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 불상이 없네, 칠갑산 장곡사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야~”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대중가요 칠갑산이다. 칠갑산에 가니 호미를 든 아낙네 동상이 있다.
7월 15일 월요일 만수산자연휴양림에서 일박하고 떠나는 날이다. 그냥 갈 수 없다. 시간이 철철 남아서 어디라도 한두 군데 들러야 한다. 불자에게는 절만한 곳이 없다.
삼천리방방곡곡 절이 없는 곳은 없다. 특히 이름 있는 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갑산도 그랬다.
하루밤 머문 곳은 부여군 만수산자연휴양림이다. 가까이에 무량사가 있다. 먼저 무량사에 들렀다.
무량사는 여러 번 와 보았다. 너른 평지에 큰 가람이 있는 대찰이다. 그래서인지 성지순례 코스가 된 것 같다.
무량사를 참배 했다. 절에 가면 반드시 대웅전에 간다. 삼배를 올리고 난 다음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갔는데 기를 느끼고자 했다. 오분 앉아 있는 것이다.
대웅전은 기가 가장 센 곳이다. 가장 명당자리인 것이다. 가만 앉아 좌선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시적으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누린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집에는 오후 늦게 들어가도 된다. 한군데 더 들를 시간이 있다. 칠갑산에 있는 장곡사에 가보기로 했다.
장곡사는 오지 중에 오지에 있다. 산을 넘어 굽이굽이 치는 길을 가야 한다. 분지형 지형에 이르렀다. 세상과 격리된 듯하다. 난리가 나도 모르고 지나갔을 법한 지형이다.
장곡사, 이름은 들어 보았다. 이름이 낯익어서인지 언젠가 와 본 것 같기도 하다. 혹시 몰라서 블로그 내 검색을 해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처음 와 본 것이다.
사찰순례하면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 남는 것은 사진과 글뿐이다. 블로그에 올려 놓는다.
블로그에는 사찰순례 카테고리가 있다. 국내성지순례라 하여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225개의 글이 올려져 있다. 중복된 사찰도 많다.
장곡사 가는 길은 아름답다. 우리나라 몇 개 안되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다. 작은 도로를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깊숙이 들어갔다.
마침내 장곡사가 나타났다. 산사의 경우 주차장에서 내려 걷는 경우가 많다. 어떤 데는 산길을 이삼십분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장곡사는 깊은 산속에 있음에도 바로 코앞에 있다.
한적한 월요일이다. 주말도 아닌 평일 늦은 오후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산에 가면 절로 향하게 되어 있다. 절에 가면 대웅전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최종 종착지는 법당이다.
장곡사는 대웅전이 두 개 있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을 말한다. 이런 경우는 장곡사가 유일하다. 상대웅전을 먼저 참배하기로 했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은 멀리 떨어져 있다. 상대웅전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장곡사에는 문화재의 보고와도 같다. 국보가 2점, 보물이 4점 있다.
장곡사 국보는 무엇일까? 검색해 보니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58호)와 미륵불괘불탱화(국보 300호)이다.
남대문(숭례문)은 국보이다. 절에 가면 국보가 있다. 남대문이나 절에 있는 것이나 같은 국보이기 때문에 동급이다.
국보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는 어떤 것일까? 안내판을 보니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 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 핀 연꽃, 하대에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의 네 귀퉁이에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되었다.”라는 설명이 있다. 대좌에 대한 설명이다. 이어서 철조약사불 설명이 따른다.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되었다고 한다.
국보는 약사여래불과 석조대좌이다. 일체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되었으니 천년이 넘는다. 철로 만든 약사여래좌상은 천년 동안 있었던 것이다.
천년전 사람들은 불상을 만들었다. 모연 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불사에 동참해서 만든 것이다. 큰 시주(施主)도 있었을 것이다.
시주의 이름은 어딘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갈수록 시주의 이름은 잊혀 진다. 오로지 불상과 좌대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은 어떤 열정으로 불상을 만들어 냈을까? 그리고 어떤 열정이 있었기에 방방곡곡 명산에 절을 지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믿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설명문에 “왼손에는 질병과 무지의 병까지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장곡사에는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이렇게 두 개의 대웅전이 있다. 두 대웅전 모두 보물이다. 상대웅전이 가장 오래 되었다. 상대웅전은 고려시대 때 건립되었고, 하대웅전은 조선시대 때 건립되었다.
상대웅전 바닥은 타일로 되어 있다. 마루로 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마치 중국 전각을 보는 듯 하다.
대웅전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는 절이 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이다. 공통적으로 고려시대 때 건립된 절이다. 고려시대 때는 신발을 신고 대웅전에 들어 갔나 보나다. 중국 절에 가면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장곡사 대웅전에는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웅전의 경우 약사여래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장곡사 주법당에 석가모니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약사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참배 했다. 삼배를 올리고 오분간 좌정에 들었다.
산사는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이다. 도시에서의 차량소음은 일체 들리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도를 닦으면 얼마나 좋을까?
산사는 최고의 수행처이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가 가장 크다. 세속에서 볼 수 있는 번잡함이 없다. 오로지 몸과 마음을 닦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천년전에도 불교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믿었을까? 장곡사의 불상을 보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비로자나, 아미타, 약사여래와 같은 불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없다. 그 자리에는 비로자나, 아미타, 약사여래가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천년전 사람들이 믿는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으로 본다. 그때 당시 믿었던 불교는 비로자나, 아미타, 약사여래를 믿는 불교이었을 것이다.
