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사 천보루 상량식
눈을 감고 가만 앉아 있으면 떠오른다. 좋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를 지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이나 들어서 아는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 아침 삼십분 좌선에서 어제 있었던 천장사 천보루 상량식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천장사카톡방에 공지가 떴다. 천보루 상량식에 대한 것이다. 오래 전에 공지가 된 것이 아니라 불과 사흘 남겨 놓고 뜬 것이다.
공지를 보자 고민했다. 일요일 휴양림 가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량식에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휴양림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이지만 상량식은 오로지 한번 있는 것이다.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목적지는 충남 서산에 있는 천장사이다. 백키로 이상 걸리는 먼 거리이다. 특히 요즘 단풍철이라 서해안고속도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있을지 모른다.
안양에서 오전 6시 29분에 출발했다. 행담도휴게소에 도착하니 7시 19분이었다. 50분 걸린 것이다. 일찍 출발했으므로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행담도휴게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서산 천장사 가는 날 아침에 늘 먹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율식당에 있는 콩나물김치국이다.
한번 두번 먹게 되면 계속 먹게 된다. 행담도휴게소에서는 늘 콩나물김치국에 백반을 먹는다. 이것이 나에게는 최상의 아침식사가 된다. 비용은 매우 저렴하다.
콩나물김치국 하나에 3,500원이다. 백반은 1,000원이다. 다른 반찬은 고르지 않는다. 콩나물김치국에 백반을 말아 먹으면 속이 후련하다. 최저인 4,500원에 아침을 해결하는 것이다.
천장사 가는 길은 목가적이다. 해미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고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길 같다. 차량도 거의 없고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다.
점점 연암산은 가까워진다. 에스(S)자로 되어 있는 시골길에서 차를 멈추었다. 붉은 황토와 푸른 초목이 어우러진 대지이다. 연암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천장사에 갈 때 마다 늘 드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소설가 최인호 작가의 ‘길없는 길’의 주인공이 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천장사 찾아 가는 것부터 장편의 소설이 시작된다.
나는 왜 천장사를 찾는가? 테라와다불자가 한국선종의 성지나 다름 없는 천장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 붙이면 떼기 힘들다. 정들면 헤어지기 어렵다. 이는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정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정이다.
우정은 친구와 관계에서 형성된 감정이다. 친구는 법으로 맺어진 관계일 수도 있다. 이를 법우라고 한다. 천장사에 가면 법우들간의 우의가 있는 것이다.
천장사 제2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가파른 길이다. 경사는 거의 30도 이상 되는 것 같다. 쌀을 짊어지고 올라 갔다.
절에 가면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뭐라고 하나 들고 가야 한다. 천장사에 자주 다니다 보니 고북면에 있는 수퍼에서 과일박스나 쌀을 산다. 상량식과 관련된 보시금 오만원은 이미 이체해 놓았다.
천장사 불단에 공양물을 올리고자 한다. 미리 공양물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지역 상품을 팔아 주는 것이다. 고북면 수퍼를 활용하는 것은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고북면 수퍼에서 쌀을 하나 샀다. 10키로를 사고자 했으나 가파른 길을 올라 가는 데 있어서 너무 힘이 든다. 마침 5키로 짜리도 있었다. 이 정도면 딱 적당할 것 같다. 늘 가지고 다니는 배낭에도 들어간다.
쌀 5키로 짜리에는 품명이 있다. ‘예지미’라고 한다. 더 읽어 보니 ‘서산 간척지 쌀’이라고 적혀 있다. 제대로 산 것이다. 지역에서 나는 쌀을 지역의 수퍼에서 샀으니 도움을 준 것이다.
천장사에서는 천보루 건립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폐쇄된 계단길을 따라 올라 가니 정면에서 보였다. 불과 사개월만에 엄청난 공정이 이루어졌다. 상량식을 앞둔 전각은 생각보다 매우 거대했다.
산에 가면 절이 있다. 그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이런 산중에다 이런 큰 전각을 지었을까에 대한 ‘불가사의’이다. 천장사 천보루 공사현장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천장사 천보루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본래 천장사 터는 매우 비좁다. 더 이상 큰 전각을 지을 공간은 없다. 그럼에도 전면 5칸 측면 3칸의 거대한 전각이 건설 중에 있다. 그것은 공간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산중에 있는 절을 보면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산중에 전각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인다. 천장사 천보루도 완성되고 나면 기적처럼 보일 것이다. 가장 기적적인 것은 없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천장사에 가면 남쪽에 축대가 있다. 축대 아래는 깊은 골짜기나 다름 없다. 천장사가 연암산 골짜기 좁은 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축대 아래는 가파르다. 그곳에 콘크리트 기둥이 마치 신전의 열주처럼 높이 솟아 있다. 없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상량식은 오전 10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천장사 인법당에서 간단히 예불이 있었다. 사람들은 천보루 상량식 현장으로 공양물을 가지고 이동했다.
