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로서의 로고스와 다르마 또는 담마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2. 11. 12:29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로서의 로고스와 다르마 또는 담마

 

 

 

 

 

 

 

 

 

 

사람들은 두 개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세상은 현실공간이고 또 하나의 세상은 가상공간이라 불리우는 인터넷세상이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살아 가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불교 역시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에 공존 하고 있다. 현실 공간에 사찰이 있다면 사이버공간 또한 부처님과 부처님법이 있는 홈페이지나 카페, 블로그가 있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는 상가(sangha)는 존재 하지 않는다. 굳이 상가가 존재 한다고 말한다면 홈페이지나 카페, 블로그의 주인장을 승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중의 하나는 현실공간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느 카페나 블로그에 가면 마치 사찰의 현장을 그대로 모셔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들어가자 마자 목탁소리가 나고 독경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르마와 담마

 

불교에도 여러불교가 있다. 중국불교, 티벳불교, 한국불교등 나라마다 불교가 있고 상좌불교, 대승불교, 밀교등 교리에 따라 서로 다른 불교가 혼재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승불교권 국가이지만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배우고 있다. 그러나 스님들이나 학자등 불교의 주류 세력은 여전히 대승불교신봉자들이다. 따라서 사용 하는 있는 용어 또한 대승불교의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나 중국불교의 영향에 따른 한자어이다.

 

그런 용어 중에 하나의 예를 든다면 다르마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dharma)’라고 한자어로 달마(達磨)’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불교나 상좌불교에서는 이를 빠알리어로 담마(dhamma)’라 부른다. 다르마와 담마 뜻은 같지만 약간 다르게 발음 되는 담마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담마의 개념에 대하여 알아 보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법의 명칭

영어표기

  

  

대문자 담마

Dhamma

부처님이 설한 8 4000법문

초기경전(니까야)

대기설법

소문자 담마

dhamma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제법)

구경법(아비담마)

법대로 설명

 

 

담마가 두가지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부처님이 설한 법문을 말하는데 영어로 표기 할 때 대문자 ‘D’를 쓰고, 또 하나의 의미는 구경법을 말하는데 소문자 ‘d’를 써서 구별한다.

 

구경법(빠라맛따담마, paramatta-dhamma)이란 고유한 성질을 갖는 법을 말하는데 모두 82법이 있다. 고유한 성질이란 찰라생 찰라멸하는 유위법을 말한다.

 

초기불교에서 담마라고 이야기 하면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인 구경법을 말한다. 그런데 이 법이 왜 중요하냐 하면 불교의 최종목표인 열반과 해탈에 대하여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법은 일어 났다가 사라진다는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상하고 무아인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구경법이 아닌 법을 개념법(빤얏띠담마, pannattipdhamma)’이라 부르는데  명칭, 술어, 개념 같은 것이다. 예를 든다면 야훼, 알라, 아트만, 진아와 같은 것이다. 이런 개념은 찰라생 찰라멸 하는 구경법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 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관념이기 때문에 무상하다거나 무아인 것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르마의 의미는

 

불교tv에서 김종욱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물론 인터넷에 저장 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김종욱교수는 대승불교권 학자임을 알 수 있었다.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알 수 있다. 법을 다르마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김종욱 교수는 다르마의 개념에 대하여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logos)’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세상의 이치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라 말하고 인도에서는 이를 다르마라고 말한다.

 

세상의 이치로서 설명 되는 다르마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김종욱 교수는 다음의 4가지로 요약 하였다.

 

 

 

다르마의 분류

   

 

1

사회질서로서의 다르마

힌두다르마

카스트제도

2

우주질서로서의 다르마

불교다르마

연기법

3

제법으로서의 다르마

사물이나 사건

구경법

4

불법으로서의 다르마

부처님의 가르침

경전, 교리

 

 

네가지 중에 셋째와 넷째는 앞서 설명한 소문자 담마와 대문자 담마의 이야기와 일치 한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의 사회질서로서의 다르마는 인간사회를 유지 하고 지탱하는 사회규범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카스트를 들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힌두다르마라는 것이다. 반면에 우주질서로의 다르마는 연기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우주질서로서의 다르마는 불교다르마이다. 세번째의 제법으로서으 다르마는 사물이나 사건과 같은 제법으로서의 다르마이고, 네번째의 불법으로서으 다르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나 교리라 볼 수 있다.

 

힌두교는 왜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되었을까

 

힌두교에서도 다르마라고 하고 불교에서도 다르마라고 하는데 왜 힌두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되었을까. 바로 그 것은 힌두교가 민족종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예로 카스트제도를 들고 있다. 인도에서만 통용 되는 카스트에 대하여 타 민족이 받아 들일 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오로지 인도민족만 믿는 민족종교의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가 세계적 종교가 되었던 이유는 카스트를 부정 하고 연기법이라는 보편적 진리에 기초 하였기 때문이다. 카스트를 부정 한 대표적인 예는 상가이다.

