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왜 총림이라 하였을까? 수덕사 동안거 해제법회를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6. 2. 22. 13:08

 

왜 총림이라 하였을까? 수덕사 동안거 해제법회를 보고

 

 

 

죽비를 놓는다

 

대화방에서 공지를 하나 받았다. 천장사신도들의 대화방에서 주지직을 맡고 있는 허정스님이 다음과 같이 공지 하였다.

 

 

내일 새벽정진을 마치고 동안거정진을 끝냅니다. 이것을 죽비를 놓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불빨래와 대청소를 하고 다음날은 개인빨래를하고 토요일날은 자자의식을 합니다. 3개월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대중스님들에게 지적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미리 허물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날 수덕사에서 오후2시에 해제법문을 듣고 떠납니다. 길상스님과 효원스님은 여름에도 사십니다. 이번 일요법회때는 선방 스님들과 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

 

(허정스님, 천장사 대화방에서)

 

 

현재 천장사대화방에는 50명 가량 된다. 천장사신도들을 비롯하여 스님과 인연있는 사람들이다. 이곳 대화방에 초대되어 활동하고 있다. 종종 일요법회에 참석하고 스님과 신도들로 이루어진 순례에 동참하기도 한다.

 

대화방에서 스님은 동안거 해제를 맞이 하여 선방스님들과 차담시간을 마련 하겠다고 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강한 흥미를 끌었다. 3개월간 정진한 스님들이 재가신도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매우 희유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일요일 아침 일찍 서산으로 출발하였다.

 

해마다 안거철이 되면

 

해마다 안거철이 되면 전국선방에서는 수 천명의 스님들이 정진에 들어간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전국 102개 선원에서 2186명이 안거에 들었다고 한다.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102개 선원중에 총림은 8곳이고 비구선원은 59, 비구니선원은 35곳이다. 2186명중에 총림은 307명에 지나지 않고 일반선원은 1879명으로서 압도적으로 많다. 2186명 중에 비구는 1129, 비구니는 750명이라 한다.

 

작은 절 천장사에도 선원이 있다. 이름 하여 염궁선원이라 한다. 이번 동안거기간 스님들이 안거에 들었다. 작은 절에 작은 선원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절에도 스님들이 찾아 온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매우 가난한 절에 자발적으로 방부를 든다고 한다. 이는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이 미리 공지 했기 때문이라 한다.

 

천장사주지 허정스님은 가난을 강조한다. 시골에 있는 작은 절이다 보니 가난할 수밖에 없는데 더구나 선원까지 운영하다 보니 더욱 더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동안거에는 일부러 우리절은 어느 사찰보다 가난하니 가난을 미덕으로 아시는 분들만 방부를 들이시라는 ‘안내문’을 각 선방에 보냈다.”라 하였다.

 

이렇게 가난을 강조하였을 때 과연 스님들이 올까? 그러나 예상외로 지난해 안거철에는 7명이 방부를 들었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자처한 스님들이다. 이에 대하여 가난한 절 가난한 스님, 자발적으로 가난에 동참한 스님들(2014-12-0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전기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천장사는 시골의 작은 절이다. 더구나 연암산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찾아 오는 이도 드물어 가난한 절이다. 그럼에도 선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선원을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음에도 선원을 연 것은 은사스님때문이라 한다.

 

선원을 운영하면 전기세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전기세가 많이 나간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에 대하여 은사스님이 전기세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여 선원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중에서 전기세가 얼마나 부담스런 것일까? 이는 스님의 칼럼에서 알 수 있다. 전기세와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생각의 대상이 과거와 미래로 가게 내버려 두지 말고 언제나 현재에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의 말씀을 순간순간 적용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확철대오는 기다리지도 않는다. ‘깨달음이란 또 하나의 망상일 뿐, 간신히 깨어있고 간신히 정신 차리며 살아간다. 치아가 병든 것을 아파하고 절에 나오지 않는 보살님과 어떻게 다시 화해할까를 생각하고 화장실 변기가 막힌 것과 이번 달 전기세가 많이 나온 것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허정스님)

 

 

 

스님은 이번 달 전기세가 많이 나온 것을 걱정하고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나온 것일까? 177만원 가량 된다. 이 금액은 예상외로 많이 나온 것이라 한다. 또 계약한 것과 비교하여 초과된 용량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초과 되었을 때 초과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 대하여이번 달 전기세가 많이 나온 것을 걱정하며 살아간다.”라 하였다.

