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떠날 때는 말 없이

담마다사 이병욱 2017. 6. 27. 11:24

 

떠날 때는 말 없이

 

 

부처님 가르침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떠나서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것을 거론 하면 희론이 되어 버립니다. 요즘은 과학을 거론 합니다. 과학을 불교와 접목하여 새로운 불교로 만들고자 하는 듯 합니다. 마치 불교는 끊임 없이 진화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간사에 한정됩니다. 오온을 떠나서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온은 십이처와 십팔계로 확장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상이 됩니다.

 

세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동해 갈 수 있는 공간적 세계(cakkavāaloka)’가 있고, 업력으로 이루어진 형성의 세계(sakhāraloka)’가 있습니다. 공간적 세계는 이 몸과 마음을 가지고 백년을 쉼 없이 질주한다고 해도 세상의 끝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형성의 세계는 이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카라의 세계는 다름 아닌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상입니다.

 

부처님은 인간에 대하여 설했습니다. 오온을 떠나 자연과 우주와 과학을 거론 한다면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동해 갈 수 있는 공간적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업력으로 이루어진 형성된 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간에게 한정됩니다. 부처님은 인간을 잘 다루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십호 중에 조어장부(調御丈夫)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조어장부는 사람을 잘 길들이는 님(purisadammasārathī)’이라는 뜻입니다.

 

최악의 수행조건

 

사람이 사는 곳에 갈등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여 살면 불화가 생겨 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라도 모여 살면 번뇌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처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수행하기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수행하기 열악한 곳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환경이 열악해도 스승이 있다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섬겨야 할 것과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의 경(A9.6)’이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환경과 사람에 대한 최악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벗들이여, ‘사람은 섬길만한가 섬길만하지 않는가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인지된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는 것입니까? 누군가가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내가 이 사람을 섬기면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늘어나고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줄어든다. 그리고 내가 출가생활에 필요한 필수품 곧, 옷과 음식과 처소와 의약품 등의 필수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에게 그것들을 얻기가 힘들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라고 안다면, 벗들이여, 그는 그러한 사람을 밤이건 낮이건 상관하지 말고 말없이 떠나야 하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된다.”(A9.6, 전재성님역)

 

 

 

 

사리뿟따 존자는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라고 합니다. 수행하기 좋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승도 없을 때 입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자유롭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매여 있는 재가자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지만 대자유를 찾아 출가한 이들은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라고 합니다. 출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 되었을 때 즉시 떠나라고 했습니다. 경에서는 밤이건 낮이건 상관하지 말고 말없이 떠나야 하며라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출가자에게 가혹한 한국불교

 

한국불교의 승가는 출가자에게 매우 가혹한 조건 같습니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를 방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출가한 자에게는 최소한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해결 해 주어야 하나 한국불교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말합니다. 다음과 같은 허정스님의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방승가의 정신에 따라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느나라 사람이건 사찰에 머물 수 있어야 하고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이곳 미얀마에서 저와 다른 외국인스님들이 아무런 댓가 없이 머물며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승가의 성격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계종은 외국인 스님들을 따듯하게 맞이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는 커녕 우리나라스님들 조차 문전박대하고 있습니다. 객비를 얻으러 다니는 전문적인 객승들 때문에 객실을 없애버린 탓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그겠다는 말처럼 우리가 객실을 없앤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수행자가 절을 찾아도 머물 수 없으니 수행자끼리 만남은 끊어지고 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객승이 오면 뛰어나가 바랑을 받아주었다는 선배스님들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율장의 객스님을 대하는 조항도 쓸모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객실폐쇄는 승가의 의미와 성격에 무지한 선배스님들이 저지른 커다란 실수입니다. 스님들이 모텔이나 호텔에서 숙박을 원하더라도 그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제는 돈 몇푼을 쥐어주고 스님들을 모텔과 호텔로 내몰고 있습니다. 모텔에 머물다보면 자연스레 음주 도박등 다른 계율을 범하기 쉽게 됩니다. 우리종단에서 다시 사찰마다 객실을 갖추어 놓는 것을 의무화하고 매년 '올해의 최고 객실'을 찾아내어 상을 주었으면 합니다.

