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천장사 사라낭카르 스님 초청법회
밀폐된 공간에 땀이 줄줄 흐른다. 참고 견디어야 한다. 삼십분 앉아 있기로 했으니 알람소리가 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재가우안거 십일째이다. 늘 그렇듯이 좌선에 앞서 행선을 먼저 했다.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가기 위한 것이다. 행선 없는 좌선을 생각할 수 없다.
백권당에서 에어컨은 오전 아홉 시가 넘어야 들어 온다. 이전에는 찜통 같은 더위이다. 더구나 습도까지 높다. 아침 여덟 시 이전임에도 체감 온도는 삼십도가 넘는다.
좌선 중에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맥 빠진다. 참아야 한다. 미얀마 속담에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좌선할 때 고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되지 않았을 때 망상에 지배된다. 삼십분하기로 했으니 참고 견디어야 한다. 인내하는 것도 수행이다. 고행과 수행의 경계는 어디일까?
카톡방에 공지가 떴는데
어제 천장사에 갔었다. 천장사에서 방글라데시 스님의 초청법회가 있었다. 스님의 법명은 ‘사라낭카르(Saranankar)’이다.
천장사 카톡방에 사라낭카르 스님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두타행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인가? 화장터에서 명상수행을 하는 두타행이다. 이 말에 끌렸다. 세상에 두타행만한 고행이 어디 있을까?
천장사에 가 본지 오래 되었다. 지난 4월 방생법회 때 가보았다. 부처님오신날 가보고자 했으나 집안행사가 있었다. 백중날로 미루었다. 마침 방글라데시 두타행 스님 이야기를 듣고 가보기로 했다.
천장사 가는 길에
2024년 7월 28일 일요일 천장사 가는 날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아침 6시 40분에 안양에서 출발 했으므로 막히지는 않았다.
아침을 먹어야 했다. 늘 그렇듯이 행담도휴게소가 대상이다. 한시간도 안되어서 도착했다.
천장사에 자주 다니다 보니 하나의 패턴이 형성되었다. 행담도휴게소에서 밥을 먹는 것이다. 자율식당에서 먹는다.
행담도휴게소에 자율식당이 있다. 자율배식해서 먹는 식당을 말한다. 콩나물김치국과 백반을 골랐다.
콩나물김치국은 3,500원이다. 백반은 1,000원이다. 다른 것은 집지 않았다. 김치도 필요 없다. 오로지 이것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른 아침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늘 찾는 메뉴이다.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 불단에 올릴 공양물을 사야 한다. 가능하면 고북면에 있는 마트를 활용한다. 이왕이면 지역에 있는 마트 상품을 팔아 주는 것이다. 고북면 마트에서 복숭아와 참외를 샀다.
고북면은 황토의 고장
천장사 가는 길은 평화롭다. 드넓은 평원은 온통 초록세상이다. 너른 국도에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서산 고북면은 황토의 고장이라는 것이다. 소도를 달리다 보니 입간판에 “고북면은 황토의 고장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고북면의 흙은 시뻘겋다. 마치 해남이나 함평의 황토를 보는 것 같다.
저 멀리 연암산이 보인다. 연암산 제비바위도 보인다. 그 산 안쪽에 천장사가 숨어 있다.
천보루는 언제 완성될까?
천장사에서 천보루를 건립하고 있다.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을까? 3개월 정도 가 보지 못했는데 토대를 다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장사는 작은 절이다. 그러나 선원이 있는 절이다. 염궁선원을 말한다.
천장사는 작은 절이지만 수행도량이다. 경허스님이 보림하던 절이다. 또한 경허스님의 삼월, 즉 수월스님, 혜월스님, 만공스님이 수행했던 절이기도 하다.
천장사는 천장암이라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천장사가 되었다. 아마 사격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원이 있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누각을 짓고자 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천보루라고 한다.
천보루는 어느 정도 진척 되었을까? 천장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확인해 보았다. 가파른 축대 아래에 철근이 여러 개 보였다. 이제 기초를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천보루는 언제 완성될까? 아마 동안거가 시작되기 전에 완공될 것이다. 앞으로 삼개월 후면 완성되리라고 본다.
천장사 법당은 작고 비좁다. 경허스님이 머물던 당시 인법당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너무 좁아서 열 명 이상 앉기가 힘들다. 사람이 많으면 툇마루에 앉는다. 더 많으면 마당에 서 있어야 한다.
법당이 작으니 불상도 작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만 모셔져 있다. 그 옛날 경허스님이 살던 시절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작게만 보여진다. 천보루가 완성되면 해결될 것이다.
2007년 이후 이주민 정책이 바뀐 것은
방글라데시 사라낭카르 스님은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이 초청한 것이다. 중현스님과 인연 있는 방글라데시 이주민 출신 장진성 선생의 소개에 따른 것이다.
