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잘먹고 잘산다면
새소리가 요란하다. 도심에서도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이다. 새소리에 나무를 쳐다 보았다. 이름 모를 새이다. 도시가 사람만 사는 줄 알았는데 새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짝짓기 하려나 보다. 어디엔가 둥지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 알을 낳고 품을 것이다. 봄이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을 끝내야 할 것이다.
부화한 새끼새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어미새가 물어다 준 먹이로 하루가 다르게 커 나간다. 봄이 끝나갈 무렵이면 둥지를 박차고 비상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짧은 기간 내에 해내야 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온통 시멘트 바닥 천지인데 어디서 먹이를 구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럼에도 새들은 어디선가 먹이를 구하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사람들은 늘 사람들만 보고 산다. 때로 눈을 아래로 향하고 보면 보인다. 학의천 생태하천에 서면 팔뚝만한 물고기도 있다. 백로와 청둥오리도 보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새가 날아다닌다. 도시에는 사람만 살지 않는다. 도시를 벗어나면 온갖 생명체가 있다. 인간과 축생이 공존하는 것이다.
나홀로 살 수 없다. 전기가 끊기면 살 수 없다. 수도가 끊겨도 살 수 없다. 가스도 마찬가지이다.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나홀로 살아도 누군가 생산한 쌀을 먹고 살아야 한다. 공기가 없어도 살 수 없다. 나홀로 잘먹고 잘산다면 이기적이다.
매순간 호흡을 하며 산다. 공기중에 살며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숨을 쉬면서 호흡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들숨과 날숨에 물감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 빨강색이라면 숨을 쉴 때마다 빨강색깔이 퍼져 나갈 것이다. 마침내 세상은 온통 빨강색으로 가득할 것이다. 세상이 나와 둘이 아니다. 호흡을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매일 밥을 먹는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반찬으로 채소와 고기도 먹는다. 세상의 먹거리로 나의 몸이 유지된다. 먹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닭을 먹으면 닭이 나의 몸이 된다.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 삼라만상이 내 몸으로 들어 온다. 이 세상을 나홀로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시는 고층빌딩의 불빛으로 화려하다. 도시는 끊임 없는 자동차의 행렬로 역동적이다. 도시는 약육강식의 정글이기도 하다. 도시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영상매체에는 젊음의 교만, 건강의 교만으로 넘쳐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뒷골목 반지하 방에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봄이 왔다. 햇살은 따사롭다. 작은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노인이 벤치에 앉아 졸고 있다. 또다시 봄을 맞이한 것이다.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있을까? 공원에 새소리가 요란하다.
2019-04-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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