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리도를 벽에 붙여 놓으니
어려서부터 지도보기를 좋아했다. 사회과부도에 지도가 있었다. 색깔로 칠해진 지도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굳이 말하자면 ‘지도소년’이었다.
지도사랑은 중학교에서 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사회과부도의 지도책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꾸기에 충분했다. 머나 먼 나라의 국명과 도시를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지도를 보면 가슴이 뛴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같다. 현실적으로 가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도상으로는 여행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디에 어느 산이 있고, 어느 강이 있고, 어느 도시가 있는지 알고 있다.
오늘 세계지도를 찾아왔다. 어제 지도제작업소에 맡긴 것이다. 그것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라는 긴 이름의 지도이다. 줄여서 ‘강리도’라고 한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4년후인 1402년에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세계지도라고 볼 수 있다.
강리도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페친(페이스북친구) 김선홍선생이 강리도를 연속해서 소개했기 때문이다. 김선생의 설명문에 따르면 강리도는 놀라운 지도이다. 무엇보다 아프리카가 온전히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양에서 아프리카 최남담 희망봉을 발견하기 88년전의 일이다. 놀랍게도 조선건국 초기에 만든 강리도에는 아프리카가 대양에 둘러싸인 형태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김선홍선생은 강리도에 대하여 외국 학자의 논문을 빌어서 설명했다. 만일 콜럼버스가 강리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지 않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서 강리도에 아프리카의 형태가 온전히 그려져 있었을까?
요즘은 유튜브시대이다. 강리도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2012년 방영된 다큐프로가 있다. 다큐제목은 ‘KB대기획[문명의 기억, 지도]1부 “달의 산”’이다. 다큐프로에 따르면, 조선에서 세계지도를 만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왕조의 정통성을 알리고 세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강리도는 중국과 조선이 크게 그려져 있다. 오늘날 세계지도와 비교해 본다면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 놓은 것이다. 그 외 지역은 매우 작게 그려 놓았다. 이는 ‘저 먼 어딘가에 이런 나라가 있다’라고 단지 위치만 알려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대륙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작다. 유럽은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고 서쪽에 국명과 도시명칭만 표기되어 있다. 이는 1402년 조선 건국당시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아주 작은 섬나라로 그려져 있다. 한반도가 매우 크게 그려져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본래 조선의 동쪽에 조선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어야 하나 남쪽 바다 아래 한반도의 반의 반도 안되는 아주 작은 섬나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신흥왕조인 조선이 중국과 함께 당당히 세계의 주체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 같다.
KBS다큐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신대륙과 아프리카 남단이 발견되기 훨씬 이전에 그려진 강리도를 보면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아프리카를 그렸을까?”라며 탐사에 나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 나일강의 근원이 되는 산에 대한 것이다.
강리도에는 나일강의 근원이 되는 산이 표현되어 있다. 다큐프로에 따르면 산은 우간다에 있는 ‘르웬조리’산이라고 한다. 아랍어로 된 지도에는 ‘달의 산’이라고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아프리카의 달의 산과 나일강의 원류가 극동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에 표현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이에 대하여 다큐에서는 ‘팍스몽골리카(Pax Mongolica)’로 설명한다.
팍스몽골리카, 즉 몽고에 의한 세계질서가 유지되던 시기에 동서교역은 자유로웠다. 그때 당시 아랍상인들은 해상으로 원나라와 교역을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고려에까지 무역했다고 한다. 이처럼 팍스몽골리카 시기에 동서교역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더구나 해상실크로드가 개척됨에 따라 아랍과도 자연스럽게 교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강리도에 있는 아프리카와 나일강 원류에 대한 그림은 아랍상인들과 교역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김선홍선생 강리도 소개로 인하여 강리도를 갖고 싶었다. 댓글에 어떻게 하면 강리도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이에 ‘규장각’사이트에서 가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사이트(https://kyu.snu.ac.kr/ )에 접속했다. 먼저 회원가입을 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강리도 원본파일을 다운 받았다. 10메가로 사이즈가 꽤 큰 편이다. 해상도도 좋았다. 이를 실사이즈로 출력하여 가지고 싶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를 사무실 벽에 붙여 놓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에 가서 출력해야 할까? 문구점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플레카드 만드는 업체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아마 실사 출력하는 곳이라면 모두 가능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식당에 갔다. 식당 가는 길 맞은 편에 지도업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그곳에 지도업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관련 없기 때문에 간판만 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강리도를 출력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것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이런 상황을 위해서 지도업소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기회라 여기고 지체없이 들어갔다.
지도업소에다 강리도 출력을 맡겼다. 전지사이즈 출력에 코팅처리하여 1매에 6만원이다. 2매 주문했다. 2매에 6만원이다. 하루면 제작가능하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 때 찾아가기로 했다.
오늘 점심때 강리도를 찾으러 갔다. 어떻게 나왔을까? 무척 궁금했다. 생각했던 대로 잘 나왔다. 출력한 것을 보니 매우 선명하다. 그림파일 해상도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도업체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일인사업자이다. 주인은 먼저 무엇 하는 사람인지 물어 본다. 명함에 ‘아트워크(Artwork)’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일 것이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설계(PCB)업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업계에서는 기판설계작업하는 것에 대하여 아트워크라고 하는데 이는 예술작품 만들듯이 공들이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일 해서도 먹고 삽니까?”라며 물어보았다. 이런 질문에 “잘 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아마추어이다. 설령 잘 된다고 해도 “그저 먹고 살 정도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지도업체 주인은 간신히 유지할 정도라고 말한다. 이는 수요가 부동산중개업소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이 고객인 것이다. 그래서 지형이 바뀔 때 마다, 또는 재개발과 재건축이 될 때마다 ‘업데이트’작업한다고 한다. 그런데 갈수록 파이는 줄어 들어서 시장이 점점 쪼그라드는 추세라는 것이다. 지도제작업소가 인구 백만명당 한 개 있는 이유가 된다.
출력된 지도는 전지사이즈이다. 자로 재보니 가로 115센티에 세로가 105센티이다. 이는 본래 강리도 사이즈가 가로 165센티에 세로 150센티인것과 비교하여 작은 것이다. 그런나 출력해 놓고 보니 무척 크다. 하나는 하나는 사무실용이고, 또 하나는 아파트 거실용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는 무슨 뜻일까? 이 말을 풀이하면, 혼일(混一)은 세계를 뜻하고, 강리(疆理)는 영토를, 역대(歷代)는 여러 때를, 국도(國都)는 나라와 도시를 뜻한다. 이를 줄여서 강리도(疆理圖)라고 한다.
강리도는 현재 우라나라에 없다. 원본은 일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 보관되어 있다. 비단에 그린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학자들이 10년동안 강리도를 연구하고 있다. 강리도는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강리도를 보면 조선을 중국과 함께 매우 크게 놓았다. 일본은 조선 아래에 반의 반 크기로 찌그러져 있다. 이런 강리도를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 둥근 세계지도에서 한국은 매우 작은 나라이지만 강리도에서만큼은 대국이다. 인도대륙보다 훨씬 더 크고 아프리카 대륙보다 더 크다. 유럽대륙은 위치만 있어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강리도를 사무실 벽에 붙여 놓았다. 스카치 테이프 큰 것을 잘라서 양면테이프 모양으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붙여 놓고 보니 사무실이 꽉 찬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자존감이다. 한국이 크게 그려진 것이 요즘 코로나시기에 자존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아파트 거실에도 붙여 놓아야 겠다.
2021-02-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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