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꽃들은 피고 지는데, 삼악산 흥국사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6. 5. 6. 10:26

 

꽃들은 피고 지는데, 삼악산 흥국사에서

 

 

꽉 막힌 도로에서

 

도로가 꽉 막혔다. 5 5일 어린이날 춘천 가는 국도에서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후회, 원망, 두려운 감정이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극심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오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마다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강력한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이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은 위빠사나수행센터에서 늘 듣던 말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분노가 치밀었을 때 , 나에게 화가 일어났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꽉 막힌 도로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려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정체를 보면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후회의 마음이 일어났다. 이른 아침 고속도로에 진입하려 했으나 벌써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른 길로 선택한 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국도를 이용하여 다시 고속도로를 진입시도 하였으나 또 다시 막혀 있는 것을 보았다. 고속도로 반대방향으로 백하여 국도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더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어느 길로 가든지 막히는 상태라면 차라리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더 나았다. 이렇게 갈팡질팡 하다 보니 시간은 흘러가고 차량은 더욱 더 급속도로 증가 되었다. 오도가도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 결과 거의 서있다 시피한 상태가 여러 시간 지속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때 차라리 고속도로를 탔어야 했는데라며 후회마음이 일어났다.

 

이렇게 막힐 줄 알았다면 이전 날 떠났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원망의 마음이 일어 났다. 오도 가도 못하고 거의 서 있다시피 한 도로에서 분노와 후회와 원망과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자신도 제어 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알아 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그 마음을 알아 차리려 하였으나 그때뿐이었다. 수십키로에 걸쳐 끝없이 이어지는 긴 줄을 보면 또 다시 분노, 후회, 원망,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침 7시 이전 안양에서 춘천을 향해 떠났다. 춘천의 목적지에 가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보다 일찍 출발했으므로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도착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덜 막히는 곳을 찾아 갈팡질팡 하다 보니 오후 2시에 도착하였다. 고작 117키로미터의 거리를 무려 7시간 걸렸다. 특히 대성리 바로 이전 46번국도와 45번 국도가 만나는 금남IC지점이 절정이었다.

 

 

 

 

 

 

두 개 차로에 큰 두 개의 국도와 작은 도로 까지 무려 5개의 차로가 마치 병의 목처럼 좁혀 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의 서 있다시피 하였을 때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목적지는 멀고 도로는 주차장이 되었을 때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낸다. 도로가 막혀 꼼짝 못하고 서 있었을 때 분노가 치밀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화이다.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후회의 감정이 일어났다.

 

경계에 부딪치면 온갖 부정적 것들이 다 드러난다. 이런 것들은 알아차릴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로 다가 왔을 때 잠시 그때뿐이다. 또 다시 부정적 생각들이 마치 밀물처럼 밀려 온다. 이럴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생각나는 단어가 출리(出離)’이었다.

 

출리(出離)에 대하여

 

출리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속세와 관계를 끊음이다. 이런 어려운 단어를 한역경전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 한자어로 된 고구정녕, 조고각하, 청출어람, 위법망구 등과 같은 단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한자어로 된 단어는 사전을 찾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소개하는 스님들 조차 이처럼 뜻을 알 수 없는 한자용어를 사용한다. 출리도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

 

출리라는 말은 빠알리니까야 번역서도 등장한다.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은 팔정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정사유(正思惟)]인가? , 비구들이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불해(不害)]에 대한 사유 이를 일러 바른사유라 한다.” (S45.8) 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재성님은 이 구절과 관련하여 욕망을 여읜 사유를 하고라 했다.

 

팔정도에서 정사유에 대한 것은 욕망, 분노, 폭력을 멀리 하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욕망을 떠나는 것에 대한 사유는 빠알리어로 ‘nekkhammasakappo’이다. 이 말은 ‘nekkhamma+sakappa’의 결합어 형태이다. 여기서‘nekkhamma’‘freedom from sensual lust’의 뜻이다.

