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니터는 밭이고 마우스는 호미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31. 09:28

모니터는 밭이고 마우스는 호미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세 대의 모니터를 가동하여 설계작업을 한다. 설계라고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회로 패턴설계을 업계에서는 아트워크(Artwork)라고 한다. 아트워크는 예술작업을 말한다. 왜 아트워크라고 했을까? 완성되고 나면 예술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트워크라는 말은 컴퓨터 캐드가 사용되지 이전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아마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손으로 아트워크작업을 했다. 도너츠라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패드가 판매되었다. 패드와 패드를 연결하는 테이프도 판매되었다.

 

설계자는 청계천에서 아트워크 재료를 구입하여 트레이싱페이퍼에 오려 붙이는 작업을 했다. 기구설계용 드래프터 위에서 작업을 한 것이다. 먼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회로도대로 먼저 연필로 설계를 해 보는 것이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그 위에 트래이싱 페이퍼를 올려 놓고 테이프와 도너츠를 붙인다. 드래프터에는 형광등이 있어서 훤히 비추어보인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에 작업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작업이 완료되면 빌딩과 도로로 이루어진 마치 도시를 보는 것 같다. 아이시(IC)는 건물과도 같고, 패턴은 도로와도 같은 것이다.

 

아트워크 작업이 완료되면 필름집에 맡긴다. 필름을 찾아서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에 맡기면 샘플이 나온다. 여기에 부품을 삽입하고 납땜한다. 전기를 넣어서 특성검토하는 것이 개발이다. 양산에 이르기까지 엔지니어링샘플, 파이롯드 생산 등 여러 개발단계를 거친다. 마침내 양산이 되면 전세계로 수출된다. 이런 일을 회사다닐 때 20년 했다.

 

여전히 아트워크작업을 하고 있다. 신입사원시절과는 다르게 캐드를 이용한 작업이다. 개발파트 중에 아트워크 작업만 뚝 떼어서 하는 것이다. 일인사업자가 사는 방식이다. 이렇게 아트워크 작업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이는 생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 큰 것이 하나 걸렸다. 생각지도 않게 전화가 온 것이다. 한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오더를 준 것이다. 그것도 대작이다. 백만원 이상 되면 대작으로 본다. 그것도 선금을 주었다. 이런 케이스는 드물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귀인(貴人)이 나타난 것일까? 아트워크를 하는 손에 힘이 실린다. 수천, 수만번을 클릭하면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아트워크 작업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밭갈기와 유사하다는 것이디. 농부는 손에 호미를 들고 밭을 간다. 또 농기구를 이용하여 이랑과 고랑을 만든다. 모두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남이 해 주지 않는 것이다. 호미를 들고 한땀한땀 매는 것이다. 그리고 삽으로 한삽한삽 푸는 것과 같다. 아트워크도 이와 다름없다.

 

모니터는 밭이고 마우스는 호미와 같다. 수천, 수만번 클릭하는 것은 호미로 땅을 파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단순작업일수도 있다. 그러나 신호흐름 등을 감안해서 설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틈이 있다. 라디오를 듣듯이 유튜브를 들으면서도 작업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밭매는 사람이 무료해서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은 완성되어 있다.

 

요즘 꿈을 꾸면 종종 직장에사 쩔쩔매는 꿈을 꾼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것이다. 더 잘해 보려고 하지만 실력은 들통나는 것 같다. 능력을 보여주려 하지만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을 때 언제 퇴출될까 전전긍긍하는 꿈이다. 이런 꿈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마 잠재의식 속에 생존에 대한 위험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을 떠난지 벌써 15년이 되었지만 이렇게 꿈속에서 쩔쩔매는 꿈을 꾸는 것을 보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직장은 생명과도 같은 곳이다. 해고자들이 철탑에 올라가서 고공농성하는 것도 직장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에서 쫓겨 나면 당장 가족들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한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복직 투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퇴출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일까 생계에 대한 걱정은 꿈속에서조차 나타나는 것 같다.

 

누구도 생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악착같이 벌어 놓고자 한다. 노후를 대비하여 일정금액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익이 나는 것이라면 불법과 편법, 탈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투기대열에 동참한다. 아파트 투기나 주식투기가 대표적이다.

 

적게 투자해서 많은 것을 얻으려는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시세차익을 실현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았다면 생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꿈속에서도 안심일까? 아마 전전긍긍하고 쩔쩔매는 모습의 꿈을 꿀 것이다. 설령 그가 생계문제나 노후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잠재의식 속에는 그림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랜시간 군대에 끌려 가는 꿈을 주기적으로 꾼 적이 있다. 군대에 갔다 왔는데 또 영장이 나온 것이다. 항의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 가서 군대생활 하는 꿈을 오랜세월 보냈다. 그런데 꿈도 진화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항의도 못하고 끌려 갔으나 나중에는 , 군대에 갔다 왔는데요.”라며 세월이 흐를수록 저항하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군대 끌려가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마 잠재의식 속에서 사라진 것 같다. 그대신 직장에서 전전긍긍 쩔쩔매는 꿈을 꾸고 있다. 새로운 직장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서 쩔쩔매는 꿈을 말한다. 이런 꿈을 종종 꾼다는 것은 아마도 생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잠재의식속에 각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은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꿈속에서는 여전히 쩔쩔매는 꿈을 꾸는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 이상 군대 가는 꿈을 꾸지 않듯이, 더 이상 직장에서 쩔쩔 매는 꿈을 꾸지 않을 날이 올까? 분명한 사실은 일을 손에 잡고 있을 때, 마우스를 손에 쥐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농부가 호미를 들고 밭을 매고 있을 때 세상 근심걱정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2020-07-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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