 

상가를 영어로 코뮤니티(community)라 한다. 코뮤니티는 공동체를 말한다. 이 공동체는 카스트를 부정 할 뿐만 아니라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 평등한 사회이었다. 그리고 화합의 사회이었다. 이와 같이 모두 평등하고() 화합()의 상징은 상가는 그 때 당시 혁명적인 조치 이었으며 바로 이런 정신이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 되어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오로지 상가 내부에 한정 되어 있었고 세간은 여전히 카스트에 유지 되는 사회이었다는 사실이다.

 

신조차 변할 수 밖에 없는

 

우주질서로서의 다르마는 연기법을 말한다. 연기를 산스크리트어로 프라티티야사뭇파다(pratityasamutpada)라 한다. 참고로 빠알리로는 빠띠짜사뭇빠다(paticca-samuppada)라 한다. 프라티티야사뭇파다(pratityasamutpada)조건에 의하여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기라 말한다. 이 연기를 영어로 말하면 interdependece이다. 상호의존이라는 뜻이다. 이 말 뜻은 끝없는 변화와 역동성을 말한다.

 

왜 우주 만물은 끝없이 변화 하는 것일까. 그런 이유를 든다면 다음의 세가지로 볼 수 있다.

 

 

 

 

 

 

1

사물의 변화

성주괴공(成住壞空)

우주

2

몸의 변화

생노병사(生老病死)

육체

3

마음의 변화

생주이멸(生住異滅)

정신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미 형성 되어 진 유위법(상카따담마, sangkhata-dhamma)은 변하기 마련이다. 단 형성 되어 지지 않은 무위법(아상카따담마, asangkhata-dhamma)인 열반은 제외 된다. 따라서 우주도 언젠가는 무너져 공하게 될 것이고, 육체 또한 죽어 없어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에 마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순간적으로 머물다가 사라지는 것 또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되어진 유위법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무상하다는 것은 영원불변 하다는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신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순간 순간 변하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관념의 산물인 신 역시 시간과 함께 변하는 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럽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 하기에 이른 것이다.

 

무아와 공의 관계는

 

이렇게 만물이 무상 하다 보니 고정된 자아 또한 있을 수 없다.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은 나 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름만 동일한 나가 있을 뿐이지 그 때 당시의 실물과 지금의 실물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라고 하는 자아를 붙잡아 매어 두려고 한다. 그 말은 결국 변화를 거부 하고 죽기 싫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소유 하고 놓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집착 하게 되고 다투고 분쟁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치유책에 무아 밖에 없다. 변한다는 것을 인정 하는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단지 조건에 따라 발생되고 사라지고 또 조건에 따라 상속 되는 연기적 흐름을 아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 설한 무아사상이다.

 

이런 무아사상이 더욱 더 발전 된 것이 공()사상이다. 용수에 의하여 완성된 공사상이 대승불교의 가장 핵심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엄밀히 말한다면 무아와 공은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즉 무아는 공인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보면

 

세상의 이치로서 다르마는 서양철학의 로고스와 유사 하다. 그러나 서양인이 본 세상의 이치는 불교의 이치와 다르다. 서양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로고스로 보고, 그 이치가 드러난 것을 자연 즉 피지스(phisis)’로 보기 때문이다. 즉 로고스와 피지스의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갈라져 보다 보니 세상 밖에서 즉, 자연 밖에서 이치를 찾게 된다. 그런 이치는 자연을 초월한 초월적 이치일 수 밖에 없고 신의 섭리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서양의 로고스는 자연과학과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는 세상의 이치를 다르마로 보는데 그런 이치가 드러난 것도 다르마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과 충돌할 일이 없다. 이것은 철학적 센스가 무척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 한다.

 

세상의 이치를 세상 밖에서 찾으려 하면 그 이치를 섭리라는 이름으로 절대화한 다고 한다. 이런 류의 사상은 유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바로 도()와 기()가 여기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다.

 

도가 로고스에 해당되고, 기가 피지스에 해당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런 사상은 더욱 더 발전 되어 이()와 기()로 정착 된다. 이런 이를 절대화 한 것이 주리론이다. 이런 관계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유 교

 

세상의 이치

로고스

(logos)

()

다르마

(담마, Dhamma, 불법, 경전)

이치가 드러난 것

피지스

(phisis)

()

다르마

(담마, dhamma, 제법, 구경법)

이치의 절대화

O

O

X

귀결

신의 섭리

주리론

무아(), 연기, 중도

 

 

 

표를 보면 서양사상과 유교의 이념이 일맥 상통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조선왕조 오백년간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상대를 멸망 시켜야 분이 풀렸는지에 대한 해답이라 볼 수 있다.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불교에서 세상의 이치를 절대화 하지 않고 무아 내지 공으로 보고 있다.  또 이치가 드러난 자연 또한 무아내지 으로 보는 것이다. 절대화 하지 않고 공()화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말은 또한 상대화 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

 

이치가 절대화 되는 순간 삶을 올가 매고 집착 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상태가 불교의 진리인 중도(中道)’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09-12-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