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4. 16:30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는


우리스님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림이면 그림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본분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부업에 열중하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은 전통문화를 복원한다며 연구소를 만들었다.

불교를 공부해 보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크게 교학과 수행을 말한다. 수행은 현재 언감생심이다. 생업이 있다 보니 집중수행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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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짜리 집중수행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집중수행에 참여하려면 휴가를 내야 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이나 은퇴해야 가능할 것이다. 사업자는 어떨까?

사업자 역시 시간 내기 힘들다. 언제 전화 올지 모른다.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직장인보다 자유롭다. 마음만 먹으면 문닫고 집중수행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몇달 매출감소는 각오해야 한다.

출가자는 수행하기에 환경이 좋다. 일을 하지 않아서 좋다. 밥만 먹고 수행하면 된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한국스님들은 이런 좋은 조건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본분사보다 부업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농사를 지어서는 안된다. 신도들 보시에 의존하는 스님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부업에 열중하는 것과 같다. 스님들은 호미들고 밭에서 밭을 매기 보다는 마음의 밭을 매야 한다.

스님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종종 올린다. 물론 계행을 지키지 않는 스님들을 겨냥한 것이다. 초록은 동색일까 이런 비판에 불편해 하는 스님들도 있다. 불교 집안의 허물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빈데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누군가 말해 주어야 한다. 잘못을 보고서 보고만 있다면 방관자가 될 것이다. 본분사를 지키지 않는 스님에 대해서는 스님들이 비난해야 한다. 스님들이 가만 있으니 재가불자가 지적하는 것이다. 재가불자가 침묵하면 어떻게 될까? 일반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다.

일하면서 싸운다는 말이 있다. 예비군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던 적이 있었다. 재가불자는 일하면서 공부한다. 불교공부를 하다보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경전부터 읽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니까야읽기가 해당된다.

맛지마니까야를 머리맡에 두고 있다. 하루에 한두경 읽는다. 형광메모리칠하면서 새기며 읽는다. 기억할만한 문구가 발견되면 글로 표현한다. 이른바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한 글쓰기를 말한다.

언제 방대한 사부니까야를 다 읽어야 할까? 소부경전이라 불리우는 쿳다까니까야도 있다. 법구경과 수타니파타와 같은 경전이 속해 있는 니까야를 말한다. 깨알같은 각주까지 빠짐없이 읽으려면 몇년 걸릴지 모른다.

경전만 읽는 것은 아니다. 필요로 되는 경은 외운다. 테라와다 삼경이라 불리우는 라따나경, 멧따경, 망갈라경을 빠알리어로 외웠다. 이를 테라와다 예불문이자 수호경이라 한다. 이밖에도 초전법륜경, 팔정도분석경, 십이연기분석경 등 수많은 경을 빠알리어로 외웠다. 요즘은 빠다나경을 암송하고 있다. 대체 나는 수행을 언제 해야 할까?

 


가사를 한번 입어 보고 싶다. 그러나 한국불교 가사는 입어 보고 싶지 않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테라와다 가사를 입어 보고 싶다. 그런 가사는 어떤 것일까?

악마의 군대를 쳐부수기 위해
분소의를 입는 수행자는
전쟁터에서 빛난다.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처럼.

세상의 스승께서도
까씨의 옷 등의 값비싼 옷을 버리고
분소의를 입었거늘
누가 그것을 입지 못하랴!

그러므로 수행승이라면,
자신의 서원을 기억하면서
수행자에게 알맞은 분소의에 기뻐해야 한다.”(Vism.2.22)

청정도론 두타행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가사 입는 것에 대하여 장수의 갑옷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악마의 군대를 쳐부수기 위한 가사를 말한다. 본분사를 망각하고 부업에 열중하고 있는 스님들은 가사입을 자격이 있을까?


2022-08-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