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사발 날개짓과 쟁기질, 천장사 송년다회에 참석하고
천장사 송년다회에 참석하였다. 송년회라 하지 않고 ‘송년다회(送年茶會)’라 한 것이다. 세간에서는 송년회 또는 망년회다 하여 술판이 벌어지지만 절에서 하는 송년회는 차를 함께 나누고 마시는 것으로 대신 한 것이다.
천장사 다회를 참석하기 위하여 고속도로를 탔다. 안양에서 서산 해미까지는 정확하게 100키로미터 걸렸다. 1시간 40분 만에 해미에 있는 ‘연화사’에 도착하였다. 천정사 다회가 연화사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유는 천장사사 깊은 산중에 있어서 겨울철 올라가는데 있어서 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안거중인 스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천장사 ‘염궁선원’에는 다섯 명의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 정진 중에 있다. 그래서 정진 중인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교통이 좋은 연화사로 잡은 것이다.
서산 연화사는
연화사는 비구니 스님이 주지로 있는 절이다. 그런데 천정사 다회를 위하여 장소를 제공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과 친분관계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현재 천장사 주지직을 맡고 있는 허정스님은 서산사암연합회 총무직을 맡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친분관계가 있어서인지 남의 절에 가서 송년다회를 하게 된 것이다.
연화사 주지스님에 따르면 23년전 창건한 절이라 하였다. 꿈에 연꽃송이가 옛날 바다이었던 절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연화사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에 연화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무척 많다. 아마 ‘백련사’라는 이름의 절과 함께 가장 많은 이름으로 본다. 인터넷검색을 해 보면 170개 가량 뜬다. 이는 지도서비스에서 키워드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절이 아닌 곳도 몇 개 있다.
연화사 가는 길은 한적했다. 연말이고 늦은 오후이어서인지 전반적으로 평온해 보였다. 해미읍성을 끼고 돌아 읍내를 약간 벗어나면 드넓은 평지가 나타나는데 야산 바로 입구에 연화사가 있다. 거의 평지나 다름 없는 마당에서 앞을 바라 보니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픙경은 일망무제이다. 앞이 탁 트여 있고 걸림이 없어서 지평선을 보는 것 같다.
절에 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법당에 가서 참배하는 일이다. 해미 연화사의 경우 대웅전이 있다. 대웅보전이라는 이름의 전각으로서 전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형태로 되어 있다.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전각이다. 그런데 새로 지어서 그런지 매우 아름답다. 공포와 화려한 단청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예술품을 보는 듯 하다. 법당에 들어 가서 삼배를 하고 늘 그렇듯이 시퍼런 것 하나를 넣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사진으로 남겼다.
연화사는 전통양식의 대웅보전 한 채와 부속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송년다회가 열리는 건물은 주지스님의 생활공간이다. 동시에 수행공간이라 볼 수 있다. 들어가 보니 무척 넓다. 공양식당도 있고 다실도 있다.
“혹시 진흙속의연꽃님 아니세요?”
공양식당으로 들어가니 먼저 와 있는 법우님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약 20명 가량 참석한다고 하였다. 음식은 부페식으로 되어 있다. 음식은 소박하다. 전부침, 떡 등이다. 굴과 낙지도 준비 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진열해 놓고 먹을 만큼 가져 가서 먹는 것이다.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였다. 스님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이다. 이날 네 분의 스님이 참석하였다. 그 중에 두 명은 옥천암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들이고, 한분은 장소를 빌려 준 연화사 주지스님이다. 그런데 식사 하기에 앞서 옥천암에서 오신 주지 스님이 “혹시 진흙속의연꽃님 아니세요?”라며 물었다. 초면임에도 알아 본 것이다. 이는 천장사 대화방에서 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에게 선물로 준비해간 세 종류의 음악씨디를 드렸다.
동료의 살을 먹는 것처럼
저녁식사는 푸짐하였다.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음식은 모두 맛이 있었다. 그렇다고 음식이 모두 채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낙지와 굴도 있고 닭고기 볶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채식식단은 아니다. 이렇게 고기가 있는 식탁에 대하여 허정스님이 농담으로 “고기가 있는데 무어라 쓸 건가요?”라고 물었다.
