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사야도의 논서 독후기와 일창스님의 “사두! 사두! 사두!”,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까티나보시법회
현재시각 오후 1시 57분, 마음이 상쾌하고 청량하다. 일년에 이런 날은 드물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났을 때 가뿐함 같은 것이다. 오늘 한국마하시선원에 다녀 왔다.
한국마하시선원은 백권당에서 가까이 있다. 같은 안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양은 분지로 되어 있어서 끝에서 끝까지 이동거리가 짧다. 서울처럼 움직였다 하면 한시간 걸리는 거리가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 안양 북단 관악역 근처까지 버스로 열한 정거장 이십 여분 걸렸다.
까티나법회는 열 시에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착오가 있었다. 열 시 십분전에 도착하니 법회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법회는 아홉 시 이십 분에 시작 되었던 것이다.
법당은 삼층에 있다. 법당에 들어 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법당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가자들은 미얀마식 수행복 차림이었다. 마치 미얀마에 온 것 같았다.
오늘 한국마하시선원 까티나법회에 참여한 상가스님은 아홉 분이다. 미얀마 스님도 있고 한국 스님도 있다. 공통적으로 짙은 갈색으로 가사 색깔이 동일하다. 가사 모양도 동일하다. 이는 주황색 등 여러 색깔의 가사를 입은 법회와 복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이는 마하시선원 출신의 스님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범라스님도 초청받았다. 범라스님은 한국불교 가사를 입고 있다. 짙은 갈색 가사의 비구스님들과 달리 재가자석 앞자리에 앉아 있다. 점심 공양 때는 상을 따로 받았다.
우 소다나 사야도가 까티나법회 법문을 했다. 중간에 들어 갔지만 법문 초입이었다. 법문 이전에는 아마 마하시 방식의 법회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우 소다나 사야도는 ‘참사람의 보시(sappurisadāna) 다섯 가지’라는 주제로 법문했다. 사야도는 미얀마어로 말하고 이를 일창스님이 우리말로 통역했다.
참사람의 보시는 다섯 가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1)믿으면서 보시하는 것, 2)공손하게 보시하는 것, 3)적당한 때에 보시하는 것, 4)아끼지 않고 보시하는 것, 5)손상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사야도는 여러 가지 비유와 인연담을 들어서 설명했다.
사야도의 법문은 두 번째 ‘공손하게 보시하는 것’항목부터 들었다. 천궁사에 따르면, 공양단에 보시자의 흐트러져 있는 꽃을 가지런히 해 놓기만 해도 공덕이 된다고 한다.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났음을 말한다. 공손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공덕이 된다는 것이다.
공손하게 보시하면 어떤 과보가 따를까? 자식도 아내도 제자도 직원도 자신에게 공손하게 대하고 말을 잘 들을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세 번째, 적당한 때 보시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닌 적시(適時)에 보시하는 것이다. 보시에도 타이밍이 있음을 말한다. 지나치게 아끼는 자가 노년이 되었을 때 보시하려 하지만 이는 보시타이밍을 놓치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보시에 대하여 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가 보아야 한다. 그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보시는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금액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능력껏 하면 되는 것이다.
보시는 능력껏 해야 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은 “능력에 따라 보시하고 또한 즐기면 비난받지 않고 하늘나라를 성취하리.”(S1.41)라고 했다. 여기서 “능력에 따라(yathānubhāvaṃ)”라는 말은 자신이 처한 상태에서 힘 닿는 대로 보시하는 것이다.
능력껏 보시했을 때 그 과보는 어떤 것일까? 이는 “조금 있어도 주는 보시는
천 배의 보시와 동일하게 헤아려지네.”(S1.32)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여기 월 일억원을 버는 자가 있다. 그는 수입의 1%에 해당되는 백만원을 보시한다. 여기 월 백만원을 버는 자가 있다. 그는 수입의 10%에 해당되는 십만원을 보시한다. 누구의 보시공덕이 더 클까? 절대적인 금액이 아닌 상대적인 금액으로 따졌을 때 백만원에서 십만원을 보시한 자가 일억원에서 백만원을 보시한 자보다 열 배 더 큰 공덕을 짓는 것이다.
보시전용통장을 만들어 놓았다. 현재 보시통장에는 이백여만원의 돈이 있다. 고객업체부터 결제가 이루어지면 반을 보시통장으로 넣고자 한다. 아마 조만간 보시통장은 금액이 두 배가 될 것이다. 이 정도 금액이면 마음 놓고 보시할 수 있다.
보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지금 있을 때, 조금이라도 형편이 좋을 때 하는 것이다. 일인사업이지만 사업자로 살 때 보시하기 좋은 시기이다. 일감을 맡아서 돈이 들어 오면 반은 보시통장으로 넣고자 한다.
보시한다고 해서 큰 금액을 하지 않는다. 한 군데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몰아서, 이른바 ‘몰빵보시’는 하지 않는다. 만원, 이만원 등 소액보시를 한다.