 

빠알리어 ‘nekkhammasakappo’는 감각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유를 뜻한다. 그럼에도 각묵스님은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라 하여, 출리가 어떤 의미를 말하는지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사전을 찾게 하였다. 전재성님의 경우 욕망을 여읜 사유라 하여 빠알리 원어 그대로 번역하였다.

 

빅쿠보디는 “Intention of renunciation”라 했다. Renunciation은 포기, 자제, 단념을 뜻한다. 따라서 Intention of renunciation포기의 의도라 번역할 수 있다. 무엇에 대한 포기인지 알 수 없다. 출리에 대한 사유라 하였을 때 무엇에 대한 출리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빠알리어 nekkhamma는 분명히 감각적 욕망(sensual lust)’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뜻 모를 한자어를 보면

 

아직까지도 한자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전을 찾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한자용어를 사용하였을 때 외국어나 다름 없다. ‘고구정녕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스님은 부처님제자들이 고구정녕 말씀 하셨다라고 강연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입이 닳도록 당부하다(苦口丁寧)”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조고각하라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 말 역시 인터넷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다만 선가에서 네 발 밑을 보라(照顧脚下)”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스님은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靑出於藍)” 을 이르는 말이다.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말도 있다. 이는 (진리)을 구하거나 얻기 위해 몸이 망가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것까지 피하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 이외 수 많은 한자용어가 지금도 각종 강연이나 기고문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황휘옥교수의 정토사상강좌를 들으며

 

주차장이 되어 버린 도로에서 한시바삐 떠 나고 싶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갈 길은 바쁜데 저 많은 차들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럴 때 꽉 묵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도 가도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앞의 차들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서 정체가 풀리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려고 노력 했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고 더구나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되자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또 다시 초조, 불안, 분노, 후외, 원망, 두려운 감정이 밀려 왔다. 이 때 유튜브강좌를 들었다.

 

장휘옥교수의 정토사상강좌를 들었다. 막히는 길에서 무려 다섯 편 들었다. 대원불교대학에서 강연한 것이다. 들다 보니 강연시점이 ‘2005임을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 말한 것이다.

 

정토사상은 대표적 타력신앙이다. 자력의 불교와는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탈 것에 비유하였다. 길을 가는데 있어서 참선하는 것은 홀로 가는 것이지만 정토신앙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탑승하여 목적지에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상근기의 수행자는 홀로 가도 되지만 그 외 사람들은 탈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장휘옥교수의 강연은 들을만하다. 그것은 교리만 강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개인사 또는 가족사까지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칼칼한 경상도 억양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약간은 드세고 여장부 같아 보인다. 강연을 듣다 보니 여자 최봉수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불교를 공부하는가?

 

장휘옥교수는 섬에서 산다고 했다. 김사업 교수도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섬에서 사는 이유에 대하여 수행적 측면이라 했다. 섬으로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도 수행지도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섬에서 자급자족하며 수행을 하며 살아 가지만 배를 타고 나와 강연도 한다고 했다. 그런 강연중에 하나가 호스피스를 위한 강연이었다고 했다.

 

장휘옥교수가 호스피스를 위한 강연을 했을 때 놀란 것이 있다고 했다. 호스피스는 몇 명 안되고 대부분 간병사들이었다고 했다. 말기암 환자들을 돌봐 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하였는데 대부분 부처님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르더라는 것이다. 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연이 부처님은 인도사람인줄 알고 있었으나 간병사들 대부분은 불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자들은 부처님이 인도출신인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불교교양대학에 다니면 이런 저런 교육을 받기 때문에 불교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사람들은 불교에 대하여 무지하다. 간병사들 역시 마찬가지라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간병사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직업으로 일하는 것이다. 말기암 환자들을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하라라는 등의 말을 해 주기를 바라지만 무리라는 것이다.  

