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200

잘못을 지적했을 때

잘못을 지적했을 때 사람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착화되는 것 같다. 남이 지적하면 발끈한다. 이는 어쩌면 자연적 현상인지 모른다. 생각보다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 느낌이 그렇다. 대상과 접촉했을 때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발생한다. 이런 느낌은 범부나 성자나 모두 똑같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범부는 휘말려 들어가 버리고, 현자는 알아차린다. 오늘 A스님의 글에 대하여 지적했다. KPTS(한국빠알리성전협회)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불교계 신문사이트에도 올려진 글이다. 관련 내용을 보면 “하필이면 잘못된 번역을 가져온 것이다.”라고 했다. 잘못된 번역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오역이나 생뚱맞은 번역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말 오역이나 ..

국적불명 사띠번역어 ‘마음챙김’은 폐기되어야

국적불명 사띠번역어 ‘마음챙김’은 폐기되어야 내생각이 틀림없음을 확인했다. 이는 최근 일묵스님의 유튜브법문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스님은 법문에서 사띠는 마음챙김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했다. 일묵스님은 왜 마음챙김을 왜 버렸을까? 사띠가 기억인 이유에 대하여 수년전부터 글을 써 왔다. 마음챙김이라는 용어가 대세인 시대에서 마음챙김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부당함을 글쓰기로 저항했다. 그러나 보통불자의 글쓰기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묵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이제 마음챙김이라는 용어가 이제까지 잘못 사용되어 왔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일묵스님의 예전 법문을 보면 마음챙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초기불전연구원(이하 초불연) 번역서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엄연히 실..

이제 빠알리니까야 불사(佛事)를 해야

이제 빠알리니까야 불사(佛事)를 해야 한국불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재가불자의 성과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번역이 그렇다. 스님이 번역하면 인정해 주지만 재가의 번역전문가가 번역한 것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다. 한종류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번역서이고, 또 한종류는 초기불전연구원본 번역서이다. 두 번역서 모두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한 것이다. 불교인으로서 두 종류의 번역서를 접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행운이다.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빠알리니까야를 직접 접하게 되었을 때 마치 부처님이 현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번역서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 대보면 금방 드..

블로거 삶의 결실

블로거 삶의 결실 시간을 붙들어 맬 수는 없을까? 매달 한권씩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이제까지 쓴 글을 책으로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출판사에 의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실 가까운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 의뢰하는 것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책이 나왔습니다. 책의 제목을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I’이라고 했습니다. 비전문가가 번역비교라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잡문을 쓰는 블로거가 한번 시도해 본 것입니다. 2013년 9월부터 시작하여 내리 3년가량 썼습니다. 지금도 이런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두 종류의 빠알리니까야 번역서가 있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어느 번역서에 오류가 많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도 그렇게 말 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면 다친다, 중생은 늘 중생의 입장에서 보고 말하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면 다친다, 중생은 늘 중생의 입장에서 보고 말하고 사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대부분 험담이기 쉽습니다. 사람을 안주 삼아 회자(膾炙)할 때 사람들은 눈이 빛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