매월 오만원짜리 정기 보시도 있다. 등을 달 때는 십만원 보시를 한다. 경조사가 있을 때는 십만원 보시를 한다.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십만원 보시를 한다. 더나아가 정치보시도 한다. 민주당 권리당원으로서 매월 오천원 당비를 내고 있다.
최근에 페이스북친구들에게 보시를 했다. 평소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좋아요’ 이모티콘을 자주 눌러 주거나 댓글을 달아 격려 해 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모두 마흔 명의 페이스북친구에게 보시 했다. 서른여덟 명에게는 동서식품 아카시아벌꿀 육백 그램짜리 한 개를 택배로 보냈다. 백프로 천연꿀이다. 두 명에게는 해남 특산품 꿀고구마 한박스씩 보냈다.
페이스북친구들 마흔 명에게 보시한 비용은 구십 만원 가까이 된다.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시전용통장에서 나간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보시전용통장에 있는 돈은 내돈이 아니다. 보시하기 위해서 만든 통장이기 때문에 잔고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좋다. 잔고가 줄어들면 또 채워 넣으면 된다. 오늘 법문에서도 아낌 없이 보시하면 ‘좋은 것이 생겨난다’라고 했다. 보시를 하면 그만큼, 또는 그 이상 채워짐을 말한다.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도 선물하고자 한다.
사야도는 네 번째로 보시는 아끼지 않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아끼는 마음, 물러나는 마음으로 보시해서는 안됨을 말한다. 또한 숙고해서 보시해서도 안됨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보시해야 하는가? 재산이나 재물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이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재산이 노년에 까지, 늙어 죽을 때까지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 그런가? 도중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은 어떻게 없어질까? 경에서는 “도둑이나 왕들에게 약탈당하거나 불타서 사라진다네.”(S1.41)라고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 재물은 불이나 물이나 왕이나 도둑이나 원하지 않는 상속자에 의해서 약탈될 수 있는 것입니다.”(A7.7)라고 했다.
평생 일군 부(富)는 끝까지 유지 되지 않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죽을 때 가져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재산은 어쩌면 내것이 아닐지 모른다. 아끼는 마음, 물러나는 마음, 숙고하는 마음으로 보시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보시할 때는 좌고우면하지말고 선뜻 보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야도는 보시와 관련된 일화도 소개 했다. 어떤 거사가 보시를 했는데 무상, 고, 무아의 마음으로 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야도에 따르면 보시는 무상, 고, 무아의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보시는 보시 덕목을 떠올리면서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에도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보시는 공덕 짓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야도는 “거사 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몸이 유지 되는 동안에는 보시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 듣는 사람들은 웃음이 빵 터졌다.
마지막으로 사야도는 보시는 손상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과 타인의 보시덕목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다.
보시한다고 하여 자랑하고 다닌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야도에 따르면 자신의 보시덕목을 손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타인의 보시에 대하여 허물을 말하거나 비난하는 것도 보시덕목의 손상이 된다.
사야도의 법문이 끝났다. 일창스님은 보시에 대하여 ‘위사카부인’을 예로 들어서 추가로 설명했다. 보시를 해도 믿음으로 보시를 하면 용모가 아름다워 진다고 했다. 위사카의 보시에 대해서는 1)믿으면서 보시하는 것, 2)공손하게 보시하는 것, 3)적당한 때에 보시하는 것, 4)아끼지 않고 보시하는 것, 5)손상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 모두가 적용된다고 했다.
올해 한국마하시선원의 까티나 행사의 제목은 ‘까티나보시법회’이다. 안양 한국마하시선원과 천안 호두마을 합동까티나법회이다. 가사공양이 대표적 보시물품이다. 그러나 스님들에게 가사뿐만 아니라 갖가지 필수품도 보시한다. 그 품목에 대한 것은 한국마하시선원의 카페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마하시선원의 까티나법회는 처음 참석했다. 마치 미얀마에 온 듯 하다. 아마 그것은 한국마하시선원이 마치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의 분원과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해외 지사와도 같은 성격이다.
현재 한국에는 자생적인 테라와다불교가 있고 수입된 테라와다불교가 있다. 전자는 서울 청파동에 있는 ‘담마와나선원’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후자는 안양 관악역 부근에 있는 ‘한국마하시선원’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자생적 테라와다불교에서는 한국화된 테라와다불교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신도들 복장도 자유롭다. 대체로 흰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나 자유로운 복장이 대부분이다. 스님들 가사 색깔도 다양하다. 태국에서 계를 받은 스님들은 대체로 밝은 색 계통이고 미얀마에서 계를 받은 스님들은 대체로 짙은 색깔의 가사이다.
한국마하시선원은 미얀마 마하시 선원의 직영 사찰, 또는 직할 사찰과도 같은 성격이다. 이는 선원장이 미얀마 사람 우 소다나 사야도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까티나법회에 초대 된 스님들은 모두 마하시선원 출신인 것 같다. 또한 신도들은 거의 대부분 흰옷에 밤색 가사를 걸쳐서 미얀마에 온 것 같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올해 까티나법회는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을 예측해서일까 멀리 삼막사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을 예약해 놓았다. 한마음선원에서 십여분 더 들어 가야 한다. 거의 이십분 가까이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사 시간에 테이블을 함께 한 사람들은 다섯 명이다. 그 가운데 한 여성 법우는 낯이 익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12년 일본 성지순례 때 함께 한 ‘사마와띠’ 법우이다. 12년만에 본 것이다.
