자기검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신대로 쓸 수가 없었다. 분명히 문제 삼을 것을 염려 하여 사전에 차단했다. 이것도 허물이 되는 것일까? 그는 마치 스토커같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서 말을 건다.  일주일전의 일이다. 글을 하나 올리고 납품 갔었다. 고속도로를 목숨을 걸고 달렸다. 그는 메신저에 왜 곧바로 답글을 달..

담마와나선원 가는 날에

담마와나선원 가는 날에 글도 전쟁하듯 쓸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을까? 마치 기사 원고 마감시간에 쫓기듯 쓰는 것을 말한다. 지금 시각 오전 일곱 시이다. 국민휴가주간의 한복판에 있는 날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오늘은 8월 4일 일요일이다. 일요일임에도 백권당에 나왔다. 주말이 없는 삶이다. 휴가도 없다.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가 아까워라서라도 나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에 있으면 퇴행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아침 6시 18분에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찰칵 했다. 배낭을 짊어진 내모습을 찍은 것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페이스북을 보면 얼굴 노출이 심한 사람이 있다. 재가자는 물론 스님도 노출한다. 자주 보니 식상하게 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

저열한 구함과 고귀한 구함, 담마짝까법문 읽기 시동을 걸고

저열한 구함과 고귀한 구함, 담마짝까법문 읽기 시동을 걸고 지금 이순간 고귀한 자가 된 것 같다. 한발 천천히 이동할 때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이 순간만큼은 내가 최고가 되는 것 같다. 날씨가 후끈하다. 아침부터 열기가 느껴진다. 이제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에어컨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힘든 계절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백권당의 아침이다. 재가우안거 8일째이다. 지난 7월 20일 우안거가 시작 되었으므로 딱 일주일 째 되는 아침이다. 아침 햇살이 블라인드 커튼 사이로 비친다. 형광등 불은 꺼 놓았다. 명상하는 데 있어서는 자연채광이 좋다. 발을 한발 한발 움직이다 보면 번뇌망상은 사라진다. 마음을 온통 발의 움직임에 두면 번뇌망상이 치고 들어 올 수 ..

윤회의 방랑자가 되지 않으리, 아리야와사법문 완독

윤회의 방랑자가 되지 않으리, 아리야와사법문 완독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건너야 할 것이 있다. 안양천이다. 비산동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건널 수 없었다. 밤새 내린 비로 징검다리가 잠긴 것이다. 징검다리 물살은 거세다. 징검다리는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 단차가 있는 곳에서는 물이 솟구친다.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 저 언덕으로 갈 수 없다.  징검다리는 최단거리이다. 징검다리가 막혔으니 돌아가야 한다. 무지개다리는 안심이다.  매일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가운데에는 물이 있다. 홍수가 나면 건널 수 없다. 이럴 때 다리가 있으면 쉽게 건널 수 있다. 윤회의 거센 물결은 어떻게 건너야 할까?  죽어서 돌아온 사람이 없기에 매일 삶을 살고 있다. 살아 있으니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

한걸음도 무심코 내딛어서는 안돼

한걸음도 무심코 내딛어서는 안돼 “지금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까?”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듣던 말이다. 십여년전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했을 때 듣던 말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방금 좌선을 마쳤다. 오래 한 것은 아니다. 고작 삼십분 했다. 평좌한 몸이 가벼웠다. 몸이 가벼우니 마음도 가벼웠다. 좌선은 한시간 해야 한다. 행선도 한시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빨리 글을 쓰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글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한 늘 제자리 걸음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글쓰기를 멈출 수 있을까? 수행이 체계화 되어 있는 위빠사나 어제저녁과 오늘새벽 머리맡에 있는 ‘아리야와사법문’을 읽었다. 새기고..

증득 없는 스승

증득 없는 스승 싸띠(sati)란 무엇일까? 위빠사나 수행을 알고부터 늘 궁금했었다. 여러 사람의 글도 접했다. 학문과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말한다. 견해는 모두 달랐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수행을 해보지 않은 자가 수행에 대해서 말하면 허물이 된다.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자가 책에 대해서 말하면 구업이 된다. 싸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싸띠에 대하여 새김이라고 말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번역에 따른다. 또한 한국마하시선원의 일창스님 번역에 따른다. 새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 ‘아리야와사법문’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이전에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도 접했지만 이번처럼 절실하지 않았다. 아리야와사, 성자의 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