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236

인생해제는 없을까? 천장사 북토크

인생해제는 없을까? 천장사 북토크 염불 소리에 몸을 맡겼다. 눈은 감은 상태였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상태에서 앉아 있었다. 스님의 운율에 맡겼다. 몸이 릴렉스 되는 것 같았다. 스님의 리드에 마음도 맡겼다. 오늘 천장사 정월대보름법회에 다녀왔다. 토요일이라 막힐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전혀 막히지 않았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제한최고 속도까지 달렸다. 정월보름날은 불교명절일까? 백중 못지 않은 명절일 것 같았다. 왜 그런가? 하안거가 끝나는 날 백중이기 때문에 동안거가 끝나는 날인 정월대보름날도 틀림 없이 중요한 불교명절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정월대보름은 토요일이다. 천장사에서는 일요법회를 하루 당겨 토요일에 학기로 했다. 지난 입춘법회 때 스님과 신도들이 모여서 합의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

나의 원찰은 어디? 천장사 입춘법회

나의 원찰은 어디? 천장사 입춘법회 “연꽃님, 원찰이 어디세요?”오늘 점심 시간에 커피를 마시다가 길상화 보살이 물었다. 길상화 보살은 뻔히 알고 있는 듯이 질문했다. 오늘 입춘날 천장사에 온 것을 보고서 나의 원찰이 천장사이겠거니 하면서 넌지시 물어 본 것이다. 나의 원찰은 어디일까? 원찰이라는 말은 마치 본적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주로 다니고 있는 절을 원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길상화 보살의 질문을 받고 망설였다. 입춘날 서산에 왔으니 천장가가 원찰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어제 저녁까지도 망설였다. 신림동으로 갈 것인지 서산으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 절과 인연 맺었는데 해마다 입춘 때가 되면 받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부적이다. 서울 신..

천장사 달빛음악회

천장사 달빛음악회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연암골에 50-70 떼창이 울려 퍼졌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면 필연일까? 보름날 밤 천장사에서 50-70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천정사 카톡방에 공지가 떴다. 가을 달빛음악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10월 29일 저녁이다. 음력으로 9월 보름이니 달밤이 되기에 충분했다. 공지가 떴을 때 망설임 없었다. 가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멀리 있어서 자주 가보지 못하지만 부처님오신날이나 입제일, 반철법회, 해제일 등 굵직굵직한 행사가 있는 날은 가 보아야 한다. 이렇게 문화행사가 있는 날은 놓칠 수 없다. 달빛행사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올해 봄 방생법회 갔었을 때 내가 제안했었다. 그것..

글 쓰는 스님, 현진스님의 마야사

글 쓰는 스님, 현진스님의 마야사 이 보다 평화로울 수 없다. 도량은 잘 가꾸어져 있다. 비구니스님 도량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글 쓰는 스님, 현진스님의 도량이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떠 있다. 햇살은 강렬하다. 스마트폰에는 33도로 뜬다. 체감온도는 37도이다. 작열하는 햇살이지만 그늘만 들어 가면 살만하다. 마야사도 그렇다. 여행을 하면 꼭 절에 들른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여행하던 상인이 절에 가서 안녕을 바라는 것과 같다. 돈황에 가면 석굴을 조성한 상인 이름을 볼 수 있다. 국내 여행도 여행이다. 여행 도중에 지역에 있는 사찰을 반드시 방문한다. 청주에 있는 상당산성자연휴양림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귀가길에 마야사를 들렀다. 마야사는 청주에 있다. 전통사찰은 아니다. 현진스님..

삼일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데, 처마와 처마가 맞닿아 있는 구인사

삼일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데, 처마와 처마가 맞닿아 있는 구인사 삼일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 이 말은 구인사 소개 글에서 본 것이다. 나무위키에서 본 것이다. 구인사 경내에서는 보지 못했다. 구인사 팜플렛에서도 보지 못했다. 구인사 다녀 온 사람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전달해서 들은 것 중의 하나는 "삼일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다. 이 말처럼 강력한 메세지가 어디 있을까? 어제 구인사를 다녀왔다. 단양소노문에서 일박을 하고 난 다음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단양팔경이 생각났다. 그 중에서도 도담삼봉이 떠올랐다. 화보에서 봤던 것이다. 이른 아침 차를 몰았다. 도담삼봉은 숙소에서 십키로 가량 떨어져 있다. 교과서 등에서 보던 강 가운데 있는 섬이 보였다...