 

산중 작은 절 가난한 절에서 전기세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어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그것은 화목난로라 한다. 선방에 화목난로를 설치 하여 전기세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목난로설치 작업을 하겠다고 한다.

 

화목난로는 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산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난방을 하였을 경우 전기세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절감도 된다. 이미 지역의 다른 절에서 화목난로를 설치하여 난방비가 20만원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마 금년겨울 염궁선원에서는 화목난로가 등장하리라 본다.

 

누구나 팽주가 되어

 

천장사까지 약 120키로 거리이다. 이른 아침이라 고속도로는 원활하다. 불과 몇 일 전까지만 해도 눈쌓인 천장사의 모습을 대화방 사진으로 볼 수 있었으나 날씨가 풀려서일까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천장사에 가면 가장 먼저 다실로 향한다. 일종의 사랑방이라 볼 수 있다. 공양실 바로 옆에 다실이 있어서 누구나 차를 마실 수 있다. 누구나 팽주가 되어 차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시설은 다른 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도심의 대형사찰이나 포교당에서 신도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 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설령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팽주가 되어 차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더욱 드물다. 그러나 천장사 다실의 경우 누구나 자유스럽게 차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되어 있다는 것이 다른 절과 차별화 된다.

 

선방스님들과 차담

 

미리 공지한 대로 10시에 선방스님들과 차담이 시작 되었다. 한켠에 주지스님을 비롯하여 선방스님들이 자리하였다. 또 한켠에는 신도들이 앉았는데 주로 서산에 사는 신도들과 서울 등에서 온 신도들이다. 

 

 

 

 

 

 

 

 

 

 

 

선방스님들과 차담에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일상적이야기, 일반적인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를 하였다. 불과 한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담을 마치고 난 후 주지스님은 다음 번에는 12일로 차담시간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마치 즉문즉설식으로 신도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 보면 스님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선방스님들께 공양하면

 

이번 동안거기간동안 선방스님들과 신도들과 모임이 몇 차례 있었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도 함께 차담을 나누었다. 또 서산에 사는 어느 법우님들은 스님들을 위하여 대중공양도 하였다. 이렇게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면 큰 공덕이 있다고 한다. 특히 부산에서 온 불자들이 크게 공양을 했다고 한다. 한주스님을 따르는 부산신도들이라 했다. 이 밖에도 전국의 선방을 찾아 다니며 대중공양을 하는 불자들이 많다고 한다. 안거기간동안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면 그 공덕이 매우 수승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불가에 선방문고리만 잡아도 삼대가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해제철 선방이 개방되었을 때 법우님들은 문고리를 한번씩 잡아 본다. 그런데 선방스님들과 함께 자리를 하였을 때 그 복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먹을 것 등을 공양하였을 때 그 공덕은 매우 클 것이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 등 동물에게 먹이를 주었을 때 그 공덕은 매우 크다고 하였다. 하물며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스님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보시하였을 때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행한 그 보시, 굉장한 보시보다 한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커다란 과보를 가져 올 것입니다.”(A9.20) 라 하였다. 여기서 굉장한 보시는 일반인에게 팔만사천개의 금은 등을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그 공덕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의 견해를 갖춘 이, 즉 수행자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보시하는 공덕은 이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동안거가 끝났을 때 백중과 같은 대규모 공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음력 정월 대보름이라 하여 커다란 행사가 있기는 하다. 비록 동안거 해제가 하안거 보다 행사에 있어서 미치지 못하지만 안거를 마친 스님들에게 공양한다는 것은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더구나 스님들과 차담까지 하였으니 문고리잡는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소박한 점심공양

