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246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최상의 공양, 법주사 팔상전에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최상의 공양, 법주사 팔상전에서 어제 탈진했었다. 직지사에서부터 네 시간 운전하고 난 다음 드러누운 것이다. 힘이 완전 방전된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몸은 복원력이 있는 것 같다. 탈진한지 한두 시간이 되자 서서히 충전되기 시작했다. 홍삼엑기스를 물에 타서 마셔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몸은 축 늘어졌지만 귀는 멀쩡했다. 탈진된 상태에서 유튜브를 들었다. 정치유튜브를 들은 것이다. 최동석 선생의 유튜브를 들었다. 김대중 이후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라가 정체되고 퇴보한 것은 순전히 미숙한 최고권력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숙한 리더에 문재인도 다르지 않았다. 개혁하라고 표를 몰아 주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라를..

기러기상이 왜 법당에 있을까?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에서

기러기상이 왜 법당에 있을까?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에서  “저 사람한테 걸리면 죽습니다.” 이 말은 문수사에서 들었다. 천장사 중현스님이 문수사 범주스님에게 말한 것이다. 천장사 백중법회를 마치고 사람들은 문수사로 이동했다. 중현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순례이다. 스님을 포함하여 모두 열두 명 참석했다. 문수사는 서산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개심사 가는 길에 있다. 작년 벚꽃 필 때 개인적으로 처음 가 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문수사는 개심사와 함께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겹벚꽃이 필 무렵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런 문수사에는 보물이 있다. 고려시대 목조 극락보전이 최근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절에 보물이나 국보가 있는 절과 없는 절은 사격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절에 보물이라도 하나 있으..

제사를 부정하지 않은 부처님, 백중날 천장사에서

제사를 부정하지 않은 부처님, 백중날 천장사에서 나의 원찰은 어디인가? 자주 다니는 절이 원찰이라 할 수 있다. 천장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2024년 8월 18일 일요일 천장사에 갔다. 음력으로 칠월보름으로 백중날에 간 것이다. 이날은 하안거 해제날이기도 하다. 천장사에서 올해 하안거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보루 공사때문이다. 두달전부터 천보루 공사가 본격화 됨에 따라 천장사 염궁선원은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 명절이 있다.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지, 입춘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칠월칠석과 같은 소명절이 있다. 이 밖에도 천장사에는 음력 삼월삼짓날 무렵에 방생법회를 간다. 또한 천장사에만 있는 것으로 음력 구워보름날에 ‘달빛다회(茶會)’도 있다. 요즘 천장사에 자주 다니고 있다. 7월 28일..

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천장사 사라낭카르 스님 초청법회

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천장사 사라낭카르 스님 초청법회 밀폐된 공간에 땀이 줄줄 흐른다. 참고 견디어야 한다. 삼십분 앉아 있기로 했으니 알람소리가 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재가우안거 십일째이다. 늘 그렇듯이 좌선에 앞서 행선을 먼저 했다.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가기 위한 것이다. 행선 없는 좌선을 생각할 수 없다. 백권당에서 에어컨은 오전 아홉 시가 넘어야 들어 온다. 이전에는 찜통 같은 더위이다. 더구나 습도까지 높다. 아침 여덟 시 이전임에도 체감 온도는 삼십도가 넘는다. 좌선 중에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맥 빠진다. 참아야 한다. 미얀마 속담에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좌선할 때 고행하는 것 같은 ..

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 불상이 없네, 칠갑산 장곡사에서

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 불상이 없네, 칠갑산 장곡사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야~”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대중가요 칠갑산이다. 칠갑산에 가니 호미를 든 아낙네 동상이 있다. 7월 15일 월요일 만수산자연휴양림에서 일박하고 떠나는 날이다. 그냥 갈 수 없다. 시간이 철철 남아서 어디라도 한두 군데 들러야 한다. 불자에게는 절만한 곳이 없다. 삼천리방방곡곡 절이 없는 곳은 없다. 특히 이름 있는 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갑산도 그랬다. 하루밤 머문 곳은 부여군 만수산자연휴양림이다. 가까이에 무량사가 있다. 먼저 무량사에 들렀다. 무량사는 여러 번 와 보았다. 너른 평지에 큰 가람이 있는 대찰이다. 그래서인지 성지순례 코스가 된 것 같다. 무량사를 참배 했다. 절에 가면 반드시 대웅..

