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정법(正法)이 사라지는 네 가지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 12. 12:33


정법(正法)이 사라지는 네 가지 이유

 

 

우리는 정법시대에 살고 있다. 정법시대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시대를 말한다. 가르침만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정법시대라고 볼 수 없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 있어야 한다.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승가가 존속되어 있어야 한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를 말한다.

 

정법시대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승되어 온 빠알리 삼장이 있어야 하고, 삼장의 가르침대로 팔정도를 닦아 아홉 가지 출세간법에 따른 성자가 출현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정법시대라고 한다.

 




정법에 대한 세 가지 정의

 

정법시대는 빠알리삼장, 팔정도,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율장 부기를 보면 주석에서 정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의해 놓았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Smp.225에 따르면, 정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교법상의 정법(pariyattisaddhamma): 삼장의 모든 부처님 말씀, 2) 행도상의 정법(paipattisaddhamma): 열세 가지 두타행, 열네 가지 의무, 여든 두 가지 대의무, 계행-삼매-통찰, 3) 증득상의 정법(adhigamanasaddhamma): 네 가지 고귀한 길(四向)과 네 가지 경지(四果)와 열반을 뜻한다.(율장 부기 7)

 

 

율장부기는 모두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율장에서 부록에 해당되는 경전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부기를 포함하여 율장대품, 율장소품, 율장비구계, 율장비구니계와 함께 통합본 율장을 3월 중에 발간될 예정이다.

 

율장부기에 따르면 세 가지 정법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다. 그것은 교법상의 정법, 행도상의 정법, 그리고 증득상의 정법의 정법을 말한다. 교학과 수행을 하여 사쌍팔배의 성자가 출현해야 정법시대로 보는 것이다.

 

정법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부처가 출현해야 정법시대가 열린다. 이 말은 정법시대는 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수 많은 부처가 출현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정법이 도중에 사라졌음을 말한다. 그런데 한번 정법이 사라지면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암흑 같은 세월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겁단위이다. 과거칠불 중에서 위빠시붓다가 출현하고 난 다음 시키붓다가 출현할 때까지 무려 60겁이 걸렸다.

 

고따마붓다가 출현한 현겁에서는 무려 네 명의 붓다가 출현했다. 현겁에 출현한 붓다는 까꾸산다붓다, 꼬나가마나붓다, 깟싸빠붓다, 그리고 고따마붓다이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따르면 현겁에서 멧떼이야(metteyya)붓다의 출현이 예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미륵불의 출현이다. 그래서 현겁에 대하여 행운의 겁(bhadda kappa)’이라고 한다.

 

미륵불의 출현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고따마붓다의 정법이 오래 가지 않음을 말한다. 고따마붓다의 정법이 오래 지속된다면 미륵불의 출현을 예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겁에서 미륵불이 출현한다는 것은 현재 정법이 언젠가 사라짐을 예고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념처를 닦지 않으면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에 설명되어 있다. 상윳따니까야 쇠퇴의 경에 따르면, 밧다가 아난다에게 벗이여 아난다여,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후에 정법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S47.21)라고 물어본다. 이에 아난다는 벗이여, 네 가지 새김의 토대를 닦지 않고 익히지 않는다면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은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입니다.”(S47.21)라고 말했다.

 

아난다는 정법이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사념처를 닦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념처를 닦아야 성자가 출현하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 사라진다면 정법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를 보면 정법이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가르침을 왜곡했을 때

 

전재성선생의 니까야강독모임에서 앙굿따라니까야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과 계율의 경’(A4.160)에 대하여 독송했다. 이 경은 니까야강독모임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에서는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라고 붙여 놓았다. 정법이 사라지는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원리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들이 법문에 대하여 몰이해하고 말마디와 맥락을 잘못 파악하여 가르친다. 수행승들이여, 말마디와 맥락을 잘못 파악하여 의미가 왜곡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윈리이다.”(A4.160)

 

 

정법이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왜곡을 들고 있다. 가르침이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말마디와 맥락을 잘못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되어 잘 못 파악한 경을 가르친다.”라고 번역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을 말한다.

 

초기경전에 실려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전 문구를 잘 읽어 보니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했을 것이라며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논장을 믿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신의 이론과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장에 실려 있는 해석은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논장을 부정해야 자신의 이론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역사는 발전인가 퇴보인가

 

불교의 역사는 발전해 온 것일까 아니면 퇴보해 온 것일까? 불교는 시대에 따라 발전해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에 맞게 달리 해석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든 후에 수 많은 불교교리가 생겨났다.


