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권 경전암송 II, 경을 외울 때는 목숨 걸고
삶에 의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명상을 하면 된다. 번뇌가 가득할 때 명상을 해야 한다. 명상은 만병통치약과도 같다. 마음을 하나로 집중 했을 때 근심, 걱정, 슬픔은 사라진다.
재가우안거 73일째이다. 오늘은 9월의 마지막날이기도 하다. 하늘은 높고 온도와 습도는 적당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날만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날은 오래 가지 않는다. 또다시 혹독한 계절을 맞이 할 것이다. 추운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더운 것은 참기 힘들다. 올 여름이 그랬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호시절이다.
늘 아침은 새롭다. 매일 부활하는 것 같다. 오늘도 성공적인 하루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뉴스보기에 달려 있다.
아침에 뉴스를 보지 않는다. 몇 년 되었다. 일체 TV를 보지 않는다. 오전에는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보지 않고, 유튜브도 보지 않는다.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고 후기를 쓴 다음에 열어 본다.
이제 명상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아침에 명상하지 않으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행선을 한다.
행선을 하면 당당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는 사라지고 물질과 정신만 남은 상태를 말한다.
물질이 나일 수 없다. 정신이 나일 수 없다. 명상을 하면 나는 사라진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했을 때 무아의 경지가 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되는 것이다. 당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땔감에서는 불이 난다. 소똥 말린 것에서 나는 불이나 고급전단향나무에서 나는 불이나 화염, 광명, 광채에 있어서는 똑같다. 세상에 미천한 자도 명상을 하면 당당해진다. 세상에 왕권이 부럽지 않다.
한발한발 발을 옮길 때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다. 발을 밀 때 느낌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를 엑스터시, 절정이라고 말해야 한다. 단지 운동성만 보았을 때 희열과 행복을 경험한다.
행선할 때 발모양을 보아서는 안된다. 발 이미지를 떠 올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행선할 때는 눈을 감고 한다. 단지 발의 움직임만 보는 것이다.
발 모양은 사라지고 움직임만 남았을 때 무아의 상태가 된다. 언어적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발을 들어서 밀 때 절정에 이른다. 마치 미끄러지듯이 발을 쓰윽 밀 때 날아가는 것 같다. 이런 맛에 행선하는지 모른다.
좌선을 하기 전에 반드시 행선을 한다. 어쩌면 좌선을 잘하기 위한 예비동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행선을 하면 법의 성품을 보기에 이것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잡을 수 있다. 위빠사나 1단계 지혜인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와 위빠사나 2단계 지혜인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 이렇게 두 가지가 성취되는 것이다.
행선을 하면 한꺼번에 두 가지가 성취된다. 위빠사나 1단계와 2단계 지혜이다. 특히 1단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는 칠청정 가운데‘견해청정’에 해당된다. 나라는 견해가 사라지는 것이다. 집착된 무더기를 정신과 물질로 구분하여 새겼을 때 나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행선을 하는 목적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큰 것이 있다. 그것은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오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좌선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행선에서 형성된 삼매를 그대로 가져와서 더 심화하면 된다.
아침에 이런저런 생각에 기분이 침체 되었다. 그러나 행선과 좌선을 함으로 인하여 새로운 기분이 되었다. 명상 전과 명상 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런 맛에 수행하는지 모른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오늘 마땅히 해야 할 일은 137번째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 만들기 준비는 되어 있다. 블로그에서 추출된 글을 한데 모아 놓았다. 그리고 목차를 붙여 놓았다. 이제 서문만 쓰면 된다. 세상에 이렇게 책 만들기가 쉽다. 나만의 책 만드는 방식이다.
이번에 만드는 책은 경전암송에 대한 것이다. 경전암송 두 번째 책으로 책 제목을 ‘137 경전암송 II’로 붙였다. 137번째 책으로 2021년 9월부터 2023년 6월까지 1년 9개월간의 기록이다. 목차에는 49개의 글이 있고 302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오늘도 나 자신과 싸우며
2. 공작같은 삶보다는 백조같은 삶을
3. 겟투(Get two) 산행, 백운산 정상에서
4. 매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려거든
5. 사수념(死隨念) 다섯 게송을 외우고자
6. 마라낫사띠(死隨念) 원문
7.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8.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게송외우기와 엄지로 글쓰기
9. 즉각적 결과를 가져오는 게송외우기
10. 죽음명상 3번 게송을 외우며
11.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 한몸 기꺼이
12. 십이연기분석경 원문
13. 십이연기분석경외우기 대장정
14. 빠알리 경을 외우다 보니
15. 인생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지만
16. 내가 수만권 책이 부럽지 않은 것은
17. 태어남을 왜 재생이라고 하는가?
