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이 벼랑 끝에서, 적석사 낙조대 해수관음상을 보며
순례기를 남긴다
어느 불자는 천 개의 사찰순례 발원을 세웠다. 그래서 부부가 한팀이 되어 수 없이 많은 사찰순례를 하고 있다. 친구 중에 불자가 있다. 부부가 전국에 있는 사찰순례를 다녀서 널리 알려진 절은 다녀 보았다고 했다. 이렇게 불자들은 전국에 있는 전통사찰순례하는 것을 하나의 신행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산에 가면 절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산세가 좋고 유명한 산일수록 명당자리에 산사가 있다.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 불국토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런데 사찰순례 다니는 불자들이 단지 사찰만 둘러 보고 온다면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법당 저 법당 찾아 다니며 참배 한다. 좀더 여유 있는 불자라면 시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례기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이 고작이다.
사찰순례 하면 반드시 순례기를 남긴다. 여행을 하면 여행기를 남기듯이 사찰순례 역시 여행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긴다. 이번에는 강화도 적석사에 갔었다.
강화도 적석사로
지난 일요일 추운 날씨에 강화도로 향하였다. 강화도는 수도권에 있어서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강화도는 수 많은 전통사찰이 있어서 어디를 가든 절이 있다. 유명한 절은 한번쯤 가 보았지만 적석사는 이름만 들었지 가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 보기로 하였다.
적석사 가는 길은 마치 육지 내륙 깊숙히 들어 가는 것 같다. 강화도가 섬이라 하지만 안으로 향하면 산너머 산이 있어서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강화도는 면적이 305제곱키로미터로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섬이라고 하지만 군단위이기 때문에 육지나 나름 없다. 그래서 섬 같지 않은 섬이다.
적석사 가는 길은 가파르다. 절이 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적석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지도를 찾아 보니 강화도 내부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이동중에 팻말을 보면 낙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낙조대 적석사’라 한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보는 듯
가파른 길을 힘껏 올라서 도착하니 커다란 축대와 마주쳤다. 마치 성벽을 보는 듯 하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가람을 형성한 것이다. 더구나 성벽 위에는 전각들이 보여서 외부에서 본다면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보는 듯 하다.
“불유(佛乳)의 맑은 샘 마음을 적시고”
축대를 돌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약수물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약수터가 전각형식으로 되어 있다. 현판에 불유각(佛乳閣)이라 써 있다. 부처님의 우유라는 뜻이다. 약수가 부처님의 부처님 우유와 같다는 뜻일 것이다.
부처님 우유라면 무엇을 말할까? 현판에는 “불유의 맑은 샘 마음을 적시고 유미의 단맛은 갈증을 풀어 주네”라 되어 있다. 불유라는 말이 ‘유미’라는 말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유미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수자타의 유미죽공양이 떠올려진다. 부처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 공양을 말한다.
불유의 약수를 마셔 보았다. 갈증이 있던 상태에서일까 맛이 달다. 단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입에 착 감기는 듯 부드럽다. 확실히 다른 곳과는 다른 맛이다. 그래서일까 뒷편 용왕으로 보이는 양각화에는 동전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적석사는 어떤 절일까?
법당으로 가 보았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 지은지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전통양식의 팔작지붕 형태의 우람한 전각이 압도한다. 전면5칸의 꽤 큰 전각이다.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윗층은 ‘대웅전’이고 아래층은 ‘관음굴’이라 한다.
적석사는 어떤 절일까? 안내판을 보니 천육백년 고찰이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사 오색 연꽃을 날려 그 꽃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창건하였는데, 적석사는 그 중 붉은 색(赤)색 연꽃이 떨어진 곳이라 한다. 그래서 절이름을 ‘적련사(赤蓮寺)’라 하였으나 후에 ‘적석사(績石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원효스님이나 의상스님이 창건한 절이 매우 많다. 대부분 신라시대 지어진 절이다. 그런데 이곳 적석사의 창건기를 보면 고구려시대 지어진 것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5세기에 이곳 강화도가 고구려의 영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보고 있는 대웅전은 2005년 새롭게 중건 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한눈에 보기에도 현대식이다.
