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모여 사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 삼중축복의 노후수행공동체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 31. 17:11

 

모여 사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 삼중축복의 노후수행공동체

 

 

평범한 일상입니다. 늘 그 날이 그 날 같은 일상이지만 종종 파란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 났을 때 입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살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일어 났을 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불행이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삶의 태도는 좀더 겸손해 집니다.

 

나도 저렇게 늙었을까?

 

명절 때가 되면 민족대이동이 시작됩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미어 터진다는 뉴스도 있지만 대부분 연고를 찾아 갑니다. 그때 마다 느끼는 것은 아마 무상(無常)일 것입니다. 세월무상, 인생무상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 내지 못하여 형편없이 늙어 버린 어른들을 대했을 때 누구나 세월무상과 함께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나이가 들어감을 느낍니다. 가장 극적으로 느낄 때가 오랜 만에 만난 사람입니다. 동갑내기 사촌을 만났을 때 늙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유년시절부터 살아 온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교가 됩니다. 그럴 경우 나도 저렇게 늙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교동기 카페가 있습니다. 한번도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에 올려져 있는 사진을 보니 머리가 허옅게 새서 나이 들어 보입니다. 고교시절 얼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렇게 혐오하던 기성세대의 얼굴입니다. 사진속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 보일까?’라고 의문합니다.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갈수록 기대수명이 늘어 납니다. 이제 100세를 바라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90세가 넘어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100세를 채우고 죽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삼십년 후가 되면 100세를 훌쩍 넘겨서 까지 살지 모릅니다. 그럴 경우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고독한 황혼을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경우 오래 혼자 사는 것은 재앙일 수 있습니다.

 

몸의 기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노화 되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수명이 갈수록 높아져서 100세에 이른다면 수십년동안 병고에 시달리면서 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거동조차 불편 했을 때 사실상 숨만 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존해 있기는 하지만 아무 하는 일 없이 햇수만 차곡차곡 쌓여서 나이만 먹어 갑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힘든 것은 고독일 것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것도 괴롭지만 혼자 되었을 때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입니다. 홀로 된 노인들 입에서 외로워 못살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현실입니다.

 

노후공동체를 만들어야

 

노인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세월에 떠밀려 누구나 노년의 길로 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베이비붐세대의 경우 그 숫자만큼이나 젊었을 때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노년에 이르러서도 치열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삼사십년후 100세 시대가 되었을 때 노년인구가 청년인구보다 세 배나 많게 될 것이라 예측합니다. 그럴 경우 세상은 온통 노인천지가 될 것입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비틀거리면서 거리를 느릿느릿 걸어 갈 때 마치 요즘 종로3가에서 노인들을 보는 것처럼 암울한 분위기가 연상됩니다. 노인문제와 관련하여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책을 소개 하는 기사인데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반대로 홀로 된 노인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노후파산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연금이나 저축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입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독거노인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들이 서로 의지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되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자산을 모아 일정 규모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함께 생활하면서 고정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파산에 처한 노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는 것은 노후파산과 함께 친구와 지인을 잃고 사회와 연결돼 있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인데, 공동체가 노인들을 품고, 노인들이 직접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면 이 역시 해결할 수 있다.”

 

(노후파산, 공포영화보다 으스스한 현실, 오마이뉴스 2017-01-31)

 

 

 

 

 

 

 

어떤 이는 노인들을 비하하여 늙은 좀비라 합니다. 살아 있기는 하지만 시체와 같은 사람을 좀비라 합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음울합니다. 조만간에 맞이 하게 될 우리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좀비영화를 보는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고 심지어 공포스럽기 까지 합니다.

 

기사에서 가장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홀로된 노인입니다. 배우자가 있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홀로 되었을 때 고통이 가중됨을 말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들어도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기사에서는 노후공동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외로움

 

작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대한 것입니다. 나홀로 사용하기가 아까워서 전대 했습니다. 사무실 공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서로 말하지 않습니다. 만나면 가볍게 인사하는 것 외에 일체 대화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만일 혼자 사무실을 쓴다면 그것은 독방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같이 늙어 가지만 배우자가 있다는 것은 힘이 됩니다. 설령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내도 옆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감옥중에서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독방을 말합니다. 감옥에서 사고치면 독방에 넣어 격리조치 합니다. 감옥중의 감옥입니다. 독방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음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나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했을 때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외로움일 것입니다. 아프거나 배고픈 것을 참을 수 있어도 아마 외로움은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창조주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디가니까야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 loko vivaṭṭati. Vivaṭṭamāne loke suñña brahmavimāna pātubhavati. Atha kho aññataro satto āyukkhayā vā puññakkhayā vā ābhassarakāyā cavitvā suñña brahmavimāna upapajjati. So tattha hoti manomayo pītibhakkho sayapabho antalikkhacaro subhaṭṭhāyī, cira dīghamaddhāna tiṭṭhati.