18. 걱정때문에 잠 못 이루고
19. 경을 외울 때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포토메모리로
20. 세상은 내뜻대로 되지 않지만
21. 연기송 제대로 이해하기
22. 십이연기분석경을 외우고
23. 경을 암송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24. 몸과 마음을 극적 반전시키려면
25. 내 나이가 어때서? 경 외우기에 딱 좋은 나이인데
26. 빠다나경 원문
27. 빠다나경 외우기 시동을 걸고
28. 아름다운 꿈을 꾸려 거든
29. 매일 내면의 제사를
30.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서 가치를 찾고자
31. 내가 게송외우기에 올인하는 것은
32. 괴로움의 끝을 보지 않고서는
33. 악마의 군대는 마음의 오염원
34. 돈도 안되는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것은
35. 손가락 튕기는 순간 무상을 지각할 수 있다면
36. 새벽을 행선과 암송으로
37. 내가 일용할 게송
38. 경을 암송할 때는 원문으로 해야
39.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게송 외우기가
40. 길을 걸을 때도 암송하고
41. 암송의 새로운 발견
42. 일상이 매일매일 새로운 것은
43. 경을 암송한 힘으로 행선 했을 때
44. 경을 암송하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45. 새벽에 암송하고 행선하고 좌선하기
46.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뒤숭숭할 때
47. 호텔에서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
48. 암송으로 극적 상황반전을
49. 일생동안 내가 가장 잘한 것은
여기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부가 제일 어려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 재가불자가 감히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런 수행 저런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수행한다고 말한다. 이때 다리 꼬고 앉아 있는 것을 연상한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참선은 여러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의 수행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러저러한 다양한 수행방법이 있다. 참선만 수행이 아니다. 행선도 수행이다. 몸을 푸는 정도의 포행과는 다른 것이다. 걸음걸이를 해서 법의 성품을 본다면 걷는 것도 수행인 것이다. 그래서 행선(行禪)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다.
수행이라 하여 좌선과 행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변화하게 하는 것은 모두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절 하는 것도 수행이다. 매일 108배 하는 것도 수행인 것이다. 그러나 108배가 단지 허리를 굽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면 굴신운동이라 해야 할 것이다. 108배가 수행이 되려면 움직임 과정을 새겨야 한다. 마치 허리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할 수밖에 없다.
사경하는 것도 수행이다. 펜을 이용하여 한자한자 정성을 다해 기록하는 것도 수행인 것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잘못 쓸 수 있다. 실수 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집중 할 때 수행이 된다. 뜻을 알고 쓰면 더 좋을 것이다.
경을 읽는 것도 수행이다. 이른바 독송수행이다. 경전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다. 자신의 소리를 자신이 들으면서 읽는 것이다. 뜻을 새기면서 독송한다면 이것도 훌륭한 수행이 된다.
암송하는 것도 수행이다. 이를 주력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철야기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뜻도 모르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암송한다면 단지 소리 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뜻을 새기면서 암송해야 효과가 있다.
세상에 수행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해 보았다. 행선과 좌선도 해보고, 절수행도 해보고, 사경수행도 해보고 암송수행도 해보았다. 이 가운데 가장 가장 어려운 것은 ‘경외우기’라고 본다.
암송하기 위해서는 먼저 외워야 한다. 경을 외운 다음에 매일 암송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을 외우는 과정 자체도 수행이라는 것이다.
암송을 하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경을 외우는 과정도 수행이고, 경을 외우고 나서 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암송하는 것도 수행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경을 외우는 것이 가장 힘들다.
수행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외우는 수행이다. 경을 외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쥐어 짜내서 외우고 또 외워야 이루어진다. 이렇게 본다면 여러 수행법 가운데 “경 외우기가 제일 힘들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입문 이래 수많은 경을 외웠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한 2004년 첫 해에 금강경을 외웠다. 무려 5,249자에 달하는 경을 한달 보름만에 외웠다.
무엇이든지 처음 하기가 어렵다. 한번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 금강경을 외우고 나자 외우는 데 자신이 붙었다. 이후 반야심경, 천수경, 법성게를 외웠다. 대승불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경이나 게송을 외운 것이다.
초기불교를 접하고 나서도 경 외우기는 계속 되었다. 이른바 테라와다 삼경이라 불리우는 라따나숫따(寶石經, Sn2.1), 멧따숫따(慈愛經, Sn1.8)), 망갈라숫따(祝福經, Sn2.4)를 빠알리 원문으로 외웠다.