불자들은 고기를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물론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는 없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다고 하여 준비한 고기를 먹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 고기도 육류인지 어류인지 구분해야 한다. 언젠가 미디어붓다 대표기자 L님과 식사한 적이 있다. L님은 육류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대신 어류는 허용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 회덥밥을 먹었다.
채식도 종류가 있다. 육류든 어류든 고기를 완전히 끊는 채식이 있는가 하면 어류만 허용하는 채식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육류를 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수 백명이 식사하는 카페테리아에서 늘 제공되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 육류를 가리지 않고 먹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 대신 어류는 허용한다. 이렇게 육류를 멀리하는 것은 점점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육류를 먹으면 마치 동료의 살을 먹는 것처럼 개운하지 않다. 그래서 닭고기가 나오는 말은 닭고기 대신 감자나 당근 등 야채만 가져 가서 먹는다.
오계를 준수해야 하는 불자들의 모임에서
음식을 신도들이 준비 하였다. 이날 음식에는 ‘술’도 있었다. 공주특산물 ‘밤막걸리’이다. 송년다회 식사시간에 막걸리가 등장하여 순간 당황하였다. 그렇다고 모두 막걸리를 마신 것은 아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 일부만 마셨을 뿐 대부분 사람들은 약간 목만 축였을 뿐이다.
송년회에서 술을 준비한 것은 아마 관행으로 본다. 불교에서 불음주계라 하여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였으나 재가의 신도들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마셔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최소화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술을 마실 때 알아차리면서 마시라고 하였다.
절에서 주최하는 송년회에서 술이 등장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물론 행사를 준비한 측에서 관행에 따라 사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오계를 준수해야 하는 불자들의 모임에서 술이 등장한 것은 어색하기 그지 없다.
신도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은 맛 있었다. 부페에서 이것 저것 먹는 것 보다 몇 배 좋았다. 부페에 가면 수 십가지 음식이 있지만 입에 맞는 것이 별로 없다. 주로 고기 위주로서 먹기에 바쁘다.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접시를 비우기에 바쁘다. 그러나 한장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다 보니 마치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다. 그런데 이십명 가량 되다 보니 그릇이 엄청나게 많다.
절에서 꼴불견은
이 많은 그릇을 누군가 씻고 닦아야 했다. 대부분 여자신도님들 몫이다. 그러나 절에 와서 여자신도들만 설거지 하라는 법이 없다. 절에 왔으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것은 봉사로 나타난다. 밥을 먹었으면 치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남자신도들이 설거지 할 것을 제안하였다. 여자신도들이 음식준비를 하였으니 뒤처리는 남자신도들이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려는 여자법우님들의 고무장갑을 빼앗다시피하여 끼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그릇을 씻고 닦았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서울에서 오신 B법우님이다.
절에 가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절에 대접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할 것이 없으면 청소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집에서 하듯이 얻어만 먹으려 한다면 욕먹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 보면 가장 ‘꼴불견’이 절에 와서 대접받으려 하는 사람들이라 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그래서 설거지를 자청하였다.
백 개가 넘는 그릇을 닦았다. B법우님이 초벌로 닦아 놓은 것을 행구는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하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싱크대가 낮아 구부리고 하니 허리가 상당히 아픈 것이다. 그런데 절의 공양주보살은 이런 일을 밥먹듯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보살칭호를 붙여 줄 만하다.
사찰순례 유튜브 동영상
저녁식사가 끝나고 다실로 이동하였다. 다실은 주지스님 거처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건물이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복도가 많아 꽤 크다. 방이 여러 개 있어서 각종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다실도 그 중에 하나이다.
다실에 모여 다회가 시작되었다. 불가에서는 차를 좋아 하기 때문에 연화사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조건이 되어 있다. 차를 나누어 주는 팽주역할을 하는 법우님은 계속 차를 만들었다. 상석에 스님들이 앉고 그 밑으로 신도들이 빙둘러 앉았다.
이날 다회는 ‘B’법우님 사회로 시작 되었다. 마치농구선수처럼 키가 큰 여성법우님이다. 다회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사찰순례에 대한 동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이 만든 것으로 유튜브에 올린 것을 PC로 본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 제목은 ‘천장사 일요법회와 사찰순례(2015년)’이다. 옴마니반메훔 배경음악과 함께 수 백장의 사진을 유사동영상으로 만든 것으로 10분 분량이다.
