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억,억”하는 소리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29. 13:35

“억,억”하는 소리에

 

 

작은 법회모임이 있다. 강남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법우님과 통화하다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통화 중에 들은 말이다. 법우님은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고객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법우님의 통화가 꽤 길어졌다. 대화하는 내용이 다 들렸다. 40억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했다. 50억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강남 집값 이야기를 들으니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 하는 이야기는 은행에서도 들었다. 번호표를 뽑아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켠에서 분양상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 하는 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는 많다.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도 있다. 가장 듣기 거북한 소리가 , 하는 소리이다. 부동산 이야기를 하면 , 하게 되어 있다. 집값 이야기를 하다보면 억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의 시대가 있었다. 70년대 부터 전설적인 이야기가 수도 없이 회자 되었다. 부모가 강북이 아닌 강남에 자리 잡았더라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강남불패에 대한 신화는 요즘도 이어지고 있다. 만나면 , 하는 것이다.

 

 

성장의 시대에 손쉽게 부자가 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부동산투기대열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그때 당시 이렇게 해도 되는지?”라고 의문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이었다. 불법, 편법, 탈법으로 막대한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을 챙기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투기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낙오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투기대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아파트라도 한 채 가지고 있다. 좀더 영악한 사람들은 여러 채를 가지고 있다. 불로소득으로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 이마의 땀과 팔의 힘으로는 평생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실력처럼 여기는 것 같다. 투기대열에 동참하여 한몫 잡은 것도 실력으로 보는 것이다.

 

불로소득일지라도 일단 소유하면 자신의 실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소유를 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위험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으로 재난이 발생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산에 있어서 한정이 없기 때문에 쉽게 쾌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에 사는 법우님들이 있다. 종종 부동산에 대해 이야 하는 것을 보면 불로소득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과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생에 지은 공덕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 찾아 먹어 버리면 다음생에서는 무엇을 가지고 갈까? 행위에 대한 두려움, 윤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한다면 불로소득은 두려운 것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과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이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얻은 것만큼 나가게 되어 있다. 대개 괴로운 과보로 나타난다. 예산에 한정이 없어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삶을 살았다면 괴로운 과보로 나타난다. 재벌 2세 또는 3세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망신하는 것과 같다. 불로소득은 두려운 것이다.

 

불로소득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랑하듯이 이야기하지 못한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말 끝마다 , 하며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치부만 드러내게 되어 있다. 듣는 사람은 억장이 무너진다. 불법, 편법, 탈법으로 불로소득의 성을 쌓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안다. 떳떳치 못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이마의 땀과 팔뚝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희고 고은 손은 부끄러운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소유에서 자유로워졌다. 특히 최근 접한 법구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 그렇다. “어떠한 것이든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다.”(Dhp.331)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떠한 것은 소유를 말한다. ‘어떠한 것이든이라는 말은 소유가 크건 작건이라는 뜻이다. 소유가 크건 작건 간에 족함을 알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법구경에서는 어떠한 것이든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했다. 행복은 소유와 크게 관련이 없음을 말한다. 많이 소유한 자도 스스로 족함을 알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흔아홉칸을 가진 자가 백칸을 채우려 한다면 불만족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된다.

 

어떠한 것이든 족함을 알면 행복이라고 했다. 세 평짜리 초막에 살아도 족함을 알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소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 만족함에 달려 있다. 작은 평수에 살아도 경차를 몰아도 스스로 족함을 알면 , 하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

 

 

2020-07-29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번, 천번 참회하는 것 보다  (0) 2020.08.01
모니터는 밭이고 마우스는 호미  (0) 2020.07.31
침묵이 똥일 때  (0) 2020.07.29
연의 바다가 출렁인다  (0) 2020.07.26
경계에 부딪쳐 보기 전까지는  (0) 202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