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명상음악

초여름 숲 속 키 높은 나뭇가지에 피어 난 꽃처럼, 부처님의 묘법 담마와라(Dhammavara)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0. 12. 12:14

 

초여름 숲 속 키 높은 나뭇가지에 피어 난 꽃처럼, 부처님의 묘법 담마와라(Dhammavara)

 

 

 

하루 일과를 음악과 함께

 

하루 일과를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세계적인 불교음악가인 황혜음(黃慧音)의 음악을 들으며 일터로 향한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자 마자 먼저 음악을 틀어 놓는다.

 

즐겨 듣는 음악이 몇 개 있다. 수 많은 음악을 수 년간 듣다 보니 적합한 음악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나 즐겨 듣는다. 음악은 Ratanasutta, Jayamangalagatha, Narsihagatha, Medicine Buddha, Manjushri 등으로 압축 되었다. 이런 음악을 아침부터 시작 해서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특히 일을 할 때 틀어 놓으면 매우 효율적이다.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나는 일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음악이 Ratanasutta Jayamangalagatha이다. 두 곡 모두 Imee Ooi(黃慧音) 음악으로서 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차분하고 안정된다. 때로 환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Ratanasutta의 경우 음악도 좋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좋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대한 예경과 찬탄으로 이루어진 Ratanasutta를 듣다 보면 저절로 신심이 생겨나는 듯 하다. 그런 Ratanasutta를 빠알리 원문으로 외운 바 있다. 모두 17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꽤 긴길이의 경을 빠알리어로 외웠을 때 참으로 감격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빠알리원문으로 뜻을 이해 하며 듣는다. 빠알리어는 부처님이 말씀 하신 언어로서 빠알리어 Ratanasutta를 듣다 보면 부처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듯 하다.

 

키 높은 가지에 피어난 꽃처럼

 

Ratanasutta 17개 게송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12번 째 게송(stn233)이다. 게송을 보면 다음과 되어 있다.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          와납빠굼베 야타- 풋시딱게
Gimh
ānamāse pahamasmi gimhe,          기마-나마-  빠타마스밍 기메

Tathūpama dhammavara adesayi         따투-빠망 담마와랑 아데새이

Nibbānagāmi parama hitāya,           닙바-나가-밍 빠라망 히따-
Idampi buddhe ratana
paīta         이담삐 붓데 라따낭 빠니-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이 게송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여름날의 첫 더위가 오면,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내듯,

이와 같이 열반에 이르는 위없는 묘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 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stn233)

 

 

여기서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내듯라는 구절은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번역을 보면 키 높은 가지에 피어난 꽃처럼이라 하였다. 관련 구절을 옮겨 보면 숲에서 여름 햇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키 높은 가지에 피어난 꽃처럼이라 하였다. 번역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키 높은 가지에 피어난 꽃이라 하였을까? 이런 번역은 전재성님의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난다라는 말과 다르다. 숲에 피는 꽃과 키높은 나무의 가지에 피는 꽃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다름에도 키 높은 가지에 피어난 꽃처럼라는 말이 와 닿는다. 그래서 관련 구절에 대하여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았다.

 

게송의 첫 번째 구절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에서 Vanappagumbe는 어떤 뜻일까?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면 Vanappa+ gumba’의 결합어이다.  여기서 Vanappa‘Vanappati + a’의 로서, Vanappati‘A tree bearing fruit, but without apparent blossoms; any tree’라 설명 되어 있다.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뜻이다. 꽃이 피는 것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뜻이다. 아마 무화과를 의미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뜻으로 ‘a big tree which bears fruit without flowers.’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 큰 나무라 하였다.

 

열매라 하였을 때는 사향사과를 연상케 한다. 꽃만 피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든가, 화려한 꽃은 피지만 열매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열매를 맺는 큰 나무는 가르침의 결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숲속에서 큰 나무라는 것이다. 여기서 숲이라는 것은 gumba를 말한다.

 

숲은 번뇌의 상징

 

Gumba‘a bush; a thicket; a troop or swarm. ‘의 뜻이다. Gumba의 뜻이 숲이긴 하지만 덤불 같은 숲을 말한다. 여러 가지 잡목에다 덩굴이 있는 식물이 덮여 있어서 얼키고 설킨 숲이다. 그래서 영어로 덤불과 얽힘을 뜻하는 ‘a bush; a thicket’라 하였다. 이런 숲은 번뇌의 상징이다.

 

숲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이 초기경전에 등장한다. 이때 숲은 좋지 않은 이미지이다. 이는 잘 조림된 숲이나 잘 가꾸어진 숲이 아니다.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로 인한 정글 같은 숲이다. 그래서 법구경에서 숲에서 두려움이 생기니” (Dhp283) 라 하였다.