 

승가의 유산과 수입을 일부스님들이 독점하면서부터 스님들은 너도나도 토굴이이라는 개인처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토굴이 많이 생겨날수록 절에는 스님들이 텅텅비고 산중토굴, 아파트토굴에는 스님들이 넘쳐납니다. 토굴을 짓는 위치와 크기등을 제한하는 종법도 없고 개인의 취향 혹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지어지는 토굴은 현재 재가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의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미계를 받을 때부터 가사를 개인이 구입해야하고 다음 법계로 올라갈 때마다 가사를 개인이 사야합니다. 군대에 입대할 때 자신의 총은 PX에서 본인이 구입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절에서는 실제로 자신의 가사와 승복을 본인이 사야합니다. 가사뿐만 아니라 춘하추동입어야 할 승복도 자신이 구입해야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승복은 다른 세속의 옷보다 비쌉니다. 종단에서는 대부분 수계를 받는 은사스님이 가사와 승복을 사주고 있다고 변명하겠지만 본인이 샀다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은사가 상좌들의 가사와 승복을 사주게 한다는 것은 은사는 평소에 돈을 모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돈이 없으면 상좌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래저래 수행자들에게 소유를 부추기는 종단의 잘못된 태도인 것입니다.”

 

(허정스님, [미얀마에서 보낸 편지] 새해 새날, 사제스님께 , 불교포커스 2017-01-01)

 

 

허정스님과는 개인적으로 십년 가까이 인연 있습니다. 2007년 당시 블로그로 인연맺었습니다. 그때 당시 허정스님은 인도 뿌네 대학 유학중이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서 댓글을 단 것이 인연입니다.

 

허정스님은 한국불교 현실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청빈하게 사는 스님은 설자리가 없음을 말합니다. 주지로 재직했을 때 각종 불사를 일으켜서 토굴하나 장만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떠돌이 신세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종단에 쓴소리 했다고 하여 주지연임을 거부당하고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스님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먹을 것은 물론 입을 것, 거처 등 모든 것을 남이 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허정스님 글에 따르면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를 종단에서 챙겨 주지 못합니다. 이에 대하여 군대에 입대할 때 자신의 총은 PX에서 본인이 구입해야 한다군대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물론 입대하는 장병이 총을 구입하는 일은 없습니다. 불교에 입문한 자가 승복을 자신의 돈으로 구입하는 것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수행자의 천국 미얀마

 

허정스님의 글에 따르면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은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처, 먹을 것, 입을 것 등 이른바 사대필수품이 조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와 달리 미얀마에서는 모든 것이 풍요롭다고 합니다. 출가수행자라면  누구나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이 무료라 합니다. 심지어 재가불자가 미얀마 수행센터에 가도 거처와 음식 등이 무료라 합니다. 더구나 미얀마에는 존경할 만한 스승도 있어서 최적의 수행환경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조건입니다. 그래서일까 매년 수천명의 출가자와 재가자가 미얀마로 수행하러 떠난다고 합니다.

 

한국불교는 출가수행자가 수행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입니다. 모두 부처님 공덕으로 먹고 사는 승단에서 출가자는 부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느 절에서든지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특정한 인맥의 스님들이 종단을 장악하고 있어서 함부로 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절이 있어도 절에서 잘 수 없는 것이 한국불교 스님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관이나 모텔, 찜질방 등에서 잠을 잘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한국불교는 미얀마와 너무 대조적입니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미얀마에서 전하는 허정스님의 글에 따르면 미얀마는 수행자의 천국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대필수품 조달이 원활하고 더구나 덕망 있는 스승도 많아서 오래 머물고 싶어 지는 곳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런 조건은 초기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누군가가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내가 이 사람을 섬기면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줄어들고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내가 출가생활에 필요한 필수품 곧, 옷과 음식과 처소와 의약품 등의 필수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에게 그것들을 얻기가 쉽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라고 안다면, 벗들이여, 그는 그러한 사람에게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하며, 그가 배척하더라도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A9.6, 전재성님역)

