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미지는?
누구나 상(相)이 있다. 스님에게는 스님상이 있고 교수에게는 교수상이 있다. 상은 자만(mana)과 관련 있다. “내가 스님인데” “내가 교수인데”라는 자만이다. 이는 다름아닌 태생적 자만과 배운 자의 자만에 해당된다.
자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유신견이 타파 되었어도 비교에 따른 자만은 남아 있다. 그래서 못 본 척 스윽 지나치는 것도 자만이다.
상을 빠알리어로 ‘산냐(saññā)’라고 한다. 영어로는 ‘이미지’라고도 한다. 이미지는 느낌과 함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오온에서 수온과 상온은 결과에 해당된다. 결과는 원인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원인일까?
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냄새, 맛, 감촉도 있다. 삼사화합촉에 따라 느낌과 이미지가 발생된다. 보고 듣는 것이 원인이고 느낌과 이미지는 결과로서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알아차려야 한다.
그 사람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 사진을 보면 그 사람 이미지와 함께 기억이 떠오른다. 이것을 막을 수 없다.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 사람에 대한 호와 불호, 쾌와 불쾌가 일어난다. 그 다음 단계는 ‘빠빤짜(papañca: 妄想)’이다. 허공에다 집짓기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신체적 언어적 행위에 따라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래서 가급적 바른 행위, 바른 말을 하라고 한다.
한번 형성된 이미지를 바꾸기 힘들다. 이미지 세탁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냄새는 남아 있다. 얼룩과 때는 빼냈지만 비누냄새마저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향기나는 사람이 있다. 계의 향기이다. 계의 향기는 바람을 타기도 하고 바람을 거스르기도 한다. 계의 향기는 방향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에든 퍼져 나간다. 향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함께 향기로워지는 것 같다. 계는 향기박스와 같은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그렇다고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색깔이 같다고 해서 모두 금이 아니다. 할말을 하지 않는 침묵은 똥이다. 고귀한 침묵은 명상주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잡담은 악작(惡作)이지만 법담은 밤새도록 해도 된다. 이미지를 좋게 하려거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다. 때로 침묵은 향기박스와 같은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이미지가 좋은 자이다. 지혜로운 자는 비교하지 않는다. 자만이 있을 수 없다. 무상, 고, 무아를 아는 자이다. 지혜의 향기박스에게 넣으면 태생의 자만, 배운 자의 자만이 있을 수 없다. 모른척 스윽 지나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얼굴과 이름을 숨기고 필명으로 글을 썼다. 그래서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썼다. 요즘 에스엔에스(SNS)에 매일 글을 올린다. 얼굴과 실명도 공개한다. 이런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2019-05-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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