 

불교에 대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다. 삶이 안정되어야 그때 서야 불교를 찾는 것이다. 이는 불교교양대학 입교생의 연령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자녀가 수능에 임박하였을 때 비로소 절을 찾는 것이다. 불교공부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함을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교가 무엇인지 모른다.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난 것 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심신의 피로를 보상받고자

 

꽉막힌 도로에서 장휘옥교수의 강연을 다섯 편 들었다. 슬슬 가다 멈추고를 수 도 없이 반복하였다. 110여키로터의 거리를 7시간 걸렸으니 길바닥에서 시간을 다 보낸 것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일을 보고 다시 오던 길로 출발화였다. 이번에는 정반대로 뻥 뚫려 있었다. 도중에 가평 삼악산에 갔다. 가다 보니 흥국사에 이르렀다.

 

 

 

 

 

 

피로에 지친 몸과 흐트러진 정신에 대하여 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산길을 걷는 것이다. 오전 교통체증으로 인한 심신의 피로를 보상받고 싶었다. 늦은 오후에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았다. 오르다 보니 초입에 폭포가 보였다. 등선폭포이다. 춘천을 대표 하는 관공코스중의 하나이다.

 

 

 

 

 

 

 

험준한 협곡으로 이루어진 등산로는 작은 그랜드캐니언을 보는 것 같다. 몇 일전 비가 와서일까 세차게 흘러 내리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다. 꽉 막힌 도로에서 7시간 동안 고뇌를 단번에 씻겨 주는 듯하다.

 

 

 

 

 

 

 

 

 

 

 

 

 

 

궁예의 궁궐터이었다는데

 

오르다 보니 중턱에 절이 하나 보였다. 흥국사이다. 흥국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많다. 그런데 흥국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나라와 관련 되어 있다. 삼악산 흥국사 역시 그러하다.

 

 

 

 

 

 

 

 

 

 

 

 

 

 

 

흥국사는 어떤 절일까? 안내판을 보니 천년고찰이다. 그것도 후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설명문을 보니 서기 894년 후삼국시대(후고구려)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왜()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흥국사라는 절을 지어…”라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흥국사가 있는 터는 협소하고 작은 분지형태로 되어 있다. 천년도 전에 세워졌음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끼 낀 작은 석탑이 홀로 서 있다.

 

 

 

 

 

 

 

삼악산 흥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절이다. 삼악산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오로지 발로만 올라 갈 수 있다. 하나의 비석이 서 있는데  일붕서경보선시비라 되어 있다.

 

 

 

 

 

 

 

 

꽃들은 피고 지는데

 

후삼국시대 궁예의 궁궐터이었다는 흥국사에는 꽃들이 피고지고 있다. 빨강과 연분홍의 철쭉은 절정이다. 겹벚꽃은 꽃이 지고 있지만 새롭게 불두화가 피어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하여 핀다는 커다란 불두화나무에 아기 주먹만한 동그란 꽃송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가장 큰 힐링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 있었다. 아무리 부처님 가르침이 훌륭하다 하여도, 아무리 수행을 오랫동안 했다 하여도 경계에 부딪치면 나오게 되어 있다. 대부분 참지 못한다. 그나마 수행을 했다 하는 사람들은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분노하고 후회하고 원망하는 그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이 짧아서인지 그때뿐이다. 결국 정체는 풀려서 쌩쌩달리게 되었다.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는 듯 한계속도까지 마구 달렸다. 그러나 가장 큰 힐링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이루어졌다.

 

폭포의 세찬물소리에 마음이 씻겨져 나갔다. 땀흘리며 올라 감에 따라 마음의 찌꺼기도 날라갔다. 아무리 알아차리려 노력해도 허사이었고 유튜브강좌를 들어도 그때 뿐이었지만 인적 없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피고지는 꽃을 바라 보았을 때 힐링이 되었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산에는 꽃이 피고 진다.

인적 없는 곳에서도 꽃이 피고 진다.

꽃이 필 때 봐 달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때 되면 꽃이 피고 진다.

 

세상사에 지친 자가 산사를 찾는다.

인연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는 자는

꽉 막힌 도로에서처럼 어찌 할 수 없다.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귈 때 자유를 만끽 한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진다.

누가 보지 않아도 저 혼자 피었다가 진다.

저기에 이름 모를 부도가 홀로 숨은 듯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피고 졌다.

 

 

 

 

 

 

 

 

2016-05-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