 

왜 숲에서 두려움이 생겨난다고 하였을까? 이는 자연의 숲에서 사자와 같은 짐승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처럼, 번뇌의 숲에서 태어남 등의 두려움이 생겨난다.” (DhpA.III.424) 라 하였다. 숲은 번뇌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무명초라는 말이 있다. 삭발한 스님들이 머리가 길어지면 마치 잡초가 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번뇌의 시작이 무명이듯이 머리에 난 머리카락이 자라면 자랄수록 마치 숲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숲을 잘라버려라. 나무는 말고,

숲에서 두려움이 생기니

수행승들이여, 숲과 덤불을 자르면

그대들은 숲에서 벗어나리. (Dhp283, 전재성님역)

 

 

숲을 잘라 버려라(Vana chindatha)’고 하였다. 마치 쾌도난마 식으로 지혜의 칼로 얼키고 설킨 것을 쳐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까지 쳐 내면 안될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말고(mā rukkha)”라 하였다.

 

나무는 제외하고 덤불을 걷어 내면 보기에 좋을 것이다. 그런 덤불은 숲과 동의어이다. 동시에 숲은 번뇌망상과도 같은 뜻이다. 그래서 온갖 번뇌의 상징과 같은 숲에서 벗어나라고 하였다.

 

숲이 부정적으로 사용된 예는 많이 볼 수 있다. 법구경 283번과 이어지는 게송을 보면 남자의 여자에 대한 번뇌의 덤불은” (Dhp284) 라 하였다. 여자를 번뇌의 덤불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조금이라도 제거 되지 않으면, 젖먹이 송아지가 어미에 매이듯, 그와 같이 그의 마음이 속박된다.” (Dhp284) 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멋대로 자라 얼키고 설켜 있는 숲속은 무명과 번뇌의 상징과도 같고 애욕의 상징과도 같다.

 

애욕의 상징으로서 숲

 

애욕의 상징으로서 숲이 있다. 그런 숲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숫따니빠따 날라까의 경(Sn3.11)에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나고, 아낙네는 해탈자를 유혹합니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마십시오.(stn703)”라는 게송이 있다. 숲속에서 사는 성자들을 아낙네가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자들은 유혹의 대상이다. 스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홀로 사는 독신비구를 사람들은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히 도력이 높다고 알려진 스님이 있다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마치 예쁜 꽃이 있다면 꺽어 버리고 말듯이, 도력 높은 수행자들은 여인들의 타겟이 될 수 있다. 이는 지족선사와 황진이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황진이는 지족선사를 유혹하였다. 송도에서 생불로 알려진 지족선사를 유혹하게 파계 하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스님은 어느 글에서 황진이를 관세음보살로 묘사 하는 것을 보았다. 생불이라는 허상의 딱지를 떼게 해 준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숫따니빠따에서도 아낙네가 성자를 유혹한다고 하였다. 땔감을 구하러 숲에 들어간 아낙네가 성자를 보았을 때 유혹할 수 있음을 말한다. 수행자를 유혹하는 여인들 이야기는 많이 있다. 여인의 유혹에 파계하여 세속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여인들은 수행자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도력 높은 수행자일수록 꺽어 버리고 싶은 욕망이 강렬한 모양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수행자는 여인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숲은 위험한 곳이다. 보이지 않는 숲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숲과 관련하여 율장대품에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자를 보았습니까?”라는 구절이 있다.

 

지체 높은 집안의 공자들이 기녀들을 데리고 숲으로 놀러 왔다. 그 중에 한명이 기녀를 놓쳐 버렸다. 그래서 기녀를 찾고자 이숲 저숲 뒤지다가 숲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고 여자를 보았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에게 어떠한 것이 더욱 훌륭한 일인가? 여자를 찾는 것인가, 자기자신을 찾는 것인가? (Vin.I.23) 라고 물었다.

 

이렇게 본다면 숲이라는 곳이 수행자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지만 온갖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숲에 들어 가면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 특히 인도의 숲은 우리와 달리 우거져 있어서 정글과도 같다.

 

숲에는 잡목이나 덩굴 등이 얼키고 설키고 제멋대로 자란다. 숲에는 호랑이와 같은 맹수도 있을 수 있고, 땔감을 구하로 온 아낙네도 있을 수 있고, 공자들이 기녀와 놀러와 즐기는 곳일 수도 있다. 그런 숲은 평화롭고 안정된 곳이 아니다. 번뇌의 상징과도 같다.

 

우담바라에서 꽃이 피었다면

 

숲에서 키 높은 나무가 있다. 숲에서 벗어 나와 있는 듯한 높은 나뭇가지에는 열매가 맺는다. 그런 키 높은 가지에 꽃이 피면 어떻게 보일까? 더구나 꽃이 피지 않고 곧바로 열매를 맺는 무화과에서 꽃이 피었다면 어떻게 보일까? 매우 상서로운 조짐일 것이다.

 

무화과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은 없다. 무화과의 경우 열매 안에서 꽃이 핀다고 한다. 꽃이 꽃받침에 싸여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 무화과에 대하여 빠알리어로 우둠바라 (udumbara)’라고 한다.

