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이제 빠알리니까야 불사(佛事)를 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9. 14. 09:44

 

이제 빠알리니까야 불사(佛事)를 해야

 

 

한국불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재가불자의 성과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번역이 그렇다. 스님이 번역하면 인정해 주지만 재가의 번역전문가가 번역한 것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다. 한종류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번역서이고, 또 한종류는 초기불전연구원본 번역서이다. 두 번역서 모두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한 것이다.

 

불교인으로서 두 종류의 번역서를 접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행운이다.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빠알리니까야를 직접 접하게 되었을 때 마치 부처님이 현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번역서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 대보면 금방 드러난다. 번역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똑 같은 빠알리문구를 대상으로 번역한 것을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드러난다.

 

2010년대 초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스님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번역에 대하여 오류투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또 어떤 스님으로부터도 똑 같은 말을 들었다. 한국빠알리성접협회본은 오류가 많아서 승가대 교재로 채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은 정말 오류가 많은 것일까? 한번 비교해 보기로 했다. 번역비교를 해 보는 것이다. 비록 빠알리어도 모르는 보통불자에 지나지 않지만 일대일로 비교해 보면 장단이 드러날 것 같았다.

 

상윳따니까야 1권을 번역비교하였다. 상윳따니까야 1권은 사가타상윳따(sagāthasayutta, S1)라 하여 주로 게송과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법구경과 숫따니빠따 못지 않게 널리 읽혀 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사가타상윳따만 별도로 출간했다. 인조가죽 케이스로 된 핸드북이다.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를 시작한 것은 2013년도의 일이다. 20139월에 상윳따니까야 제1장 제1절이라 볼 수 있는 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S1.1)부터 비교했다. 빠알리원문과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초기불전연구원본, 그리고 빅쿠보디의 영역본을 비교했다.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는 2014년 말에 끝났다. 13개월 걸렸다. 이후로도 종종 번역비교 하고 있다. 현재 블로그 니까야번역비교방에 올려져 있다.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한 것을 책으로 내었다. 201910월의 일이다. 두 권으로 출간한 것이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만들었다. 보관용이다. 1권은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 I’로서 39개의 글로 되어 있고 412페이지에 달한다. 2권은 사가타상윳따 번역비교 I’로서 56개의 글로 되어 있고 579페이지에 달한다. 이를 피디에프(pdf)로도 만들어 놓았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보통불자이다. 보통불자가 번역비교해도 되는 것일까? 더구나 빠알리어도 모르는 사람이 애써 번역한 것에 대하여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보통불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에 감히 번역비교 했다.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학자가 번역비교했다면 불이익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스님이 번역비교했다면 반대편으로부터 비난받을 수도 있다.

 

번역비교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스님들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이 오류투성이라서 교재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으나 비교해 본 결과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도 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은 번역이 유려하다. 반면 초기불전연구원본은 다소 경직된 느낌이다. 이는 번역자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번역자의 주요한 조건은 언어학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빠알리니까야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최초로 번역했다. 총 일곱 권의 상윳따니까야 중에서 먼저 세 권 번역이 출간된 것은 1999년도의 일이다. 그런데 전재성 회장의 말에 따르면 처음 출간된 것은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열악한 번역환경에서 교정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것을 보고서 오류투성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개발자로서 이십년 살았다. 셋톱박스 하드웨어 개발자로서 이십년 동안 직장생활한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모델을 개발했다. 그런데 개발은 개발로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개선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명품이 탄생된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을 보면 개정판이 있다. 그런데 개정이 되면 될수록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번역서도 그렇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 번역서도 그렇다.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다시피 하여 개정판을 냈기 때문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금방 드러난다고 했다.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두 종류의 번역서를 일대일로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그것도 한두 개의 경이 아니라 백 개 가까이 되는 경을 2년 걸려 비교했을 때 하나의 확신이 생겼다. 그것은 번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블로그에는 이백개 가량의 경이 번역비교 되어 있다.

 

불교경전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스님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불교경전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성자의 지위에 올라 간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언어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이 갖춘 자가 번역해야 한다. 여기에 수행력까지 겸비하면 최상이다. 전재성회장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우리나라 불자들은 스님을 승보로 여기고 있다. 한글삼귀의문에서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여 스님을 부처님과 동격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래서인지 스님이 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번역서도 그런 것 같다.

 

현재 인터넷 검색을 하면 대부분 초기불전연구원 번역본을 근거로 한 글이 발견된다. 유튜브에서 어느 스님은 빠알리경전을 읽어 주고 있는데 역시 초기불전연구원번역서이다. 승가대에서도 초기불전연구원 번역본을 교재로 삼고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두 번역서 역시 취향에 따라 선택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두 종류의 번역서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번역서에만 의존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경을 보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의문이 난다면 또 다른 종류의 번역서를 보면 좋다.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어서 서로 보완되기 때문이다.

 

사무실 책장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모두 다 갖추어져 있다. 사부니까야는 모두 다 갖추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의자만 돌리면 책을 꺼내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글을 쓸 때는 두 종류의 번역서를 참고한다. 메인으로 삼고 있는 번역서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이다. 참고할 때는 초기불전연구원본을 활용한다. 더 자세히 알고자 할 때는 빠알리원문을 열어 본다.

 

 

빠일리원문을 볼 때는 빠알리사전을 참조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빠알리사전‘PCED194’를 말한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치면 영어, 일어, 한문으로 설명이 나온다. 놀랍게도 빠알리단어가 사용된 경의 정보도 알려 준다. 이런 빠알리사전이 있기에 번역비교가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데는 돈과 시간과 정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사 보는 것에는 인색한 것 같다. 특히 경전을 사 보는 것이 그렇다.

 

절에서는 종종 불사를 한다. 전각불사, 탑불사, 종불사 등 갖가지 불사가 있다. 그런데 불사에는 물질적 불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전을 번역하는 것도 불사이다. 부처님의 원음을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불교에 있어서 최대의 불사이다.

 

책장에는 경전으로 가득하다. 한번에 다 구입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때 구입했다. 때로 생각지도 않게 돈이 생겼을 때 과감하게 전집을 구입했다. 이렇게 한권 두권 모으다 보니 초기경전을 다 갖추게 되었다.

 

불교인들은 경전을 사 보아야 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돈을 쓰면 남는 것이 없지만 책은 일단 사 놓으면 남아 있다. 더구나 초기경전은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마치 부처님을 모셔 놓은 것 같다.

 

여유 돈이 생기면 경전을 사야 한다. 이왕이면 두 종류의 번역서를 갖추어 놓는 것이 좋다. 서로 장단점이 있어서 보완된다. 한종류의 경전에 올인하기 보다는 비교해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더 잘 보인다. 불교인들은 이제 빠알리니까야 사서 보기 불사(佛事)를 해야 한다.

 

 

2020-09-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