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190

죽은 자들의 세상

죽은 자들의 세상 세상은 죽은 자들로 넘쳐 난다. 산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죽은 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죽은 자, 사회적으로 죽은 자, 문화적으로 죽은 자, 정치적으로 죽은 자 등 이 세상은 좀비들의 세상이다. 숨만 쉬고 있다고 해서 산 것일까? 누구나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 있다. 좀비도 숨을 쉬고 있다. 숨을 쉬고 있는 한 산 자들이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자도 살아 있고,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자도 살아 있고, 문화를 모르는 자도 살아 있고, 정치적 무관심자도 살아 있다. 이 세상은 산 자들의 세상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 있기에 말이 있고 행위가 있다. 나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산 자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도 살아 있는 자가 되고 싶다. 내 ..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잉어빵에도 잉어가 없다. 스님 계정에는 담마가 없다.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혹시나 해서 스님계정을 주욱 훝어 보았다. 그래도 담마 한구절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내려도 보이지 않았다. 부업에 대한 것과 농사지은 것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스님은 어렸을 때 출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세속사람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겉모습은 출가자인데 재가자의 일을 하고 있다. 스님은 출가자인가 재가자인가? 재가의 일에 더 열중하는 것으로 보아서 재가자라고 볼 수 있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로 인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고용인이 됩니다. 행위에 의해..

한국불교백년대계 2022.09.14 (1)

리더가 정의롭지 않으면, 봉은사 승려들의 집단폭행과 인분 투척 사건

리더가 정의롭지 않으면, 봉은사 승려들의 집단폭행과 인분 투척 사건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역사를 보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역사의 진보가 아니라 역사의 퇴행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까? 정치에서 퇴행이 발생했다.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탐욕이 치성할 때 퇴행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서 퇴행이 진행되는 것 같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봉은사에서 똥물투척 사건이 발생했다. 공중파 방송에서 저녁 메인뉴스에 나오기에 충분하다. 이로써 한국불교는 또 한번 망신을 당했다. 한때 승려들이 도박을 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이번에는 재가불자에게 발길질을 한 것이다. 오물을 부은 것은 결정적이다. 세상에 이런 종교가 어디 있을까? 한국불교 조계..

한국불교백년대계 2022.09.06 (1)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 한다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 한다 "침묵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오늘 3차 시민집회에서 조영필 선생이 3분 발언에서 말한 것이다. 조영필 선생은 중앙일보 어느 주필이 논설에서 법정스님이 말한 것을 인용했다고 한다. 인용한 것을 또 인용한 것이다. 조용필 선생은 통일의병 경기북부 지부장이다. 오늘 봉은사에 갔었다. 봉은사 신도가 아니기 때문에 봉은사에 갈 일이 없다. 오늘 봉은사에 간 것은 박정규 전조계종 종무원 부장 폭행사건 시민집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봉은사 승려들이 일인 피켓팅 시위를 하는 박정규 부장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인분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이에 관련 승려 사과와 배후 자승 전총무원장을 규탄하는 시위가 봉은사 일주문 입구에서 있었다. 요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에스엔에스에서 소식을 들었다...

한국불교백년대계 2022.09.04 (2)

내가 똥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내가 똥 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지금 시각 오전 7시,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한남노로 인한 걱정이 많다. 남쪽에 역대급 피해를 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수도권은 지극히 평온하다. 구름만 잔뜩 끼여 있을 뿐이다. 오늘 가야 할 데가 있다. 봉은사로 가야 한다. 봉은사 일요법회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봉은사로 데모하러 간다. 박정규 선생 폭행사건 항의 시위가 예정 되어 있다. 할 일이 많다. 요즘 밤낮이 없고 주말이 없다. 초치기 분치기 하면서 일을 처리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와 밀린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봉은사로 가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자 한다. 책상에서 글만 써서는 안된다. 늘 현장과 가까이 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받아 들여야 ..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우리스님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림이면 그림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본분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부업에 열중하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은 전통문화를 복원한다며 연구소를 만들었다. 불교를 공부해 보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크게 교학과 수행을 말한다. 수행은 현재 언감생심이다. 생업이 있다 보니 집중수행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10일짜리 집중수행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집중수행에 참여하려면 휴가를 내야 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이나 은퇴해야 가능할 것이다. 사업자는 어떨까? 사업자 역시 시간 내기 힘들다. 언제 전화 올지 모른다.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 없으면 환속하시라!

자신 없으면 환속하시라! 징징대는 스님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스님은 돈이 없다고 한다. 에스엔에스에서 돈 좀 달라고 한다. 대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스님을 비구라고 한다. 비구는 빅쿠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음역이다. 그렇다면 빅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게송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살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 어느 바라문 걸식자가 부처님에 물었다. 그는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S7.20)라며 물어 물어 본 것이다..

종교권력은 성역인가?

종교권력은 성역인가? 틱낫한 스님이 사망했다. 이를 원적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에스엔에스 여기저기서 추모의 글로 가득하다. 그들은 스님과 어떤 인연일까? 특별한 인연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추도하는 것은 왠일일까? 스님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0년 이내인 것 같다. 그때 블로그에 글을 썼다. 수인하는 모습을 보고 쓴 것이다. 중립적으로 썼다. 이번에도 중립적이다. 부처님 근본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입장에서 틱낫한 스님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처럼 추모한다. 이에 동참해야 지식인이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런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번 조계종 승려대회에 대하여 그들은 어떤 글을 남겼는지에 대한 것이다. 불교지식인들은 목소리를 내..

정권교체를 바라는 자승의 관제 승려대회

정권교체를 바라는 자승의 관제 승려대회 글의 제목이 먼저 결정되었다. 결정적 장면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일단의 무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정권교체" 네 글자만 써 있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제목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자승의 관제 승려대회'라고 글 제목을 즉석에서 생각해 냈다. 오늘은 승려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1월 21일 오후 2시에 열리기로 되어 있다. 시간에 맞추어 가고자 했으나 20분 늦었다. 총무원청사 뒤로 해서 우정국을 끼고 돌아서니 조계사 경내에는 승려들로 가득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앞뒤로 의자에 앉아 있다. 심지어 일주문 옆 주차장에도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대체 이 승려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더구나 지금은 안거기간 아닌가! 승려대회는 초..

승려대회 설문조사 해보았더니

승려대회 설문조사 해보았더니 힘 없는 자의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입이다. 입이야 말로 힘 없는 자의 최대의 무기이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힘 없는 자의 최대 무기이다. 오늘 1월 20일 아침 허정스님이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인터뷰했다. 십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허정스님은 입으로 현재 갈등과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승려대회에 대해서 말했다. 허정스님과 인연이 깊다. 벌써 십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아마 2007년 내지 2008년 되는 것 같다. 그때 블로그 글로 소통했었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줌으로서 소통한 것이다. 그때 스님은 인도 푸나 대학에 있었다. 허정스님이 귀국하고 나서 천장사에서 만나 보았다. 그때가 2012년이다. 그때 당시 작은법회 모임 법우들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