장진성 선생은 방글라데시 사람이다. 한국으로 귀화해서 한국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가 유창해서 이날 사라낭카르 스님 통역을 맡았다.
장진성 선생은 학생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2005년에 한국으로 귀화 했다. 장진성선생과 중현스님의 인연은 2007년 외국인이주민노동자의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이 있다. 그런데 사망사건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문제를 인식한 것은 수경스님이다.
수경스님은 화계사에 있을 때 외국인 이주민노동자의 죽음 문제에 대하여 해결하고자 했다. 그때 중현스님도 수경스님을 거들었다고 한다. 2007년 때의 일이다.
문제를 풀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중현스님은 먼저 사망자 명단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각국 대사관에서 협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명단 수집하는데만 6개월 걸렸다고 한다.
이주민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2007년 경향신문에 ‘이주 사망노농자 천도재’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다.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2만명을 웃돌고 있다. 최근 들어 불법체류가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인권단체들은 지난 20년간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3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경향신문, 2007-10-25)
이주노동자 천도재는 2007년 화계사에서 열렸다. 이에 대하여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28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는 산업재해 등으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천도재가 열린다. 형식은 불교의식인 천도재이지만 네팔, 필리핀, 스리랑카, 버마, 방글라데시, 몽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 출신의 성직자들이 참여, 각 나라의 전통과 종교 관습에 따른 고유의 추모의식으로 진행된다.”라고 보도 했다.
수경스님인 2007년 당시 화계사 주지였다. 또한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였다. 중현스님이 수경스님을 도와서 1000명의 사망자 명단을 작성했다.
한국에 있는 이주민노동자는 대부분 불교권 국가 사람들이다. 스리랑카, 네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배트남에서는 불교세가 강하다. 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있다.
이주민노동자의 삶은 2007년을 전후로 해서 갈린다. 2007년 이후에는 사망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제도적으로 보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07년 이전에 한국에 온 이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한국에 올 때 1억에 달하는 빚을 지고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5년 머물면서 2년은 빚을 갚고 3년 벌어서 자국에 간다고 했다.
이주민노동자의 사망이 급증했었던 것은 빚 때문이다. 그들 나라에서는 1억을 빚지고 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천만원에 해당된다. 브로커가 끼여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사망자 명단을 확보했다. 이를 법무부가 인정했다. 2007년 이후부터는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시험을 보아서 들어 왔다고 한다.
2007년 이후 이주민 정책이 바뀌었다. 브로커에게 돈 주고 오지 않고 시험 봐서 오게 한 것이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을 통해서 들어 온 것이다. 중현스님은 이런 일을 방글라데시 사람 장진성 선생과 함께 한 것이다.
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사라낭카르 스님 법회는 10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한국식 예불의식부터 시작했다. 이어서 테라와다불교식 예불의식이 따랐다.
방글라데시에도 불교가 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거기에도 불교가 있었던 것이다.
방글라데시 불교는 어떤 불교인가? 방글라데시 사람 장진성 선생에 따르면 테라와다불교로서 5개 종파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 미얀마 계통의 마루마파가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불교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마루마파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치타공 근처에 불교도가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불자는 얼마나 될까? 장진성 선생에 따르면 3천만명이라고 했다. 한국보다 세 배나 많다. 방글라데시 인구가 2억명인데 불교도가 3천만명이라면 15%에 해당된다.
장진성 선생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방글라데시 불교는 전체 인구의 0.6%로서 백만명 가량된다. 혹시 힌두교까지 합하여 불교로 계산 한 것 아닐까? 그래도 너무 많다. 참고로 인터넷 검색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방글라데시는 총 1억6천9백만망 가운데 이슬람이 91%로 1억 5천만명이다. 힌두교는 7.9%로 1,300만명이다.
방글라데시에서 불교는 미얀마 국경 가까이에 있는 치타공 지역에 주로 분포 되어 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는 이곳은 불교가 우세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팔라왕조시대(750-1174) 때 인도불교의 중심지였다. 이는 인도불교 최후 거점 비크라마실라(Vikramaśilā) 대학이 가까이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된다.
사라낭카르 스님의 수난
사라낭카르 스님은 법문에 앞서 축원해 주었다. 아름다운 빠알리운율로 낭송했다. 법문시간에는 주로 방글라데시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방글라데시에 불교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일종의 종교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공격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 사람들이 불교사원을 파괴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라낭카르 스님은 이슬람으로부터 박해를 당했다. 이는 테러로도 나타났다. 2020년 스님에 대한 암살시도도 있었다. 이는 스님의 두타행과도 관련이 있다.
