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재가불교성직자를 요청한다
작은 암자 봉명암
천장사 순례팀의 마지막 여정은 ‘봉명암’이다. 일박이일 순례일정에서 화엄사, 용화사, 쌍계사, 연곡사, 사성암을 거쳐 최종적으로 봉명암으로 향하였다. 봉명암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요즘 절은 대부분 자동차 절 입구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 봉명암 가는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그래서 도보로 올라 가야 한다. 그것도 기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갔다.
봉명암에 이르렀다. 집 두 채가 있는 작은 암자이다. 이런 암자를 ‘토굴’이라 한다. 암자는 불상이 모셔져 있는 본채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상의 조건을 갖춘 토굴
말을 들어 보니 최상의 조건을 갖춘 토굴이라 한다. 그것은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사는 곳과 너무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님 당시 마을에서 멀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은 숲에 사는 처소를 떠 올리게 한다.
봉명암은 산 정상 가까이 있다. 남쪽을 바라 보니 시원하게 탁 트여 있다. 아래로는 구례읍이 보이고 섬진강이 보인다. 그리고 저 너머 멀리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토굴이라 한다.
혜월스님과 차담을 하였는데
봉명암에는 혜월스님이 살고 있다. 혜월스님은 천장사와 어떤 인연일까? 천장사 선방에서 지난해 겨울 한철 살았다고 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천장사 신도들과 안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작은 토굴 봉명암에는 혜월스님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16명이나 되는 인원이 들이 닥치니 가뜩이나 좁은 암자가 더 좁은 듯 하다. 더구나 차담을 하기 위하여 스님의 방에 들어 갔는데 너무 작아 다 들어 가지 못하였다.
스님은 귀한 차를 대접하였다. 차를 나누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어느 법우님이 “스님, 출가 이야기 해 주세요”라 하였다. 이에 스님은 주저 없이 이야기 해 주었다. 스님이 출가하게 된 것은 직장에 다닐 때라 하였다. 기능직으로 직장생활 삼사년 할 때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껴 두 달간 암자에 있었다고 했다. 이것을 인연으로 출가 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27세라 하였다. 이후 30년 동안 토굴과 선방에서만 살았다고 하였다.
뻐꾸기한테 화두탄 이야기
혜월스님은 화두와 관련하여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스님이 87년 칠불사에 있을 때 한철 살았는데 소쩍새가 잠을 못 잘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소쩍새가 ‘뻐뻐꾹, 뻐뻐꾹’하는데 그 소리가 ‘이뭐꼬 이뭐꼬’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화두를 이뭐꼬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이전에는 나무아미타불이나 육자진언 하였는데 뻐꾸기 소리를 듣고 바꾼 것이라 한다. 이후 스님은 ‘시심마(是甚麼)’를 화두로 하여 지금까지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뻐꾸기한테 화두탄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혜월스님은 지금까지 30안거를 했다고 한다. 15년은 안거로 보내고 또 15년은 토굴에서 지냈다고 했다. 한때 정진할 때는 12시간 내지 14시간 밀어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공부를 위해서는 토굴만한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토굴에서 홀로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늘 홀로 사는 것은 아니다. 개인토굴과 대중선방을 오가며 살기 때문이다. 그런 혜월스님은 감관이 매우 맑다. 그리고 견고한 인상이다. 이번 동안거 때는 칠불암에서 한철 날 것이라 하였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스님에게 “상구보리 하였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이에 “아직 자기구제도 못했는데..”라 하였다. 그래서 토굴과 대중생활을 통하여 정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30년 동안 정진하였다면 상구보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해야 할 공부가 더 남아 있음을 말한다.
흔히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 한다. 동국역경원 사전에 따르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는 동시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동시성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먼저 상구보리 한다음 하화중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맛지마니까야에서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세존]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지지 않은 사람만이 참으로 진흙에 빠진 다른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이 가능하다.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지 않고 수련시키지 않고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만이 참으로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M8)
부처님은 분명히 먼저 깨달음을 이루어야 함을 말씀 하셨다. 이를 진흙탕에 빠진자의 비유로 설명하였다. 진흙탕속에 빠진자가 진흙탕속에 빠진자를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에 빠진자가 물에 빠진자를 구제 할 수 없듯이, 아직 깨닫지 못한자가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본다면 동국역경원 불교사전에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는 동시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라는 말은 부처님 가르침과 약간 다르다.
