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럽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9. 4. 16. 11:43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럽다

 

 

이것 한번 읽어 보세요.” 대로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가로 어깨띠를 두른 전도사가 건넨 말이다. 팜플렛과 티슈를 건넨다. 예전에는 받지 않았다. 매몰 차게 뿌리쳤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타종교인이라 하더라도 매몰 차게 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팜플렛에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주제어가 쓰여 있다. 간곡하게 읽어 볼 것을 요청했기에 펼쳐 보았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고 말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사람들의 사랑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4)라는 바이블 문구를 실어 놓았다.

 

조건없는 사랑과 바이블 문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무리 읽어도 매칭 되는 것 같지 않다.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심오하게 느껴진다. 이런 문구는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밖에도 팜플렛에는 불구하고의 사랑이 있다고 했다. 아마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역시 바이블 문구가 근거로 되어 있다.

 

세상에는 조건이 없는 사랑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숫따니빠따 자애경에서는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 이와 같이 모든 님을 위하여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Stn.149)라고 했다. 이런 사랑은 창조주의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창조주의 사랑은 조건 있는 사랑이다. 누군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자는 해당사항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보편적이다. 부처님은 누구에게나 어머니와 같은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했다.

 

작은 팜플렛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것을 설명해 놓았다. 글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실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 하나님은 정말 있는 것일까? 불교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의문한다.

 

전도사는 불교를 믿다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교를 제대로 알았다면 교회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복신앙에 의존하는 불자가 더 큰 기복이 있을 때 옮겨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관세음보살이 영험해도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만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나 창조주는 실재하는 것일까?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움직임과 관찰하는 마음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움직임이 원인이고 아는 마음이 결과이다. 경행을 하면 발을 드는 의도를 알게 된다. 의도가 원인이고 움직이는 것이 결과이다. 좌선이나 행선을 하면 우리 몸과 마음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되어 있고, 그것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연이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어떤 다른 개념이 들어 갈 수 없다. 그래서 나, 사람, 중생이라는 것은 단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관세음보살도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뜻한 봄날이다. 공원에 갔더니 벚꽃이 활짝 피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 온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럽다.

 

 



2019-04-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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