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권 위빠사나수행기 VII 재가우안거, 재가에 살지만 출가수행자처럼 살고자
재가자의 안거도 안거로 인정될까? 당연히 안거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안거는 출가수행승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가자의 안거는 단지 명칭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올해 2024년 우안거를 행했다. 이를 ‘재가우안거’라고 했다. 재가자의 우안거를 말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안거를 난 것이다. 출가수행승이라면 법랍 이년(二年)에 해당된다.
올해 재가우안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백권당에서 보냈다. 사무실을 반으로 나누어 개인수행공간으로 만든 공간에서 안거를 한 것이다. 매일 행선과 좌선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번 안거에서는 좌선을 삼십분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작년에는 한시간 앉아 있었다. 시간을 줄인 것은 재가안거의 한계 때문이다. 고객사 담당들이 출근하는 오전 아홉 시 이전에는 행선이든 좌선이든 마쳐야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행선과 좌선이 끝나면 후기를 썼다. 후기를 쓰는 것도 안거의 주요한 일정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행선과 좌선을 하고 후기를 쓰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 버린다.
안거기간 동안 하루 일과 가운데 오전은 수행으로 보냈다. 글쓰기 하는 것도 수행으로 본 것이다. 업무는 점심식사 후에 보았다. 하루일과를 오전, 오후, 저녁, 취침으로 본다면 하루일과의 사분의 일은 청정하게 보낸 것이다.
오전은 귀를 청정하게 보냈다. 뉴스를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은 것이 가장 크다. 아침에 뉴스를 접하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다. 행선과 좌선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이번 안거가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안거 중에 일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끊어 버렸다는 것이다. 안거가 시작되자 음악을 끊어 버렸다. 또 하나는 안거 중에 유튜브를 끊어 버린 것이다.
재가의 우안거는 한계가 있다. 하루종일 안거에 들 수 없으므로 오전만 안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후가 되면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특히 유튜브가 문제가 되었다.
티브이(TV)를 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일방적으로 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유튜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본다. 이런 점에 있어서 유튜브는 공중파 방송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세 치 혀에 녹아난다는 것이다.
음악을 끊고 유튜브를 끊으니 세상이 조용한 것 같다. 더 이상 자극적인 것은 없다. 오전의 청정했던 마음이 오후에도 유지되고자 했다. 하루 종일 청정한 마음이 유지된다면 선원에서 사는 것과 다름 없다.
재가우안거로 인하여 커다란 생활의 변화를 맞이 했다. 안거는 청정한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오후까지 확산 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저녁까지 확대한다면 하루 종일 청정한 삶을 살 수 있다.
안거를 하기 전과 안거를 하고 난 후의 변화는 크다. 스스로 안거에 들어가 살다 보니 삶의 패턴이 바뀌게 되었다. 일체 감성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담마에 대한 것만 한다.
올해 2024년 우안거는 기록으로 남았다. 행선과 좌선을 마치면 거의 매일 글을 남겼다. 특히 행선을 마쳤을 때 모니터의 하얀 여백을 대하면 진실된 글쓰기가 되는 것 같았다. 마치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글이다.
2024년 재가우안거에 대한 기록에 대하여 ‘141 위빠사나수행기 VII 재가우안거’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141’이라는 숫자는 생애통산 141번째 책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VII’이라는 숫자는 위빠사나수행기로는 일곱 번째 책이라는 의미이다.
수행기에는 모두 63개의 글에 585페이지에 달한다. 사진은 거의 싣지 않았다. 글자는 폰트 사이즈 10으로 작게 해서 가능하면 페이지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한국테라와다불교 2024년 우안거 입재법회
2. 2024년 재가우안거를 시작하며
3. 명상은 정신이 맑은 아침에
4. 저열한 구함과 고귀한 구함
5.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하기
6.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7. 대상과 새기는 마음이 붙어 있는 것처럼
8. 담마와나선원 가는 날에
9. 일주일에 한번은 비워주는 것도
10. 새김은 전천후 수행용어
11. 위빠사나수행의 이익 여섯 가지
12. 찰나의 마음 하나됨을 위하여
13. 수행자의 웃음
14. 완전히 달라진 좌선 전과 후의 마음
15. 로또맞기 보다 어려운 위빠사나 지혜
16. 위빠사나의 정견과 정사유
17. 명상을 생활화 하고자
18. 갈 때는 간다고 분명히 알아야
19. 위빠사나 하다가 피곤하면 어떻게 쉬어야 하나
20. 머리맡 마하시 사야도 법문집
21. 인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
22. 노년수행이 어려운 것은
23. 백권당 금강좌(金剛座)
24. 마하시 사야도의 논서를 등불로 삼아
25. 나마루빠(名色)에 대하여 명칭과 형태로 보면
26.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윤회를 부정할까?