보리수가 성장하면 불교도 성장, 2024년 마하위하라 웨삭데이 보리수관욕

보리수가 성장하면 불교도 성장, 2024년 마하위하라 웨삭데이 보리수관욕   마하위하라, 한국속의 스리랑카 사원이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마하위하라는 리틀 스리랑카이다. 오늘 웨삭데이를 맞이하여 아산으로 차를 몰았다. 안양에서 아산 마하위하라까지 60키로 가까이 된다. 오전 아홉 시 도착을 목표로 했다. 평일 출근길이어서일까 한시간 삼십분 이상 걸렸다. 오늘은 5월 23일 목요일이다. 테라와다불교 붓다의 날은 음력 사월보름으로 5월 22일(수)이 된다. 그런데 마하위하라 웹포스터를 보니 분명히 5월 23일로 찍혀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스리랑카에서의 웨삭데이는 분명히 5월 23일이다. 궁금한 것은 담마끼띠 스님을 만나면 물어 보기로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미얀마와 날자..

미얀마불교 전법현장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붓다의 날

미얀마불교 전법현장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붓다의 날 이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벌써 이십년 되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님입니다.”(Stn.558) 수타니파타 ‘쎌라의 경’(Sn.3.7)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맛지마니까야 ‘브라흐마유의 경’(M91)과도 병행한다. 부처가 되는것은 단지 깨달은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부처가 된다. 알아야 할 것은 사성제, 즉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닦아야 할 것은 팔정도, 즉 여덟 가지 고귀한 진리이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운주사 와불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운주사 와불  무엇이든지 돌에 새겨 놓으면 천년만년 간다. 공덕비도 그렇다. 서울 강남 봉은사에 가면 돌에 새긴 공덕비를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전각 기둥 받침돌에 새겼다. 한자로 시주와 화주 이름을 새겼다. 덕을 찬탄하는 송덕비이다. (봉은사 공덕비)  나무로 된 전각은 언젠가 불타서 사라질 것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긴 석재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거기에 새긴 시주와 화주 이름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북한산 승가사에 가면 바위에 시주자 명단을 새겼다. 아마 천년만년 가고자 한 것 같다. 도시는 재개발되고 재생됨에 따라 변화무쌍하지만 산중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천연바위에 시주자 명단을 새겼다면 확실한 것이다. (승가사 공덕비)  삶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이렇게..

개천사 거북바위와 비자림

개천사 거북바위와 비자림  이틀간 자리를 비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일을 열어서 확인한 것이다. 일이 있으면 전화가 왔을 것이다. 급한 일이 있을 경우 담당자들이 전화를 한다. 아무런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은 것을 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이박삼일 남도여행을 다녀 왔다. 화순에 있는 휴양림 두 곳에서 머물렀다. 부처님오신날을 포함한 여행이다. 이렇게 자리를 이틀 비울 때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노트북을 가져 가는 것이다.  노트북은 움직이는 사무실과 같다. 여행지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다. 급한 일이 있을 경우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노트북을 챙긴다. 노트북을 챙길 때 준비하는 것이 있다. 전원장치와 마우스는 기본이다. 여기에 키보드를 챙겨야 한다. 노트북 자판..

증심사 천년철불의 미소

증심사 천년철불의 미소 들리는 것은 물소리 새소리뿐이다. 여기에 가느다란 염불소리. 눈으로는 천이백년된 철불의 신비한 미소. 증심사, 오보고 싶은 절이었다. 마침내 인연이 되었다. 어제 5월 13일 이박삼일 일정의 남도 순례길 첫날 방문했다. 무등의 능선이 경이롭다. 보면 볼수록 눈길 끈다. 평등해 보이는 능선이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평등능선에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품이 넉넉한 산이다. 천리 먼 길 달려 비로전에 앉았다. 철불 상호의 자애로운 미소가 맞아 준다. 이 땅에 천년전에도 불교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불교를 믿고 있었을까? 조금 아는 자의 자만이 발동된다.     부처님오신날 특별가족기도, 플레카드에 쓰여진 글자가 거슬린다. 왜 기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