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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열반 이후 교법 연구

담마다사 이병욱 2005. 11. 19. 09:47

부처님 열반 이후 교법 연구

 

佛法은 믿음의 대상이며 사유의 대상

 

 

불교는 인도의 정신문화가 만들어 낸 종교현상이다. 따라서 불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다양한 정신문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인도 정신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각 종교현상에서 보이는 철학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의 합일성(合一性)이다. 즉 하나의 종교문화는 지적(知的)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철학적인 요소와 믿음과 실천을 전제로 하는 종교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종교문화 속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것은 인도의 종교문화가 철학적 체계를 가지면서도 삶 속에서 믿음과 실천을 함께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지적인 이해를 전제로 하는 철학적 요소와 삶 속에서 믿고 실천하는 종교적 요소를 동시에 생각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는 부처님 생존시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처님이라는 인격적으로 뛰어난 스승의 존재가 지적 존경의 대상이자 귀의처로서 믿음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열반과 함께 그 뛰어난 인격의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해 불교에 있어 이 두 요소의 구분이 생겨났다. 곧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 교법(敎法)은 단순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지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철학적 대상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이해는 자연히 불교의 철학적 전개로 이어진다.

부처님이 생전에 가르친 많은 가르침은 불전결집(佛典結集)을 통해 법과 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이 법과 율은 부처님 사후(死後) 불교의 귀의처(歸依處) 역할을 하였지만, 이 가운데 법은 단순한 귀의처가 아니라 철학적인 사유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곧 부처님의 교법은 불제자들이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 이해에 철학적 사유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또한 광대한 부처님의 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재가의 불제자들에게 이러한 법의 이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부처님의 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출가자들의 일이 되었고, 그들의 부지런한 연구로 부처님의 교법은 그 체계가 드러났다. 이 출가의 제자들에 의한 부처님 교법의 체계적인 이해가 아비달마(阿毘達磨) 즉 논()이라 불리는 것이다.

아비달마란 아비(‘…에 대하여란 뜻)-달마로서, 달마 즉 교법에 대한 연구, 이해라는 말이다. 제자들에 의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에 대한 연구 또는 이해라는 의미이다. 곧 부처님의 교법을 제자들이 연구, 이해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된 문헌을 아비달마 문헌 또는 논서(論書)라고 말하며, 이 문헌들은 후대 한역경전에서는 삼장(三藏) 중 논장(論藏)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아비달마 문헌을 만들어 낸 불교를 아비달마 불교 또는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한다. 부파불교란 아비달마 문헌 제작과정에서 부처님의 교법에 관해 이해의 차이가 생겨 그것이 후에 불교의 분파(分派)로 이어져 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와 같이 분파가 생겨난 바탕에는 불제자들 각자가 부처님의 교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비달마 문헌 가운데 후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이 세친(世親)이 저술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다. 이 〈구사론〉은 부파불교 가운데 그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전해지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대표하는 문헌으로, 부처님의 교법을 다방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처님 열반 후 불교교단은 부처님의 교법을 귀의처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교법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철학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에 의해 다수의 아비달마문헌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가르침과 달리 부처님의 삶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다양한 가르침은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에게 있어 실천과 믿음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