동영상에는 사찰순례 뿐만 아니라 해미읍성 연등축제와 김장 담그기 등 천장사에서 일년 동안 일어 났던 일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사찰 순례를 얼마나 많이 다녔을까? 대화방에 올려져 있는 주지스님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탈해사, 보덕사, 일락사, 죽사, 영랑사, 성당사, 관음암, 금강사, 관음사, 용봉사, 간월암, 견성암, 선수암, 석련사, 사면불, 영탑사, 정암사, 수도사, 동사, 옥천암, 대련사, 망일사, 정토사, 성왕사, 흥주사, 환희대, 영평사,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해미연등축제, 용주사, 산혜암, 세심사, 석불사, 태을암, 태국사, 부석사, 수덕사요양원, 공덕사, 운주사, 불회사, 쌍봉사, 미륵사, 화암사, 서원사, 신암사, 성당사, 해미사방미륵, 불강사, 극락암, 광덕사, 통천사공군부대, 용화사, 구절암, 보현선원, 혜산토굴, 세원사, 성주사지, 백운사, 홍성인물축제, 벽천암, 달빛다회, 일초토굴, 자비사, 법동사, 정혜사, 해미읍성축제, 내원사, 오보살49재, 깨달음의 길, 화엄사, 용화사(지리산), 쌍계사, 연곡사, 사성암, 봉명암, 문수사, 김장하기, 방장스님, 수좌스님, 선미술관, 생신다회, 이불재, 송림사, 안국사지, 미륵찾기서명, 병문안, 황토방, 예수재, 국화축제,
(천장사 순례사찰, 허정스님작성)
사찰순례 뿐만 아니라 연등축제, 깨달음의 길 걷기, 김장하기, 병문안 등 다양하다. 모두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한 것이다. 여기서 사찰은 몇 개나 될까? 세어 보니 모두 70개 사찰이다. 이 70개 사찰을 2014년 9월부터 2015년 12월 현재 까지 다녔다고 한다. 일요일 오전 일요법회를 마치고 각자 가지고 온 승용차로 서산, 홍성, 당진, 태안 등 주로 내포지역 사찰 순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참가한 사찰은 수덕사, 벽천암, 화엄사, 용화사(지리산), 쌍계사, 연곡사, 사성암, 봉명암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짧은 기간 동안 70개나 되는 사찰순례를 하게 되었을까?
사찰순례를 하게 된 동기
다회에서 법우님들은 돌아 가며 이야기하였다. 그 중에 서울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사찰순례에 참가한 부부팀이 있다. B법우님 부부팀이다. 설거지를 도왔던 법우님을 말한다. B법우님 부부팀이 천장사를 방문하면서 터 사찰순례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B법우님은 천 개의 사찰순례에 대한 원력을 세우고 38번째로 천장사에 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2014년 9월이라 하였다. 그날 주지스님과 차담을 하면서 오후에 탈해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부터 작 되었다는 것이다. 즉석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허정스님은 천장사카페 ‘암자에서 하룻밤(천장암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밸라거사님과 선심행보살님께
일요법회에 나오시는 다른 거사님들과 보살님들을 놔두고 이렇게 두 분을 호명하는 것은 두분께 남다른 고마움을 느낀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건데 밸라거사님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9월 14일입니다. 그날 일요법회를 마치고 처음으로 예산 탈해사를 순례하였습니다. 오늘 새벽 참선정진을 마치고 지난 1년동안의 일요법회와 사찰순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온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유해보자면 우리 일요법회 도반님들은 한 마리 나비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그 나비 말입니다. 그 나비는 예산, 당진, 홍성, 태안의 사찰들을 찾아 여기저기 날아다녔습니다. 방문하는 사찰마다 환영을 받고 차담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는 사찰순례를 통해서 부처님 법을 확인하였습니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이 웃고 내가 평화로우면 네가 평화롭다는 것을, 누구라도 할 일이면 내가하고 언제라도 할 일이면 지금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발걸음은 조용한 서산의 불교를 갈아 없는 쟁기와 같았습니다. 스스로 그 쟁기가 되어주신 분, 밸라거사와 선심행보살님입니다. ‘절에 가자’가 아니라 ‘절에 가주자’라는 넉넉한 마음으로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답답한 상황도 법담과 탁마의 기회로 여기셨습니다. 한분이라도 더 일요법회에 나오게 하고, 꺼져가는 일요법회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사명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그 마음이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천장사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한 대로 실천하는 밸라거사님과 선심행 보살님께 우리 일요법회 법우님들을 대표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행복합니다. 자리이타, 이타자리!!!