천장사 도반들과 우정어린 부처님오신날을

천장사 도반들과 우정어린 부처님오신날을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어디로 가야 할까? 동쪽으로 가야 할지, 북쪽으로 할지, 남쪽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동쪽은 큰 절이다. 큰절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중속의 고독이다. 관불식 하고 오면 그만이다. 북쪽은 작은 절이다. 작다 보니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가족적 분위기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이 몇 명 없다. 자주 다니지 않다 보니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비빔밥만 먹고 올 가능성이 높다. 남쪽은 멀리 떨어져 있다.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끌리는 것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다. 끈끈한 우정의 관계를 말한다.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반겨주는 사람이..

학사대 전나무가 사라졌다

학사대 전나무가 사라졌다 학사대 전나무는 2012년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9년 태풍 랑링으로 인해 가지가 부러졌다. 이로 인하여 학사대 전나무는 수명을 다했다. 20년전에 봤던 전나무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 뜬금없이 동상이 세워졌다. 자연무상과 세월무상을 느낀다. 나무는 왜 죽었을까? 천년을 그 자리에 지탱해 온 나무가 사라졌다. 거기에 가면 아름드리 전나무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했는데 없었다. 해인사 주법당에 현수막이 펼쳐졌다. 생전예수재 현수막이다. “법보종찰 생전예수재”라는 현수막이다. 법보종찰이라는 말과 생전예수재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학사대전나무가 사라졌다. 있어야 할 곳에 없어서 아쉬웠다.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해인사의 운명을 보는 것 같다. 아니 한국불..

석문의 연속 향일암

석문의 연속 향일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움직이는 사무실이 된다.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노트북으로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숙박지 대부분은 와이파이가 된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것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돌산도에 있는 S펜션에서는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은 되는데 왜 노트북은 안될까? 큰 일 났다. 이동중에 휴게소 시설을 이용해야 하나? 혹시 모뎀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은 어떨까? 시도해 보았다. 놀랍게도 되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업무처리했다. 이동중에 노트북 위력을 실감한다. 네트워크만 연결 되어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임을 실감했다. 요즘 디지털유목민이 되었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사진찍지 말라는 진정한 의미는?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사진찍지 말라는 진정한 의미는?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 이 말은 석굴암에서 들었다. 석굴암 본존불 전각을 비켜 나서 카메리를 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법당보살이 제지한 것이다. 불국사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십년 된 것 같다. 작은 법회 모임에서 일박이일 경주 순례 갔었는데 대웅전에서 사진찍다 법당보살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받았다. 사찰순례하면 불상을 촬영해 둔다. 순례기를 남길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에서는 사진촬영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법당 안에서 촬영금지하는 것으로 이해 했다. 법당 밖에서 찍으면 어떨까? 법당 밖에서 부처님 상호를 촬영했다. 그러자 법당보살이 뛰어 나와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것에 대하여 혀를 차는 언사..

성주사지에서 주춧돌 명상을

성주사지에서 주춧돌 명상을 성주사지 주춧돌에 앉았다. 강당터 수십개 주춧돌에 천장사 방생법회 도반들이 좌선 했다. 사월의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었다. 중현스님은 보령 성주사지로 가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통일신라 시기에 구산선문 중심지 중에 하나라고 했다. 지금은 폐사가 되어 버려 탑들과 주춧돌만 남아 있는 성주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주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이다.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적 제307호.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에 의하면 백제 법왕이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오합사라고 불렀으나 신라 문성왕(839~859) 때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 무염이 가람을 크게 중창하면서 절 이름도 성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