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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 재가안거 78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0. 17. 16:20

수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 재가안거 78일차

 

 

명상의 최대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적 행위일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걸었을 때 명상은 깨져 버린다. 오늘 그랬다.

 

업체 담당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언어적 개념이 들어가 버려서 좌선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오늘 재가안거 78일째이다. 요즘 일감이 있어서 밤낮으로 작업하고 있다. 어제는 자정이 약간 넘어서 귀가 했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마무리 작업했다.

 

점심 때가 되어서 마무리 작업이 끝났다. 그러나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담당의 검토가 있어야 한다.

 

 

담당의 요청사항을 들어 주어야 한다. 오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좌선을 하고자 했다. 본래 이른 오전에 하는 것인데 납기가 급하면 일을 먼저 처리한다. 오전 좌선을 오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은지 15분 되었을 때 전화가 왔다. 재가에서 안거를 하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 선원에서 안거를 하는 스님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스님들은 선원에서 안거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두 번 있다. 이럴 때 스님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각자 소임 맡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생계를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선원에서 안거를 나는 스님들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밥만 먹고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탁발하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 가는 것도 아니다. 공양주보살이 있어서 밥을 다 해준다. 마치 좌선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출가자가 있다. 그들은 출가목적을 달성했을까? 수타니파타 까씨 바라드와자의 경’(Sn1.4)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바라문 까씨 바라드와자는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제자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은 정형구는 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수행승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이다. 오래 눌러 앉을 거처가 있을 수 없다. 탁발을 해서 먹고 살기 때문에 소유할 수도 없다. 이런 수행승에 대하여 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없이 떠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81)라고 했다. 로히니 장로니가 소녀시절 수행승을 보고서 찬탄한 것이다.

 

출가자는 자유인이다. 소유할 수 없어서 자유인이다. 번뇌가 없어서 자유인이다. 청정도론에서는 노천에서 지내는 수행승에 대하여 집 없는 자에게 어울리고 얻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늘에는 별들의 보석이 펼쳐지고 달빛이 빛나니. 노천에 지내는 수행승은 사슴 같은 마음으로 해태와 혼침을 몰아내니 수행락을 누리며 앉는다.”(Vism.2.63)라고 했다.

 

출가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홉 가지 출세간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사향사과와 열반을 말한다. 수행의 완성은 아라한이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부처님 당시부터 수많은 출가자가 있었다. 과연 그들은 출가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부업에 열중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차를 만드는 등 세속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시를 짖고 글을 쓰는 등 문학을 하는 행위도 부업으로 보아야 한다.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스님들이다. 그럼에도 세상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  것에 전념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출가자들이 수행을 하지 않고 부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그들이 깨달았을 것으로 믿는다. 깨달았기 때문에 재가자들이나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본다. 또 하나는 깨달음을 포기한 사람들로 본다. 출가를 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늘 세속에 있기 때문에 세속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재가자가 수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 생계유지를 위한 삶에 매여 있다 보면 경전 읽을 시간도 없을 것이다. 절이나 선원에 가서 법문 듣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밤낮으로 일하다 보면 피곤하기 때문에 일요일은 잠자는 것으로 보내기 쉽다. 이럴진대 수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으로 본다.

 

재가자가 안거하고 있다. 이를 재가안거라고 칭하고 있다. 이번에 만들어낸 말이다. 재가안거라는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재가자가 안거를 한다면 시민선방과 같은 선원에 들어가서 안거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과 수행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잠시 시간 내어서 앉아 있고자 한다. 아무리 바빠도 30분 시간은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화장실은 가야 한다. 재가자가 아무리 바빠도 30분은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번 안거에서 1시간 앉아 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최근 생업으로 인하여 원활하지 않다. 내일부터는 정상화 될 것 같다. 재가의 삶에서 수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2023-10-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