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아무나 하나
“아라한 과는 물론이고 도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과거-생에 수행을 했어야 했다. 이것을 지혜와 공덕(vijjācaraṇa)이라 한다.”이 말은 파아옥 사야도의 ‘업과 윤회의 법칙’272쪽에 나오는 말입니다. 전생에 수행한 공덕의 과보로 금생에서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합니다. 누구나 불성이 있어서 깨달을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빗자짜라나(vijjācaraṇa)
지혜와 공덕을 빠알리어로 빗자짜라나(vijjācaraṇa)라 합니다. 한역으로 명행족(明行足)이라 하여 불수념의 세 번째 항목에 해당됩니다. 열 가지 부처님 별호중의 하나입니다. 전재성박사는 ‘명지와 덕행’으로 번역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지혜와 복’이라고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혜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지혜를 위한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이를 공덕 또는 덕행 또는 복이라 부르는 ‘짜라나(caraṇa)’가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금생에 수행 하려면 타고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타고난 지혜는 공덕행에 바탕을 둡니다. 지혜를 계발함과 동시에 복도 지어야 함을 말합니다. 따라서 지혜와 공덕은 항상 함께 하게 됩니다. 그래서 빗자짜라나, 즉 명행족이라 하여 지혜와 복을 구족해야만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어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지혜
지혜와 공덕이 구족되어야만 금생에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생에 지혜와 공덕 수행한 자만이 금생에서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지혜라 하는 것은 세간적 지혜를 말합니다. 출세간적 지혜는 닙바나(열반)를 대상으로 하는데, 만일 출세간적 지혜가 구족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도과를 성취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따라서 세간적 지혜라 하면 오온을 대상으로 합니다.
지혜와 관련하여 디가니까야 ‘암밧타의 경(D3)’에 따르면 여덟 가지 지혜로 설명됩니다. 요약하면 1)정신-물질에 대한 통찰지, 2)마음이 만들어낸 힘에 관한 지혜, 3)다양한 힘들에 관한 지혜, 4)천이통, 5)타심통, 6)숙명통, 7)천안통, 8)누진통입니다. 여기서 여덟 번째 누진통은 초세간적 지혜로서 세간적 지혜로 포함되지 않습니다.
열다섯 가지 공덕행
덕행과 관련해서는 맛지마니까야 ‘학인의 경(M53)’에 설해진 방식을 따릅니다. 모두 18가지 덕행 또는 공덕이 있는데 이는 1)지계, 2)감각기관의 단속, 3)음식의 절제, 4)항상 깨어있음, 5)믿음, 6)새김, 7)양심, 8)부끄러움, 9)진리에 대한 탐구, 10)정진, 11)지혜, 12)초선정, 13)이선정, 14)삼선정, 15)사선정이 해당됩니다. 가장 먼저 계행이 요구됨을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덕행 또는 공덕쌓기에는 네 가지 선정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를 이루려면
흔히 하는 말 중에 부처를 이루려면 ‘복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열 가지 별호 중에 명행족(vijjācaraṇa)을 말합니다. 지혜만 갖추고 태어나고 덕행이 받침 되지 않는다면 도와 과를 이루는데 힘이 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 생에 15가지 덕행 또는 공덕을 쌓았다면 그 힘으로 금생에서 닙바나(열반)이라는 초세간적 지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숙장(異熟障)이 있는 자는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의 성취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을 해도 누구나 선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승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초기경전이나 논서, 주석서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전생의 지혜와 공덕을 쌓은 과보로 금생에서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다른 명상주제에서도 이들 가운데 어떠한 자도 수행을 성취하지 못한다.”(Vism.5.42)라 했습니다. 사마타 40가지 명상주제 중의 하나를 대상으로 수행했을 때 전생이 지혜와 공덕을 쌓아 놓지 않았다면 금생에 수행하기 힘들다는 비관적인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 주석을 보면 “이숙장(異熟障)이 있는 자는 어떻게 하더라도 명상주제를 수습할 수 없다.”라 하여 더욱 더 비관적인 문구가 있습니다.
삼인(三因)적 존재
아비담마에 따르면 결생심은 19가지 마음으로 설명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에 태어나게 될 조건을 말합니다.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는 존재는 전생에 수행을 한 자들입니다. 이를 삼인(三因)적 존재라 합니다.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를 말하는데 전생에 무탐, 무진, 무치라는 착하고 건전한 수행을 한 과보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삼인적 존재는 상층의 두 세계, 즉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는 결생심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인(二因)적 존재
두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가 있습니다. 이를 이인(二因)적 존재라 하는데 무탐과 무진을 말합니다. 무치가 빠져 있으므로 지혜가 결여된 채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이인적 존재는 인간으로 태어나도 지혜가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주석에 따르면 ‘고귀한 길과 선정을 얻지 못한 자이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혜의 결여로 수행하기가 쉽지 않고 선정에 들기도 어려움을 말합니다.
무인(無因)적 존재
최악의 경우는 무인(無因)적으로 결생하는 자입니다. 무인이기 때문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요인으로 태어나는 자를 말합니다. 네 가지 악취, 즉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떨어진 자와 인간으로 태어나도 열등한 능력을 지닌 자를 말합니다. 전생에 탐, 진, 치로 삶을 산 자가 갈 수 있는 곳은 사악도이고,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 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무인적-이숙적 존재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도 수행을 성취하지 못한다.”(Vism.5.42)라 한 것입니다.