 

스님들과 차담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였다. 절에서 먹는 밥은 반찬이 없어도 맛이 있다. 기름진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물 등 채식위주의 식단이다. 이런 식단은 스님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먹고서도 정진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불자는 절에 가면 영양가 있는 먹거리를 준비하거나 스님을 모시고 밖에 나가서 공양한다고 한다.

 

 

 

 

 

 

절에서 점심시간은 매우 이르다. 11시면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아침먹는 시간은 6시이고, 저녁먹는 시간은 5시이다. 9시가 되면 취침에 든다. 새벽예불은 4시에 있다. 이렇게 일반사람들 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이를 얼리버드, 새벽형 인간이라 부를 수 있다.

 

자애송을 합창하고

 

공양을 마치고 나니 12시가 채 되지 않았다. 수덕사에는 2시까지 가면 된다. 그 남는 기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주지스님이 숙제를 내 준 것이다. 그 노래는 다름 아닌 자애송(The chant of Metta)’이다. 일반적으로 자비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불자가수 이미우이(Imee Ooi: 黃慧音)’가 부른 노래를 말한다. 

 

 

 

 

 

 

이미우이의 자애송은 언제 들어도 좋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음악도 좋지만 아마 내용이 좋아서 일 것이다. 자애송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자기자신

Aha avero homi                 아항 아웨로 호미

avyāpajjho homi                  아뱌-빳죠 호미

anīgho homi                      아니-고 호미

sukhī - attāna pariharāmi       수키- 앗따-남 빠리하라-

 

제가 증오에서 벗어나기를!

제가 성냄에서 벗어나기를!

제가 격정에서 벗어나기를!

제가 행복하게 지내게 하여지이다!

 

 

2. 가까운 사람

Mama mātāpitu                    마마 마--삐뚜

ācariya ca ñāti mitta ca         -짜리야 짜 냐-띠 밋따 짜

sabrahma-cārino ca               사브라흐마 짜-리노 짜

averā hontu                      아웨라- 혼뚜

abyāpajjhā hontu                 아뱌-빳자- 혼뚜

anīghā hontu                     아니-- 혼뚜

sukhī - attānam pariharantu      수키- 앗따-남 빠리하란뚜

 

저의 부모님,

스승들과 친척들, 친구들도,

거룩한 삶을 닦는 이, 그분들도

증오를 여의어지이다.

성냄을 여의어지이다.

격정을 여의어지이다.

그 분들이 행복하게 지내게 하여지이다!

(자애송-The chant of Metta)

 

巴利文, https://www.youtube.com/watch?v=N-L-LWlI4dk

자애송(자비송-The chant of metta).docx

 

 

자애의 마음을 내었을 때 내 마음이 청정해진다면 그것은 ‘자심해탈(慈心解脫)이 된다. 그래서 자애송은 자애수행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노래를 처음 접한 법우님들도 아항 아웨로 호미~”하며 음악과 함께 따라 불렀다. 어느 법우님은 연습을 잘 해서일까 거의 따라 부른다. 그것도 빠알리어로 부르는 것이다.

 

 

큰 절 수덕사로

 

점심공양을 마치고 수덕사로 이동하였다. 수덕사에서 동안거 해제법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숭총림의 말사 선원에서 정진하던 스님들이 모두 수덕사 황화루에 모인다. 이런 수덕사를 천장사에서는 큰절이라 부른다.