27. 저녁 한끼 안 먹었다고 해서
28. 능행스님의 글을 받고
29. 야간에 좌선하기
30. 사무실 개인수행공간
31. 마음의 달이 떠오르기를
32. 더 이상 음악을 듣지 않는다
33. 명색으로 환원하여 세상바라보기
34. 새김이 저절로 될 때
35. 음식절제 하는 것도 수행
36. 행선도 재미있을 수 있다
37. 백권당으로 가는 길 걷기명상하기
38. 의미 없고 무가치해 보이는 일을 바보처럼
39. 어떻게 해야 죽음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40. 통증이라는 손님
41. 새기고 또 새기고 되새김하며
42. 언하대오(言下大悟
43. 현재 조건에 만족하는 삶
44. 약설지자, 상설지자, 제도가능자, 선업토대자
45. 자애를 기반으로 한 우정
46.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은 서로 묶여 있을까?
47. 경 외우기가 가장 어려웠다
48.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49. 나도 자선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
50. 아무리 찾아봐도 관찰자는 없네
51. 어떻게 해야 사업을 잘 할 수 있을까?
52. 분리된 것처럼 몸 따로 정신 따로
53. 지금 이순간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54. 느낌은 있지만 감수자(感受者)는 없다
55. 유튜브 없는 세상 이틀째
56. 서 있을 때 스캔하는 방법
57. 쪼개고 또 또 쪼개다 보면
58. 주선(住禪)을 어떻게 할 것인가
59. 명색으로 먹기
60. 우안거 해제법회
61. 빤냐와로바라기가 되어
62. 천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63. 그대는 지금 명색을 새기고 있는가?
우안거기간동안 매일매일 행선과 좌선을 했다. 어떤 날은 수행이 잘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잘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기억할만한 체험도 있었다.
이번 안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스승 없이 행했다. 그러나 스승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하시 사야도의 논서를 스승으로 삼았다. 특히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수행지침서대로 따라 해 본 것이다.
수행은 홀로 하는 것이다. 수행은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다. 깨닫는 것도 홀로 깨닫는 것이다. 설령 스승이 있다고 해도 결국 홀로 깨쳐야 한다. 이는 암탉이 “오!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이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텐데.”(M16)라고 염려하는 것과 같다.
선종에서는 ‘줄탁동기 (啐啄同機)’를 말한다. 마치 어미 닭이 부리로 쪼아 병아리 부화를 도와 주듯이, 스승이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초기경전을 보면 어미 닭이 부리로 쪼아 알을 깬다는 말은 없다. 병아리는 자신의 부리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있다. 이 소설은 맛지마니까야의 ‘병아리부화비유’를 모티브로 해서 쓰여진 것이다. 병아리가 부리로 알껍질을 깨고 나오듯한 존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이어 우안거에서 중점을 둔 것이 있다. 아직 위빠사나수행 초보 단계이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은 명색을 구분해서 새기는 것이다.
명색구분지혜는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가운데 1단계에 해당된다. 이 지혜가 생기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지혜이든지 삼매가 받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에서는 “명상에서 광대한 지혜가 생기고 명상하지 않으면 광대한 지혜가 부서진다.”(Dhp.282)라고 했다.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하면서 어느 때 삼매가 형성되었다. 삼매가 형성되면 새김(sati)이 좋아 지게 된다. 마치 대상에 들러 붙듯이 정신과 물질 또는 물질과 정신을 새기는 것이다.
어느 때는 새김이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하여 목차 60번 글에서 “오늘 아침 행선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분리 된 것 같았다. 마치 제3자가 걸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물질 걸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로보트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2024-10-14)라고 써 놓았다.
어떤 날은 통증을 마치 제삼자 보듯 관찰했다. 다리저림통증과 마음을 분리한 것이다. 통증은 통증이고 마음은 마음인 것이다. 마치 남의 다리 지켜 보듯이 보았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에 대하여 목차 52번 글에서 “다리에 통증이 발생 했을 때 남의 다리 보듯 해야 한다. 이렇게 느낌에 대하여 제3자의 위치에서 관찰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 이후 어떤 통증이나 가려움, 뻣뻣함 등 갖가지 몸으로 인한 괴로움이 발생되어도 나의 것이 아니라고 알게 된다. 오늘 이런 경험을 했다.오늘 이런 경험을 했다."라고 써 놓았다.
