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193

명진스님 사자후

명진스님 사자후 유튜브를 보다가 놀라운 문구를 발견했다. 명진TV 평화의 길에서 실은 글을 본 것이다. 장문의 글에는 중간중간에 “윤석열, 네 이놈!”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호기가 느껴진다. 오늘 아침 명진TV에서 시국법회 동영상을 보았다. 명진스님이 사자후를 토한 영상이다. 영상제목은 “시국법회 '야단법석' 명진스님 연설 : 고난의 칼날에 서라”(2023-05-22, https://www.youtube.com/watch?v=_R5kSL3150o)이다. 스님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윤석열, 네 이놈!”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장 물러가라고 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명진스님의 사자후이다. 비록 유튜브로 소리를 듣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모인 사람들도 따라..

저 꽃들에게 물어 보라고 하는데

저 꽃들에게 물어 보라고 하는데 자꾸 딴나라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 같다. 자꾸 핀트가 어긋난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아니라고 한다. 저렇게 말해도 아니라고 한다. 가르침에 대해서 말해도 아니라고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말한다. 살불살조,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이다. 누가 말했을까? 누군가 말한 것이다.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자를 부정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경전도 부정된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 부처님 말씀도 부정된다. 어제 식사모임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스님 말에 따르면 승가대학에 학인스님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출가자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미 두 자리 숫자가 된지 오래 되었다. 이에 "한국불교는 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내 안의 코끼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안의 코끼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글을 의무적으로 쓴다. 오래 된 것이어서 습관이 되었다. 생각했었던 것이 모니터에 찍힌다. 비록 독수리타법에 지나지 않지만 자판을 보지 않고 친다. 스마트폰으로는 엄지치기 한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들은 많다. 경전도 의무적으로 읽는다. 하루 한페이지도 좋다. 머리맡에 놓고서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도 의무적으로 읽는다. 읽다 보니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처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역시 머리맡에 놓고서 하루 한페이지라도 좋으니 조금씩 읽는다. 책만들기도 의무적으로 한다. 이제까지 80권 만들었다. 오늘 열 권을 찾아 왔다. 인쇄와 제본 의뢰한 것이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81권과 82권, 83권 편집..

죽은 자들의 세상

죽은 자들의 세상 세상은 죽은 자들로 넘쳐 난다. 산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죽은 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죽은 자, 사회적으로 죽은 자, 문화적으로 죽은 자, 정치적으로 죽은 자 등 이 세상은 좀비들의 세상이다. 숨만 쉬고 있다고 해서 산 것일까? 누구나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 있다. 좀비도 숨을 쉬고 있다. 숨을 쉬고 있는 한 산 자들이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자도 살아 있고,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자도 살아 있고, 문화를 모르는 자도 살아 있고, 정치적 무관심자도 살아 있다. 이 세상은 산 자들의 세상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 있기에 말이 있고 행위가 있다. 나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산 자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도 살아 있는 자가 되고 싶다. 내 ..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잉어빵에도 잉어가 없다. 스님 계정에는 담마가 없다.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혹시나 해서 스님계정을 주욱 훝어 보았다. 그래도 담마 한구절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내려도 보이지 않았다. 부업에 대한 것과 농사지은 것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스님은 어렸을 때 출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세속사람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겉모습은 출가자인데 재가자의 일을 하고 있다. 스님은 출가자인가 재가자인가? 재가의 일에 더 열중하는 것으로 보아서 재가자라고 볼 수 있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로 인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고용인이 됩니다. 행위에 의해..

리더가 정의롭지 않으면, 봉은사 승려들의 집단폭행과 인분 투척 사건

리더가 정의롭지 않으면, 봉은사 승려들의 집단폭행과 인분 투척 사건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역사를 보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역사의 진보가 아니라 역사의 퇴행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까? 정치에서 퇴행이 발생했다.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탐욕이 치성할 때 퇴행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서 퇴행이 진행되는 것 같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봉은사에서 똥물투척 사건이 발생했다. 공중파 방송에서 저녁 메인뉴스에 나오기에 충분하다. 이로써 한국불교는 또 한번 망신을 당했다. 한때 승려들이 도박을 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이번에는 재가불자에게 발길질을 한 것이다. 오물을 부은 것은 결정적이다. 세상에 이런 종교가 어디 있을까? 한국불교 조계..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 한다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 한다 "침묵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오늘 3차 시민집회에서 조영필 선생이 3분 발언에서 말한 것이다. 조영필 선생은 중앙일보 어느 주필이 논설에서 법정스님이 말한 것을 인용했다고 한다. 인용한 것을 또 인용한 것이다. 조용필 선생은 통일의병 경기북부 지부장이다. 오늘 봉은사에 갔었다. 봉은사 신도가 아니기 때문에 봉은사에 갈 일이 없다. 오늘 봉은사에 간 것은 박정규 전조계종 종무원 부장 폭행사건 시민집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봉은사 승려들이 일인 피켓팅 시위를 하는 박정규 부장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인분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이에 관련 승려 사과와 배후 자승 전총무원장을 규탄하는 시위가 봉은사 일주문 입구에서 있었다. 요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에스엔에스에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똥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내가 똥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지금 시각 오전 7시,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한남노로 인한 걱정이 많다. 남쪽에 역대급 피해를 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수도권은 지극히 평온하다. 구름만 잔뜩 끼여 있을 뿐이다. 오늘 가야 할 데가 있다. 봉은사로 가야 한다. 봉은사 일요법회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봉은사로 데모하러 간다. 박정규 선생 폭행사건 항의 시위가 예정 되어 있다. 할 일이 많다. 요즘 밤낮이 없고 주말이 없다. 초치기 분치기 하면서 일을 처리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와 밀린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봉은사로 가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자 한다. 책상에서 글만 써서는 안된다. 늘 현장과 가까이 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받아 들여야 ..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우리스님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림이면 그림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본분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부업에 열중하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은 전통문화를 복원한다며 연구소를 만들었다. 불교를 공부해 보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크게 교학과 수행을 말한다. 수행은 현재 언감생심이다. 생업이 있다 보니 집중수행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10일짜리 집중수행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집중수행에 참여하려면 휴가를 내야 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이나 은퇴해야 가능할 것이다. 사업자는 어떨까? 사업자 역시 시간 내기 힘들다. 언제 전화 올지 모른다.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 없으면 환속하시라!

자신 없으면 환속하시라! 징징대는 스님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스님은 돈이 없다고 한다. 에스엔에스에서 돈 좀 달라고 한다. 대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스님을 비구라고 한다. 비구는 빅쿠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음역이다. 그렇다면 빅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게송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살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 어느 바라문 걸식자가 부처님에 물었다. 그는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S7.20)라며 물어 물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