 

큰절 수덕사에 도착하였다. 산길로 가면 10여분이지만 도로를 이용하면 배이상 걸린다. 그런데 산길의 경우 반드시 사륜구동차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산길에는 RV차량이 최적이다. 그래서일까 절에 다니려면 사륜구동차가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수덕사는 포근한 절이다. 언제 와도 부담이 없는 절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세와 자연환경 때문일 것이다. 덕숭산은 높지 않아 부담이 없고 안은하다. 더구나 탁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여기에다 사시사철 푸른 낙락장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생명력이 넘친다.

 

 

 

 

왜 총림이라 하였을까?

 

동안거 해제법회는 황화루에서 열렸다. 덕숭총림에서 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인 것이다. 오로지 스님들만의 행사이고 스님들만의 공간이지만 신심있는 재가불자들도 함께 하였다.

 

 

 

 

 

 

이날 동안거 해제법회에 백명 이상의 스님들이 모였다.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삭발한 모습이 매우 늠름해 보였다. 단정한 자세와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서 경외감이 느껴진다. 이날 해제법회에서 덕숭총림의 방장 설정스님이 법문하였다. 스님은 경허스님에 대하여 재평가 작업을 하겠다고 말하였다. 또 경허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책으로 내는 한편 그 책을 바탕으로 하여 직접법문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불자가 큰절의 새벽예불에 참석했다고 한다. 가사와 장삼을 수한 수백명의 스님들이 예불을 올릴 때 총림을 떠 올렸다고 한다. 더구나 삭발하여 번득이는 머리를 한 수백명의 스님들이 단정한 자세로 예불올리는 것을 보았을 때 마치 숲속의 총림을 연상한 것이다.

 

 

 

 

 

숲에 키 높은 나무들이 있다. 키 높은 나무들이 빼곳이 들어찼을 때 기상이 느껴진다. 더구나 위로 죽죽 뻗은 모습을 보면 보기에도 시원하다. 이렇게 죽죽 뻗은 키높은 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을 때 이를 총림이라 한다. 수덕사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가사와 장삼을 수한 수 백명의 스님들을 보면서 총림을 연상하였다.

 

초가집 소림초당

 

해제법회가 끝나고 산책을 하였다. 천장사주지 허정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덕숭산 정상가까이까지 산책을 한 것이다. 도로가 아닌 험한 산길로 간 것이다. 도중에 수 많은 암자를 만났다. 그 중에 소림초당이 있다. 문자그대로 초가집이다. 출입금지라 되어 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고즈넉하게 보인다.

 

 

 

 

 

 

초당을 지나가면 가파른 돌길이 나온다. 옆에 가던 법우님이 말을 건넨다. 종종 대화방에 올리는 글 잘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매우 고무된다. 누군가 글을 보아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내면을 모두 드러낸 것 같기 때문이다.

 

글 뿐만 아니라 외면까지 노출 되었을 때 모든 것이 까 발겨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마구 쓴다. 이런 것 저런 것 고려하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법우님에게 물어 보았다. 대화방에 올린 글 말고 블로그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지에 대하여 물어 본 것이다. 이에 법우님은 종종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역시 고무 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였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보통불자의 글이다. 법문도 아니고 논문도 아닌 삼류비급의 글이지만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때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관세음보살상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자 이번에는 관세음보살상과 마주쳤다. 처음에는 미륵보살상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정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달랐다. 허정스님에 따르면 만공스님이 세웠다고 한다. 이로 보아 역사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표지판이 없어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지만 수 백년이 지나면 소중한 문화재가 되리라 본다.

 

 

 

 

 

 

향운각에서

 

관음입상 바로 옆에는 암자가 하나 있다. 이름 하여 향운각이라 한다. 시푸른 대나무와 맛이 좋은 약수터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원래 향운각에서 차담을 하려 했다. 그러나 향운각에 살고 있는 스님을 찾아 온 손님이 있어서 차담을 포기해야 했다. 설령 차담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스님을 포함하여 많은 인원이 들어갈 공간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만공탑을 보니

 

향운각에서 차담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음 암자를 찾아 나섰다. 가는 길에 만공탑을 보았다. 수덕사를 중흥한 만공선사에 대한 유적과 이야기는 덕숭산 이곳 저곳에 남아 있다. 그중의 하나가 만공탑이다.