 

우둠바라는 우리말로 우담바라라고 한다. 대승경전에 따르면 우담바라꽃이 피면 매우 상서로운 조짐이라 하였다. 삼천년에 한번 핀다는 전설의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부처가 출현하거나 전륜성왕이 이 세상에 나올 때 이 꽃이 피어난다고 하였다.

 

우둠바라는 깨달음의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디가니까야 비유의 큰 경(D14)’에 따르면 과거칠불 중의 하나인 꼬나가마나 부처님이 바로 이 우둠바라 아래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세상에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신 꼬나가마나는 우둠바라 나무 아래서 올바로 원만히 깨달았습니다.” (D14) 라고 되어 있다.

 

왜 키 높은 나무인가?

 

라따나경에서 ‘Vanappagumbe’라는 말은 덤불 같은 숲에서 키가 높은 우둠바라 나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말이 ‘yathā phussitagge’이다. 여기서 yathāas; like; in relation to’의 뜻으로 “~처럼이라고 번역된다. 어떤 것처럼일까? 뒤에 이어지는 말이 phussitagge’이다. 이 말은 ‘phussita+agga’형태이다. Phussitaphussito의 형태로서 ‘Flowered, blossoming’의 뜻이다. agga‘the highest; the top-most’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yathā phussitagge’는 높은 나뭇가지에 꽃이 만발한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라는 구절은 얼키고 설킨 덤불 같은 숲속에서 키가 높은 우둠바라에서 꽃이 피어난 것처럼라는 뜻이 된다.

 

전재성님은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내듯이라 하여 나무가 우거진 숲을 의미 하는 것처럼 해석 하였다. 키 큰 나무라는 말이 빠졌다. 그런데 이런 식의 번역은 영문에서도 보인다. 영문을 보면 "As the woodland groves though in the early heat of the summer month are crowned with blossoming flowers” (Piyadassi Thera) 라 하였다. the woodland groves 라는 말은 숲속의 총림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영문을 보면 Like a forest grove with flowering tops”라 되어 있다. 숲속 나뭇가지에서 꽃이 핀 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夏の月の初めの暑さに林の茂みでは枝が花をかせたように라 하였다. 번역을해 보면 무더운여름이 시작 되는 시기에 혹서기에 수풀에서 가지마다 꽃이 핀 것처럼이라 하였다.  나까무라 하지메역을 우리말로 중역한 법정스님역을 보면 초여름 더위가 숲속의 가지에 꽃을 피우듯이라 하였다.

 

어느 번역에도 키높은 나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빠알리 원문을 보면 Vanappagumbe라 하여 숲에서 우뚝 솟은 나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잡풀과 잡목으로 우거진 숲에서 키 높은 나무가 있을 때 돋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 나무에서 꽃이 핀 것이다. 그것도 깨달음의 나무라 불리우는 우둠바라에서 꽃이 피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yathā phussitagge’라 하여 키높은 나뭇가지에 꽃이 활짝핀 것처럼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어지는 구절 이와 같이 열반에 이르는 위없는 묘법을 가르치셨습니다. (Tathūpama dhammavara adesayi)”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열반에 이른다는 말은 pama을 번역한 것이다. PamaTrue knowledge를 뜻한다. Dhammavara‘the excellent doctrine’의 뜻으로 묘법으로 번역하였다. 키 높은 나무에서 핀 꽃에 대하여 부처님의 묘법으로 본 것이다.

 

키 높은 나뭇가지에 피어 난 꽃처럼

 

인도는 세 개의 계절로 나뉜다. 하기와 우기와 건기 이렇게 세 개의 계절이 있다. 하기는 3월부터 6월까지 이고, 우기는 7월부터, 10월까지 이고, 건기는 11월부터 2월까지 이다. 그런데 게송에 따르면 여름날의 첫 더위가 오면 “Gimhānamāse pahamasmi gimhe”이라 하였다.

 

Gimhāna는 여름을 māsamonth를 뜻한다. pahama‘first; foremost’의 뜻이고, gimha‘heat; hot season’  뜻이다. 그래서 “Gimhānamāse pahamasmi gimhe”뜨거운 첫 여름에라는 말이 된다. 여름이 시작 된 것이다. 인도력으로 보았을 3월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봄에 꽃이 만발 한다. 초여름이 되면 키 높은 가지에서 피는 꽃을 볼 수 있다. 봄에 화초에서 피는 꽃과 격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초여름에 키 높은 가지에서 피는 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잡목이 우거진 숲에서 우뚝 솟아 있는 우담바라에서 꽃이 피었다면 매우 상서로운 조짐일 것이다.

 

라따나경에서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라는 말은 마치 우담바라 꽃이 핀 것처럼 숲에서 우뚝 솟은 나무에 꽃이 핀 상태를 말한다. 그런 꽃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비유하였다. 그가르침은 열반으로 이끄는 최상의 가르침, 담마와라(Dhammavara : 妙法)’라 하였다. 그래서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에 대하여 초여름 숲 속 키 높은 나뭇가지에 피어 난 꽃처럼이라고 번역 할 수 있다.

 

 

 

经与吉祥利偈慧音

 

 

2015-10-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