삼개월 동안 재가우안거 하면서 여러 가지 것을 경험했다. 어떤 날은 배의 부품과 꺼짐이 분명하게 보았다. 특히 부품과 꺼짐 사이에 정지가 있는데 선명했다. 목차 63번 글에서 “오늘 좌선하면서 하나 새롭게 본 것이 있다. 그것은 배의 부품과 꺼짐 사이에 있는 멈춤을 본 것이다.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새김이 분명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품과 꺼짐 사이에 분명히 멈춤이 있었다. 길지는 않다. 약 0.5초 정지한 듯한 기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품, 정지, 꺼짐, 정지, 부품 순으로 진행 되었다” (224-10-17)고 써 놓았다.
이번 안거에서 행선에 대한 여러 실험이 있었다. 나름대로 행선에서 집중을 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본 것이다. 육단계 행선에서 명칭 붙일 때 “떼, 들, 밀, 밀, 밀, 내, 딛, 누”라고 여덟 단계로 진행해 보았다. 이는 발을 떼고, 들고,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고”라는 여섯 단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머리 글자만 따서 명칭붙인 것이다. 특히 밀 때 “밀, 밀, 밀”이라고 세 번 명칭 붙였다. 이동할 때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행선에서 서 있을 때도 명칭을 만들어 보았다. 마음을 눈, 코, 입, 가슴, 배, 골반, 허벅지, 장딴지, 발바닥으로 둘 때마다 실재하는 성품을 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눈 촉촉”, “코 바람”, “입 다뭄”, “가슴 벌렁”, “배 불룩”, 골반 훵훵”, “허벅지 뻐근”, “장딴지 뻣뻣”, “발바닥 딱딱”이라고 명칭 붙여 본 것이다.
테라와다불교 삼개월간의 우안거를 마쳤다. 재가자의 우안거는 출가자의 안거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재가자가 아무리 안거를 많이 해도 출가자의 우안거 한번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수행승이 어려도 깨달은 님의 가르침에 전념하면, 구름에서 벗어난 달처럼 이 세상을 밝게 비춘다.”(Dhp.382)라고 했다.
사미승은 나이가 어리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한철만 안거에 들면 성자가 될 수 있다. 번잡한 삶을 사는 재가불자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 미치지 못한다.” (Stn.221)라고 했다.
재가자의 안거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주어진 환경 가운데 해 보고자 노력했다. 사무실을 반으로 나누어 수행공간을 만들고 매일 아침 행선과 좌선을 했다. 그리고 매일 후기를 작성했다. 그러나 스승 없이 수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하시 사야도의 논서를 스승으로 삼아 명색을 구분해서 새겼을 때 어는 정도 성과는 있었다.
작년과 올해 연이은 안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집착된 무더기에 대하여 정신과 물질로 구분해서 새기는 것을 말한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일체의 정신-신체적 과정 가운데
모든 것에 나의 것이라는 것은 없다.
나의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 않으면,
실로 그가 수행승이라고 불리리.”(Dhp.367)
명색과정을 알면 나의 것이 없다고 했다. 명색과정은 수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해서 새겼을 때 어떤 변치 않는 실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나로 인해 발생된다. 나만 죽이면 문제는 없어진다. 그런데 위빠사나 수행은 나를 없애는 과정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명색을 구분해서 따로따로 새겼을 때 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나라 할만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건강과 이 젊음이 천년만년 계속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아 간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눈 앞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감각적 즐거움에 탐닉해서 살아 간다. 그러다가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누구도 기대수명까지 살도록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행하라. 내일 죽음이 올지 누가 알리오. 우리가 많은 군대를 거느린 죽음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하루를 살더라도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사는 자는 행복하다고 적멸에 든 성자는 선언한다.”(M131)라고 말했다.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해야 한다. 이왕 할 일이라면 잘 해야 한다. 법구경에서도 “할 일이 있으면 행해야 한다. 그것을 향해 단호히 나가야 하리.”(Dhp.313)라고 했다. 내일 죽음이 올지 모른다면 시간이 없다.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때 그때 잘 관찰해야 한다. 바로 이런 것이 명색을 구분해서 새기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안거에 이어서 화두는 명색을 구분해서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김(sati)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수행에 있어서 명색을 구분해서 새기는 것도 새김이지만, 더 나아가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는 것도 새김으로 보고, 또한 수행체험을 기억하고 사유하는 것도 새김으로 본 것이다.
2024년 우안거가 끝났다. 재가자가 생업을 하면서 생활속에서 안거를 나 보았다. 느리지만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 만약 기회가 되어 한철 선원에서 살게 된다면 힘이 될 것 같다.
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만행하는 것은 아니다. 안거가 끝나도 현실의 삶을 떠날 수 없다. 안거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오전은 수행과 글쓰기로 보낸다. 더구나 음악도 듣지 않고 유튜브도 보지 않는다. 일체 감각을 자극하는 것,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멀리 한다. 재가에 살지만 출가수행자처럼 살고자 한다.
2024-11-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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