식사는 고등어 구이로 했다. 제육볶음과 꼬막무침도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통된 화제가 많았다. 그것은 주로 수행에 대한 것이다. 특히 담마코리리아에서 고엥카 방식의 ‘감각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점식식사를 하고 다시 선원으로 돌아 갔다. 선원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차로 이동했다. 마침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어서 카풀했다.
선원에 도착하니 갈 사람은 다 가고 봉사자들만 남았다. 남자 회장에게 일창스님에게 전달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회장은 “이병욱 거사가 스님에게 전달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라며 스님과 통화 했다. 스님은 사야도와 함께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사야도 없이 일창스님만 뵙고자 했다.
사야도와 일창스님은 4층에서 산다. 3층은 법당이다. 2층은 공양식당겸 사무실이다. 사야도와 함께 만날 때는 4층으로 가야한다. 사야도 없이 만나기 때문에 일창스님은 3층 법당으로 내려 왔다.
법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님과 너른 법당에서 마주 앉았다. 먼저 스님에게 삼배를 했다. 감사의 삼배이다. 그리고 세 권의 책을 건넸다. 마하시 사야도의 논서를 읽고 감상을 쓴 ‘독후기(讀後記)’이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은 1년 2개월에 걸려 읽었다. 독후기에는 86개의 글이 있고 642페이지에 달한다. 아리야와사법문은 2개월에 걸려 읽었다. 독후기에는 14개의 글에 205페이지이다. 담마짝까법문은 2개월 걸려 읽었다. 독후기에는 23개의 글에 316페이지에 달한다.
절에 가면 빈손으로 가서는 안된다. 무어라도 하나 가져 가야 한다. 요즘에는 보시계좌가 있어서 행사 때 이체하면 된다. 까티나 보시금은 미리 이체 했다. 보시전용통장에서 십만원 나갔다. 오늘은 책을 가져 갔다.
독후기는 어쩌면 일창스님에게 최고의 선물, 최상의 보시물이 되는지 모른다. 일창스님은 독후기를 보더니 “사두! 사두! 사두!”하며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일창스님과 너른 법당에서 단 둘이 이십 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독후기 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반반씩 했다. 스님이 말하면 받아서 말하고 또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식으로 했다.
일창스님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스승 없이 사무실에 개인수행처를 만들어 놓고 재가우안거를 난 이야기를 했다. 또한 최근에 유튜브를 끊은 이야기도 했다. 좋아하던 이미우이음악 끊은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사두!”하며 매우 잘한 일이라고 했다.
일창스님과 일대일로 대화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행문답도 아니고 논서 읽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수행문답에 대한 이야기 하게 될 날도 있을 것이다.
스님의 근황에 대해서도 약간 들었다. 스님은 지금도 마하시 사야도의 논서를 번역중에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시간 정도 할애 하는데 약 십 페이지 정도 진도가 나간다고 한다.
스님과 이야기가 끝났다. 스님에게 하나 부탁을 했다. 마하시 사야도 논서 가운데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기꺼이 응해 주었다. 스님은 2층에 공양식당 옆에 있는 서고로 안내 했다.
스님은 서고에서 세 종류의 논서를 골라 주었다.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헤마와따숫따 법문, 그리고 말루꺄뿟따숫따 법문이다. 모두 경에 대한 법문집이다. 어떤 법문인지 궁금하다.
일창스님은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 세 권을 법보시 해 주었다. 먼저 받은‘우 소다나 사야도의 아비담마 강설2’를 합하면 네 권의 책을 법보시 받은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2022년 붓다의 날에 네 권의 책을 법보시 받았다. 이를 독후기라는 형식으로 책을 세 권 만들어 스님에게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시 네 권의 책을 법보시해 주었다.
법보시한 네 권의 책을 읽고자 한다. 또 어떤 감동과 감탄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은 믿고 보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머리맡에 놓고 읽고자 한다. 감동적인 문구는 새기고자 한다. 그리고 글로 남기고자 한다. 글이 모이고 모이면 책이 된다. 또 다시 독후기를 만들어 스님을 찾는 날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로서 한국마하시선원은 세 번 가게 되었다. 비산사거리에 있는 이마트 안양점에서 불과 네 정거장 있는 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자주 가지 못한다. 이렇게 큰 행사가 있는 날에 가 보게 된다.
처음 만나면 초면이 된다. 두 번째 만나면 구면이 된다. 세 번째 만나면 얼굴이 익숙해진다. 일창스님은 세 번째이다. 선원의 법우들도 두세 번 만나니 얼굴이 낯 익다.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13분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2시간 16분이 지났다. 전달해야 할 것을 전달하니 마치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하다. 하루 종일 청량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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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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