스님은 화장터에서 두타행을 했다. 십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타종교 지역이나 시설에서 두타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슬람의 종교분열책동에 따른 것이다. 이슬람이 힌두교와 불교를 이간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이 다수이다. 다수의 세상에서 소수가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정부에서는 평등권을 보장하지만 현실은 따라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실 한 가운데 사라낭카르 스님이 있다.
열세 가지 두타행을 보면
스님은 투타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도 화장터 두타행이다. 중현스님은 이런 두타행에 대하여 고행은 아니라고 했다. 두타행은 무소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고행과 수행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좌선을 하면 온갖 잡생각으로 괴롭다. 더구나 다리까지 저리면 참아 내기 힘들다. 그럼에도 견디여 내야 한다. 번뇌나 통증은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좌선에 대하여 고행이라고 하지 않는다.
두타행은 불교수행 중의 하나이다. 불교수행 중에서도 심한 것이다. 거의 고행에 가깝다. 이는 열세 가지 두타행을 보면 알 수 있다.
청정도론 제2장에 두타행이 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계행을 수용한 수행자는 두타행을 성취해야 한다.”라고 했다. 두타행을 하기 전에 먼저 계행이 완성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두타행을 했을 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이와 같이 탐욕의 여임, 만족을 앎, 버리고 없애는 삶, 멀리 여임, 쌓아 모으지 않음, 용맹정진, 부양하기 쉬움 등의 공덕수로 티끌이 씻어진 계행이야말로 지극히 청정해질 것이고, 그의 서원도 성취될 것이다.”(Vism.2.1)라고 했다.
두타행에는 열세 가지 고리가 있다. 종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분소의를 입는 수행고리
2) 세벌 옷을 지니는 수행고리
3) 탁발음식을 먹는 수행고리
4) 차례로 집집마다 탁발하는 수행고리
5) 한 자리에서 식사 하는 수행고리
6) 하나의 발우로 식사하는 수행고리
7) 제 시간 후에 식사하지 않는 수행고리
8) 한적한 숲에서 지내는 수행고리
9) 나무 아래에서 지내는 수행고리
10) 노천에서 지내는 수행고리
11) 시체를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고리
12) 처소에 맞추어 지내는 수행고리
13) 항상 눕지 않고 지내는 수행고리
열세 가지 두타행을 보면 수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열한 번째 ‘시체를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고리’가 가장 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시체를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고리
두타행은 고행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행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주석에서는 “1)감관의 수호, 2)두타행, 3)정진, 4)극단적 고행이 있다.” (Srp.I.94) 라고 했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기 전에 6년동안 고행을 했다. 이는 극단적 고행에 해당된다. 그래서일까 주석에서는 “이 가운데 극단적 고행은 번뇌를 제거시키지 못한다.”(Srp.I.94)라고 했다.
네 가지 고행을 보면 감관을 수호하는 것도 고행이고 두타행도 고행이다. 그러나 극단적 고행, 즉 니간타 교도들의 몸에 대한 학대와 같은 고행은 결코 번뇌를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행과 수행은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행을 하는 것 자체가 고행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극단적 고행이다. 부처님이 출가하여 정각을 이루기까지 목숨을 건 6년 간의 고행을 했지만 번뇌를 제거시키지 못한 것이 이를 말한다.
수행자라 하여 모두 다 두타행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두타행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성향을 가진 자가 두타행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탐욕적 성향이 있는 자와 우치적 성향이 있는 자에게 적합하다.”(Vism.2.86)라고 했다.
탐욕이 있는 자는 부정관을 해야 한다. 이는 대념처경(D22)에서 아홉 가지 묘지의 시체를 관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두타행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열세 가지 두타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열한 번째 ‘시체를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고리’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그런데 만약 노천 가운데 한적한 숲에서 지내는 수행고리가 갖추어진 시체 버리는 곳이 있다면, 한 수행승이 일시에 모든 두타행의 고리를 수용할 수 있다.”(Vism.2.91)라고 했다.
열세 가지 두타행의 고리는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열세 가지를 한꺼번에 다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체 버리는 곳에서 두타행을 하는 것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두타행 중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시체버리는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포에 방글라데시 이주민의 쉼터를 만들고자
사라낭카르 스님은 올해 법랍 20년으로 대장로스님이다. 스님은 1984년생으로 나이가 이제 만 40이 되었다. 그럼에도 두타행 하는 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도 화장터 두타행이다. 지금까지 십년 이상 열여섯 군데 화장터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스님은 법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축원의 말을 해 주었다. 스님은 한국처럼 안전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선진국에 부처님과 스님들이 있어서 신도들이 도움을 준다면 세계 일등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방글리데시를 도와 줄 것도 말했다. 방글라데시 스님들이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말했다. 이런 말을 한 것은 방글라데시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한 말인지 모른다.
