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일제와 셀프주유는 선진국의 지표일까?
우리나라는 선진국일까? 겉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선진국이 된 것 같다. 주오일제가 대표적이다. 주오일제 하나 가지고 선진국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적, 정신적으로도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요즘 다행스럽게도 코로나방역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었다. G7 또는 G8 국가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황폐화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다. 자연스럽게 ‘국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중에 독일이 있다. 독일을 선진국으로 보는 것은 직접 가 보았기 때문이다. 단지 겉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즈니스 출장 중에 잠시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독일에 간 것은 기록을 보니 1991년 1월이다. 30대 초반으로 입사 6년차 대리시절이었다.
1991년 유럽을 처음 가 보았다. 가보고 싶어서 가본 것이 아니라 품질문제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필드에서 트러블슈팅하기 위해서 가 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운 출장이 되었다.
처음 개발한 제품이 독일 시장으로 수출한 것은 1990년 말의 일이다. 1989년 위성방송수신기 개발팀이 편성되어서 회로설계담당 엔지니어로서 차출되었다. 회로설계뿐만 아니라 시제품, 엔니어링 샘플, 파일럿 샘플 등 각 개발단계 제품에 대하여 디버깅도 해야 했다. 이밖에도 수십가지에 달하는 부품승인도 해야 했다. 그래서 늘 업무에 바빠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말도 거의 없었다. 1990년대가 그랬다. 이런 와중에 처음 생산된 제품에서 품질사고가 나고 말았다.
품질사고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필드(현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실험실에서만 검토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제품이든지 그렇다. 처음 개발한 제품은 만족스럽지 않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필드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팩스가 날아 올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독일로 수출된 모델도 그랬다.
문제가 생겼으면 해결해야 한다. 연구실에서는 도저히 원인을 파악할 수 없어서 현지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개발 실무자였기 때문에 독일로 날아 갈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입사동기와 함께 갔다. 한차수 빠른 입사동기이다. 그는 ROTC로 입사했기 때문에 ROTC차수였다. 불과 한달 차이가 나는 한차수 앞이다. 그러나 같은 학번이기 때문에 동기로 지냈다. 그는 단지 따라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는 일도 달랐다.
독일출장은 이른바 A/S출장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번 기회에 시장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방문하는 일정을 짰다. 프랑크푸르트 지사에 있는 지사장이 엔지니어 두 명을 데리고 유럽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런 유럽은 우리나라와 달리 확실히 선진국이었다.
1991년 처음 유럽 갔었을 때를 회상해 보았다. 기록을 찾아보았다. 회사생활 하면서 업무노트를 모두 모아 놓았기 때문에 그때 당시 기록이 있다. 찾아보니 업무노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을 보니 1991년 1월 26일부터 2월 9일까지 무려 보름에 달하는 여행이 되었다. 딱 이맘때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의 일이다.
일정표를 보니 1.26일 서울출발, 당일 F.F.T 도착, F.F.T-뮌헨, 1월 30일 뭔헨-F.F.T, F.F.T-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하노버, 하노버-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뮌헨, 2월 9일 뮌헨- 서울, 이런 일정으로 기록 되어 있다. 출장을 간 김에 필드에서 문제점도 해결하고, 판촉활동 지원도 하고, 신모델 안전규격승인도 맡는 등 다목적 출장이 된 것이다.
1991년 업무노트를 보니 고심한 사항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장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가 보는 유럽출장에 설레기는 했지만 이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끝장 날 것 같았다.
떠나기 전에 출장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나 알려 준 것이 있다. 현지에 가면 현지 엔지니어와 일을 해야 하는데 그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것도 한국을 상징하는 선물이 좋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김포공황 면세점에서 선물을 샀다.
트러블슈팅하기 위한 목적지는 독일 남부에 있는 ‘로젠하임’시였다. 뮌헨에서 남쪽으로 있는데 알프스 산맥 가까이 있는 중소도시이다. ‘카트라인’이라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것에서 약간 떨어진 시골 마을에 A/S센터가 있었다.
A/S센터에는 엔지니어가 하나 있었다. 나이가 들어 노인처럼 보였다. 서양사람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데 거의 60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슬로베니아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심지어 러시아도 할 줄 안다고 했다. 이런 인재가 시골 A/S센터에서 엔지니어로 있다는 것이 이해 되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거의 30년 차이 나는 현지 엔지니어와 일했다. 셋톱박스를 디코더와 연결하면 화면이 나오지 않고 비데오출력 관련 TR이 타버리는 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첫날은 아무리 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시도해 보았지만 시간만 초조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더구나 끝나는 시간도 빨랐다. 오후 4시 반이 되자 업무가 끝난 것이다.
독일 시골 호텔에서 고심했다. 독일 시골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만 했다.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자다가 일어났다. 새벽에 회로도를 보며 고민한 것이다. 이런 모습을 같이 간 동기가 보고서는 놀랐다.
다음날 슬로베니아 엔지니어와 함께 다시 검토 작업에 들어 갔다. 새벽에 깨어 회로검토한 것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인두를 들고 콘덴서와 저항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반응을 본 것이다. 여러 번 시도해 보다가 하나의 단서를 발견했다. 디코더만 연결하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 비데오 신호와 관련된 회로를 집중 공략했다.
마침내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버퍼회로를 하나 더 써야 하는 것이었다. TV로 연결되는 신호에만 버퍼가 있었고, 디코더에 연결되는 신호에는 버퍼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선적되어 창고에 쌓여 있는 제품에 TR로 구성된 버퍼회로를 장착할 수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전해콘덴서를 활용하여 해결했다. 이 모든 과정을 업무노트에 기록해 놓았다. 30년이 지나서 보니 그때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독일 모습은 어땠을까?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겉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주오일제’였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주오일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오일제가 정착되었다. 중소기업에서도 왠만하면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목격한 것은 ‘셀프주유’에 대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지사장과 현지 교포사업가와 함께 다녔는데, 교포사업가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자신이 직접 넣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그때 당시 한국에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30년 세월이 흐른 현재 한국에서는 대부분 셀프주유소가 되었다.
주오일제나 셀프주유소가 선진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그때 당시에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현재 한국에서는 대부분 실현되고 있다. 그런 한국은 선진국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코로나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30년전 독일을 선진국으로 보고 부러워했으나 이제는 아니다. 그런 독일은 얼마나 변했을까? 기록을 보니 30년전 로젠하임 인근 작은 마을에서 고민했던 것이 어제처럼 느껴진다.
2021-02-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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