2015년 12월 27일
천장사 주지 허정 합장
(밸라거사님과 선심행보살님께, 2015-12-28)
B법우님의 별명은 벨라이다. 왜 밸라일까? 서울에 있는 어느 절에서 합창단에 있었는데 목소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밸라’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로 밸라거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밸라거사 B법우님에 따르면 주지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70개나 되는 사찰 순례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하였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불교와 함께 살아온 법우님이 내포지역 사찰순례를 하면서 그 동안 알지 못하였던 새로운 사실도 많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절의 재정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수 많은 사찰순례를 다녔지만 재정상태가 이정도 일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주지스님과 함께 다니며 차담을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아마 “‘절에 가자’가 아니라 ‘절에 가주자’”라 하였을 것이다.
시발스님
B법우님은 사찰순례를 하고 난 후에 순례기를 카페에 올려 놓았다. 사진은 일체 보이지 않고 오로지 글로서만 표현한 것이다. 만난 스님들의 인상에서부터 법당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그 중에 유별난 스님도 있다. 그 스님을 모두 ‘시발스님’이라 한다. 왜 시발스님일까? 법우님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서대 정문 앞에서 왼편으로 길을 꺾어 안쪽 길로 들어서면 차 한 대가 다닐만한 은밀하고 숨어있는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예전 별장풍의 낮은 일층 집과 손 떼 묻혀 가꾸어놓은 아담하고 낡은 정원들이 보이고, 길 양측으로는 작은 계곡과 비탈길이 다소 수줍게 늘어서 있었다.
차가 꼭 한 대씩만 한 방면으로 굴러가야할 숲길에 하얀 차가 한 대 떡 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를 길 한켠으로 치우기까지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곳을 지나자 옴팍한 빈터가 홀연 나타났고, 어느 스님께서 홀로 16년 동안 정진하면서 살고 있다는 애잔해 보이는 작은 집이 보였다. 오른편 단층집은 요사, 왼편 황토집은 인법당인 셈이었으나 토굴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숨어 있고 싶은 수행처修行處였다.
예전에는 형무소 교도관이었으나 마흔이 되는 나이에 수덕사로 출가를 하여 법랍法臘이 늘자 저절로 독선獨禪을 즐기는 토굴 스님은 교도소에서 알고 지내던 수감자를 출가한 수덕사에서 이번에는 사형師兄으로 상봉하게 되는 기연奇緣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그 사형스님은 이따금 토굴로 스님을 찾아와 예전 형무소 시절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사형제간師兄弟間의 우애도 확인하면서 한 잔 술과 낮잠을 즐기다 돌아가고는 했다.
어쩌다 숲길에 차를 세워놓고 술에 취해 잠에 골아 떨어져 다음날 오후까지 잠을 잔적도 몇 번인가 있었긴 하지만. 요사의 복도와 방 천장은 헤진 곳을 낡은 잡지로 도배를 해놓았으나 공양간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찬장에는 일회용 스티로폼 팩까지도 차곡차곡 먹은 순서대로 깨끗이 씻긴 채 쌓여 있었다.
마땅히 우리에게 대접할 것이 없었던 토굴스님은 사형스님의 권유에 따라 읍내 해미다방에서 마즙을 시켜주었다. 주머니가 달린 어벙벙한 회색 홋바지를 입은 사형스님의 거친 입과 까만 초超 미니스커트 해미다방 미스 김 아가씨의 출현도 나름 신선했지만 그 사이에 빛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초연超然한 토굴스님의 수동적受動的인 의연毅然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법당 옆에 차려놓은 기도실의 정갈함과 엄숙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노老 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를 많이 받은 부처님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말했던 것처럼 기도를 많이 한 기도실도 그와 꼭 마찬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감돌았다. 우리들에게 간화선看話禪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했던 사형스님의 일갈一喝은 어쩌면 우리들 사찰순례의 틈새로 끼어든 낯선 침입자의 표식標式 같은 것이었든가?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밸라거사, 세 절, 네 스님 이야기, 2015-10-01)
B법우님이 사찰순례를 다녀 와서 순례기 형식으로 올려 놓은 글이다. 세 절을 다녔는데 그 중에 하나가 토굴스님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토굴스님은 기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하여 밸라거사는 ‘괴각乖角’이라는 글에서 비판한다.
