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참여자를 식구처럼, 문화살롱 기룬에서 열린 단지불회 8월 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7. 8. 14. 11:24

 

참여자를 식구처럼, 문화살롱 기룬에서 열린 단지불회 8월 법회

 

 

지행합일(知行合一)열린법회

 

일요일은 교회 가는 날? 도시에서 일요일 오전에는 크게 두 가지 차림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가는 사람들의 정장차림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등산복 차림 입니다. 물론 절에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신심있는 불자들은 멀리 산중에 있는 절로 찾아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나이 든 노보살님들이 가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때 동네마다 교회나 성당 있듯이 절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설법이 있는, 법회가 있는, 법문이 있는 여법한 절을 말합니다.

 

일요일 오전 장충동 우리함께 빌딩으로 향했습니다명진스님 법회가 있는 날 입니다. 그곳은 생생한 삶의 현장 입니다. 월암스님이 3차 촛불법회에서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이 부딪치는 그곳이 깨달음의 현장입니다.”라 했듯이, 아는 것과 실천 하는 것이 합일 되는 현장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열린법회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문화살롱 기룬

 

열린법회 현장은 2층에 있는 문화살롱기룬입니다. 6층에 대법당이 있지만 굳이 문화살롱 형식의 기룬을 택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다큐영화상영때문이고, 두 번째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고, 세 번째는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라 생각됩니다.

 

문화살롱 기룬은 6 16일 오픈 되었습니다. 이전 만해NGO교육센터가 문화살롱으로 바뀐 것입니다. 조명과 음향, 영상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소규모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좌석은 80개이지만 보조의자를 배치하면 10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기룬이라는 말은 충청도와 전라북도 지역의 사투리로 ‘그리움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만해스님의 님의 침묵시집 서문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님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에서 따온 말이 기룬이라 합니다. 현재 운영주체는 참여불교재가연대 산하 불교아카데미입니다.

 

다큐영화친구들: 숨어 있는 슬픔

 

기룬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보조의자가 배치 되어 빈틈을 매웠습니다. 늦게 들어 온 사람들은 서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중에 있습니다. 일정을 보니 10시부터 11 30분까지 다큐영화 친구들: 숨어 있는 슬픔상영시간입니다. 법문은 11 30분부터 12시까지 입니다.

 

 

 

 

 

다큐영화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박사 부부가 만든 것입니다. 제목 숨어 있는 슬픔이라는 말이 의미 하듯이 청소년들이 겪고 슬픔과 상처에 대한 치유 영화입니다. 세월호이야기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충격, 아픔, 상처에 대하여 토론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큐영화를 보니 한마디로 고통에 대한 것입니다. 세월호 생존학생이 겪고 있는 말 못할 고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 남은 자들은 미안함으로 때로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분노로 살아 갑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살아 남은 자는 살아 남은 죄 아닌 죄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세월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통과 억울함, 분노를 볼 수 있습니다. 정혜신박사에 따르면 이들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감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잘 들어 주는 것만 해도 치유라 합니다. 마치 어미짐승이 새끼를 핱아 주듯이, 상처 받은 자들의 상처를 잘 핱아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 내일이었구나!”

 

영화가 끝나고 토론 시간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기획한 이명수 칼럼니스트와 정혜신박사, 그리고 명진스님이 단상에 앉아 참석자들과 토론 하는 것입니다. 정혜신박사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단상에 오른 사람들끼리 토론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영화 본 소감을 물어 본 것입니다.

