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동백나무꽃을 보잣더니
한가하고 할일 없는 일요일 오후였다. 이럴 때 산에 가는 것이 최고이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집 근처 관악산 둘레길 가는 길이 있다.
바로 근처에 숲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갑자기 늦봄의 날씨가 한여름이나 된 듯 30도가 너머서자 도시가 열기로 가득하다. 이럴 때 숲으로 들어 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분위기가 반전된다.
관악대로를 건너면 반야선원이 곧바로 나온다. 선원 바로 옆길이 관악산 둘레길로 연결 되는 통로가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통로와 같다. 그런 숲길에 들어서자 마자 별세계가 펼쳐진다. 신록도 점점 짙어져 가는 초록의 향연이다. 그 때 두리번 거리며 찾아 보는 것이 있다. 이맘 때쯤 피는 때죽나무꽃이다.
때죽나무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끝물이다. 5월도 말에 접어 들었기 때문에 꽃은 거의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지에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너무 늦게 온 것이다.
이번에는 그 꽃을 찾아 보기로 했다.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꽃이라 한 것이다. 그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생긴모습이 때죽나무꽃과 비슷하지만 잎사귀와 꽃줄기가 다르다. 오엽의 흰꽃이 아래로 매달리듯 피는 것은 같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잎사귀에서 차이가 난다. 그꽃은 잎사귀가 크고 동그란 것이 특징이다. 또 꽃줄기가 있어서 마치 목걸이용 꽃다발을 연상케한다. 그런 꽃을 알기에 이곳 저곳 찾아 보았으나 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늘 다니는 숲길이다. 사시사철 산책하듯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특히 봄에는 어느 나무에서 어느 꽃이 피는지 알 수 있다. 그꽃이 있는 곳도 알고 있었다. 오월에 피는 그 꽃이 생각나서 찾아 보았지만 이미 지고 난 후였다. 바닥을 보니 마치 흰꽃이 시체처럼 가득했다. 너무 늦게 온 것이다. 그 꽃이름 쪽동백나무꽃이다.
쪽동백을 2012년 처음 보았다. 마치 하와이완목걸이꽃처럼 희고 아름다워서 “오월이 되면 총림(叢林)에서 피는 꽃(2012-05-13)”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다.
오월 늦봄 강렬한 햇살이 비치는 날 쪽동백을 보고자 숲에 들어갔다. 마치 연인을 보듯 설램을 가지고 숲에 들어 갔으나 이미 지고 난 뒤었다. 야속하게 꽃줄기에는 콩알만한 열매가 맺혀 있었다. 꽃은 숲속에서 저 혼자 피었다가 저 혼자 진 것이다.
숲여행을 계속했다. 야생의 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정원이나 공원이나 가로의 관상용 꽃은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숲에 피는 꽃은 작고 흰 것이 특징이다. 때죽나무꽃, 쪽동백나무꽃이 대표적이다. 끝물을 아쉬워 하며 걷고 있을 때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매우 작고 흰꽃이 이제 막 피어나려 하고 있다. 산꽃이 그렇듯이 향기가 진하다.
꽃은 때 되면 피어난다. 공원이나 거리의 꽃은 다니면서 매번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산에서 피는 꽃은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 봄철 일주일만 늦어도 이미 꽃은 지고 없는 것이다. 그럴경우 허탈하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듯 하다.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산길 산책을 마치고 동네로 돌아왔다. 늦은 오월이어서일까 아파트담장에는 장미가 한창이다. 이른바 장미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월이 장미의 계절이라 하지만 열섬으로 인하여 도심의 장미는 일찍 개화 한다. 빨강과 흰 장미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자극한다.
장미의 계절에 숨어 있는 듯 피는 꽃이 있다. 너무 작아 꽃이 피는지 조차 모를 꽃이다. 이맘 때쯤 피는 감꽃이다. 커다란 잎에 숨어 있는 감꽃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일부로 가까이가서 쳐다 보기 전에는 피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매년 감꽃이 필 때 그 나무에 가서 보기 때문에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고 노랑 감꽃이 수줍은 듯이 피어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감꽃을 볼 때 마다 바이블의 한구절을 떠 올리게 한다. 넓은 잎사귀 속에 꽃이 피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작은 꽃이지만 열매는 매우 크다.
크고 화려한 꽃 대부분은 열매가 보잘 것 없다. 겉모습만 번지르하지 실속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고 갸날퍼 보이는 노랑감꽃은 큰 열매를 맺는다. 마치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감꽃은 어머니 같은 꽃이다.
꽃을 찾아 숲에 들어 갔다. 그러나 설램에 보고 싶은 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꽃은 숲에서 피고졌다. 붉과 화려한 장미가 아름답다 하지만 늘 보는 꽃이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러나 숲에서 피는 작고 흰꽃은 순결하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주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 것이다. 감꽃 역시 그렇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어야 한다. 큰 결실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은 비록 작고 보잘것 없지만 노력하면 성공하는 것과 같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도를 닦는 것도 결실을 맺기 위해서이다. 단지 도닦는 것으로 그친다면 붉고 화려한 꽃에 지나지 않는다. 도를 닦아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처에서 하는 말이 도와 과이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듯이, 도(magga)를 이루어 열매(phala)를 맺는 것이다.
2016-05-23
진흙속의연꽃
'나에게 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0) | 2016.05.27 |
---|---|
하늘에는 어머니의 우비가, 세상에는 부처님의 법비가 (0) | 2016.05.24 |
용서 (0) | 2016.05.21 |
인생비육십(人生非六十)이라는데 (0) | 2016.05.09 |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에 (0) | 2016.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