부처님이 열반후에 새로운 교리가 생겨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은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후대 부처님과 동등하거나 심지어 부처님을 능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보완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불교는 시대에 따라 진화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를 퇴보의 역사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재세시에 정점을 찍었고,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드신 후에는 계속 퇴보의 길을 걸어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잘 보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빠알리삼장에 의존하여 부처님 가르침 그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테라와다불교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한부류는 불교는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 한부류는 부처님 가르침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왜곡없이 잘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에서는 후자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말마디와 맥락을 잘못 파악하여 의미가 왜곡되는 것으로 보고, 결국 이런 왜곡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정법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정법을 배우지 않으면

 

정법이 사라지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다. 정법시대라 하여 정법이 살아 있음에도 배우려 들지 않는다면 오래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들은 훈계하기 어렵다. 그들은 훈계하기 어렵게 만드는 성품을 갖고 있고, 인내를 지니지 못하고, 가르침을 공경하여 받들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두 번째 윈리이다.”(A4.160)

 

 

말법시대가 되면 수행승 같지 않은 수행승이 생겨날 것이다. 이득을 탐하는 무리들이 승단에 가득 했을 때 정법은 쇠퇴하고 말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고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 체하고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청정한 삶을 사는 체하고 안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고 쓰레기로 오염된 한사람을 보았다.” (Ud.51, A8.20)라고 했다. 이와 같은 쓰레기 같은 사람이 승단에 가득하다면 정법은 사라질 것이다.

 

정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정법이 사라지는 세 번째 이유는 스승에게도 있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향사과를 성취했다면 전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홀로 삶만 산다면 이는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스승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들이 많이 배우고, 전승에 밝고, 가르침을 수지하고, 계율을 수지하고, 논모를 수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도사리고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들이 죽으면 법문은 뿌리가 잘리고 의지처를 잃게 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세 번째 윈리이다.”(A4.160)

 

 

정법을 유지하려면 전등되어야 한다. 법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에서 뜻으로 전승된다면 왜곡될 수 있고 단절될 수 있다. 부처님이 설한 경, 응송, 게송 등 아홉 가지 방식의 가르침(九分敎)’ 그대로 전승되어야 한다.

 

만일 누군가 부처님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승되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왜곡되고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밤부터, 잔여 없는 열반에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든 밤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대화하고 말하고 설한 모든 것이 이와 같고, 다른 것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여래라 한다.”(It.121)라고 말씀했다.

 

정진하지 않으면

 

정법이 사라지는 네 번째 이유는 정진하지 않는 것이다. 가르침을 왜곡하고, 가르침을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침을 전달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과 함께 정진이 없다면 정법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장로수행들이 사치에 빠지고, 게으름에 빠져서, 죄악을 선호하고, 홀로 있음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꺼리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도모하지 않는다. 그들의 제자들도 그가 본 것을 따라하며, 사치에 빠지고, 게으름에 빠져서, 죄악을 선호하고, 홀로 있음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꺼리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도모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네 번째 윈리이다.”(A4.160)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스승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대로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장로스님이 돈을 모아 사치에 빠지고 정진하지 않았을 때 제자들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 승가에 정진이 없다면 사쌍팔배의 성자도 출현할 수 없어서 정법이 단절될 것이다.

 

최후의 시대가 되면

 

정법이 단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보았다. 앞서 부기에서 언급된 것처럼 세 가지 정법, 즉 교법상의 정법(pariyattisaddhamma), 행도상의 정법(paipattisaddhamma), 그리고 증득상의 정법(adhigamanasaddhamma)이 단절됨을 말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가르침이 쇠퇴할 것이다. 더 이상 사향사과의 성자가 출현하지 않는다면 정법이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볼 수 있다.

 

테라가타를 보면 “미래 시기에 최후의 시대가 다가오면 수행승들과 수행녀들의 행실이 이와 같으리라.(Thag.977)라는 게송이 있다. 이는 정법이 사라진 시대를 말한다. 주석에 따르면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그것은 해탈의 시대, 삼매의 시대, 계행의 시대, 학습의 시대, 보시의 시대를 말한다. 정법이 사라지는 다섯 가지 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탈의 시대인데, 그것이 사라지면, 계행의 시대가 전개되고, 그것도 사라지면, 학습의 시대가 전개되고, 그것도 사라지면 보시의 시대가 전개되는데, 학습의 시대때 부터가 최후의 시대에 해당한다. 학습의 시대에는 탐욕 등의 욕망 때문에 계행이 완전히 청정하지 못하고 학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논의의 주제를 끝으로 하는 학습이 일체 사라지면, 그로부터 흔적만 남을 것이고 그 때 부터는 재물을 모아서 보시로서 베푼다. 이것이 최후의 올바른 실천이다.(테라가타 977번 게송에 대한 3097번 각주).

 

 

정법이 사라지면 흔적만 남게 된다. 마치 일본불교에서 가사의 흔적만 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흔적만 남은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재물을 모아서 신도들에게 보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최후의 말법시대로서 정법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정법을 배웠으면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정법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니까야강독모임에서 전재성선생은 정법을 배웠으면 남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번역작업에 바쁜 와중에도 일부로 시간 내어서 강독모임을 이끌어 가는지 모른다.

 

 

2020-01-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