괴각(乖角) 소의 뿔이 두 개가 가지런히 나지 않고 두 뿔의 방향이 서로 다르게 뻗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괴각승이라 하면 어떤 뜻일까? 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언제나 옳지도 않은 괴팍한 성정性情을 함부로 휘두루는 자’라 묘사 되고 있다. 토굴스님이 그런 케이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괴각승은 말끝마다 하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은 “씨발”이다. 그래서 늘 ‘씨발, 씨발’한다고 하여 ‘시발스님’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순례기를 읽어 보면 다양한 스님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정진한다고 하였다.
해미읍성 연등축제
송년다회에서 차를 나누며 돌아 가며 이야기하였다.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로 사찰순례와 해미읍성 연등축제라고 하였다. 특히 사찰 순례와 관련하여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서산에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K법우님은 “이제 까지 30여 차례 사찰 순례를 다녔는데 어느 절에서도 스님과 차담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님과 차담을 하며 더구나 법회가 끝나면 함께 다른 사찰순례를 가고 그 사찰에 가서 주지스님과 차담을 갖는 것은 이제까지 보지 못하였습니다.”라 하였다.
또 한가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해미읍성 연등축제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서산지역 사암이 단결하여 연등축제를 이루어 낸 것을 말한다. 이 축제에 주지스님이 총무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해미읍성을 천주교 성지화 하려는 것에 제동을 걸 뿐만 아니라 불교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등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신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연등축제를 들고 있다.
허정스님이 한 일
차를 나누면서 돌아 가며 이야기를 하였다. 허정스님 차례가 되었다. 그런 허정스님은 주지직을 맡고 나서 많은 일을 벌였다. 어떤 일을 하였을까? 허정스님이 천장사 주지직을 맡게 된 것은 2012년 9월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천장사가 들어간 도로명 개통이다. 주소가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천장사입구로 들어 가는 길을 ‘경허로’로 만든 것이라 하였다. 이외 한 일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1012년 11월12일 천장사길 도로명주소 확정
-서산시 고북면 고용동1길 93-98에서 서산시 고북면 천장사길 100으로 변경
경허 만공스님등이 주석한 천장사의 역사성을 반영하여 천장사가 들어간 길이 법정도로명이 되게 함
2. 2012년 5월23일 명예도로명 ‘경허로’ 제막식
-경허스님 이름을 딴 서산시 최초의 명예도로명으로 경허스님을 널리 알리고 천장사를 알리는데 도움이 됨. 경허스님이 지역의 자랑스런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
3. 2014년 아라메길 천장사코스 개통
-본래 2012년 완성된 아라메길 6코스에 천장사코스가 없었으나 2012년 시장에 문제제기로 천장사 코스 신설됨. 수덕사와 천장사를 잇는 걷기 코스로 앞으로 ‘깨달음의 길’로 매주 토요일 걷기행사를 함.
4. 경허세미나 2회개최 (2012년~2013년까지)
5. 인법당 보수 및 축대 정비(2012년~2012년)
6. 경허기념관 준공(2012년~2013년 11월 완공)
7. 2012년부터 현재까지 동안거 하안거 염궁선원 운영
-청빈하게 사는 납자의 소욕지족한 선원의 가풍을 세움
8. 2013년부터 암자에서 하룻밤이라는 1박2일 주말 템플스테이 진행
가족적인 분위기의 템플스테이로 참가자의 만족감이 높음
9. 2014년부터 일요법회(월4회) 지속적으로 진행
-오전에는 법회를하고 점심공양후 인근사찰 순례를 하는 새로운 일요법회 문화를 개척. 현재까지 100여 사찰을 순례함.
10. 2014년 5월 해미읍성 연등축제 처음으로 개최
-내년도 예산증액으로 매년 해미읍성에서 개최계획. 해미읍성의 천주교 성지화 막음.
