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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부처님 웃음 담아내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05. 12. 27. 09:31

넉넉한 부처님 웃음 담아내고자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빈다고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늘 내게 겨울은 변두리 빈터에 자리 잡은 어느 허름한 선술집의 저녁 풍경을 추억케 한다.

그 풍경 안에는 하루의 노동을 성실히 끝낸 평범한 사람들의 둥근 어깨가 사이좋게 마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래주는 수더분한 주인아주머니의 옅은 미소가 그들을 감싸주고 있다. 서로를 위로해주는 정()이 담긴 말이 마음으로 전해지며,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훈훈한 미담을 담은 뉴스가 한가롭게 실내를 떠돌고 있다.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처럼 사람들은 서둘러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추운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말이 없이 웃으시는 부처님처럼 주인아주머니도 문을 조심스레 닫는다.

잠시 들렀다 간 무표정한 애인처럼 첫눈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인 지난 며칠 전 겨울의 개장(開場)을 알리려는 듯 눈이 내렸다. 백설기떡을 인심 좋은 손으로 떼어 낸 듯한 눈송이들이 세상에 가득했다.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는 늦은 저녁의 눈발을 떠올리며 허름한 선술집의 정다운 저녁 풍경을 다시금 꺼내 본다. 변두리 빈터에 자리 잡은 어느 허름한 선술집의 저녁 풍경은 우리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 같은 이미지로 내게는 추억된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세계에서는 이런 공간을 찾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러한 공간과 시간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현대인의 슬픔이라고 하겠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빈부 격차, 이념의 극심한 대립, 사회적 혼란, 약자에 대한 냉대와 차별 등등 훈훈한 미담보다는 무겁고 차가운 소문만이 무성한 시대이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본다. ‘해가 뜰 때, 어둠이 내릴 때, 눈을 뜰 때, 이렇게 세 번 두려워진다고 한 이처럼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때때로 사람은 나와 세계 사이의 소원함에 눈을 뜰 때 무언가를 꿈꾸게 된다. 그 무엇인가를 나는 으로 결론지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거나,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책을 읽으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그런 거창한 명분에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회복과 더 중요한 것을 깨우치게 해 줄 수 있는 선술집의 정다운 저녁 풍경과 부처님 웃음과도 같은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성품을 담은 책으로 말이다.

국문학 관련 서적을 출판하면서 우리 민족의 불교적 전통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 논리적 이성과 합리주의로 포장된 자기 중심주의적인 서구의 가치 체계를 강요 받아온 우리가 지금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물질의 풍요로움 뒤에 남은 정신적 공황과 방황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되고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차가운 경멸은 무엇을 뜻하는가.

서구의 이러한 가치 체계에 맞설 수 있는 정신적 힘, 즉 인간의 정신적 중심을 되찾을 수 있는 불교 사상에서 이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예술, 특히 문학 분야에서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가들의 세계는 내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러한 불교문화, 불교적 인식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품과 국문학의 학술 연구 성과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알리고자 준비하고 있다.

도란 문자나 말과 같은 표면적인 것에 매이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곧 선승들의 불립문자의 세계를 일컬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책들의 홍수시대에 한 권 보태는 것이 영 의미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초심불망(初心不忘)의 마음으로 또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摩斧爲針)의 정신으로 꼭 필요한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정진해 나갈 것이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빈다고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온 세상 공평하게 붐비는 그런 늦은 저녁의 눈발을 기다려 보는 요즘이다.

이대현/도서출판 역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