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 글쓰기와 의무적 메디테이션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에 하나는 써야 한다. 기분 좋으면 쓰고 기분 나쁘면 마는 것이 아니다. 어제는 일이 밀려서 마무리작업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없었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의무적 글쓰기이기 때문에 글을 하나 올려야 한다.
9시 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평소 생각해 두었던 것이다.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쓰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쓰는 과정에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괘도가 변경되기도 한다.
경전에 근거한 글쓰기 때문에 경전문구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특히 법구경의 경우 글쓰기 매우 좋은 소재가 된다. 게송 한구절 마다 의미가 있다. 단어에 대한 검색도 이루어진다.
빠알리어를 빠알리 사전에 검색창에 입력하면 관련 경을 알 수 있다. 여러 경에서 해당 단어가 쓰여짐을 알 수 있다. 다음 단계는 경을 찾아 보는 것이다. 이렇게 찾고 또 찾고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글의 양도 많아진다.
글을 올리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나니 숙제를 다 한 것처럼 상쾌했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다. 온라인에서 직접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남겨진 흔적 밖에 없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경우 내용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남겨진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 때 친구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어떤 페이스북친구는 스님친구도 가려서 받는다고 했다. 스님들이 페친요청을 하는데 스님이라고 해서 아무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자들은 스님을 인천의 스승이라고 여긴다. 그래서일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법문같은 것이다.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불자들을 위해서 경전 문구 하나 정도는 올려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냉무, 즉 내용이 없다면 친구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가능하면 먹거리와 관련된 글은 쓰지 않는다. 가능한 정치와 관련된 글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유지한다. 글을 쓰고 나서는 반드시 서명을 한다.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의미한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어 담을 수 없다. 그러나 글은 수정 가능하다. 오래 전에 쓴 것이라도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한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글쓰기도 달라지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하여 마치 말하는 것처럼 지나쳐 버리는 것 같다. 한번 지나간 것은 생각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나 흔적은 남아 있다. 인터넷의 바다에 떠 다니다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매일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번 쓴 글은 버리지 않는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저장되어 있다. 인터넷에 흔적을 남기면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에 행위에 두려움을 보고 글을 쓴다.
오래 전에 쓴 글은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서 보관한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책의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요즘은 의무적 글쓰기와 병행하여 의무적 메디테이션을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앉아 있는 것이다. 일종의 생활속의 명상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실에 앉아 있기 위한 환경을 갖추어서 가능한 것이다. 앉기 전에는 경행을 한다. 행선을 하고 앉는 것과 막바로 앉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행선을 하고 난 다음 앉으면 집중이 더 잘된다.
오래 앉아 있지는 못한다. 일이십분이 고작이다. 앉아서 배의 움직임을 지켜 보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 가는 것 같다. 신체는 이완되고 마음은 고요해졌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일이십분 집중하고 난 다음 일을 하면 집중이 잘 된다.
의자에 앉아만 있는 것 보다 방석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하여 땅의 기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붕 떠 있는 것 같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마음이 산만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쉽게 피곤해진다. 이럴 때 십분만이라도 바닥에 앉아 있으면 차분해진다. 그라운드(Ground)와 밀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제품에서 그라운드는 매우 중요하다. 어스(Earth)해 주어야 안정적이다. 땅바닥으로 접지를 해 주면 노이즈(잡음)의 영향을 덜 받는 것이다. 피뢰침을 설치하는 것도 땅바닥으로 과전류를 끌어 내리기 위한 것이다.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인쇄회로기판(PCB) 설계 역시 그라운드를 탄탄하게 해 주어야 한다. 패턴이 복잡하여 그라운드가 적으면 노이즈 영향 등으로 오동작할 수 있다. 그럴경우 4층설계를 하여 그라운드 레이어(층)를 확보해 주면 안정적이다. 마치 건물 지을 때 탄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명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에 대하여 '사띠빳타나위빠사나'라고 한다. 이를 우리말로 '사띠에 토대를 둔 위빠사나' 또는 '사띠를 확립한 위빠사나'라고 한다. 사띠빳타나에서 우빳타나는 토대 또는 확립을 의미한다. 마치 송아지를 기둥에 묶어 두면 기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띠에 토대를 둔 위빠사나를 하면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위빠사나 수행도 토대를 필요로 한다. 신, 수, 심, 법에 토대를 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명상을 하면 안정적인 이유는 그라운드에 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된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마음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따른다. 이렇게 안정된 마음으로 일을 하면 효율은 배가 되는 것 같다.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해야만 하는 생활인이다. 일감이 없어도 걱정이고 일감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다. 일감이 너무 많으면 글 쓸 시간이 없다. 하루 하나 의무적 글쓰기를 해야 하나 시간이 나지 않았을 때 안타깝다. 그래서 늦은 시간이라도 글쓰기를 한다. 어제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집에 들어가니 새벽 1시가 되었다.
시간은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의무적 글쓰기도 그렇고 의무적 메디테이션도 그렇다. 이렇게 짧은 시간 짬을 내어 자판을 미친듯이 두드리는 것도 숙제를 다하기 위해서이다. 한번 써 놓은 글은 버리지 않는다. 다 모아 둔다. 이것이 나의 업이다. 매일 구업 짓는 것이다.
2020-07-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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