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
사무실에는 두 개의 고지도가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말 지도로 비교적 오늘날 보는 지도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 하나는 그제 규장각사이트에서 다운 받은 강리도로 1404년에 만든 세계지도이다. 두 개의 지도에서 사는 곳을 찾아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안양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수원과 과천은 보인다.
안양시는 안양권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안양권은 안양 56만명, 군포 27만명, 과천 6만명, 의왕 16만명으로 모두 합하여 120만명 가까이 되는 권역을 말한다.
안양시는 조선시대 말 지도에도 지명이 보이지 않고, 조선초기 지도에도 지명이 보이지 않는다. 안양시는 1960년이후 근대화 시기에 생겨난 신흥도시임을 알 수 있다. 분당신도시가 있는 성남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명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들 입에 불리면 지명으로 굳어진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사라지면 잊혀진다. 그러나 기록해 두면 남아 있다. 고지도에 지명을 보면 지명이 새롭게 다가온다.
강리도는 1404년에 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지명이 있다. 수도권을 보면 북서쪽에 파주, 교하, 고양이 눈에 띈다. 북한산을 三角山(삼각산)으로 표기해 놓았다. 지금으로부터 617년 전에는 북한산은 없었다. 삼각산으로 불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리도에 廣州(광주)라는 지명이 박스에 넣어져 있다. 오늘날 경기도 광주를 말한다. 강리도에는 전라도 光州(광주)도 보인다. 그러나 600년 전에는 경기도 광주가 더 큰 지명이었던 것 같다. 박스처리한 지명은 큰 고을로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박스처리한 지명을 보면 경기도에는 강화, 광주, 여주가 있다. 충청도에는 충주와 청주가 있다. 강원도는 강릉 한 곳이다. 경상도에는 안동과 경주가 있다. 전라도에는 전주 한곳만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경기도 광주가 전라도 광주보다 더 큰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시대에 따라 고을도 부침이 있다. 이름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름을 보면 강한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수도 없이 생겨나고 사라짐을 거듭하는 것이 지명이다. 가장 멋없는 지명은 무엇일까? 숫자를 붙여서 구분하는 동지명일 것이다.
안양에서는 안양동이 가장 크다. 현재 사무실이 있는 곳은 안양6동이다. 안양1동부터 9동까지 있다. 이렇게 숫자로 표기된 지명은 많다. 석수동은 1동에서부터 4동까지, 살고 있는 비산동은 1동부터 3동까지 있다. 인구 50여만명의 도시에서 동이름은 고작 15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숫자가 붙은 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반하여 종로구는 동네마다 동이름이 다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종로에 있는 학교에서 다녔다. 중학교는 ‘연지동’에 있었고, 고등학교는 ‘혜화동’에 있었다. 그런데 종로구에는 동네마다 수많은 고유의 동명이 있다는 것이다. 숫자로 매겨진 동이름은 많지 않다. 어떤 이름이 있을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 적선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체부동, 필운동, 내자동, 사직동, 도렴동, 당주동, 내수동, 세종로, 신문로1가, 신문로2가, 청진동, 서린동, 수송동, 중학동, 종로1가, 공평동, 관훈동, 견지동, 와룡동, 권농동, 운니동, 익선동, 경운동, 관철동, 인사동, 낙원동, 종로2가, 팔판동, 삼청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가회동, 재동, 계동, 원서동, 훈정동, 묘동, 봉익동, 돈의동, 장사동, 관수동, 종로3가, 인의동, 예지동, 원남동, 연지동, 종로4가, 효제동, 종로5가, 종로6가, 이화동, 연건동, 충신동, 동숭동, 혜화동, 명륜1~4가, 창신동, 숭인동, 교남동, 형동, 송월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 구기동, 평창동,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무악동, 청운동, 효자동,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숭인1동, 숭인2동”(종로구 동명)
인터넷 검색한 것이다. 수없이 많은 동이름에서 익숙한 것도 익고 낯선 것도 있다. 중학교 다닐 때 연지동에 있었는데 누가 연지동이라는 동명을 알고 있을까? 그럼에도 지금까지 동명이 살아 있다. 이에 반하여 신흥도시의 경우는 고유의 동명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번호로 매긴 동명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고지도를 보면 익숙한 지명도 있고 생소한 지명도 있다. 생소한 지명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지명도 생멸한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 그러나 생소한 지명은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남아 있다. 언제 어느 때인가 그런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매일매일 기록해 둔다. 의무적 글쓰기를 하면서 법명과 이름을 날자와 함께 서명한다. 이런 것도 남겨두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사람이 죽으면 유품은 정리된다. 기억해 주는 사람은 자손밖에 없다. 자손도 죽으면 언제 누가 살았는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책을 내고 논문을 쓰는 등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기록남기기에 동참하고 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서명을 하는 것은 작자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뜻도 있다. 사람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쓴다. 과연 이기록은 언제까지 갈까?
2021-02-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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