 

 

 

 

 

 

다큐영화는 6개월 걸려 만든 것이라 합니다.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데 이날 단지불회 명진스님 열린법회에서 처음 공개된 것입니다. 영화는 한마디로 고통에 대한 치유의 영화입니다. 치유는 다름 아닌 공감입니다. 상처에 공감하는 순간 치유됨을 말합니다. 그것은 , 내일이었구나!”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단지불회 8월 법회 주제는 고통과 함께 함이 종교이다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법회입니다. 그래서일까 세월호유가족과 용산참사유가족도 참석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는 억울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나에게 닥쳤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세월호참사, 용산참사, 쌍용자동차비극 등이 , 내일이었구나!”라고 공감한다면 그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의 양은?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어떤 것일까요? 상윳따니까야에 눈물의 경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그대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비탄해하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과 사대양에 있는 물의 양과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S15.3)라 했습니다. 여기서 사대양은 지구의 오대양이 아니라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동서남북의 사대양을 말합니다.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의 양이 사대양의 물 보다 더 많음을 말합니다.

 

윤회하면서 흘린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윤회하면서 많은 뼈를 남겼습니다. 그 뼈의 양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일 겁의 세월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그가 남긴 유골을 한 데 모아놓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면, 그 유골의 더미는 베뿔라 산만큼이나 클 것이다.”(S15.10)라 했습니다.

 

한량 없는 세월동안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과 남긴 뼈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더 이상 윤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와 같이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대들은 고통을 경험하고 고뇌를 경험하고 재난을 경험하고 무덤을 증가시켰다.”(S15.10)라고 말씀 하시면서, “이제 그대들은 모든 형성된 것에서 싫어 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사라지기에 충분하고, 해탈하기에 충분하다.” (S15.10)라 했습니다.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아 괴로움을 소멸하고 동시에 윤회를 종식시키는 삶을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부처님은 고()와 고의 소멸에 대하여 설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열반이기는 하지만 열반은 어떤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를 실체화 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결국 불교는 괴로움에 대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괴로움의 해법에 대한 종교입니다.

 

가장 먼저 괴로움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이는 초기경전에 명쾌하게 정의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초전법륜경에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괴로움에 대하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줄여서 말하지면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이 모두 괴로움이다.”(S56.11) 라 했습니다.

 

모든 젊음은 늙음으로 끝나고, 모든 건강은 질병으로 끝나고, 모든 삶은 죽음으로 끝나고, 모든 만남은 헤어짐으로 끝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괴로움이 발생했을 때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괴로움에 대하여 생, , , 사 등 여덟 가지로 말씀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piyehi vippayogo dukkho)’에 주목합니다. 이를 한자어로 애별리고(愛別離苦)라 합니다. 세월호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pañcupādānakkhandhā: 五取溫)

 

다큐영화를 보면 슬픔과 억울함, 분노 등 상처로 가득찬 자들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신과전문의 정혜신박사는 경청과 공감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적 해법은 이와 다릅니다. 그것은 여덟 가지 괴로움 중에서 마지막 번째인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pañcupādānakkhandhā: 五取溫)입니다.

 

오취온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말합니다. 슬퍼도 내가 슬픈 것이고, 억울해도 내가 억울한 것이고, 괴로워도 내가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따르면 슬픔, 억울함, 고통 그 자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 발생과 조건 소멸로 설명합니다.

 

몸과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온에 집착하면 괴로움도 자신의 것이 되고 슬픔도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 했습니다. 당연히 슬픔도 억울함도 분노도 괴로움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슬퍼하는 자는 자신이 슬퍼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슬픔 그 자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조건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Sn3.8)’에서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만 더욱 더 괴로움이 생겨나고 몸만 여읠 뿐입니다.”(stn.584)라 했습니다.

 

자식 잃은 난다마따는

 

울고 슬퍼하고 분노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현명한 자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은 슬픔이나 분노, 원한에 정복당하지 않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난다마따의 경(A7.53)’을 보면 자식 잃은 난다마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바로 저에게는 난다라고 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왕들이 그를 어떤 원인인지 몰라도 끌고 가서 폭력으로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존자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들이 붙잡힐 때나 붙잡혀 있을 때나 포박되었을 때나 상처받을 때나 살해될 때나 살해되었을 때 저는 저의 마음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A7.53)

 

 

경에 따르면 난다마따는 숫따니빠따 피안의 품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벳사바나 대왕이 암송하는 것을 듣고 다가와 이야기한 것입니다.