 

 

 

 

 

 

만공탑은 정혜사로 올라가는 산길에 있다. 부도탑 형태로 되어 있는 둥근 공모양이다. 아마 법명 만공을 형상화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런데 이런 모양의 만공탑은 의왕시에 있는 청계사에도 있다. 수년전 청계사 성역화가 있었는데 경허스님과 만공스님 등의 부도탑이 새로 만들어졌다.

 

만공탑 뒤에는 비문이 적혀 있다. ‘세계일화’, ‘백초시불모’, ‘천사불여일행과 같은 한문이다. 또 작은 글씨로 갈쌀보리봄쌀보리륙모보리니라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예전의 견성암터

 

만공탑을 지나 산길을 계속 올라갔다. 정혜사를 지나 덕숭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 빈 절터를 만났다. 지금은 채마밭으로 변한 공간이다. 가이드가 된 허정스님에 따르면 이곳이 견성암터라 한다.

 

 

 

 

 

 

비구니스님들이 살고 있는 곳이 견성암이다. 그런데 원래 견성암이 있던 곳은 덕숭산 정상 가까이에 있다. 이는 비구스님들이 사는 암자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일까 비구니스님들이 비구스님들 보다 더 높은 데서 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견성암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갔다는 전설적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전월사에서

 

스님과 신도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 같다. 덕숭산 거의 정상부근에 마지막 암자가 있었다. 그곳은 전월사이다. 달을 굴린다는 뜻을 가진 암자를 말한다. 허정스님에 따르면 만공스님이 말년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젊어서는 간월암달을 보고 만년에는 전월사에서 달을 굴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말한다.

 

 

 

 

 

덕숭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월사에 살고 있는 스님이 있다. 그 스님을 찾아 뵙고 차담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아직 큰 절에 있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 차담이 불발되었다. 이에 스님과 신도들은 이곳 저곳을 둘로 보았다. 그 중에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보았다. 마치 커다란 봉이 옆으로 길쭉하게 삐져 나와 있다. 이런 바위를 보면 이름 붙이기 나름 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갖가지 추측을 한다.

 

 

 

 

 

전월사에는 좌선대가 있다. 이는 석문을 통하여 나가면 넓직한 바위에 좌선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으로 된 좌선대에서 서면 아래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만공선사가 만년에 좌선했다고 하는 좌선대는 넓직하다. 좌선대에서 아래 세상을 바라 보았다. 저 멀리 도로가 보이고 아파트가 보인다. 만년의 만공선사가 이곳 좌선대에 앉아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푸른 하늘과 흘러 가는 흰 구름, 그리고 산의 형세는 만공선사가 보았던 그대로일 것이다.

 

 

 

 

 

 

돼지바위

 

향운각과 전월사 두 곳에서 차담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스님과 신도일행은 큰 도로를 따라 견성암으로 이동하였다. 산길을 걷는 것 보다 수월하였지만 밋밋한 느낌이다. 도중에 인상적인 바위를 보았다. 누군가 돼지꼬리 부분 형상이라 한다. 옆에서 보니 돼지를 닮았다. 아마 이름 붙인다면 돼지바위라 할 것이다.

 

 

 

 

 

 

 비구니도량 견성암

 

마침내 견성암에 도착하였다. 비구니 스님들만 사는 도량이다.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곳이지만 허정스님이 이곳 수덕사에서 출가하고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인연 있는 스님들이 있어서 신도들과 함께 찾아  간 것이다.

 

 

 

 

 

 

견성암은 암자라 하기에는 매우 큰 절이다. 비구니스님들만 사는 절이지만 규모는 웅장하다. 커다란 세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건물에 법당이 있다. 법당에 가 보았다. 다른 절들과 달리 연등이 일체 걸려 있지 않다. 또 불상도 별도로 조성되어 있지 않고 금색 부조로 되어 있다.