11. 2014년 9월부터 전개된 해미읍성 동쪽 산수리 미륵불 찾기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지역의 불교위상 높임.
12. 백인사부대중공사 위원, 선학원 정상화추진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함.
(허정스님, 천장사 불사현황 (2012~2015년), 2015-12-17)
2012년 주지직을 맡은 이래 쉴 새 없이 불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건축물 불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권리 찾기에서부터 미륵불 찾기까지 다양하다. 그런 한편 일요법회를 빠지지 않고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재는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이다. 이를 독송하고 신도들과 문답식 토론을 하는 것이다.
허정스님을 대변하는 자는 아니다. 2007년 무렵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어 왔다. 스님이 인도 뿌네대학교 유학시절 댓글을 달아 준 것이 인연이 됐다. 그후 몇 차례 만남을 가졌고 2015년 들어서서는 천장사를 몇 차례 방문한 것이 또한 인연이 되었다.
“우리도 좋고 남도 좋고”
그렇다면 신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찰순례에 대하여 스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앞서 글에서 “지금 여기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그 나비 말입니다.”라 하여 ‘나비론’을 말하였다. 또 “우리의 발걸음은 조용한 서산의 불교를 갈아 없는 쟁기와 같았습니다.”라 하여 쟁기론을 말하였다. 이와 같은 나비론과 쟁기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지가 일요일날 맨날 나가는 것에 대하여 딴 스님들이 안 좋게 보더라구요. 법회도 법회지만 절에 있어야지 일요일날 맨날 나가면 어떻게 되느냐, 토요일 일요일만 사람이 오는데.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니까 두 분이 천장사 다니면서 천사찰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순례를 계속 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했는데, 다녀 보니까 좋은 점이 눈에 많이 띄는 거에요.
이 충청도 외진 곳에 그 혼자 계신 스님한테 누가 이렇게 열댓명이 몰려가서 뭘 묻고 이런 적이 없는 거야 이 동네는. 그런데 우리가 가서 뭐 해주고 막 얘기 하니까 그분들이 신선함을 느끼는 거에요. 아, 우리 모임이 자리이타, 우리도 좋고 남도 좋고. 쟁기가 땅을 갈듯이 우리가 가는 곳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땅을 갈면서 간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허정스님)
출발은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B법우님 부부팀이 방문하면서부터 사찰순례가 된 것이다. 이후 매주 가게 되었는데 다녀 보니 장점이 더 많다고 하였다. 70개가 넘는 사찰, 암자, 토굴을 다니면서 스님들과 차담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요한 산중에서 은둔하다시피 살아 가는 스님들을 찾아 뵙고 말을 들어 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님과 신도들이 아주 작은 암자나 토굴을 찾았을 때 오히려 스님들이 신선한 충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발걸음은 조용한 서산의 불교를 갈아 없는 쟁기와 같았습니다.”라 하였다.
천장사발 나비 날개 짓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은 올 한해를 보낸 소감에 대하여 한마디로 “늘 아슬아슬 했습니다.”라 하였다. 무엇이 아슬아슬한 것일까? 처음에는 일요법회 인원이 세 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 법당이 꽉 찰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추세로 가면 연말에 50명 가량 예상하여 법당증축 문제까지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요법회 인원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하나 아슬아슬 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종단에서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 두 언론 매체에 대하여 해종언론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도 아마 아슬아슬 것에 포함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요법회가 있는 사찰이 드물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교재로 하는 경우는 드물것이다. 더욱 드문 것은 문답식 법회일 것이다. 천장사에서는 초기경전을 독송하고 토론식으로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일년이 넘은 것이다. 어느 법우님에 따르면 일요법회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수준이 높아 졌다고 하였다. 이는 초창기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스님과 함께 신도들이 서산, 홍성, 당진, 태안 등 내포지역 작은 암자, 토굴, 사찰 순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스님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에 놀랐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 보다 마치 잠자고 있는 듯한 내포불교를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나비의 작은 날개 짓과 밭을 가는 쟁기질로 비유하고 있다. 이런 날개짓과 쟁기질이 전국에 확산 되었으면 한다. 천장사발 바람이 전국을 강타한다면 한국불교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2015-12-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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