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오자이의 추억과 베트남 불교

담마다사 이병욱 2012. 2. 27. 18:05

 

아오자이의 추억과 베트남 불교

 

 

 

인터넷으로 불교음악 검색을 하다 보면 의외로 베트남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베트남 출신 블로거가 올린 불교음악동영상들이다. 그런 베트남 불교는 어떤 것일까.

 

어느 선교사의 글에서

 

베트남 불교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인터넷검색을 하였다. 검색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베트남이 선교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진출하여 베트남 국민들을 대상으로 선교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검색과정에서 어느 선교사가 올린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목은 베트남 불교에 대한 것이다. 베트남에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하여 작성된 글이다. 그런데 글을 보면 베트남에 대한 선교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선교전략

 

베트남이 불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선교전략이다. 그런 내용 중에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베트남의 불교가 프랑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인재양성과 사회구제사업 및 출판을 통한 포교에 힘썼는데, 이것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특히 각종교육사업의 실현으로서 현재 사이공시내에는 불교대학과 전문대학, 초급대학 등이 정규과정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살펴 볼 때 개신교에서도 타종교에 대한 훈련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즉 막연한 제자훈련이나 목표없는 협력이 아닌 확실한 전도와 간증을 통해 ‘적진(베트남 불교권)’을 교란시킬 수 있는 소수 정예를 양성하고 파송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 비교종교학과 엘렝틱스등은 필수 이다.

 

(임선생, 베트남 불교 , ‘베트남 및 세계선교 동역’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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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면 베트남에 대한 선교전략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눈의 띄는 말은 적진이라는 용어이다.  베트남불교권을 적진으로 간주한 것이다. 마치 선교사가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잘 훈련된 소수 정예 요원을 파송하여 불교가 다수인 베트남국민들을 개종시키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선교사들은 불교권 국가들에 들어가서 지역과 종족, 계층 등으로 세분화 한 다음 해당 분야에 대한 사전 연구를 바탕으로 선교전략을 수립하는데, 이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 하여 최대의 선교효과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개종을 목표로 하는 선교사들

 

선교사들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명확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불교권 국가들의 불교도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의 회교권 국가나 아프리카 등에 해외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 역시 개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개종을 목표로 하는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교회 역시 한국에서도 개종을 목표로 하는 선교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개신교도들이 불교를 타겟으로 하여 각종 훼불행위를 하고, 땅밝기 등으로 절 안마당은 물론 법당까지 들어와 기도행위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불교권을 공략하기 위하여 적진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듯이 한국내에서도 불교역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개종시켜야 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화쟁위원회에서는 종교평화선언이라는 것을 발표 하였다. 그 내용중에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한 번도 타 종교인을 개종시키기 위한 포교전략을 수립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나 있음직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베트남불교의 현황은

 

선교사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베트남불교의 현황은 어떤 것일까. 자료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 국민의 85%가 불교도로 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 Buddhism by country)에 따르면 베트남 총인구 8,800만명 중에 불교도는 85%로서 불교도가 무려 7,4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실려 있다. 이런 수치는 우리나라 불자들 보다 무려 7배 이상 많은 숫자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선교하는 선교사의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불자의 경우 명목상의 신자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실질적 불자수는 최소 1천만명(12.8%)에서 많게는 4,900만명(50%)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베트남의 테라와다, 커메불교

 

일반적으로 베트남불교는 대승불교로 분류 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어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5세기부터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 선불교등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의 주류불교는 대승불교이다. 그런 베트남 불교에 대승불교전통만 있는 것일까.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권으로 분류 된다. 동남아시아는 전통적으로 테라와다불교국가로 분류 되어 왔다. 남북이 길게 연결된 베트남에서 테라와다불교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대승불교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와 중부에서 융성하고, 사이공 이남의 메콩델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에서는 테라와다불교가 우세하다고 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베트남에는 두 개의 불교전통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교세는 매우 차이가 난다.

 

선교사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 불교는 최저치로 보았을 때 1천만명의 신도에 26,268명의 승려와 14,353개의 사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중 커메불교라고 불리우는 테라와다불교는 약 백만명의 신도와 1만명의 승려 그리고 440개의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베트남 내에서 대승불교대 테라와다 불교의 비율은 대략 10:1 인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싸워 이긴 베트남

 

한국과 베트남은 과거 똑같이 식민지시절을 겪었으나, 현재 한국은 기독교가 득세 하고 있고, 반면 베트남은 전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똑 같은 식민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고려대 조성택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요인으로서 일본식민지배를 들었다.

