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성지에서 재가수행자의 흰색가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 18. 11:10


성지에서 재가수행자의 흰색가사

(인도성지순례 6)

 

 

인도성지순례 3일차에 초전지(初轉地)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1 1일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비행기로 이동후 오후에 순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짙은 안개로 인하여 무려 5시간 이상 지연 되는 바람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1 2일 아침에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초전지(初轉地) 가는 길에

 

초전지로 가는 길도 충격의 연속입니다. 이제까지 늘 번영되고 화려한 것만 보아 왔던 눈이 갑자기 폐허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다른 삶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보고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도인의 삶의 모습은 여행 내내 계속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침내 초전지 사르나트에 도착 했습니다.

 







 

초전지 사르나트 앞은 화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유명 사찰관광지 앞에는 사하촌이 형성되어 갖가지 먹거리를 파는 식당과 노점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순례지 앞은 수수합니다. 작은 기념품 가게 몇 개만 있을 뿐이고, 생계를 위한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서성거릴 뿐입니다.

 

초전지는 바라나시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호텔 마딘(Madin)에서 초전지까지 전세버스로 이동했지만 처음 와 보는 낯 설은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호텔에서 초전지까지 지도를 찾아 보았습니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외곽에 있습니다. 호텔 마딘에서 차로 19분 거리입니다. 부처님이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찾아가서 처음으로 자신이 깨달은 것을 것 이야기 해 준 사대성지 중의 하나입니다.

 

흰색가사를 수()하고

 

이른 아침 사르나트에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문 열자마자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낡은 정문을 통과하니 눈 앞에 붉은 벽돌로 된 유적지가 펼쳐집니다. 부처님이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시고 몸소 이곳까지 다섯 수행자를 찾아 온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들어가자 마자 가사를 수()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흰색 가사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재가자가 가사를 입은 모습을 아직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가사는 스님들만 입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주선원에서는 이번 인도 성지순례를 앞두고 가사를 준비했습니다.

 

처음 입어 보는 가사가 익숙치 않습니다. 두 팔 길이의 두 배가 되는 긴 길이의 가사를 몸에 두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왼손으로 한쪽을 잡고 오른쪽 어깨 아래로 해서 몸을 휘감은 다음 작은 집게로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이른바 편단우견(偏袒右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왼손을 사용할 수 없고 자주 풀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서로 가사 입는 방법을 알려 주며 익혀 나갔습니다.

 



 

가사를 입을 때 온몸을 휘감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편리하게 입는 방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온몸을 휘감는 방법으로 수했습니다. 그러나 자주 풀어지고 고정하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해결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가사를 두겹으로 접은 다음 오른 쪽 어깨 아래로 묶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보기도 좋고 손놀림도 편단우견도 됩니다. 나중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세 벌의 가사가 있는데

 

가사는 본래 세 벌로 구성됩니다. 빅쿠들이 입는 가사는 안따라와사까(antaravāsaka)라 하여 아랫가사, 웃따라상가(uttarāsaga)라 하여 윗가사, 상가띠(saghāi)라 하여 중복가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랫가사는 하의라 볼 수 있고, 윗가사는 상의, 중복가사는 외출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사


 

안타르와사까는 신체의 아래를 커버하는 안쪽 가운입니다. 이것은 속옷으로서 아래에 흘러 내리게 입는 하나의 옷입니다. 웃따라상가 불리우는 윗가사는 서서 손을 높이 올려 잡을 정도의 높이와 양손을 벌린 길이의 1.5배의 가로 폭이 있는 직사각형의 몸에 감는 상의입니다. 상가띠(saghāi)라 불리는 중복가사는 윗가사와 같은 길이와 폭으로 옷감이 2매 겹침이 되어 있는 큰 옷(大衣: 대가사)를 말합니다.

 

세 벌의 가사 중에 평소에 입는 것은 하의와 상의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가사는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대가사의 용도는 추울 때 입는 겉옷 내지 잠잘 때 덮고 자는 침구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법회 등 의식을 하거나 공식적 행사장에서 수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진주선원에서 준비한 흰색가사는 한국에서 스님들이 입는 가사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사는 수행자의 상징

 

가사는 수행자의 상징입니다. 맛지마니까야 앗싸뿌라 설법의 작은 경(M40)’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나는 가사를 입은 자에게 단지 가사를 입는다고 해서 수행자라고 하지 않는다.”(M40)라 했습니다. 가사입을 자격이 없는 자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오염원을 버리지 않고, 올바로 사는 길을 실천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양끝이 날카로운 일종의 무기가 가사에 둘러싸여 숨겨져 있는 것처럼”(M40)이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가사를 몸으로 휘감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오염원을 소멸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나 다른 목적을 가졌다면 가사 속에 숨겨둔 칼을 가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가사 입은 자라 하여 다 같은 수행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사 입을 자격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혼탁을 끊어 버리고

