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외로운 노인과 고독한 수행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24. 08:52

외로운 노인과 고독한 수행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이 60이 되면 국가에서 관심 보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사람이 찾아와서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홀로 사는 사람을 독거노인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홀로 되었을 때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그렇다. 아무리 국가에서 잘 챙겨준다고 하지만 헛점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이 60세가 되어 홀로 산다면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독거노인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외로움이다.

요즘 독거시대이다. 원룸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집을 지었다 하면 원룸이다. 사무실 주변 모텔들이 하나 둘 철거되면서 주차장을 갖춘 원룸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임대을 위한 투자목적으로 짓기도 한다.

가면 갈수록 원룸은 늘어간다. 이 말은 가면 갈수록 독거자도 늘어간다는 말과 같다. 이제 고시원 같은 곳만 독거주거공간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나홀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홀로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처음에는 좋을지 모른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어서 자유를 만끽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악처로 변한다. 이런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5
년 회사를 그만 두었다. 마지막 회사가 되었던 것이다. 취업이 되지 않아 어디 갈 데가 없었다. 안양 호계동 공구상가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임대했다. 싼 맛에 들어간 것이다. 난방도 냉방도 안되는 곳이었다. 봄과 가을은 견딜 만했지만 겨울과 여름은 지옥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고립감이었다. 처음에는 홀로 있어서 좋았다.

 

가장 먼저 컴퓨터를 장만했다. 인터넷 연결은 필수이다. 일단 세상과 연결해 놓은 것이다. 이것 마저 없으면 감옥이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감이 없었다. 처음에는 실업급여에 의지했다. 백만원이 안되는 돈이었지만 비빌 언덕은 되었다.

마치 직장처럼 매일 사무실에 나갔다. 실업급여 끝날 때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있는 것 보다는 나았다. 비록 냉난방도 안되는 작은 사무실이지만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실업급여기간 동안에는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원서를 내 보았지만 오라는 곳도 없었다. 거의 노가다나 다름없는 일을 하는 곳에 가 보았지만 경력이 너무 화려한 것이 단점이 되었다.

실업급여 하나 믿고 세월을 보냈다. 연락은 다 끊어졌다. 인터넷이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집에서 멍청하게 TV보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었다. 한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철이 바뀜에 따라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홀로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사람들과 교류 없이 인터넷만 가지고 살 수는 없었다. 나중에는 사무실 흰벽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마치 독방에 수감된 것처럼 보였다.

한번도 감옥에 가 보지 않았다. 경찰서 유치장에 간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홀로 사무실에 있었을 때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감옥 중의 감옥은 독방이다. 사무실에 홀로 하루종일 앉아 있었을 때 독방에 있는 것 같았다.

9
개월가량 실업급여 기간이 끝났을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의존할 곳이 없었다. 40대 중후반 아날로그 시대 엔지니어를 써 줄 만한 곳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잡은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 회사 다닐 때 개발과정 중의 일부였던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을 생계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아무 하는 일없이 홀로 고립되어 있을 때 감옥이 된다. 그래서 일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일 이어도 좋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신성한 일이 된다. 일을 하게 되면 일단 사람과 만나게 된다. 만남이 이루어지면 소통하게 된다. 세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 둔지 2년이 지났을 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기술은 되었다. 일감을 더 따 내기 위해서는 키워드광고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홈페이지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사무실도 있어야 한다. 책상 하나 공간만 확보되는 공동사무실 주소로는 곤란했다.

 

오피스공유 사무실에서 벗어나 오피스텔로 자리를 옮겼다. 안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임대료가 가장 저렴한 오피스텔을 말한다. 2007 11월에 입주했다. 이후 현재까지 내리 14년째 같은 장소에 앉아 있다.

 


흔히 외롭다고 말한다. 특히 홀로된 노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 외롭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한마디로 의지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기 때문에 함께 할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사람은 배우자를 찾는다.

외로움과 유사한 말이 있다. ‘고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은 타인에게 의지하려 하지만, 고독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외로움에 지친 사람은 외로워 죽을 것 같지만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즐긴다.

누구나 홀로 되면 외로움을 겪는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잠시도 홀로 있지 못한다. 홀로 있으면 무료하고 권태에 빠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한번 전화통을 붙잡으면 말이 끊어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에서 메신저를 자주 보내는 사람들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잘 배운 부처님 제자라면 외로움이 있을 수 없다. 늘 현재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수행자는 늘 바쁘다. 외로울 틈이 없는 것이다. 수행자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있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다면 외로움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고독할 수는 있다.

수행자는 고독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외롭지 않다. 수행자는 담마와 자신에게 의지할 뿐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어느 곳에 있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수행자는 나이 들어 독거노인이 되어도 외롭지 않다. 외로워서 못살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외롭다고 하여 아무나 친구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친구가 없으면 홀로 간다.

진리의 길을 가는 고독한 수행자는 자신보다 낫거나 동등한 자를 친구로 한다. 어리석은 자를 친구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리석은 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고독한 수행자는 코뿔소와 같다. 숫따니빠따 꼬뿔소의 경’(Sn.1.3)에 나오는 그 코뿔소를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라.”라고 했다. 여기서 가라는 말은 깊은 의미가 있다. 이 말은 단순히 걸어가라라는 뜻이 아니다. ‘가라라는 말은 빠알리어로 짜레(care)’이다. 여기서 짜레는 명령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자가 가야할 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 삶의 방식을 제시하셨다.


“1)
네 가지 행주좌와에서 위의를 지키는 삶의 실천,
2)
감각능력을 수호하는 삶의 실천,
3)
네 가지 새김의 토대를 닦는 삶의 실천,
4)
네 가지 선정에서 집중을 닦는 삶의 실천,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앎의 삶의 실천,
6)
네 가지 거룩한 길(
四向)을 닦는 삶의 실천,
7)
네 가지 수행자의 경지(
四果)를 닦는 삶의 실천,
8)
모든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삶의 실천.”(Prj.64)


이것이 고독한 수행자가 가야할 길이다. 수행자는 궁극적으로 해탈과 열반을 지향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홉 가지 출세간법을 성취해야 한다. 사향사과와 열반을 말한다. 또한 자리이타적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에게도 이익되고 타인에게도 이익되는 삶이다.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관을 수호해야 한다. 고독한 수행자는 외로울 겨를이 없다.

 

 

2021-01-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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