처음으로 천보루 공사현장에 들어가 보았다. 생각한 것보다 꽤 넓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공간이니 마치 강당처럼 넓은 공간이다. 중현스님에 따르면 법당 공간면적은 108평방미터라고 한다. 평수로 따지면 32평이다.
천보루가 완성되면 법당문제는 해결된다. 현재 인법당은 너무 좁아서 열명 이상 들어가기 힘들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툇마루에도 앉아 있고 밖에서 서 있기도 한다. 어찌 보면 천보루법당은 천장사의 오랜 숙원 사업이나 다름 없다.
처음 참석한 상량식이다. 상량식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상량식을 보기 위해서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일부러 참석했다. 천장사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상량식이다.
상량식장에는 커다란 나무가 흰 광목천에 메여 있다. 용마루 가장 높은 곳에 놓일 대들보라고 볼 수 있다. 거의 한아름 되는 둥근 목재이다.
대목장은 끌과 망치를 들었다. 상량목 가운데에 네모난 홈을 팠다. 마치 불상에 복장유물을 넣는 것처럼 뚜껑과 함께 무언가 들어갈 공간을 만든 것이다.
상량목 복장공간은 미리 준비 된 것 같다. 두 뼘 정도 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 안에 한지로 쓰여 있는 두루마리를 넣었다. 아마 천장사 연혁과 천보루 공사와 관계된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다. 또한 성공과 번영을 기원하는 축원문도 들어 있을 것이다. 뚜껑을 닫기 전에 어떤 이는 봉투를 집어 넣었다.
상량식은 절차가 있다. 복장유물을 집어 놓고 봉인되자 다음 단계는 글씨를 쓰는 것이다. 천장사 회주 옹산스님이 붓을 들었다.
옹산스님은 상량목에 붓글씨를 썼다. 그런데 붓글씨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예술적이다. 마치 이 분야의 전문가처럼 보인다. 거침 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 간다.
사람을 다시 보게 될 때가 있다. 주로 그 사람의 재능과 관련 된 것이 많다. 올해 7월에 방글리데시 사라낭카르 스님 초청 법회때의 일이다. 그때 천장사 법우 가운데 한 사람이 영어로 유창하게 말했다. 마치 원어민처럼 질문했다. 그 여성 법우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이번에 옹산스님의 붓글씨를 보니 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스님은 상량목에 어떤 글씨를 썼을까? 사진으로 찍은 글씨를 읽어 보니 “불기이오육팔시월초삼일사시천장사천보루신축상량입주천추(O)세영불멸”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여기서 (O)은 알 수 없는 한자체이다. 한자를 흘려 써 놓았는데 어떤 글자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상량목 복장유물도 넣었다. 상량문도 써 놓았다. 이제 가장 지붕 높은 곳으로 올리는 일만 남았다.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은 화엄성중 정근을 계속 했다.
상량목은 꼭대기에 안착 되었다. 대목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망치질이 시작되었다. 아래에서는 계속 화엄성중이 울려 퍼졌다. 모두 다 끝났을 때는 박수가 터졌다.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은 상량과 관련하여 연혁을 말했다. 2022년 도와 시의 예산이 통과 됨에 따라 2023년 11월 문화재와 관련된 협의가 끝났다고 한다. 공사는 2024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천보루 상량식은 공사가 시작된지 8개월만에 시행되었다. 그 사이에 콘크리트 지반공사 등이 있었다. 천장사에 올 때마다 진척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천보루가 완성되면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큰 전각이 완성된다. 법당 부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 되는 것이다.
천보루는 상량식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간다. 겨울에는 공사를 하지 않고 동안거가 끝나면 공사가 재개 된다. 내년 오월 부처님오신날 이전에는 전각이 완성된다.
천보루는 천장사의 사격을 크게 키워 놓을 것이다.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은 상량식 소감에 대하여 간단히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미에 “여러분은 무형불사를 하는데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천장사 회주 스님을 다시 보게 된다. 이전에 막연히 선입견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다. 이번 상량식을 통해서 회주 스님의 진면목을 다시 알게 되었다. 붓글씨로 상량문을 틀림 없이 써 내려 가는 것에서 놀랐다. 더 놀란 것은 무형불사에 대한 당부이다.