스님은 한국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김포에 절을 하나 만들 것이라고 했다. 방글라데시 이주민노동자의 쉼터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이주민노동자들의 쉼터가 되는 사원이 여럿 있다. 충남 아산에는 스리랑카사원 마하위하라가 있다. 담마끼띠 스님이 원력을 내서 만든 것이다. 의정부에 가면 담마까야(법신사)가 있다. 태국 담마까야 종파에서 만든 절이다. 두 절 모두 각국 이주민노동자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라낭카르 스님은 법문 대신에 보배경(Sn2.1) 독송을 했다. 빠알리 원음으로 낭송했다. 운율을 넣어서 낭송했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고
오전 초청법회가 모두 끝났다. 인법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방글라데시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450매를 보시했다. 다회용 생리대이다.
점심은 천장사 공양식당에서 먹었다. 점심이 끝난 다음에는 차담이 있었다. 사라낭카르 스님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는 시간이다.
한질문자가 윤회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윤회를 믿는지 물어 본 것이다. 이는 요즘 H스님이 윤회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윤회는 있는 것이다. 이는 초기경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니까야 도처에서 수도 없이 윤회에 대해서 말했다. 상윳따니까야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 여기 저기 태어나 오랜 세월 윤회했네.”(S56.21)라는 게송으로도 알 수 있다.
테라와다스님에게 윤회에 대한 질문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황할지 모른다. 왜 그런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라낭카르 스님은 분명하게 “다음 생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라한이 아닌 자에게 해당된다.
갖가지 질문이 있었다. 형이상학적 질문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답변을 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이는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가와 같은 막연한 질문이다.
수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도 있었다. 어떤 이가 “니밋따(빛)를 보았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스님은 수행 중에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니밋따는 좋은 것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가 “스님은 행복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24시간 중에서 20시간을 수행으로 보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아마 선정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화장터에서 선정에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본다고 말했다. 천신도 본다는 것이다.
사라낭카르 스님에게 공양하고
사라낭카르 스님과의 대화가 끝났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준비된 보시금을 내 놓았다. 몇 사람이 봉투를 내 놓았다.
사라낭카르 스님은 성자인지 모른다. 나이 스무살이 되었을 때 출가하여 이십년 동안 주로 화장터에서 수행했다. 다카에서 보드가야까지 두 달 걸려 맨발로 걷기까지 했다. 이런 수행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 같아서 공양했다. 청정도론에서 시체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에 대한 게송이 있다.
“시체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자는
실로 죽음에 대한 새김을 얻으니,
잠에 떨어지더라도
방일의 허물이 그를 접촉하지 못한다.
그는 많은 시체를 보기 때문에
마음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크나큰 외경에 도달하여
도취에 다가가지 않고
또한 적정(寂靜)을 구하면서
올바로 노력한다.
시체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고리는
많은 덕성을 가져오므로
열반으로 향하는
마음을 지닌 자라면 섬겨야 한다.”(Visdm.2.68)
시체버리는 곳에서 수행한 자는 많은 덕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자를 섬겨야 한다고 게송에서 말했다.
후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두타행은 고행이기도 하고 수행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고행은 감관을 수호하는 것도 고행이 된다. 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두타행을 하는 것도 고행이다. 정진을 하는 것 자체가 고행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극단적 고행이다.
극단적 고행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고통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이익이나 번영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부처님이 육년 고행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두타행은 고행이기도 하고 수행이기도 하다.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천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하 깟싸빠 존자는 두타행을 하는 것에 대하여 “나 자신의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그리고 후세의 뭇삶들에 대한 자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S16.5)라고 말했다.
깟싸빠 존자는 후세 수행자들을 위해서 두타행을 했다. 후세 수행자들이 자신이 했던 것처럼 따라 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의 마음으로 두타행을 한 것이다. 이는 경에서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되려고 실천할 것입니다.”(S16.5)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두타행 한 것이다.
두타행은 어려운 것이다. 출가자라고 하여 모두 하는 것은 아니다. 두타행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시체 버리는 곳에서 지내는 수행이다. 이 수행을 하면 나머지 두타행의 고리를 모두 실천하는 것과 같게 된다.
재가자도 두타행을 할 수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가능하다. 어떤 것인가? 이는 “재가남자신도와 재가여자신도들에게는, 한 자리에서 식사하는 수행고리와 탁발음식만을 먹는 수행고리의 두 가지는 적당하고 또한 타당하다.”(Vism.2.92)라고 했다.
오늘도 우안거 행선과 좌선을 했다. 재가자가 안거 나는 것 자체가 고행이다. 어쩌면 재가자의 고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현세의 행복한 삶과 후세의 뭇삶들에게 자비를 느껴서 행하는 두타행과는 비할 바 없이 가벼운 것이다.
2024-07-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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