 

 

수행하기 최적의 조건입니다. 사대필수품 조달이 쉽고 더구나 섬길만한 스승이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설령 사대필수품 조달이 어렵고 섬길만한 스승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머물러야 하며,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A9.6)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대필수품 조달도 되고 존경하는 스승도 있을 때는 그러한 사람에게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하며, 그가 배척하더라도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A9.6)라 했습니다. 조건이 좋으면 끝까지 버텨야  함을 말합니다.

 

케이스별로 요약하면

 

앙굿따라니까야 섬겨야 할 것과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의 경(A9.6)’를 보면 수행처와 스승과 관련하여 크게 네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를 경우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필수품 조달이 용이하지 않고, 섬길만한 스승이 없을 때 :

그는 그러한 사람을 밤이건 낮이건 상관하지 말고 말없이 떠나야 하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2) 필수품 조달이 용이하고, 섬길만한 스승이 없을 때:

그는 그러한 사람을 말없이 떠나야 하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3) 필수품 조달이 용이하지 않고, 섬길만한 스승이 있을 때:

그러한 사람에게 머물러야 하며,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4) 필수품 조달이 용이하고, 섬길만한 스승이 있을 때:

그러한 사람에게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하며, 그가 배척하더라도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네 가지 케이스에서 최악은 첫 번째 항입니다. 거처, 의복, 먹을 것 등을 모두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고 더구나 배울만한 스승도 없을 때 밤이건 낮이건 상관하지 말고 말없이 떠나야 하며라 했습니다. 즉시 떠나라는 말입니다. 간다는 말 없이 떠나도 된다는 말입니다. 유행가 제목처럼 떠날 때는 말 없이입니다.

 

네 가지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네 번째 항입니다. 거처, 의복, 먹을 것 등이 보장 되어서 수행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의 경(M2)’에서 수용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에 해당 될 것입니다. 여기에 금상첨화인 것은 섬길만한 스승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함을 말합니다. 더구나 배척하더라고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네 가지 경우를 보면 첫번째 항은 한국불교에 해당되고, 네 번째 항은 미얀마불교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스님들이

 

한국불교는 모든 것이 열악합니다. 정법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불교에서는 특정한 스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소유와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스님들에게는 설자리가 없습니다. 초기경전 가르침대로라면 지금 당장 말없이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가고 싶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한국불교 전체가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특정스님들에 의해서 차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머나먼 미얀마로 모두 다 떠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떠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입니다. 이런 암울한 불교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스님들이 있습니다. 일부스님과 재가불자들은 일인시위를 하고 삼보일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합니다. 특히 스님들이 나서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이익이 침해 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스님들이 조계사 일주문과 청와대에서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하고 있습니다.

 

떠날 때는 말 없이

 

어느 모임이든이 이득이 없으면 떠납니다. 더 이상 건질 것이 없을 때 떠납니다. 카톡방이나 밴드에 초대 되었지만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말 없이 떠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블로그에 게시된 글도 가치가 없으면 쳐다 보지 않을 것입니다. 무언가 건질 것이 있다면 기웃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만한 것이 없습니다.

 

조직이나 단체가 아무리 열악해도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섬길만한 스승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 갑니다. 경전에서는 섬길만한 스승이 있을 때 그러한 사람에게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하며, 그가 배척하더라도 그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라 했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최악의 조건은 환경도 좋지 않고 스승이 없을 때 입니다. 이런 모임이나 단체에가입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배울 것이 없는 모임이나 조직, 단체는 당장 그만 두어야 합니다. 블로그나 카페,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인터넷도 해당될 것입니다. 환경도 좋지 않고 섬길만한 스승이 없을 때 그러한 사람을 밤이건 낮이건 상관하지 말고 말없이 떠나야 하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라 했습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즉시 떠나야 함을 말합니다. 그것도 말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2017-06-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