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연의 바다가 출렁인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26. 09:36

 

연의 바다가 출렁인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가는 곳이 있다. 시흥시에 있는 관곡지이다. 사는 곳에서 불과 18키로 거리로 2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올해는 725일 토요일 오전에 찾아 갔다.

 

 

해마다 관곡지에서는 연꽃축제가 열린다. 관곡지는 연꽃테마파크로 지정되어 있어서 해마다 7월 넷째주 주말이 되면 축제가 열린다. 국악인을 초청하여 공연도 하고 먹거리 장터도 열린다. 연을 소재로 하여 연차, 연떡, 연과자, 연아이스크림, 심지어 연막걸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먹거리가 소개되어 있다.

 

관곡지를 알게 된 것은 2000대 말이다. 기록을 보니 2008년도 에서 꽃’’ (2008-7-31)포스팅이 있다. 관곡지를 찾은지 올해로 12년 되었다. 아마 한해 정도는 거른 것 같다. 매년 이맘때쯤 딱 한번 찾는다.

 

과거 포스팅을 보니 연꽃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마치 조선시대 사람이나 현대시대 사람이나 모습에 있어서 변화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때의 연꽃은 지금의 연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사람은 지금의 사람의 아니다. 다만 종이 같을 뿐이다.

 

 

 

 

해마다 꽃은 피고진다. 그때마다 열매를 남긴다. 사람도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그때마다 자손을 남긴다. 해마다 보는 연꽃은 매혹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연꽃을 보면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사람도 젊은 청춘은 아름답다. 시선은 늘 매혹적인 대상으로 향한다.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

 

수행처에서는 늘 사띠할 것을 요청한다. 매혹적인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붓다아비담마에 이런 문제가 있다. “업과 업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노래를 흥겹게 듣고 있는 사람에게 있는 마음의 이름은 무엇인가?”(붓다아비담마 59)라는 질문이다.

 

아무생각 없이 음악을 흥겹게 듣고 있는 것도 업이 된다. 그것도 악업이 된다. 사띠 없이 청각적 대상에 탐욕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업과 업의 과보를 모르기 때문이다. 업을 지으면 어떤 과보를 받는지 모르기 때문에 즐기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감각은 즐기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즐긴다면 사견이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기쁨이 함께한, 사견과 결합한, 자극받지 않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 마음도 간다. 단지 , 하고 말면 사띠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서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탐욕이 일어난 것이다. 탐욕을 내면 악업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견이 개입된다. 아름다운 대상이 있으면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탐욕을 내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업과 업의 과보를 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간다면, 더구나 취하고자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이 업과 업의 나쁜 결과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많이 설득한 후에 핸드백을 훔치고 있다. 그의 마음은 무엇일까?”(붓다아비담마, 60)라는 문제이다.

 

도둑질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아마 도둑질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지 않는 것에 손이 가는 것은 강한 업의 작용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이 해로운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또 손이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업과 업의 과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손이 가는 것은 자신을 합리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자신에 대한 설득으로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답은 평온이 함께한, 사견과 결합하지 않은, 자극받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 된다.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

 

무언가 좋아한다는 것은 탐욕이 개입된 것이다. 그 무엇은 꽃이 될 수도 있고 이성이 될 수도 있다. 아름다운 대상, 매혹적인 대상에 마음이 가는 것에 대하여 긍정하는 사람도 있다. 눈은 보라고 있는 것이고, 귀는 들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몸에 있는 감각기관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감각에 충실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비담마에 따르면 이는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 탐욕에 뿌리박은 사견이다. 이런 논리라면 화 내는 것도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된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탐욕과 성냄은 극복되어야 한다. 탐욕과 성냄은 뿌리와도 같다. 탐욕을 뿌리로 하는 것은 탐욕, 사견, 자만이다. 성냄을 뿌리로 하는 것은 성냄, 질투, 인색, 후회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성냄과 관련하여 이런 문제가 있다. “지금 어떤 어머니가 딸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어떤 마음이 어머니에게 일어나고 있는가?”(붓다아비담마, 62)라는 문제이다.