수행은 아무나 하나
금생에서 수행을 하는 자들은 전생에 이미 지혜와 공덕을 닦은 자들입니다. 무탐, 무진, 무치라는 수행을 한 자들이 이 세 가지를 원인으로 하여 금생에 태어나 수행할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무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 갈 수 있으나 물을 먹일 수는 없는 것처럼, 수행처로 갈 수 있으나 선정에 들 수 있는 것은 전생에 지은 공덕에 좌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색계와 무색계에서 태어나려면 공덕행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합니다.
삼복업사(三福業事)
가장 기본적인 공덕행의 토대(Vism.6.22)가 있습니다. 이를 세 가지 복업사(三福業事)라 하는데 청정도론 주석에 따르면, 1)보시로 이루어지는 공덕행의 토대, 2)계행으로 이루어지는 공덕행의 토대, 3)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공덕행의 토대라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행도 공덕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수행은 사마타수행을 말합니다.
흔히 공덕 짓는 다고 하면 보시와 지계를 말합니다. 보시하고 지계하면 천상에 태어남을 말합니다. 그런 천상은 욕계천상일 것입니다. 색계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려면 보시와 지계 뿐만 아니라 수행도 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혜를 갖춘 존재로 태어납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공덕행은 보시와 지계와 수행이라는 삼복업사라는 사실입니다.
십복업사(十福業事)
십복업사(十福業事)도 있습니다. 이는 법구경 16번 게송 “선행을 행하면(Katapuñño)”라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선행을 뜻하는 ‘뿐냐(puñña)’는 다름 아닌 공덕행을 말합니다.
법구경 주석에 따르면 열 가지로 설명됩니다. 이는 후대 십복업사라 하여 1)보시, 2)지계, 3)수행, 4)공경, 5)봉사, 6)공덕의 회향, 7)전수, 8)공덕의 성취에 대한 즐거운 회상, 9)가르침의 청취, 10)견해의 확립을 말합니다. 보시, 지계, 수행이라는 삼복업사에 일곱 가지가 추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오복업사(十五福業事)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지혜만 닦는다고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교리만 공부한다거나 명상에만 전념한다고 해서 도와 과를 이룰 수 없음을 말합니다. 복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혜와 공덕을 함께 닦아야 합니다.
수행자라도 보시하고 지계해야 합니다. 맛지마니까야 ‘학인의 경(M53)’에서는 1)지계, 2)감각기관의 단속, 3)음식의 절제, 4)항상 깨어있음, 5)믿음, 6)새김, 7)양심, 8)부끄러움, 9)진리에 대한 탐구, 10)정진, 11)지혜, 12)초선정, 13)이선정, 14)삼선정, 15)사선정이라는 십오복업사(十五福業事)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인간의 눈과 같고 공덕은 인간의 발과 같다
부처님의 별호 중의 하나인 빗자짜라나(vijjācaraṇa)를 지혜와 공덕, 또는 명지와 덕행이라 합니다. 지혜와 공덕은 도와 과를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어야만 하는 업입니다. 하나만 해서는 안됩니다. 지혜와 공덕은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한편으로 기울어져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하여 파아옥 사야도의 ‘업과 윤회의 법칙’에 따르면 “지혜는 인간의 눈과 같고 공덕은 인간의 발과 같다.”(279쪽)라 하여 네 종류의 인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보시, 지계, 마음집중 등과 같은 공덕은 닦지만 지혜는 닦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걸을 수는 있지만 눈이 먼 사람이다.
2) 5가지 무더기에 관한, 18계에 대한, 12토대에 대한, 12연기 등에 관한 지혜를 닦지만 공덕을 짓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볼 수 있지만 움직일 수 없다.
3) 지혜도 닦지 않고 공덕도 짓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도 멀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배우지 못한 범부(puthujjana)라고 ‘가죽끈에 묶임 경(S22.100)’에서 말한다.
4) 지혜와 공덕을 모두를 닦은 자, 이 사람은 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걸을 수도 있는 사람과 같다.
(업과 윤회의 법칙 179-280쪽, 파아옥 사야도)
네 종류의 사람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은 네 번째 지혜와 공덕을 모두를 닦은 자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별호처럼 명행족입니다. 지혜와 공덕행을 모두 구족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만약 공덕만 짓는다면, 예를 들어 보시, 지계, 교리공부, 마음집중(사마타)과 같은 것들 만 닦는다면 마치 ‘몸짱’처럼 건강한 수족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공덕을 짓는 것과 함께 5온, 12처, 18계, 12연기 등 지혜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를 닦지 않으면 눈이 부실한 것처럼 가르침을 접해도 가르침을 알고 볼 수 없습니다.
복과 지혜가 구족 되었을 때
범부들은 지혜도 닦지 않고 공덕도 짓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행도 할 수 없고, 설령 수행하더라도 선정에 들 수도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인(二因)적 원인, 즉 지혜를 결여한 채 태어난 자라 합니다. 금생에서는 수행할 수 없는 자입니다.
논장과 주석에 따르면 수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할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공덕을 동시에 닦아야 합니다.
재가불자라 하더라도 보시하고 지계만 할 것이 아니라 무상, 고, 무아라는 지혜 수행을 겸해야 합니다. 출가 수행자라 하여 명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시하고 지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과 지혜가 구족 되었을 때 깨달은 자, 부처가 됩니다.
2018-05-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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