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는 부유해도 스님들은 가난해야, 천장사 송년법회(2)
오후 2시가 되자 천장사 일요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2월 25일 오전에는 덕숭총림의 방장스님이 생일이라 모두 큰절에 갔었기 때문에 오후에 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모두 13명이 모였습니다. 부부팀은 3팀입니다. 새로 부임한 주지스님과 함께 천수경 등 긴 의례를 했습니다. 이어서 초기경전 독송이 있었습니다. 일아스님이 편역한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입니다. 이날 독송은 율장에 있는 죽림정사 설립이야기입니다.
빔비사라왕의 다섯 가지 소원
경에 따르면 죽림정사는 한대부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경에서는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이라 되어 있습니다. 불교역사상 최초의 사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율장대품에 실려 있는 벨루와나 숲 기증 이야기를 찾아 보았습니다.
율장대품에는 ‘빔비사라왕의 부처님에게 귀의한 이야기’(Vin.I.22-24) 가 실려 있습니다. 마가다국왕 빔비사라왕은 태자였을 때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1)참으로 나를 왕위에 관정시켜 주면 좋겠다.
2)참으로 나의 영토에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출현하면 좋겠다.
3)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을 모시면 좋겠다.
4)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께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다.
5)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면 좋겠다.” (Vin.I.22-24)
부처님이 출현하자 빔비사라왕은 다섯 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왕은 대나무숲이라 불리우는 벨우와나를 부처님의 교단에 기증하게 됩니다.
정사의 소유권은 어디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벨루와나 숲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제자들은 숲속이나 나무밑, 무덤 등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위의 있는 제자들을 보고서 어느 대부호의 마음에서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이에 대부호는 “제가 정사를 짓는다면 저의 정사에 거주하겠습니까?”라고 수행승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이를 부처님에게 알리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방사, 즉, 정사, 평부옥, 전루, 누옥, 동굴을 허용한다.”(율장소품, 제6장 처소의 다발, Vin.II.146) 라 했습니다.
대부호는 단 하루만에 60개의 정사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죽림정사로서 불교역사상 최초의 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사의 소유권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부호는 “세존이시여, 그 정사들에 대하여 어떻게 조치하면 됩니까?”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Tena hi tvaṃ, gahapati, te saṭṭhivihāre āgatānāgatassa cātuddisassa saṅghassa patiṭṭhāpehī
[세존]
“장자여, 그렇다면, 그 예순 개의 정사는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에 봉헌하십시오.”
(율장소품, 제6장 처소의 다발, Vin.II.147,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사방승가에 봉헌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방승가(cātuddisasaṅgha)’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걸쳐 확대되고 공간적으로는 우주적으로 확대되는 우주승가를 말한다.”라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사방승가안에는 재가신도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언급한 사방승가에는 재가신도는 언급이 없습니다. 사방승가는 비구와 비구니의 현전승가가 확장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승가는 부유해도 스님들은 가난해야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은 기쁨으로 정사를 지어 승가에 보시했습니다. 이로 알수 있는 것은 대부호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번 상인들이 신심으로 정사를 보시한 것이 결정적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재벌들이 큰보시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청정함’이 바탕이 됩니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라자가하 시에 부호가 아침 일찍 공원에 갔다. 라자가하 시의 부호는 그 수행승들이 아침 일찍 여기저기 숲속이나, 나무 밑이나, 산중이나, 산협이나, 산굴이나, 무덤이나, 우거진 숲이나, 노천이나, 짚더미로부터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앞을 보거나 뒤를 보거나 구부리거나 펴거나 단정하게 눈을 아래로 하고 위의를 갖추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마음이 기쁘고 청정해졌다.” (율장소품, 제6장 처소의 다발, Vin.II.146, 전재성님역)
전형적인 ‘경행’장면입니다. 사리뿟따가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 가기전에 앗사지의 경행을 보고서 감동받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숲에서 살며 하루 한끼 밖에 먹지 않지만 걸을 때의 모습에 감동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쳐 큰 보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대부호가 큰보시를 할 수 있습니다. 숲을 기증한다든가 정사를 짓는 등 커다란 보시에는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왕이나 재력가들이 큰 보시를 했습니다. 그것은 교단이 청정했기 때문입니다. 청정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보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정사의 소유권은 사방승가에 있습니다. 만일 대부호가 특정한 수행승에게 보시한다면 개인사찰이 될 것입니다. 개인사찰은 승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스님들마다 개인사찰과 토굴 갖는 것이 유행이라 합니다. 스님들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재가자가 신심으로 기쁨으로 보시한 모든 것은 승가의 소유물입니다. 스님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재산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정사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에 봉헌하십시오.”라 한 것입니다. 승가는 부유해도 스님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근거문구라 볼 수 있습니다. (계속)
2016-12-2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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