 

 

 

 

 

 

견성암은 비구니도량으로서 안거철이 되면 선방이 열린다. 안거와 관계없이 이곳에 사는 스님들도 매우 많다. 나이 든 노비구니스님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매우 가난하게 사는 것 같다. 숫자가 많다보니 수박한조각 먹어도 이름을 붙여 놀 정도라 한다. 현재 98명 가량 비구니스님들이 살고 있는데 수덕사 스님 숫자의 70%에 달한다.

 

견성암에서 특이한 것은 평생 살 공간이 부여 된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 오갈데 없는 비구니스님들에게 방 한 개가 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후를 걱정하지 않고 평생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견성암은 불교계 최고의 복지시설이다. 동시에 불교계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일정금액을 필요로 한다. 마치 천주교에서 나이든 신부나 수녀들을 위한 공간이 주어지듯이 불교계에서도 이런 시설이 생겨난다면 스님들의 노후문제도 해결 될 것이다.

 

 

 

 

 

 

견성암에서 차담을

 

견성암에서 차담을 하였다. 세 번 시도하여 성공한 것이다. 두 분의 비구니 스님이 일행을 초대하였는데 구수한 차와 함께 다과도 준비하였다.

 

 

 

 

 

 

 

 

 

 

 

비구니스님은 출가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출가하기 위하여 수덕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덕사는 비구니스님들만 살고 있는 절인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덕사에 도착하여 어느 스님이 보이길레 출가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저 쪽 견성암으로 가 보세요라 했다는 것이다. 그때 처음 본 스님이 이제 갓 출가한 허정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허정스님은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구니스님으로 착각하고 물어 본 것이라 한다. 만약 물어 보지 않고 아무 곳이나 가서 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수덕사와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비구니스님들만 사는 견성암을 곧바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수덕사와 인연이 되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허정스님이 출가하였을 때 처음 찾아 간 곳이 견성암이었다고 한다. 견성암이 비구니스님들만 사는 곳인지 전혀 모르고 찾아 간 것이다.

 

천장사는 선방스님들의 성지

 

견성암에도 선방이 있다. 그래서 안거철이 되면 전국에서 비구니스님들이 방부를 든다고 한다. 그런데 견성암스님에 따르면 천장사가 일종의 성지와 같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경허방이 있기 때문이다. 경허스님이 깨닫고 난 다음 보림을 하기 위하여 작은 방에서 살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안거철이 되면 견성암 선방스님들이 단체로 경허방을 찾는 다고 한다. 올해에는 25명의 비구니선방스님들이 단체로 찾았다고 한다.

 

 

 

 

 

 

천장사는 경허스님이 보림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최인호 소설 '길없는 길'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방스님들에게 성지와 같은 것이다. 이는 경허방, 만공방 등 그 때 당시 수행하던 방, 살던 방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덕숭총림 제방선원에서 안거기간 중에 성지순례를 하면 필수코스가 간월암, 천장사, 개심사, 마애삼존불 이렇게 네 군데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천장사인데 경허방과 만공방이 있는 것이다.

 

 

 

 

 

 

 

 

 

 

 

스님들과 재가불자와의 소통

 

견성암에서 차담이 끝났다. 세 번의 시도에 걸쳐서 어렵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스님들과 차담을 하다보면 스님세계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묻고 배우는 것도 많다. 무엇 보다 스님과 신도들과의 소통이다. 스님들과 스님들과의 소통이 안되는 마당에 스님들과 신도들의 소통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스님을 중심으로 순례단이 오지 암자를 찾아 다니며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불교에서 초유의 일이라 본다.

 

 

 

2016-02-22

진흙속의연꽃

자애송(자비송-The chant of metta).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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