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내 안의 코끼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7. 18:56

내 안의 코끼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글을 의무적으로 쓴다. 오래 된 것이어서 습관이 되었다. 생각했었던 것이 모니터에 찍힌다. 비록 독수리타법에 지나지 않지만 자판을 보지 않고 친다. 스마트폰으로는 엄지치기 한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들은 많다. 경전도 의무적으로 읽는다. 하루 한페이지도 좋다. 머리맡에 놓고서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도 의무적으로 읽는다. 읽다 보니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처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역시 머리맡에 놓고서 하루 한페이지라도 좋으니 조금씩 읽는다.

책만들기도 의무적으로 한다. 이제까지 80권 만들었다. 오늘 열 권을 찾아 왔다. 인쇄와 제본 의뢰한 것이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81권과 82권, 83권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목차를 만들면서 교정을 보는 것이다. 서문을 쓰면 책이 완성된다. 열 권이 편집되면 인쇄와 제본을 의뢰할 것이다. 보관용으로 딱 두 권 만든다. 블로그에 pdf로 올려 놓으면 누군가 다운 받아 갈 것이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 중에는 행선과 좌선도 있다. 하루 30분 이상 하기로 했다. 이렇게 의무를 걸어 놓으니 매일 하게 된다. 매일 하다 보니 오후 4시가 되면 수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행선을 30분하고 좌선을 30분하는 식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은가? 나 자신을 옭아 매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은 늘 대상에 가있다. 감각대상에 가 있는 것이다.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감각기관에 대응하는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이라는 감각대상에 가 있음을 말한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이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3)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인간은 동물적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적 요소가 있다. 마치 내 몸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것과 같다. 그 코끼리는 힘이 너무 세어서 내 뜻대로 제어 되지 않는다. 코끼리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전쟁에서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을 것이다.

누구나 몸 안에 코끼리 한 마리씩 키우고 살아간다. 코끼리는 감각적인 것을 좋아한다. 또한 감정적이고 감성적이다. 코끼리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감각에 빠져 살게 된다. 마치 악마의 영역에 있는 것과 같다.

코끼리는 이성이 제어하기 힘들다. 인간의 이성이 덩치가 남산만한 코끼리의 감성을 이기기 힘들다. 코끼리가 한번 화가 나면 제어하기 힘들다. 코끼리가 발정나면 역시 제어하기 힘들다. 그래서 인간에 대하여 코끼리 등에 타고 있는 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동물이다.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다. 동물은 본능적이다. 그러다 보니 늘 감각대상에 마음이 가 있다. 마음이 늘 외부 대상에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불선한 것이다. 감각을 즐기려는 마음 자체가 불선한 것이다. 왜 불선한가? 그것은 탐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탐, 진, 치의 소멸이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탐욕이다.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마음 속에 코끼리 하나 키우고 사는 것과 같다. 코끼리 등에 탄 자와 같다. 그래서 마음은 늘 감각 대상에 가 있는데 이는 감각을 즐기는 것과 같다. 탐욕에 의한 즐김이다.

부처님은 감각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 악마의 영역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들은 무상하고, 공허하고, 허망하다. 그것들은 환상이고 어리석은 자의 지껄임과 같다. 현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이나 내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이든지, 현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지각이나 내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지각이든지, 이 두 가지들은 악마의 왕국, 악마의 영토, 악마의 먹이, 악마의 사냥터이다. 그것들 때문에 탐욕, 분노, 자만과 같은 악하고 불건전한 정신적 상태가 생겨나고 그것들이 이 세상에서 배우는 거룩한 제자에게 장애를 만든다.”(M106)


부처님은 감각적 욕망에 대하여 무상하고, 공허하고, 허망하고 환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의 지껄임과 같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감각에 사로 잡혀 사는 삶에 대하여 “악마의 왕국, 악마의 영토, 악마의 먹이, 악마의 사냥터”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은 탐욕, 분노, 자만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어제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그것은 해인사발 범계승에 대한 뉴스이다. 불교닷컴 기사에 따르면 해인사 전주지 등 주요 직책을 맡은 큰스님들이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그것도 동안거 기간 동안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골프를 친 것이 들통난 것이다.

스님들도 골프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자 정서에도 맞지 않고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큰스님들이 속복을 입고 국내외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는 것은 십년전에 백양사 스님들의 도박사건 보다 더 충격으로 다가 온다.

해인사가 어떤 절인가?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이다. 그것도 법보종찰이다. 법보종찰에서 큰스님들이 속복을 입고 골프를 치다니! 스님이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그래도 넘어갈 수 있으나 큰스님의 골프는 국민정서법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불교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승 전총무원장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현재 한국을 대표 하는 종단에서 상왕 노릇을 하고 있는 자승을 보면 승려가 아니다.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면 속인이다. 그래도 승복을 입었으니 스님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 반승반속(半僧半俗)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에는 반승반속이 너무 많다.

한국불교는 청정한가? 결코 청정하지 않다. 니까야를 보아도 알 수 있고, 율장을 보면 더욱더 드러난다. 현재 한국불교에 200개 가까운 종단이 있지만 결혼을 할 수 없는 비구 종단은 3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종단은 모두 결혼을 할 수 있다.

승려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종단은 당연히 비구종단이 아니다. 설령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처자식이 있다면 재가종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재가종단은 반승반속이기 때문에 재가자의 무리라고 보면 된다.

자승 전총무원장은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길렀다. 전에는 도박승 혐의도 있고 심지어 처자식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룸살롱에 출입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해인사에서 사고가 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한국불교에 비구종단이 있을까? 이번 자승의 두발모습과 해인사 큰스님들의 골프 행각으로 보건데 한국불교에 더 이상 비구종단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계율대로 살지 않으니 비구종단이 아닌 것이다. 승려가 감각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감각이 하자는 대로 살았을 때 악마의 영역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누구나 코끼리 한마리 키우고 있다. 코끼리 등에 탄 인간은 코끼리를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성을 제어하기 힘든 것임을 말한다. 감각대상에 마음이 꼽혔을 때 마음은 이미 감각 대상에 가 있다. 마치 힘센 코끼리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해인사 방장스님도 자신이 키운 한마리의 코끼리를 제어 하지 못해서 악마의 영역에 간 것이라고 본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승랍이 수십년 된 스님이 있다. 고위직에 오른 스님이 감각적 욕망 하나 제어하지 못해서 반승반속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때 불자들은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고 했다. 스님도 사람이다. 스님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교라는 종교를 버릴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이 약화되는 요인이 된다. 이는 교세의 약화로 이어진다. 실제로 종교인구 총조사에서 개신교에 1위를 넘겨 주었더. 이대로 가면 한국불교는 소수종교가 되어서 소멸해 버릴지 모른다.

불자들은 스님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가르침에 의지해야 한다. 부처님 최후의 말씀처럼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법회에서 삼귀의 하는 이유가 된다.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과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가공동체에 귀의하는 것이다.

오늘도 의무적으로 행선을 하고 좌선을 했다. 결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매일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마음을 내부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외부 대상을 향하면 마음은 불선법에 지배받게 된다. 악마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2023-01-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