 

“Tassa tattha ekakassa dīgharatta nivusitattā anabhirati paritassanā upapajjati – ‘ aho vata aññepi sattā itthatta āgaccheyyu ’ nti. Atha aññepi sattā āyukkhayā vā puññakkhayā vā ābhassarakāyā cavitvā brahmavimāna upapajjanti tassa sattassa sahabyata. Tepi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 dīghamaddhāna tiṭṭhanti.

 

수행승들이여, 언제 어느 땐가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세계가 생성되는 때가 있다. 세계가 생성될 때에 텅 빈 하느님의 궁전이 나타난다. 그 때 어떤 뭇삶이 수명을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텅 빈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오 다른 뭇삶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불만을 갖고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자 다른 뭇삶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그 뭇삶의 권속으로서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D16, 전재성님역)

 

 

디가니까야 브라흐마잘라경(D1)’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일종의 불교판 창세기라 볼 수 있습니다. 유일신교와 달리 창조주라 스스로 칭하는 자는 바로 윗 천상에서 수명과 공덕이 다하여 아래 세상으로 처음 태어난 자입니다. 그런데 홀로 살다보니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홀로 사는 자가 나에게 말벗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나에게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뭇삶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aho vata aññepi sattā itthatta āgaccheyyu)”(D1) 라고 갈망한 것입니다.

 

창조주에게도 외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홀로 살 때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유일신교의 창세기를 보면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유일신도 외롭고 심심하고 적적해서 말 벗이라도 하려고 피조물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거주식선원(Residentila Zen Center)

 

홀로된 노인들이 모여 살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외롭지 않은 것이 아마 가장 큰 장점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하고나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마음과 뜻이 맞아야 합니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런 것 중에는 종교모임도 있을 것입니다.

 

거주식선원이 있습니다. 이를 영어로 ‘Residentila Zen Center’라 합니다. 숭산스님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을 상대로 포교 했을 때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일종의 선수행공동체라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홀이 있는 거실을 세 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각자 방이 있어서 프라이버시는 보장 됩니다. 공동으로 취사하여 밥을 먹고, 함께 모여 수행하는 공동체입니다. 각자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삶을 보장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모임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노후공동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후공동체시스템은 요즘 노인정이나 마을회관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농촌의 마을회관의 경우 노후공동체의 초기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홀에 개별적인 방이 마련 되어 있다면 함께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나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 가지만 모여 살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뿐더러 무엇 보다 외롭지 않아 좋습니다. 마을회관을 확장한 형태가 아마 미래의 노후공동체의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을회관의 경우 오랜 세월 알고 지내는 사람들 위주이기 때문에 위화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낯선 자가 나타나면 경계할 것입니다. 잘못하면 공동체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취향이 맞는 사람들 위주로 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 아마 종교노후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주식선원처럼 중앙 홀에서 함께 수행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운영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수행공동체 생활을 하면

 

공동체 생활을 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외롭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종교공동체라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수행할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신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데 이는 종교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뛰어난 자를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모임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부러움과 존경을 받듯이, 수행하는 모임에서는 수행잘 하는 사람을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악취가 나는 물고기를

길상초의 잎사귀로 엮으면,

길상초 또한 악취가 풍긴다.

어리석은 자를 섬김은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잎사귀로 목향수를 묶으면,

잎사귀들이 향기를 풍긴다.

슬기로운 자를 섬김은 이와 같다.

 

그러므로 같은 잎사귀들의 바구니에서

자신의 성숙을 알아서

참사람이 아닌 자들을 섬기지 말고

현자라면 참사람들을 섬겨야 하리.

참사람이 아닌 자들은 지옥으로 이끌고

참사람들은 천상세계로 이끈다. (It.76, 전재성님역)

 

 

수행하는 모임에서는 수행의 향내가 날 것입니다. 계행을 지키고, 고귀한 침묵을 하며, 지혜롭게 사는 자들의 모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씻겨 줄 것입니다. 마치 감자를 씻을 때 솥단지에 넣고 흔들어 씻는 것과 같습니다. 감자를 개별적으로 씻을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솥단지 안의 감자는 서로가 서로를 씻겨 주기 때문에 더 빨리 씻겨 집니다. 마찬가지로 수행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면 서로가 서로를 씻겨 주기 때문에 모두를 향상으로 이끕니다. 특히 뛰어난 자가 있으면 모두 그 자의 수준으로 가고자 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모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수행승들이여, 최상의 모임이란 무엇인가? 그 모임 가운데 장로수행승이 사치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탈선을 멍에로 꺼리고 멀리 여읨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 그들도 사치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탈선을 멍에로 꺼리고 멀리 여읨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최상의 모임이 한다.(A3.93, 전재성님역)

