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프라이드로 살아 왔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9. 5. 27. 09:14


프라이드로 살아 왔는데

 



 

토요일 광주에 다녀 왔다. 김동수열사 39주년 추모행사이다. 다녀와서 다음날 아침 후기를 썼다. 어디에 가든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금남로에 있는 5.18기록관에는 각종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 눈길 끄는 것은 일기이다. 누군가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다. 세상이 바뀌니 역사적 사료가 되었다. 더구나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현실참여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직장과 가족밖에 몰랐다.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그것은 14년전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전환되면서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나이 때문이다. 엔지니어로서 40대 중반이면 퇴물이나 다름없다.

 

직장 다닐 때는 막연한 사명감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상품을 개발하여 수출하면 달러를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개발된 제품이 유럽시장에서 팔렸을 때 백억이상 매출을 올렸다. 그동안 월급 받아 먹기가 미안 했는데 한방에 해결한 것이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에 자부심 가졌다.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에서 개발된 제품이 수출되어 외화를 벌어 들인다고 생각하면 자부심으로 가득할 만 할 것이다. 회사가 내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프라이드가 지배했다. 그래서일까 생산적이지 않은 것은 일로 보지 않았다.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낮추어 본 것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을 만나 이런 얘기 했더니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며 싫은 기색을 내었다. 어쩌면 지나친 자만일지도 모른다.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산지 14년 되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하다. 국가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자인쇄회로기판은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필수부품이다. 회로도를 받아 캐드시스템으로 패턴설계 하는 것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제품개발하여 수출한 것만 못하다. 이에 대한 공백은 글로서 메우고 있다. 글쓰기도 인터넷에 공유하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제품개발로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부터는 글로 바뀌었다. 올린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몇 시간에 걸쳐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 요즘은 단체활동으로 바뀌었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여 현실참여 하는 것이다.

 

대부분 고립되어 산다. 직장과 가족밖에 모르는 삶이다.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기 싫어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해서일까 일부러 시간내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모임에 한번쯤 나올 법 한데 한번도 얼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바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년내내 바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 하고 화장실은 가야 한다. 즐기는데는 열심이지만 모임을 기피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기적 삶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 그렇게 산다. 그런데 보살로서 삶을 사는 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라밀을 실천하는 자들이다.

 

대승불교에서 강조되는 덕목은 육바라밀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십바라밀이다. 그런데 바라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보시를 해도 가장 귀중한 것을 보시한다. 이를 일반적 바라밀이라 한다. 자신의 손이나 발, 장기와 같은 신체 일부를 보시 했을 때 우월적 바라밀이라 한다. 최상의 바라밀은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이를 승의적 바라밀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사아승지겁 하고도 십만겁동안 십바라밀을 행했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바친 경우도 많았다. 승의적 바라밀을 실천한 것이다. 부처님 전생담 자따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바라밀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다.

 

토요일 광주에 갔었다. 가서 김동수열사의 최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살행이었다. 그것도 목숨을 바친 승의적 바라밀이었다. 그래서일까 불교인들은 김동수열사라기 보다는 김동수보살로 부르고 있다.

 

이제까지 프라이드로 살아 왔다. 그러나 십바라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다. 프라이드가 아니라 아상(我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사회에 기여한다고 해도 목숨까지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종종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열사(烈士)라 한다. 그러나 열사보다 더 좋은 말이 보살(菩薩)이다. 김동수열사가 도청에 들어 간 것은 보살로서 삶을 산 것이라 본다.

 

 

2019-05-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