계행을 잘 확립한다면,

자제와 진실이 있는 것이니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다.” (dhp10)

 

 

계행(sīla)을 지킬 줄 아는 자가 가사 입을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행은 주석에 따르면 계율의 덕목에 따라 제어하는 것, 여섯 감역의 제어, 삶의 위의가 청정한 것,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의복, 음식, 처소, 의약품을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자들만이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왕족처럼

 

계행을 지키는 청정한 빅쿠가 가사를 입으면 늠름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금빛으로 번쩍이는 황금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체를 감싼 천을 이용하여 마치 논밭처럼 기워서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말합니다. 분소의를 걸치고 두타행을 하는 빅쿠에 대하여 청정도론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마라의 군대를 항복받기 위해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는

전쟁터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왕족처럼 빛난다.

 

세상의 스승께서도 까시의 비단 옷 등을 버리고

분소의를 입으셨거늘 누가 그것을 입지 못할까?

 

그러므로 비구는 스스로 서원한 말을 기억하여

수행자에게 적합한 분소의 입는 것에 즐거워할지어다.”(Vism.2.22)

 

 

가사는 수행자의 상징입니다. 계행을 지키는 자, 두타행자의 분소의는 전쟁터의 갑옷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황금빛 가사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계행이 엉망이라면 수행자를 사칭하는 자일 것입니다. 분소의는 수행자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가사는 스님들만이 입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순례에서는 재가자들도 가사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재가를 상징하는 흰색 가사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의 불자들이 인도성지에서 흰색 가사를 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흰색 옷은 재가자의 상징

 

남방테라와다 불자들은 성지에 가면 흰옷을 입습니다. 성지에서 컬러풀한 옷을 입는 것은 실례라 합니다. 또 나시티라든가 짧은 치마를 입는 것도 역시 실례라 합니다. 성지에서는 가급적 재가자를 상징하는 흰색 옷을 입는 것이 전통인 듯합니다.

 

흰옷은 재가의 상징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흰옷을 입고 싸밧티 시에 사는 수행자 고따마의 재가자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장자 아나타삔디까입니다.”(A10.93)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흰옷은 또한 재가수행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맛지마니까야 밧차곳따의 큰 경에 따르면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밧차여, 나의 제자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살며, 다섯 가지의 낮은 경지의 장애를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 남자신도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M73)

 

 

부처님의 제자는 출가의 빅쿠와 빅쿠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가의 우빠사까(靑信士)와 우빠시까(靑信女)도 부처님 제자입니다. 경에서는 흰옷 입은 자들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흰옷 입은 자들도 다섯 가지 낮은 경지의 장애를 뚫었다고 말합니다. 오하분결이 풀린 상태, 즉 아나함(不還者)의 경지에 이른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출재가의 구별이 없음을 말합니다.

 

흰색가사의 스리랑카 불자들

 

이제 성지순례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불교TV 등에서 한국불자들이 인도성지에 순례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복장이 통일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지에서 컬러풀한 옷을 입고 있어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하여 남방 테라와다 불자들은 비교적 흰옷 차림입니다.

 

감명 깊었던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허정스님이 2000년대 말 인도 뿌네대학 유학시절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스리랑카 불자들 성지순례 사진입니다. 성지에서 초기경전을 독송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사진을 보면 모두 흰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잘 보면 그 중에는 흰색 가사를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흰색 바탕의 옷에 흰색가사를 걸친 스리랑카 불자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순례자들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원에서는 어떤 옷을 입을까요?

 

어느 빅쿠가 스리랑카 웨삭일에 촬영한 사진이 있습니다. 사원 마당에 있는 신도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흰색가사를 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우측어깨를 드러내고 흰색가사를 수한 모습이 우리나라 불자들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불자들은 절에 갑니다. 그런데 불자들의 의상을 보면 곳곳에 걸려 있는 연등만큼이나 컬러풀합니다. 물론 대승불교전통과 테라와다불교 전통이 다른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도와 자세의 문제입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웨삭일에 사원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데 주로 경전을 독송하고 빅쿠로로부터 담마를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법회가 끝나면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난 후에 흥겨운 산사음악회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재가수행자의 흰색가사

 

불자라면 누구나 성지순례 한번쯤 갈 것입니다. 이왕 갈 것이라면 여법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번 인도성지순례에서 진주선원에서는 흰색가사를 준비했습니다. 원담스님의 아이디어라 합니다.

 




비록 재가의 삶을 사는 살지만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한다면 재가수행자라 볼 수 있습니다. 출가수행자가 가사를 수했을 때 수행자답듯이, 재가수행자가 흰색 가사를 수했을 때 재가수행자다웠습니다.

 

진주선원불자들이 아마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인도성지에서 흰색가사를 수한듯 합니다. 재가불자라기 보다는 재가수행자로서 여법한 순례가 되기 위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성지에서 흰옷입기와 흰색 가사를 수하는 것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2018-01-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