 

 

어느 조직이나 단체이든지 리더가 있습니다. 수행공동체에서는 스승이 리더일 것입니다. 스승은 모든 것에서 사표(師表)’가 됩니다. 학식과 덕행이 높아 세상사람들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구성원들은 리더를 따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수행공동체라면 스승을 따라 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Tesa pacchimā janatā diṭṭhānugati āpajjati)”라 했습니다. 노후수행공동체가 있다면 그 중에 가장 수승한 자를 따라 할 것입니다. 노령인구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실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기형적으로 변하는 인구피라미드

 

가면 갈수록 노령인구는 늘어갑니다. 가면 갈수록 매년 신생아는 줄어듭니다.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베이비붐세대를 따라 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10동안 태어난 숫자가 거의 천만에 달합니다. 2017년 현재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피라미드 (움직이는 인구피라미드 - 통계지리정보서비스 - 통계청)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7 인구피라미드

(총인구: 5144만명, 평균연령: 41

 

 

 

2017년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40대 말에서 50대말 까지가 가장 많습니다. 이런 피라미드는 기형적입니다. 베이비붐세대가 청소년기었을 때인 1978년 고도성장기의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77 인구피라미드

(총인구: 4595만명, 평균연령: 31)

 

 

베이비붐세대의 중간이라 볼 수 있는 58년 개띠 기준으로 보았을 때 1977년 인구피라미드 모습입니다. 현재 시점에서 40년 전입니다. 40년전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안정적입니다. 문자 그대로 피라미드 모양입니다. 그러나 5세 이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어서 균열조짐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40년 후의 인구피라미드는 어떤 모습일까요? 시점을 2057년으로 해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57 인구피라미드

(총인구: 4656만명, 평균연령: 54)

 

 

2057년이 되면 현재 59세의 사람은 99세가 됩니다. 40년 후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100세가 되는 인구는 여자가 69,000명 가량이고, 남자는 25,000명 가량이어서 거의 10만명에 달합니다. 그때 우리나라 총인구는 4,600만명 예상합니다.

 

삼중축복의 노후수행공동체

 

지금으로부터 40년 후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더 이상 피라미드형태를 띠고 있지 않습니다. 노인인구가 청소년인구의 세 배에 달해서 기이한 구조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양에 대하여 어떤 이는 핵폭발을 연상케 한다고 합니다. 원자폭탄이 폭발하면 버섯구름형태를 띠는데, 인구피라미드가 마치 핵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가 공멸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구가 폭발하면 공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구폭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버섯구름 모양의 인구피라미드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인구가 노령화 되는 것입니다. 90세를 넘어 100세 까지 오래 사는 노인들로 거리는 넘쳐 날 것입니다.

 

종로 3가에 가면 비틀거리며 힘겹게 걷는 노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힘없는 모습, 그리고 쾡한 눈동자를 보면 삼사십년 후 거리 모습이 연상됩니다. 살아 있긴 하지만 죽은 시체처럼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 하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을 떠오르게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노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구나 배우자가 없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이제 개별적인 노인대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상한 것 보다 배나 더 오래 살게 되었을 때 노후 자금은 도중에 바닥 나 버립니다. 길거리는 죽지 못해서 살아 가는 노인들로 넘쳐 날 것입니다. 해법은 단 한가지 입니다. 함께 모여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입니다. 수행공동체가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삼사십년 후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미래는 장미빛이 아닙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고령화문제는 현실화 될 것입니다. 미리 대비 하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할지 모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취미 모임이 될 수도 있고, 공부모임이 될 수도 있고, 수행모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고 정신적 성장을 꾀하는 것입니다.

 

홀로된 노인이 수행공동체생활을 하면 외롭지 않아서 좋고, 서로 도움이 되어서 좋고, 무엇 보다 좋은 것은 공부하고 수행함으로 인하여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어서 좋습니다. 노후수행공동체는 삼중축복이자  일석삼조의 효과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관계를 맺어 놓아야 합니다.

 

노숙자들이 보호소에 들어 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통제도 있지만 무엇 보다 옆에 자는 사람이 매번 바뀐다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매번 옆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하여 공포스럽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리 커뮤니티를 맺어 놓으면 서로 익숙할 것입니다. 지금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관계를 맺어 놓으면 노후를 외롭지 않게, 비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함께 모여 사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2017-01-31

진흙속의연꽃