아미타불은 매력적이다. 임종직전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며 칭명하면 극락에 간다고 한다. 병에 걸렸을 때 약사여래불에 매달리면 병이 낫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일까 장곡사 안내판을 보면 “약사여래는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 가피력을 지닌 영험있는 부처님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전국에 유명기도처가 있다. 대부분 산중에 있다. 때로 절벽에도 있고 해안가에도 있고 동굴에도 있다. 공통적인 특징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누가 하는가? 절망에 빠진 자가 기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명기도처는 절벽, 해안, 동굴, 산중과 같은 막다른 데에 있다.
절망에 빠진 자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죽음이다. 절벽에 있는 유명기도처 역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죽음이다. 해안에 있는 기도처 역시 한발만 더 나아가면 물에 빠져 죽는다. 동굴에 있는 기도처는 그야말로 꽉 막힌 막장이다. 산속에 있는 기도처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절망에 빠진 자는 막다른 기도처에서 기도한다. 불상 앞에서 이번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이렇게 매달리는 사람을 불상은 연민으로 바라 볼 것이다.
누구나 한가지 소원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불보살에게 매달린다.
기도는 절박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다면 절벽, 해안, 동굴, 산중에 있는 기도처에서 기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기 중병에 걸린 자가 있다. 영험한 약사여래불 앞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질까? 또한 타인이 대신 기도해 주면 기도가 이루어질까?
이 세상은 지뢰밭과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다. 운전을 하고 가지만 어떤 사고가 날지 알 수 없다. 교통사고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운전자로서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세상 일은 알 수 없다. 왜 그런가? 과거에 지은 업이 언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이럴 때는 행운을 빌어야 한다.
누구나 불운은 바라지 않는다. 누구나 행운을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운이 행운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선업공덕을 쌓는 것이다.
선업과 악업에서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보통 악업이 더 무겁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밀린다팡하에 따르면 “공덕이 더욱 크고 악덕은 작습니다.”(Mil.84)라고 했다. 상식을 깨는 말이다.
악업보다 왜 선업이 더 무거울까? 이에 대하여 나가쎄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왕이여, 악덕을 행하면 ‘내가 악덕을 지었다.’고 후회합니다. 그래서 악덕은 증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공덕을 지으면 후회가 없어지고, 후회가 없어지면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생겨나면 기쁨이 생겨나고, 기쁨이 생겨나면 몸이 편안해지고, 몸이 편안해지면 행복을 느끼고, 행복해지면 마음이 집중되고, 집중되면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러한 까닭에 공덕이 증대됩니다.”(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밀린다팡하, 249쪽)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이런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밀린다팡하에서 처음 접한다. 악덕보다 공덕이 훨씬 더 무거운 것에 대하여 희열, 기쁨, 평안, 행복, 집중으로 설명한 것이다.
악덕은 후회를 특징으로 한다. 후회는 불선업이다. 후회한다고 해서 후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후회를 해서 후회가 없어진다면 누구나 후회를 할 것이다.
공덕 지으면 후회할 일이 없다. 오히려 기쁨이 일어난다. 이는 마음이 충만되는것으로 알 수 있다. 공덕을 지으면 연쇄작용이 일어나서 공덕은 더욱 더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덕이 더욱 크고 악덕은 작다.”(249쪽)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부처님 앞에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자신의 무지가 크다. 알면서 지은 죄보다 모르면서 지은 죄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철환의 비유’로도 알 수 있다.
여기 뜨거운 철환이 있다. 한 사람은 알고서 만지고, 한 사람은 모르고서 만진다면 누가 더 심한 화상을 입을까? 당연히 모르고 만진 사람이 심한 화상을 입는다.
무명이 대죄라는 말이 있다. 모르기 때문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악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못하기 못하므로 재앙이 크고, 현명한 자는 악을 저지르고도 뉘우치는 까닭에 재앙이 적은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면 죄를 짓게 되어 있다. 그것도 악처에 떨어질 정도로 중죄를 짓는 것이다.
천수경에 ‘탐애중죄금일참회’라는 말이 있다. 탐욕 내는 것도 중죄로 보는 것이다. 십악행에서 탐욕, 성냄, 사견은 살생이나 거짓말 못지 않은 중죄에 해당된다. 악처에 떨어질 정도로 중죄에 해당된다.
어리석은 자는 매일매일 중죄를 저지른다. 영원주의나 허무주의와 같은 사견에 빠진 자 역시 매일매일 중죄를 저지른다.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아는 것은 정견, 즉 바른 견해에 해당된다.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사성제를 모르는 것은 무지에 해당된다. 사성제를 모르니 무지한 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 어리석은 자가 있다. 어리석은 자가 자신은 현명하다고 여기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법구경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린다.”(Dhp.63)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나는 어리석은 자이다.’라고 아는 것은 무지한 자가 자신이 무지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아주 무지한 자는 자신이 무지한 것조차 모른다.”(DhpA.II.30)라고 했다.
초기경전에서 어리석음은 사견(邪見)으로 표현된다. 영원주의나 허무주의와 같은 삿된 견해를 말한다. 이러한 사견은 부처님의 연기법으로 논파된다.
사견을 가지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한 사람은 무지한 자와 같다. 무지에 무지가 중첩되면 중중무지(重重無知)가 된다. 이를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지한 자들은 자신들이 무지한 줄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불교가 있었다. 천년 전에도 이 땅에는 불교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불교를 믿었을까?
장곡사 대웅전에 가면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타불이 앉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디로 간 것일까?
2024-07-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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