누가 구제할 수 있는가
경에서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attanā palipapalipanno)’은 다른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스스로 진흙에 빠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스스로’라는 말은 ‘attanā’를 번역한 것이다. Attanā는 ‘self, ego, personality’의 뜻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유아견이 있는 자를 말한다. 오온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유아견을 가지고 있는 자는 결코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없고 해탈과 열반을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은 유아론자이다. 유아론자는 결코 진흙탕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연히 진흙에 빠져 있는 다른 사람도 구원할 수 없다. 물에 빠져 함께 휩쓸려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숫따니빠따에서는 “마치 사람이 물이 넘치고, 홍수가 져서, 물결이 거센 강에 빠지면, 그 물결에 휩쓸려 떠 내려가는 것과 같다. 그런 이가 어찌 남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stn319)라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자가 남을 구제해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진흙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다. 어떤 자인가? 경에 따르면 “자신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 (M8) 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무아의 경지, 거룩한 경지에 올라가 있는 사람, 궁극적으로 아라한을 말한다.
아라한만이 거센 물결에 휩쓸려 가는 자, 진흙탕 속에 빠진 자를 건져 올릴 수 있다.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여 아직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였다면 남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진흙탕속에 빠진 자나 거센 물결에 휩쓸려 가는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할까?
어느 스님에게서 글을 받았는데
출가자와 재가자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이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는 재가자로 부터 사대필수품을 수용하였다. 이에 출가자는 가르침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출가가자는 ‘법보시’하고 재가자는 ‘재보시’하여 역할이 분담 되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유지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출가자의 법보시도 재가자의 재보시도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불교를 접하기 힘들다. 산에 가야 불교를 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는 십자가 천지가 되었다.
오늘날 도시에서 불교를 접하기 힘들다. 주변에 절이 없고 교회와 성당은 넘쳐난다. 스님들이 공부가 다 되었으면 하산해야 한다. 그러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왜 그런가? 2011년 어느 스님(산중승님)으로 받은 글에서 알 수 있다.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연꽃님~ 교화 활동? 禪 불교를 잘 모르시는 분 같습니다. 혹시 [入廛收手]란 말을 아십니까? 禪家에서 尋牛道의 제일 마지막 단계로서, 수행자가 [보리]를 얻고나면, 산을 내려가서 '저잣거리=도시'에 뒷짐지고 누덕누덕 기운 옷입은체 말없이 서있는다는 것입니다.
왜 [손을 뒤로 감추고] 저잣거리 복판에 묵언으로 서있는 걸까요. 세속살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요. 길 잃은 중생들이 길을 물으면, 그때서야 길을 가르쳐 주려고 서있는 겁니다. 길을 묻는 者가 답답한 입장이니까. [답답한 者가 물어라. 단, 공손하게 예의를 차리고... . 그러면 답을 가르쳐 주리다]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묻기 전엔 먼저 [설교]따위 하지 말라는 것이 우리의 계율입니다. 목마른 짐승이 물을 찾으면, 물있는 곳 가르쳐주고/ 길잃은 중생이 길을 물어면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수행승이 할 일입니다. 그뿐입니다.
물을 찾지 않는 소에게 물 먹일수 없고 길 묻지 않는 者에게 길을 말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이 해야 할 일]이란 [길 묻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면 됩니다. 그 방법이 꼭 [설교]식의 장광설일 필욘 없는 겁니다.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머리를 끄덕여 주거나, 빙긋이 미소짓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자비행'인 것입니다.