 

부모는 자녀의 장래에 대하여 걱정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걱정하거나 화를 낸다. 이는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내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족 하게 된다. 이는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이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답은 불만족이 함께한, 적의와 결합한, 자극받지 않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이 된다.

 

뿌리에는 독, 꼭지에는 꿀

 

흔히 탐, , 치를 삼독이라고 한다. 이는 모든 악하고 불건전 마음의 뿌리가 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는 마음이 일어난 것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 작동된 것이다. 누군가 자녀에게 근심걱정하고 있다면 이는 불만족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이 작동되고 있다. 탐욕과 성냄은 불선한 마음이기 때문에, 탐욕하고 성내면 불선과보를 짓게 된다. 이는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S1.71)라는 게송이 잘 말해준다.

 

탐욕과 성냄은 악하고 불건전 것의 뿌리와 같다. 탐욕과 성냄을 독으로 비유하는 것은 모든 악하고 불전한 것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욕을 하고 성냄을 하면 달콤하다는 것이다. 이를 게송에서는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라고 했다. 꼭지에 꿀이 있는 탐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탐욕과 성냄은 독과 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탐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달콤한 꿀을 맛보지만 결국 독이 온몸에 퍼지는 것과 같다. 성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꽃에 매혹되어서 꽃을 쳐다 본다. 알아차람이 없으면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때 불선과보를 짓게 된다. 심지어 청명한 하늘을 쳐다 보며 참 하늘 맑고 좋네.”라고 말하는 것도 탐욕에 뿌리 박은 마음이 작동된 것으로 불선과보를 짓게 된다. 이는 모두 사띠를 놓쳤기 때문이다.

 

연의 바다가 출렁인다

 

연의 바다에 다시 섰다. 오늘의 연은 작년의 연은 아니다. 12년 전의 연도 아니다. 올해의 연은 새연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니 이팔청춘의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 같다. 더구나 하루 전에 폭우가 쏟아져서 더욱 싱싱해 보인다.

 

 

 

연이 좋아하는 생육조건이 있다. 연은 햇볕을 좋아한다. 특히 6월에서 8월의 뜨거운 햇볕은 생장을 촉진한다. 또한 연은 평균 15도 이상의 기온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잘 자란다. 최적의 날씨는 25도에서 30도가 적당하다. 이렇게 본다면 연은 여름의 꽃이다.

 

관곡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수도권에 있는 최대규모의 연꽃단지이다. 단지 관상용 테마파크가 아니라 대규모 연농사를 짓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번 바람이 불면 연의 바다가 된다. 커다란 연잎이 속살을 드러내며 파도를 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눌러 대기에 바쁘다. 그렇다고 연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꺽어가지는 않는다. 단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울 뿐이다. 그럼에도 연의 아름다움에 취한다면 이것도 탐욕이 될 것이다. 일부러 찾아 가는 것 자체가 탐욕이 개입된 것일 수 있다.

 

 

알면서 지은 죄와 모르고 짓는 죄가 있다. 불교에서는 알면서 지은 죄보다 모르고 지은 죄를 더 크게 본다. 이는 업과 업의 과보와 관련된 것이다. 정견을 가졌느냐 사견을 가졌느냐에 대한 것이다.

 

정견을 가졌다면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해 아는 것이다.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아는 것이 정견이다. 그러나 감정에 충실한 삶, 본능에 충실한 삶은 사견이 되기 쉽다. 동물도 그런 삶을 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삶이 되기 쉽다.

 

매년 딱 하루만 와 보는 곳이 관곡지이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행사가 취소 되었다. 예년과는 다른 양상이다. 공연도 없고 먹거리장터도 없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와서 연의 아름다운 자태를 즐기고 갈 뿐이다. 바람이 분다. 연의 바다가 출렁인다.

 

 

 

2020-07-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