 

조성택교수에 따르면 과거 서세동점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지배국가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였으나, ‘재수없게도우리나라는 불교를 주류종교로 갖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제당시 민중들은 미국의 문화와 종교에 대하여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게 되었고, 동시에 미국의 문화는 선진적인 것으로, 미국의 종교는 문명의 종교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우리와 똑 같은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그 지배국가는 가톨릭을 신봉하는 프랑스이었고, 이어서 남부 베트남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이렇게 베트남을 지배한 나라의 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서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 제국주의 국가와 싸워서 이긴 나라가 베트남국민들이다. 더구나 세계 최강이라 불리우는 미국에 대항하여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는데, 그 결과 미국을 패퇴시켰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베트남 국민들의 긍지와 자존심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기독교의 교세

 

베트남에서 기독교의 교세는 미미하기 그지 없다. 선교사의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앞에는 아직도 빈약하다. 전 국민의 1-2%라는 미약한 개신교세, 아직도 개신교를 미국과 자본주의의 앞잡이로 보는 시각, 사회주의 정권의 현지 교회 및 선교사에 대한 불이익 행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리를 위한 헌신이 미약한 국민성 등은 개신교 선교의 큰 애로사항이다.

 

(임선생, 베트남 불교 , ‘베트남 및 세계선교 동역블로그에서)

 

 

현재 선교사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곳이 사이공이라 한다. 그런 사이공은 인구 700만명의 대도시로서 불교사원은 7,214개이고 개신교 교회는 43개라 한다. 또 불교승려는 5,799명이고, 개신교 목회자는 70명이라 한다. 사이공의 불교도는 164만명이고, 개신교도는 43,000명이라 한다. 이런 결과는 베트남 민족주의의 영향이 커서 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이유

 

베트남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고 미국의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 의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영향력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이에 대하여 한양대 이도흠 교수는 자신의 논문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③ 미군정 이후 미국에 종속된 한미관계

 

- 미국은 한국을 미국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하기 위하여 기독교로 사상적이고 종교적인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이후 한국이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실질적인 미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국 엘리트 및 대중의 기독교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가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조직적이고 열정적이고 극단적인 성향과 결합하면서 비정상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다.

 

(이도흠교수,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이도흠 교수.pdf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이도흠교수.docx

 

 

이도흠교수의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실질적인 식민지와 같다고 하였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 전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어야 출세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퍼져 기독교가 득세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상대로 하여 민족해방전쟁을 벌여 승리한 베트남의 경우 우리와 다르다. 미국의 종교에 의지 하지 않아도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선교사들이 베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 대한 기억 세 가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베트남은 매우 친숙하다. TV등에서 소개 되는 다문화 가정에 베트남 출신의 여성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출신의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최근 베트남 정부에서 한국남자의 연령조건을 50세 이하로 법으로 조정하였다는 뉴스도 들린다. 그런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있다. 주로 월남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처절한 목소리외로운 사나이가~”

 

월남에 관한 첫 번째 기억은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는 젊은 아저씨에 대한 것이다. 어렸을 적 살던 곳은 도시 변두리이었다. 소위 달동네, 산동네라 불리우는 곳이다.

 

산비탈에 집을 만들어 사는 동네에서 밤만 되면 구슬픈 유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주로 새벽에 듣는 노래는 늘 외로운 사나이가~”라는 가사가 들어간 배호의 노래이었다.

 

마치 배호의 목소리를 빼어 닮은 듯한 처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월남에 갔다 온 사람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월남에 갔다 온 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정신까지 이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젊은 아저씨는 늘 술에 젖어 살았다. 그리고 눈을 보면 마치 늑대의 것마냥 날카롭고 퀑한 것이 보통사람과 달랐고 거의 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월남 아가씨와 살림차려

 

두 번째로 월남하면 떠 오르는 사람은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이다. 그 아저씨는 고국에 처와 어린 세자녀를 남겨 두고 월남으로 출국하였다. 기술자로서 월남으로 돈 벌로 간 것이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아저씨가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 온 것은 월남이 패망하고 나서 몇 년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그런데 월남에 있을 때 월남 아가씨와 살림까지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까지 가졌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그 아저씨는 이혼하게 되었고 가정은 풍비박산난 것이다.

 

베트남의 ‘1번 도로

 

월남에 대한 세 번째의 기억은 먼 조카뻘 되는 사람이다. 항렬이 높다 보니 나이가 아저씨 뻘 되는 분이 조카뻘이 된 것이다.

 

그 분은 군대에 있을 때 월남에 파병되었다. 그래서일까 종종 월남에 대한 무용담을 많이 이야기 하였다. 그런 이야기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1번 도로아오자이에 대한 것이다.

 

월남에도 우리나라 국도처럼 도로번호가 있었던 것 같다. 1번 도로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그 도로를 이용하여 이동하거나 작전을 펼쳤던 것 같다. 월남이 남북으로 길쭉하다 보니 마치 동해안의 7번 국도 처럼 월남도 모든 도로가 1번 도로로 통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터넷으로 베트남의 1번도로에 대하여 검색하여 보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남부 중심도시 사이공을 잇는  총길이 1,750Km로서 베트남의 1번 국도라 한다.

 

다음으로 들은 이야기는 아오자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오자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었다. 그런 아오자이는 어떤 것일까.