왜? 수행승들이 [나이롱 뽕]으로 道를 얻은 것이 아니고, 수십년 처절한 수행으로 어렵게 깨우친 것인데, 묻지 않는 者들을 찾아다니며 싸구려 물건 팔듯이 [믿셤니까?]를 외칠 이유가 없습니당~”
(산중승님)
산중승님이 보낸 글에 따르면 일반불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님들이 공부가 다 되었으면 하산하여 가르침을 베풀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법은 청해야 설한다
심우도에서 ‘입전수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산중승님에 따르면, 공부가 다 된 도인이 세상에 나오지만 단지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라 하였다. 이는 누군가 물어 보기 전에 스스로 나서서 알려 주지 않음을 말한다. 사실 이런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붙잡고 “예수믿으세요”라고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짜증 날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뿐니야여,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었더라도 찾아오지 않으면, 그 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뿐니야여,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었고 찾아 오면, 여래가 기꺼이 가르침을 설한다.” (A8.82)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찾아 와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에게 법을 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부로 찾아 다니며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
법은 청해야 설하는 것이다. 이는 청법가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도 세 번 청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공부가 다 된 스님들이 하산하여 가르침을 베풀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환상일지 모른다.
스님들은 왜 산에서만 살까?
그렇다면 스님들은 왜 산에서만 살까? 이에 산중승님은 “중들이 왜 산에만 있느냐구요? 본래 세속이 싫어서 머리깎고 산으로 들어온 것이니까 그리고 산속이 편하니까.”라고 말한다. 이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세상이 싫어서 입산했고 또 산에서 오래 살다 보니 산중생활이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산중승님은 또 “왜 편하냐고요? 세속의 때가 없는 청정한 곳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온갖 오염원으로 가득한 도시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산중에 사는 스님들이 산중에만 살고 도시로 내려 오지 않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로 공부가 아직 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공부가 다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부로 찾아 다니며 알려 줄 의무는 없는 것이라 하였다. 또 하나는 산에서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스님들이 산중에 사는 것이라 본다.
도시에 불교가 없는 이유는?
스님들이 산중에서만 산다면 사람 사는 곳에 불교가 있을 수 없다. 도시에 절이 없다면 불교를 접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불교는 쇠퇴할 것이다. 교회십자가는 넘쳐 나는데 절 구경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불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산중승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불교가 그 인연을 다하여 '말살'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라면 그냥 말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연없는 중생[우빠까]도 붓다를 떠났듯이... 인연없는 세속중생들이 불교를 떠나서 [야훼]한테 가려면 그렇게 하랄수 밖에...
말살?ㅎㅎㅎ 말살 되고 안되고는 [세속중생]이 선택할 일입니다. 세속중생들에게 [불교]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속중생들의 사정이니까 세속인들이 나서서 불교 말살을 막는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
출가승려들이야 모두들 세속인연을 다끊고 산중으로 들어와버린 몸인데 세속인연에 연연할 일 없쟎습니까? 설사 불교가 세속에서 잊혀지더라도, 우리 수행자는 언제까지나 山中에서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을 겁니다.”
(산중승님)
산중승님에 따르면 산에서 사는 수행자는 세속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하였다. 설령 도시에서 불교가 사라져도 그것은 세속의 일일 뿐이라 하였다. 그러나 불교는 말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산중에서 수행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한 불교는 계속 유지 될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불교는 어떻게 할 것인 것? 이에 대하여 “세속중생들의 사정이니까 세속인들이 나서서 불교 말살을 막는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라 하였다.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는 산중의 스님들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산중승님의 견해가 한국불교 스님들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들어 맞는 것 같다. 솔직하게 표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산중승님의 글을 받고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었다. 그것은 산중에서 사는 스님들이 공부가 다 되었을 때 도시로 내려와 가르침을 펼칠 것이라는 환상을 깨끗이 버린 것이다.
재가성직자 도입에 대하여
도시에서 불교는 요원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각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 부터이다. 각산스님은 동국대 정각원 법회에서 재가성직자 도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독교의 목사님들, 성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이든 세계이든 활성화 시켰습니다. 옳든 그르든 신앙은 믿거나 말거나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들을 말할 수 없습니다. 폄하시킬 필요 없어요. 불교내에도 신앙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불교는 실존신앙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신앙적 의미에서 그분들은 목회활동하여 목사라고 성직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들 스님들은 출가 할 때부터 독특합니다. 세상을 버려 버리고 오로지 도 닦는 마음만을 가지고 들어 왔기 때문에 그게 잘 안됩니다. 솔직히. 여러분 원하시는 구조요.