 

난다마따는 아들이 붙잡혀 살해 되어 죽었을 때 저는 저의 마음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리뿟따는 그대는 일어난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A7.53) 라 했습니다. 이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난다마따는 숫따니빠따 제 5품인 피안가는 길을 암송할 정도로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난다마따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청정할 수 있었던 것은 수행의 결과입니다. 경에 따르면 난다마따는 사선정을 성취한 자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 즉 오하분결이 부수어진 자입니다. 난다마따는 불환자이었던 것입니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가르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잃었을 때 땅을 치며 통곡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는 울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대는 그 양끝을 통찰해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웁니다.”(stn582)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남도 이와 같으니, 저 자연의 이치를 보십시오.”(stn587)라 했습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남편도 내 뜻대로 따라 주어야 하고, 자식도 내 뜻대로 따라 주어야 하고, 심지어 대통령도 내 뜻대로 따라 주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면 돈도 내 뜻대로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숫따니빠따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stn587)라 했습니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온이 내 것이 아니듯이 남편도 내 것이 아니고, 자식도 내 것이 아니고, 심지어 대통령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이 내 것 인양 내 뜻대로 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이 세상은 슬픔과 억울함, 분노, 괴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세월호참사, 용산참사, 쌍용자동차의 비극 등이 대표적입니다. 누구나 이런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런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공감해 주는 것만 해도 커다란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괴로움의 뿌리는 제거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출세간적 가르침만이 괴로움의 뿌리가 제거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의 흐름과는 반대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세간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은 정반대로 슬퍼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이를 앙굿따라니까야 난다마따의 경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때요? 색다르죠?”

 

열린법회가 끝났습니다. 한시간 반 동안 영화 상영과 삼십분 동안 토론으로 이루어진 열린 법회이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명진스님은 객석을 돌며 일일이 인사를 했습니다. 차례가 되자 스님은 어때요? 색다르죠?”라 했습니다. 통상적인 법회와는 다른 파격적인 형식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통입니다. 법문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대답하는 등 상호교감하는 방식입니다.

 

 

 

 

 

명진스님은 모든 면에서 자상합니다. 이름 있는 자, 고위층에 있는 자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 하는 자라면 누구나 두 손을 꼬옥 잡아 줍니다. 그리고 말을 건넵니다. 차례가 되었을 때 글 잘 보고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배려를 하면 감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부처님이 쭐라 빤따까에게 “세존께서 그곳에 오시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Thag.559)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여자를 식구처럼

 

단지불회 열린법회는 이번 달로 3회째입니다. 수 년 동안 법회가 없었는데 최근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로 법당이 없습니다. 이곳 저곳 앉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대상이 됩니다. 이번 8월달 법회는 참여불교재가연대의 문화상롱 기룬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석자들과 밥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라 합니다. 열린법회에 참석한 백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단지불회 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식사입니다. 살롱 한켠에 주방이 있어서 부페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성이 가득한 밥과 반찬입니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이 만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깨달음의 장소입니다. 이웃이 겪고 있는 슬픔, 억울함, 분노, 고통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이에 대하여 세간적 해법과 출세간적 해법이 있습니다. 세간적 해법은 그들의 말을 잘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출세간적 해법은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단지불회 8월 법회는 유별나고 색다른 법회입니다. 특정한 장소가 없이 어느 공간이든지 법회장소가 됩니다. 장소가 없으면 공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소통을 중요시 하는 열린 법회입니다. 슬퍼할 때는 함께 슬퍼하고 공감할 때는 함께 공감하는 법회입니다. 무엇보다 참여자를 식구처럼 생각하는 유쾌한 법회입니다.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마치 식구가 밥 먹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2017-08-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