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은 널리 공유해야
에스엔에스(SNS)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끼? 소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카톡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끼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문자로 소통한다. 전화로 해도 될 것을 문자로 하는 것이다. 전화하면 실례가 될 정도로 에스엔에스 시대에 살고 있다.
에스엔에스에 페이스북만한 것이 없다. 본래 취지는 알고 지내는 사이에 소통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타 에스엔에스와 달리 한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신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명과 함께 어디 출신이지 밝히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럼에도 실명 이외 밝히지 않는다.
정치인처럼 연예인처럼 밝혀야 할 이유가 없다. 하나 더 밝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얼굴이다. 블로그만 하다가 3년전에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얼굴을 숨겼다. 그랬더니 어떤 이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과는 친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숨깁니까?”라고 비난했다.
카톡과 페이스북은 실시간 통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특히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통보다도 일종의 과시라고 본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있어서 페이스북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좋아요’와 댓글이 그것이다. 이렇게 교감하다보면 찬구가 된다. 그래서 페이스북친구라 한다. 줄여서 ‘페친’이라 한다.
될 수 있으면 ‘좋아요’를 눌러 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방문하여 ‘좋아요’와 글을 남겨 주신 페친이 대상이다. 그런데 어느 분의 집에 가면 ‘좋아요’를 눌러 주고 싶어도 누룰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글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좋아요’ 추천 한방에 큰 공덕짓는다. 올린 글에 대하여 ‘좋아요’와 댓글 달면 그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남이 몇시간 걸려 쓴 글에 대하여 ‘좋아요’ 한방으로 내것이 되는 것이다. 이를 한자용어로 수희찬탄(隨喜讚嘆)이라고 한다. 사무량심에서는 무디따(mudita)라 하는데 ‘함께 기뻐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공유한다면 사실상 자신의 글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좋아요’ 한방에 손쉽게 공덕 지을 수 있다.
에스엔스는 과시의 장이라고 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랑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랑질이 심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특히 먹는 것이 그렇다. 한상 가득 차려 놓은 것을 보면 그림의 떡이다. 에스엔에스는 자랑의 공간이다. 돈 내지 않고 자랑할 수 있는 곳이 페이스북이다. 한상 가득 차려 놓은 것을 보았을 때 눈으로 즐기는 것밖에 없다.
책을 하나 내었다. 니까야비교번역에 대한 것이디. 약 한달전에 ‘사가타상윳따번역비교I’을 낸 바 있다. 이번에 낸 것은 2014년에 쓴 것으로 1년 동안의 기록인 ‘사가타상윳따번역비교II’이다. 모두 5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사가타(sagatha)는 ‘시와 함께’라는 뜻이다. 상윳따니까야 7권중에 1권에 해당되는 것으로 게송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남방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 못지 않게 애송되고 있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맡겼다. 총 582쪽 분량이다. 세 권 만들었는데 모두 보관용이다.
모든 정보가 오픈 되고 공유화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번 1권 출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피디에프(PDF)로 만들었다. 1권 출간했을 때 원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발송한 바 있다. 주소록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자동발송된다. 새로 매일 주소를 남기신 분에게도 발송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널리 공유해야 한다.
목차
1. 네 가지 마음의 해탈
2. 숨기고 싶은 것까지 기록된 니까야
3. 진정으로 뉘우칠 때
5. 성불의 길과 아라한의 길
6. 부처님도 아픔을 느낀다
7. 중각강당(重閣講堂)에 대하여
8. 방편과 실제
9. 불사의 삶을 주는 자
10. 뿐냐(功德行)와 빠빠(惡行)
11. 불교의 세계관과 세상도표
12. 식스센스의 반전을 능가하는 수마나 천인이야기
13. 니까야 반복구문 뻬얄라(peyyala)
14. 티내지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15. 스님들과 학자들의 인터넷글쓰기
16. 도돌이표 인생
17. 섹스리스와 브라흐마짜리야
18. 지금 이순간에도 법비(雨寶)는 내리고
19.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특징 네 가지
20. 순결한 삶에 대하여
21. 왜 빠알리 게송을 독송하는가?
22. 필명을 왜 잘 지어야 하나?
23. 부처의 눈과 돼지의 눈
24. 세상은 온통 불타고 있네
25. 항상 원점에 있는 서 있는 것처럼
26. 마음이 없으면 이 세상도
27.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28. 알 수 없는 미래를 의하여
29. 농부의 밭갈이와 수행자의 마음갈이
30.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31. 지관쌍수(止觀雙修)해야 하는 이유
32. 현세에서 수다원이라는 발판을
33. 머리부터 꺽이어 넘어진다는데
34. 버리고 또 버려서 열반이라는 보물을
35. 슬픔과 기쁨이 교차할 때
36. 시간을 초월하는 아깔리까(Akalika)
37. 왼쪽 길과 오른쪽 길, 어느 길로 갈 것인가?
38. 낚싯줄에 걸려든 이교도의 스승들
39. 어리고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될 네 가지
40. 대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죽듯이
41. 진실은 늙지 않는다
43. 원수를 사랑하라?
43. 눈길 한번 주지 않고
44. 사람을 아는 네 가지 원리
45.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46. 승리는 원한을 부르고
47. 모성본능과 위대한 어머니
48. 현세와 내세의 이익을 위하여
49. 우정(友情)에 대하여
50. 저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는
51. 네 가지 운명의 길이 있는데
52.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
53. 단멸론자들은 왜 공덕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54. 에까야나(ekayana)에 대하여
55. 출가한 자는 어디서 머무는가?
56. 요니소마나시까라(如理作意)와 오장애의 극복
2019-12-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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