천장사는 계속 성장해 왔다. 처음에는 인법당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염궁선원과 성우당을 갖추었다. 디귿(ㄷ)자 모양의 가람이 된 것이다. 여기에 천보루가 완성되면 미음(ㅁ)자 모양의 여법한 가람이 될 것이다.
천장암은 하나의 작은 암자에 불과했다. 천장암이 천장사가 되기까지 회주스님의 원력과 노고가 있었다고 본다. 이제 천보루 건립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본다.
오늘 아침 좌선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회주 스님이 건축불사보다는 수행과 같은 무형불사에 힘써 달라는 말에 대한 것이다. 스님은 왜 이런 당부를 했을까?
천장사에 ‘염궁선원’이 있다. 천장사는 시골절이고 가난한 절이고 또한 작은 절임에도 불구하고 선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염궁선원은 한번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이다. 2016년 불이 나서 전소되었다.
염궁선원은 다시 복원 되었다. 이런 것도 회주 스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것은 건축불사보다도 인재불사기 때문일 것이다. 선방이 있다는 것은 인재불사를 증명하는 것이 된다.
목재로 된 전각은 늘 화재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언제 어떻게 불타 버릴지 모른다. 만약 건축불사에만 올인한다면 허망한 것이 된다.
옹산 회주 스님은 건축불사의 허망함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천보루 상량식에서 유형불사보다는 무형불사를 강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옹산 스님은 불난 염궁선원을 복원 했다. 성우당이라는 전각도 건립했다. 이제 천보루만 완성되면 여법한 사격을 갖추는 절이 된다. 그렇다면 회주 스님은 왜 천보루 건립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일까?
천장사에 카톡방이 있다. 총무 법우는 주말에 천장사를 찾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한다. 놀랍게도 전세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성지순례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때 작은 절, 시골절, 가난한 절 천장사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최근 한국불교에 변화가 있다. 그것은 천장사가 성지순례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선종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경허스님이 보림한 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경허스님의 세 제자, 즉 혜월스님, 수월스님, 만공스님이 젊은 시절 살았던 절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천장사는 한국불교의 성지가 된 것 같다. 한국선종의 중흥지로 알려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전국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된 듯 하다.
천장사는 너무나 작은 절이다. 인법당은 너무 비좁아서 열 명 이상 앉기가 힘들다. 전세버스로 단체로 순례 왔다면 앉을 공간이 없다. 아마 이런 문제점을 회주 스님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보루 건립에 박차를 가한지 모른다. 천보루가 건립되면 아마 50명 이상은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상량식이 끝나고 점심공양이 있었다. 천장사는 작은 절이고 가난한 절이라서 신도가 많지 않다. 그러나 결속력은 강하다. 천장사를 좋아하는 사람들, 주지스님을 좋하는 사람들 등 갖가지 이유로 천장사 식구가 되었다.
천장사 가기 전에 카톡방에 알렸다. 이에 수월거사가 반응을 보였다. 내가 가는 날은 수월거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길상화보살과 함께 올 때도 많다.
수월거사와 길상화보살은 부부이다. 홍성에서 살고 있다. 2014년에 인연 맺었으니 십년지기가 된다. 특히 수월거사는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길상화 보살도 만만치 않다.
법우들을 만나면 즐겁다. 이런 것도 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정이다. 더 좋은 것은 법우간의 우의(友誼)이다. 일종의 동지애 또는 전우애 같은 것이다.
천장사 공양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늘 그렇듯이 비빔밥이다. 갖가지 나물로 버무려 먹으면 몸도 마음도 청정해지는 것 같다. 여기에 총각김치까지 곁들이니 맛은 배가 된다.
천장사 공양식당은 교류의 장소가 된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과일과 떡을 먹는다. 귀가할 때는 떡을 싸 준다. 떡은 집에서 좋아하는 것이다.
흰 광목천을 하나 받았다. 상량식 때 상량목에 쓰던 것이다. 법우는 천장사 식구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배개에 쓰면 좋다고 한다. 천장사에 순례 왔던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올해 천장사에 여섯 번 갔다. 매주 일요일 일요법회가 열리지만 매주 참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입춘, 방생, 백중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가능하면 참석하고자 노력한다. 12월에 동지법회에 참석하면 올해 일곱 번째 천장사행이 될 것이다.
테라와다불자이면서 대승불교 법회에도 참석한다. 천장사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불교명절 때나 특별 행사 때 참석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情)때문이다.
천장사에 가면 인정이 있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겨준다. 타지에서 오랜 세월 살다가 귀향한 친지처럼 반겨 준다. 이런 도반들이 있어서 귀가길이 네 시간 걸려도 가는 것이다.
2024-1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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