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부서져 가는 몸을 보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8. 3. 30. 09:42


부서져 가는 몸을 보면서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4년 만에 치과를 찾았습니다. 오른쪽 어금니 부위가 불편해서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었습니다. 내버려 두면 더 악화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빨이 하나, 둘 망가져 갈 떄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즉시 하는 것입니다. 생각날 때 해 치웁니다. 미룬다는 것은 게으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것 하나만큼은 이제까지 게을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치과에 가면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엑스레이로 본 치아 상태를 보면 씌운 이빨이 많습니다. 언젠가부터 하나, 둘 씌우다 보니 아래 어금니 거의 대부분 씌었습니다. 아래 이빨 반은 내 이빨이 아닙니다.

 

아래 이빨 중에 유일하게 씌우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오른 쪽 가장 깊숙이 있는 어금니는 때웠습니다. 그러나 균형이 맞지 않았던 같습니다. 갈아 내는 등 작업을 한 결과 씹기가 한결 나아 졌습니다. 더구나 스케일링까지 하고 나니 매우 개운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빨이 하나, 둘 망가지다 보면 나중에 다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빨이 부실하여 음식을 씹을 수 없을 때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질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빨의 부실로 인하여 조기에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치아건강의 발달로 100세 시대가 열린 듯 합니다.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이빨과 관련하여 무상함을 봅니다. 하나, 둘 망가져 가는 이빨을 보고서 이 몸도 망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장기도 망가질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 부품이 많이 타면 탈수록 망가지듯이, 마찬가지로 사람 몸도 늙어 감에 따라 망가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박깔리여,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S22.87)

 

 

부처님은 박깔리를 나무랐습니다. 법문을 할 때 법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부처님의 32상만 바라 보는 박깔리에게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라 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학생이 수업에 열중하지 않고 선생님의 얼굴만 쳐다 보는 것과 같습니다.

 

수업중에 남학생이 여선생님의 얼굴만 쳐다보고, 여학생이 남선생님의 얼굴만 쳐다 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선생님은 학생은 왜 내 얼굴만 빤히 보는 거죠?”라며 한마디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박깔리도 부처님의 아름다운 모습에 얼이 빠지도록 쳐다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법문을 했지만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몸은 무상한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부서지지 않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진리의 말씀은 부처님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i)”라 한 것입니다. 이 말은 후대에 대승에서 법신불(法身佛) 사상의 원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흰 이빨에서 부정상(不淨相)

 

이빨은 부정관으로도 사용됩니다. 탐욕적 성향이 강한 자에는 부정관을 닦아야 하는데, 열 가지 부정관 중에 해골이 드러난 시체에 대한 명상이 있습니다. 청정도론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빨을 보고

예전의 명상을 떠올려,

그 자리에 선 장로는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Vism.1.55)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에 따르면,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 시 부근 쩻띠야 산에 사는 찟따라는 장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로가 아누라다뿌라로 탁발하러 가다가 한 양가의 여인과 마주쳤습니다. 여인은 그날 남편과 다투었습니다. 여인은 천녀처럼 아름답게 단장하고 치장하고 친정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여인은 탁발하러 가는 장로와 마주치자 희고 고운 이를 보이며 크게 웃었습니다. 여인은 요즘 말로 장로를 꼬시려고한 것입니다. 이에 장로는 이것이 어떻게 된일인가?’라며 쳐다보다가 그녀의 이빨에 대한 부정(不淨)을 지각했습니다.

 

장로는 평소에 부정관을 닦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흰 치아를 보고 해골이 드러난 시체(Aṭṭhika)’에 대한 인상(印象: nimitta)이 확립되었습니다. 해골을 보면서 익힌 습득인상은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장로는 여인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이빨만 바라 보았습니다. 평소 해골이 드러난 시체에 대한 무시무시한 부정관을 닦고 있었기 때문에 이빨을 보고서 전체 해골의 무더기를 본 것입니다.

 

남편이 곧 뒤따라 왔습니다. 남편은 장로에게 존자여, 어떤 여인을 보았습니까?’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이나 남자가

여기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해골의 다발이

이 큰 길을 지나갔다.”(Vism.1.55)

 

 

장로는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인의 흰 이빨에서 부정상을 취했습니다. 여인의 이빨을 보고서 전체 시체의 해골의 습득인상을 지각한 것입니다. 장로가 본 것은 흰 해골 무더기가 지나 간 것만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상으로 장로는 거룩한 님, 즉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의료보험 탈퇴를 생각했는데

 

의료보험료 납부 청구서를 볼 때 마다 불편합니다. 보험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금액이 올라가서 이제는 의료보험 탈퇴를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물어 보았습니다. 탈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 재가입은 안된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의료보험 탈퇴는 절대 안된다고 했습니다. 마치 국민의 의무처럼 소득이 있는 자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확인한 결과 탈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각종 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보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장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기꾼 소리 들을 수도 있습니다.

 

병이 걸려야 하고 암이 걸려야만 보험혜택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불행을 불러 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더구나 원금도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10년 동안 부었던 보험을 끊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민건강 보험까지 끊을 수 없습니다. 감기 걸리면 내과에 가야 하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료보험료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 반을 부담하기 때문에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역가입자라면 100프로 자부담이기 때문에 탈퇴를 생각할 정도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장수축원한 이유는?

 

병원에 잘 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비난을 많이 받습니다. 의료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면서 혜택받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치과에 갔을 때 혜택 받습니다. 그외 병원 갈 일이 없기 때문에 아깝다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의료보험료는 마치 세금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갑니다. 이 땅의 국민으로 살아 가는 자는 교육, 납세, 국방 등의 의무를 다 해야 하듯이 의료보험료는 일종의 세금입니다. 가급적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병이 나면 당연히 가야 할 것입니다. 병을 고치면 더 오래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비참하게 오래 살아 갑니다. 거의 누워 지내다 시피 하여 숨만 쉬고 있는 노인들도 매우 많습니다. 오래 살긴 하지만 밥만 먹고 숨만 쉬고만 산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재가자들에게오래 사시오. 장수를 누리시오. (cira jīva, dighamāyu pālehī)”(A5.58)라며 축원 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이 장수축원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하게 오래 살며 즐기는 삶을 살라고 축원한 것일까?

 

부처님이 장수축원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 오래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하여 선업공덕을 많이 지으라는 것입니다. 선업을 많이 짓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병에서 해방되어 몸이 건강해지면 다시 옛날로 되돌아 갑니다. 또 다시 즐기는 삶을 살아 갑니다. 그러다가 또 몸이 망가지면 병원을 찾습니다. 이러기를 반복하는 것이 사람들이 살아 가는 방식입니다.

 

병원에 가는 이유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있지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 살아서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부분 즐기는 삶을 살아 갑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했을 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공부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수행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는 선업공덕 쌓는 이유도 있지만 이 생에서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계행을 어기고 삼매가 없이

백 년을 사는 것보다

계행을 지키고 선정에 들어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0)

 

“지혜가 없고 삼매가 없이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지혜를 갖추고 선정에 들어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1)

 

“게으르고 정진 없이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정진하고 견고하게 노력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2)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3)

 

“불사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불사의 진리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4)

 

“최상의 원리를 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최상의 원리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5)

 

 

 

2018-03-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