입산해가지고 스님들께서 “야, 임마, 니도 구제가 안됐는데 무슨 중생구제하러 간단 말이고” 라며 ‘한생 없다고 살아라’가 거의 이렇습니다. 그러다 보면 목사님들 하는 것 1%만 하면 대성공한데요. 진짜 이해가 되거든.
그래서 안되는 현실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세속에 계시면서 정년퇴임을 하고 뭐하겠습니니까? 불교 이거는 연세 드실수록 정신내면 세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주고 나도 좋지 않습니까? 이럴 때 여러분 들은 좀 우리도 그럴듯한 요새 ‘포교사’말고 제가 기획해가지고 멋진 것 또 여러분도 멋진 성직자, 여러분도 성직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 그러면 시주 할 거 아닙니까? 생활 영위하고 그 다음에 시주가 많이 들어 오면 불우이웃 좀 돕고 그 다음에 스님들과 삼보를 높이 받드는데 응용해서 그기OOO(?)길인기라. 그래서 앞으로 그 길로 가이소.”
(각산스님, 불교방송 명상강좌 -제14강- 각산스님의 "좌선하는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
각산스님에 따르면 재가성직자의 당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또 도시에서 불교가 없는 것에 대하여 스님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산중승님이 “출가승려들이야 모두들 세속인연을 다끊고 산중으로 들어와버린 몸인데 세속인연에 연연할 일 없쟎습니까?”라고 말한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한 스님들이 공부가 다 되었을 때 세속에서 가르침을 펼 것이라는 환상은 접어야 할 듯 하다. 그 대신 세속에서는 재가자들이 불교를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이에 각산스님은 ‘불교성직’개념을 이야기 하였다. 개신교 목사들이 개신교를 성직삼아 삶을 영위하듯이 불교에서도 불교를 성직삼아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불교성직자가 출현해야 함을 말한다.
각산스님이 말하는 불교성직자는 포교사와 다르다. 사회적으로 성과를 낸 사람들을 말한다. 이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상이다. 덕망 있고 학식있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불교성직자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시대는 재가불교성직자를 요청하고 있다
불교를 성직삼아 삶을 영위하는 성직자의 출현은 매우 바람직하다. 스님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상구보리하여 자기 구제를 하지 못하였을지라도 가르침을 알려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와 성직자로 이원화 된 구조를 가지고 역할 분담하면 된다. 스님들은 수행자로서 수행에만 전념하고 성직자는 포교에 전념하면 된다.
이제까지 스님들의 본분사는 수행과 포교라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세상을 등진 출가자들이 수행은 가능할지 몰라도 포교는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포교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포교대상을 만들어 스님들에게 상을 주는 제도까지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스님들의 본분사가 수행과 포교라면 포교대상제도는 ‘넌센스’이다. 스님들이 포교를 하지 않으니 상이라도 만들어 장려 하자는 취지 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산중에 사는 스님들이 도시에 나와 스스로 개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스님들은 포교에 대하여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것이라면 포교에 관한한 재가자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세상일은 세상에 사는 자가 더 잘 알 것이다. 학식있고 덕망있고 더구나 나이 든 지혜로운 자가 포교 하였을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재가자에게 불교성직을 맡겨서 삶을 영위하고 포교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기독교 목사처럼 재가불교성직자라는 새로운 직종이 탄생하게 될지 모른다. 시대는 재가불교성직자를 요청하고 있다.
2015-11-06
진흙속의연꽃
'국내성지순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를 산사에서, 천장사 새해맞이 템플스테이 (0) | 2016.01.01 |
---|---|
천정사발 날개짓과 쟁기질, 천장사 송년다회에 참석하고 (0) | 2015.12.29 |
기도보다 법공양(dhamma-pūjā)을, 절벽위의 사성암을 보며 (0) | 2015.11.06 |
피아골 단풍축제와 연곡사 국화축제 (0) | 2015.11.05 |
쌍계사 파초를 보며 (0) | 201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