부처님세상에 온 듯
대웅전 내부로 들어 갔다. 전면 5칸이어서일까 내부가 넓직하다. 그리고 단청이 매우 하려 하다. 수미단과 공포 등에 단청이 매우 화려 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부처님세상에 온 듯 하다. 중앙에는 주불로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우 협시보살이 있다.
굴법당에 가보니
대웅전 아래에는 관음굴이 있다. 일종의 ‘굴법당’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늑해 보인다. 주불로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석상이 모셔져 있다. 특이한 것은 박물관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자기파편과 기와 조각 등 출토된 유물이 유리상자케이스에 진열되어 있다. 그 중 한기와를 보면 ‘績石寺(적석사)’라고 또렷이 음각되어 있다.
팔각모양의 소원등에는
대웅전앞은 너른 마당으로 되어 있다.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많이 확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절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것은 팔각공모양의 커다란 소원등이다.
가까이 가서 보았다. 지성감천이라는 커다라는 글자와 함께 소원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살좀 빼게 해 쥬세요’ ‘하늘을 날게 해 주세요’ 라는 말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건강, 학업, 사업, 치유 등 소위 사대발원이 대부분이다.
절에 가면 갖가지 소원등을 볼 수 있다. 대웅전 등 전각 내부에 걸려 있는 소원등을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이웃 일본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법당안에 소원등이 없지만 법당 바깥에는 새끼줄에 소원을 비는 리본이나 판대기가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중국에 있는 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렇게 야외에 소원등 또는 트리를 설치하는 것이 대유행인 것 같다.
유명기도처는 벼랑 끝에
소원을 비는 대 있어서 가장 강력한 곳이 있다. 소위 기도발이 잘 먹히는데라 볼 수 있다. 그런 곳은 주로 외딴 곳에 있다. 절벽이나 동굴 같은 곳이다. 그래서 유명기도처는 대게 막다른 곳에 있다. 왜 막다른 곳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소원을 비는 사람이 막다른 처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험생을 둔 부모라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에서 간절히 기도할지 모른다. 입찰을 앞두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이 기도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유명기도처는 벼랑 위에 있거나 동굴속에 있거나 해안에 있다.
적석사에도 유명 기도처가 있다. 아주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서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낙조대가 있다. 석양에 해지는 모습이 일품이라 하여 강화팔경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을 ‘보타대’라 하는데 관세음보살상이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서해 저 너머로 해가 뉘엿뉘였
적석사 보타대는 산의 정상에 조성되어 있다. 일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사람이 몰리면 수백명이상 운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낙조대’ 또는 ‘보타대’라 하여 적석사를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침 일몰시간이 되어 서해 저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서 바다는 볼 수 없었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쪽하늘은 벌겋게 물들었다. 해가 뜨는 모습보다 해가 지는 모습이 더 장엄해 보인다. 해가 뜨는 것이 태어남을 상징한다면 해지는 모습은 늙음과 죽음을 상징한다. 벌겋게 달구어진 하늘은 이 생에서 한번 훤하게 비추는 것 같다. 곧 있으면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 인생의 황혼을 보는 것 같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이 벼랑 끝에서
적석사 보타대 관세음보살은 서쪽을 바라 보고 앉아 있다. 바다를 바라 보고 있는 관음상은 ‘해수관음’이다. 해수관음은 주로 유명기도처에 있다. 동해 낙산사의 해수관음, 남해 보리암의 해수관음이 유명하다. 또 통영 연화도에도 해수관음이 있다. 이렇게 유명기도처에는 반드시 해수관음이 있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 절벽, 벼랑에 해수관음이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그런데 기도는 간절해야 한다. 간절한 자만이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이 벼랑 끝에 앉아서 기도한다. 그런 곳에 유명기도처가 있다. 적석사 낙조대도 그런 곳이다.
2016-01-1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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