수많은 빠알리 경을 외웠다. 특히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해당되는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관련된 경도 외웠다. 사성제와 관련하여 ‘초전법륜경’(S56.11)을 외웠고, 팔정도와 관련해서는 ‘팔정도분석경’(S45.8)을 외웠고, 십이연기와 관련해서는 ‘십이연기분석경’(S12.2)을 외웠다.
경을 외울 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엄청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외울 수 없다. 이를 ‘결정바라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인가? 이는 “결정하면 그 결정에서 흔들리지 마라, 산이 모든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그대도 자신의 결정에 흔들림 없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Jat.I.24)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한번 외우기로 마음 먹었다면 목숨 걸어야 하는 것이다.
십바라밀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해도목숨걸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가장 아끼는 것을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목숨보다 더 아끼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승적 보시에 의한 초월의 길이다.”(Jat.I.25)라고 했다.
경을 외우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경을 외우는 기간 동안 오로지 경 외우기에 몰두 해야 한다. 낮이나 밤이나 경을 외워야 한다. 틈 나는 대로 외워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경을 외울 수 없다. 목숨 걸고 경을 외우는 것이다.
경을 외울 때 외우는 방법이 있다. 경에 열 개의 게송이 있다면 하루에 한 게송씩 외우는 것이다. 하루에 한 게송 외우기 때문에 열흘이면 끝날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새로운 게송을 외울 때는 이전에 외운 게송을 확인하고 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외우다 보면 열 번째 게송을 외웠을 때 모두 다 외우는 것이 된다.
경을 외울 때 무척 힘이 든다. 그것은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문이라면 어느 정도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빠알리어는 마치 암호문을 외우는 것처럼 힘이 든다.
빠알리 게송을 외울 때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아니 뼈에 새겨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백번 발음을 해야 한다. 입에서 자동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뜻까지 파악하며 외워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된다.
빠알리 경을 외울 때는 밤낮으로 외웠다. 틈나는 대로 외웠다. 걸으면서도 외우고 차를 타고 갈 때도 외웠다. 심지어 등산할 때도 외웠다. 게송 문구를 외우며 한발한발 올라 간 것이다. 하루 일과를 외우기로 보낸 것이다.
한번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한다. 한번 경을 외우기로 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한다. 마침내 경을 다 외우게 되었을 때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을 다 외우고 났을 때 마치 득도한 것 같았다. 그래서 “경을 암송하고 나면 상쾌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을 때 “사두!사두!사두!”하는데 나에게 하는 것이다. 애써 이루어낸 것에 대하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목차 40번 글, 2022-05-23)라고 써 놓았다.
경 외우기 하면 여러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목표를 정해 놓고 낮이나 밤이나 외웠을 때 스스로 대견해 보인 것이다. 이후에는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외운다. 애써 외웠는데 한번 외운 것으로 그친다면 아까운 것이다.
경을 외우고 나면 이후에는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 매일 암송했다. 틈 나는 대로 암송했다. 특히 행선과 좌선을 앞에 두고 암송하면 효과가 있다.
명상을 할 때는 집중을 요한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때 암송하면 효과적이다. 왜 그런가? 암송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집중된 힘으로 행선이나 좌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암송은 명상에 앞서 예비수행으로도 적당한 것이다.
수많은 수행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아마 경외우기일 것이다.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외울 수 없다. 외우는 과정 자체가 수행인 것이다. 일종의 고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 외우고 나면 매우 청량했다. 마치 큰 일을 한 것 같았다.
일생을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글을 쓴 것은 자랑할만하다. 그러나 힘든 일은 아니다. 단지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경전을 읽는 것도 힘든 것은 아니다. 단지 읽기만 하면 된다. 행선이나 좌선도 힘든 것이 아니다. 단지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경 외우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있다. 그것은 경과 게송 외우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목차 48번 글에서 “일생동안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현시점에서 경과 게송을 외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최후의 순간을 맞아도 여한이 없다.”(2023-06-15)라고 써 놓았다.
지난 20년동안 수많은 경을 외웠다.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낮이나 밤이나 틈 나는 대로 외웠다. 외울 당시에는 모두 암송했지만 지금은 암송할 수 없다. 다만 기억은 남아 있다.
외운 것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 몸과 마음 어디엔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다시 외우기를 하면 쉽게 복원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외운 것은 무형의 재산이 된다. 죽어서도 가져 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배움의 재물이다.
불교입문이래 수많은 글을 썼다. 수많은 경전을 읽었다. 그리고 수많은 경을 외웠다. 요즘에는 행선과 좌선을 하고 있다. 매일 밥 먹듯이 글을 쓰고, 경전을 읽고, 암송을 하고, 명상을 한 것이다. 이런 것을 누가 알아 줄까? 누가 증인이 되어 줄까? 아마 허공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2024-09-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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