 

아오자이는 어떤 옷일까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아오자이는 아오 다이(Ao dai)’로 명명되어 있다. 아오다이는 여성들에게 일상화된 베트남의 민속의상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아오다이는 판탈롱(즈봉)위에 사제복 스타일의 실크옷을 몸에 꽉 맞도록 입는 것( tight-fitting silk tunic)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그런 아오다이는 북부에서는 오우자이(ow zai)’라 하고, 남쪽에서는 오우야이(ow yai)’ 라 한다.

 

아오다이의 어원을 보면 아오(Áo)라는 뜻은 padded coat라는 뜻의 한자어 오(, 웃옷 오)에서 유래하였고, 다이(Dài)길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렇다면 아오다이는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을까.

 

아오다이는 18세기 후에( Huế)에서  Nguyn Lords에 의하여 궁정에서 입기시작한 것이 시작이라 한다.

 

 

 

 

18세기 Nguyen왕조의 공주

A Nguyen Dynasty princess in ao dai 

출처 : 영문판위키피디아 Ao dai

 

 

 

이후 아오다이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다섯조각으로 된 귀족의상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아오다이(ao dai)

Diagram that shows the parts of an ao dai 

Nút bm thân áo: hooks (used as fasteners) and holes

ng tay: sleeve

Đưng ben: inside seam

Nút móc kết thúc: main hook and hole

Tà sau: back flap

Khuy c: collar button

C áo: collar

Đưng may: seam

ng tay: sleeve

Kích (eo): waist

Tà trưc: front flap

 

출처 : 영문판위키피디아 Ao dai

 

 

 

베트남의 국민의상 아오다이

 

이런 아오다이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리패션에 영감을 받아 Cát Tưng과 하노이대학과 연계된 다른 디자이너들에 의하여 현대의상으로서 ngũ thân 으로 다시 디자인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Dancing high school students

출처 : 영문판위키피디아 Ao dai

 

 

 

 

 

졸업식

Graduation

출처 : 영문판위키피디아 Ao dai

 

 

 

이후 업데이트된 아오다이는 1950년대 국민의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사이공의 디자이너들에 의하여 몸에 붙는 버전이 만들어짐으로서 오늘날 베트남 여성들에게 보는 것 같은 아오다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아오자이

Contemporary ao dai designs

출처 : 영문판위키피디아 Ao dai

 

 

 

아오자이의 추억

 

이런 아오다이에 대한 학술적 설명에 따르면 베트남민족주의에 여성의 아름다음을 매단 옷(the dress ties feminine beauty to Vietnamese nationalism)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특히 “미스 아오다이 (Miss Ao Dai) “라는 이름으로  쇼나 볼거리등을 제공하였는데, 이는 베트남은 물론 베트남 너머의 해외로 까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인기를 확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아오다이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60년대와 1970년 초반까지가 매우 인기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시기가 월남전쟁이 발발하여 우리나라에서 파병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그 때 당시 월남에 갔다 온 사람들이 아오자이에 대한 향수를 말하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Ao Dai

 

 

 

불교를 적으로 간주하고

 

베트남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은 베트남 불교에 대하여 적진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베트남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는 말이 있다. 소극적인 방어나 현상유지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전과 전략에 의한 공격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념에서 베트남의 불교는 얼마든지 공략해 볼 수 있는 타겟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개념이 실제적인 선교사역으로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지역적인 팀을 이루고 협력과 연합을 통해 나아갈 때 우리의 승리는 보장된다고 믿는다.

 

(임선생, 베트남 불교 , ‘베트남 및 세계선교 동역블로그에서)

 

 

이것이 베트남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의 소명의식이다. 불교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마치 적과 전쟁하듯이 펼치는 작전전략에는 비장한 각오감마저 읽을 수 있다.

 

선교사의 소명의식

 

사이공에서 불교대 기독교가 단순 신도로만 비교해 보았을 때 164만명대 4만명에 지나지 않지만 선교사의 사명의식은 남다른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바이블 구절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명 앞에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사이공)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칠백만)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는 말씀을 묵상케 한다.

 

(임선생, 베트남 불교 , ‘베트남 및 세계선교 동역’ 블로그에서)

 

 

선교사는 바이블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사이공을 공략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보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 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베트남에 있어서 기독교를 종교로 가졌을 때 별 이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것과 비교된다.

 

기독교패권주의를 패퇴시킨 베트남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를 종교로 가졌을 경우 출세가 보장되고 여러가지 이점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베트남 국민들에 있어서 기독교를 종교로 가졌을 경우 그다지 이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견져 먹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을 때 굳이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베트남 국민의 경우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기독교패권주의’에 맞서 미국을패퇴시키지 않았던가!

 

베트남 국민들의 민족적 자부심으로 본다면 패권주의 종교에 대하여 기웃거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기독교는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르면 사견(邪見)’에 지나지 않는다.  영속론으로 특징지워지는 유일신교는 상견(常見)으로 분류 되기 때문에 단멸론과 함께 논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처럼 불교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삿된견해에 지나지 않는 기독교가 과연 베트남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

 

 

 

 

2012-02-27

진흙속의연꽃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이도흠 교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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