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오늘도 귀인(貴人을) 기다리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9. 7. 28. 08:19

오늘도 귀인(貴人을) 기다리며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고객은 왕이 아니라 신이다. 왕은 갑질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신은 자비로운 이미지도 있다. 창조주로서의 신은 아버지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서는 브라흐마(Brahma)에 대하여 나는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D1.39)라고 표현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정형구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브라흐마에 대하여 한역으로는 범천(梵天)’이라고 한다. 전재성 선생은 순수한 우리말로 하느님이라고 번역했다. 부처님당시 브라만교는 오늘날 한국에서 득세하고 있는 유일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창조주에 대한 묘사를 보면 유일신을 찬영하고 있는 듯 하다.

 

고객사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낯선 전화번호가 떴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사장임을 직감했다. 기술적인 사항에 대하여 문의 하는 전화였다. 직접 전화를 한 것 보니 다급한 것 같다. 설계가 가능함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주소록에 등재했다.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라서 주소록에 수백개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있다. 이름만 적어 놓아서는 잘 모른다. 상호 등을 명기해 놓아야 한다.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 특징을 명기해 놓아야 전화가 왔을 때 0.5초 이내에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주소록에 등재해 놓으면 누구세요?’라며 묻는 것은 실례가 된다. 고객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받자마자 사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요즘 스마트폰 시대를 사는 전화예절일 것이다.

 

일인사업자에게 일감이 많은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일감이 없으면 초조해진다. 처음 사흘정도는 넘어갈 수 있으나 일주일 가량 지속되면 왜 일이 없지?”라며 초조해진다. 여기저기 전화걸어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이 기다렸다가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느긋하게 마음 먹는 것이 좋다. 시간이 철철 남아 돌기 때문에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간다.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일인사업자에게 일이 있으면 밤낮 없고 주말 없다. 일요일 오전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차분한 아침이다. 주말에는 밀린 일을 한다. 요즘 일감이 있어서 주말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월요일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월급생활자라면 쉬는 날이지만 일인사업자에는 쉰다는 개념이 없다.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것은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자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투자해서 벌어먹고 살기 때문에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그저 근근히 유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일감을 준 고객회사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담당이 잊지 않고 찾아 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고객은 왕이 아니라 신이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에 대한 찬탄을 보면 브라흐마를 넘어선다. 창조주라고 착각하는 브라흐마는 윤회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부처님은 삼계윤회를 초초월하신 분이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일체의 세계를 곧바로 알아

일체의 세계를 여여하고

일체의 세계를 벗어나

일체의 세계를 가까이 하지 않고

일체를 정복하였고 현명하고

일체의 계박을 끊고

최상의 적멸과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열반을 누리네.

 

번뇌를 부순 깨달은 님,

고통을 여의고 의혹을 자르고

일체의 업을 부수고 해탈하여

집착의 대상을 부셨으니.

 

그가 바로 세상의 존귀한 님,

깨달은 님, 위없는 사자이네.

신들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수레바퀴를 굴리네.

 

그래서 왕들과 백성들은

함께 와서 그 위대한 님,

두려움 없는 님,

깨달은 님에게 귀의하네.

 

자제하는 자 가운데 가장 잘 자제한 님

적멸에 든 자 가운데 가장 잘 적멸에 든 선인

해탈한 자 가운데 가장 잘 해탈한 님

건넌 자 가운데 가장 잘 건넌 님,

 

이처럼 위대한 님,

두려움 없는 님에게 그들이 귀의하니

신들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그와 대적할 사람이 없어라.”(A4.23)

 

 

게송을 보면 부처님에게 대적할 자 없다. 창조주라 불리우는 브라흐마 역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체를 알아 열반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게송에서는 부처님은 스스로 이처럼 나는 알고 또한 본다.”(A4.24)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선생은 세상을 알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자를 아발로키테스바라라고 한다. 관자재보살을 말한다. 부처님은 세상을 또한 알고 보는 자이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고객은 왕이 아니고 신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신보다 더 존귀한 존재이다. 부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 귀인이다.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고객은 귀인(貴人)이다. 오늘도 귀인을 기다리며.

 

 

2019-07-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