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사람의 목숨은 옹기와 같아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29. 07:11

사람의 목숨은 옹기와 같아서


화분이 산산조각 났다. 어제 저녁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망연자실했다. 아끼던 난화분이 박살 난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종이쇼핑백이 난화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이동 증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마음도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분갈이 한지 얼마 안되었다. 화분 하나가 죽어 갔다. 잎파리가 다 떨어져서 보기 흉했다. 난을 사야 했다. 인터넷 구매를 생각했다.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팔았다. 황금채홍 4-5촉에 2만원 가량 되었다.

인터넷 주문한지 4일만에 난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화분에 옮겨 심었다. 배송 중에 시들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화분을 물에 흠뻑 담궈 놓았다.

 


사무실에는 난이 많다. 7개나 된다. 새로 산 황금난 화분을 집에 놓고자 했다. 거실에 놓으면 근사하고 격조 있게 보일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들것이 필요했다. 마침 눈에 보인 것이 종이쇼핑백이었다.

 


종이 쇼핑백을 선정한 순간 난화분의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차장까지는 괜찮았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툭 터진 것이다. 나의 부주의를 탓했다. 그러나 도기는 언젠가 깨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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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마치 옹기장이가 만든 옹기는 구워지지 않은 것이든 구워진 것이든 어떤 것일지라도 그 모두가 부서져야 하는 것이고 부서짐을 끝으로 하는 것이며 부서짐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S3.22)

상윳따니까야 '할머니의 경'에 실린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할머니를 잃은 빠세나디 왕을 옹기의 비유로 위로했다.

옹기는 부서짐을 끝으로 한다고 했다. 어떤 그릇도 부서질 운명에 있음을 말한다.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에서는이를 테면, 옹기장이가 빚어낸 질그릇이 마침내 모두 깨어지고 말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렇습니다."(Stn.577)라고 했다.

모든 삶은 죽음에 이르네.
삶은 그 끝을 죽음으로 삼으니
행위를 하는 그대로 좋고
나쁜 과보를 받으니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지옥으로
좋은 일을 한 사람은 하늘나라로 가네.

오로지 착한 일을 해서
미래를 위해 공덕을 쌓아라.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되리.”(S3.22)

사람의 목숨은 옹기와 같아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지금 젊다고 해서 기대수명까지 수명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현명한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 버립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Stn.578)라고 했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즐기는 삶을 살아야 할까? 부처님은 공덕을 쌓으라고 했다. 즐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덕쌓기 위해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즐기는 삶을 산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음에도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안수정등(岸樹井騰)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밧줄에 매달린 자가 있다. 밧줄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흰쥐와 검은쥐가 갉아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콤한 꿀맛을 즐긴다. 꿀맛에 취하면 죽음의 공포도 잊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할 일이 많은데"라고 생각이 들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억울할 것 같다.

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사고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의 손에 내 운명이 맡겨질 수 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요즘 비행기 다큐를 보고 있다. 유튜브에서 '다큐 9'을 보고 있다. 최첨단 비행기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 했을 때 탑승자 전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정비사가 정비할 때 부착된 테이프를 떼어내지 못해서 그것으로 인해서 조종불능이 되어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죽을만한 요인은 너무 많다. 죽음이 두려워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있다면 안전할까? 천정이 무너져서 죽고 땅이 꺼져서 죽을 수 있다.

항공기에는 수많은 부품이 있다. 부품이 노후화 되어 닳으면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장기도 오래 되면 고장이 날 것이다. 아주 작은 부품의 불량으로 기계가 작동하지 않듯이 수많은 신체기관 중의 일부에 문제가 생기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럴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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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수행승들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면, 마음의 통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M125)

마음의 통일은 마음의 집중을 의미한다. 정신일도(精神一到)하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집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남을 말한다. 그러나 감각을 즐기는 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맛지마니까야 125번 경에서 자야쎄나 왕자도 그렇게 말했다.

왕자의 지위는 감각을 마음껏 즐기는 위치에 해당된다. 부자의 삶이 감각을 즐기는 삶과 같다. 감각을 즐기는 자에게 수행자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수행의 경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 한다. 자야쎄나 왕자도 그랬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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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자야쎄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속에서 살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즐기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열기에 불타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자가 욕망을 떠나야 알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볼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도달할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실현할 수 있는 그것을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M125)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있다. 두 개의 불가능을 말한다. 감각을 즐기는 자는 수행의 경지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감각을 떠난 자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자가 수행의 경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흔히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해보지 않은 것을 비난한다는 말이 있다. 수행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신통에 대해 의문하는 것도 해당된다. 신통을 믿지 못하겠거든 네 번째 선정에 들어 경험하면 될 것이다.

니까야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니까야를 비난한다. 조계종 아사리 자현스님이 대표적이다. 자현은 불교TV에서 남방불교에 대하여 '쯔끼다시불교'라고 했다. 또한 남방불교에 대하여 '개구라'라고 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서 거침없이 뱉은 것이다. 과연 자현은 니까야를 읽어 보기나 한 것일까? 자현이 니까야를 읽어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론이 있다. 산에 올라가 봐야 알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도 정상론을 말했다. 정상에 서면 모든 것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지만 산록에만 머문 사람은 볼 수 없음을 말한다. 감각을 즐기며 사는 왕자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크게 웃어 버린다. 일부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극히 일부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세상에서 비난 받지 않는 도는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함부로 도를 닦는다든가, 수행한다든가, 경전을 본다든가, 글을 쓴다든가, 경을 외우고 암송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크게 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왕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새내기 수행승에게 수행의 차제를 설명해 주었다. 코끼리 길들이기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수행승을 길들일 수 있을까?

맛지마니까야 125번 경에는 수행승을 길들이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 , 혜 삼학에 대한 것이다. 계행의 바탕에서 감관수호, 음식절제, 깨어있음에 전념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된다. 일상에서는 늘 알아차려 한다. 이런 조건이 만족 되었을 때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아서 최종적으로 번뇌를 부순다.

감각을 즐기는 자들은 수행의 경지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경지를 이야기하면 자야쎄나 왕자처럼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M125)라고 말한다. 수행자가 범부에게 수행의 경지를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해당될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감각을 즐기며 살아 간다. 갑자기 죽음이 찾아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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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의 수행승이 번뇌를 부수지 못하고 죽으면, 그는 길들여지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장로 수행승으로 여겨질 것이다."(M125)

장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에서는 중년 수행승도 해당되고 새내기 수행승도 해당된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끝내 놓았을 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불사에 이른 자에게 죽음은 단지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옹기는 깨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난초화분은 언제 깨어져도 깨어질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부주의로 인해 일찍 깨진 것이다.

 


화분은 산산조각 났다. 공들여 만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 갔다. 마음도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오늘 새 화분을 사야겠다. 생물 난은 살아 있기 때문에 화분만 있으면 된다.


2022-07-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